Skill Search Gets Done RAW novel - Chapter 174
175. 헌터 전쟁의 시작 (1)
쇄도 길드 본사, 길드장실.
오랜만에 찾아온 이곳에는 나를 포함해 총 네 사람이 앉아있었다.
회의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쇄도 길드의 젊은 길드장, 허유강.
그 옆에는 검선 허도준. 그리고 부길드장 지휘성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미국은 보유 중인 아티팩트 수백 점과 헤게모니 길드의 헌터 절반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염제를 비롯한 최상위랭크 헌터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상황이 수습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휘성은 탁자 위의 지구본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게다가 백악관에서 있었던 칼라미티의 대 인류 선전포고. 그 이후로, 전 세계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지도에서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남미에서는 전례 없는 대홍수가 발생했고.”
빙르르르─
지구본이 돌아가며 지휘성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유럽을 가리켰다.
“유럽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정전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대정전은 전염병처럼 주변국으로 번지고 있으며 그 여파는 동유럽을 지나 서아시아, 중동 아시아까지 번진 상태라고 합니다.”
유럽에서 발생한 대정전.
현대 인류는 화석, 원자력, 신재생 에너지. 그리고 전세계 에너지 수요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마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모두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원료일 뿐.
전기의 대체재로써 마나를 활용하는 방안이 꾸준히 연구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인류에게 있어서 전기의 대체재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즉, 전기가 없으면 이 세계는 석기시대와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
그 때문에, 미래 기억 속 세상은 언제나 빛을 잃은 모습이었다.
칼라미티의 여섯 간부 중, 유럽을 담당하는 폴룩스가 일으킨 재앙. 훗날 ‘시대 회귀(Era Regression)’라 일컬어지게 된 현상 때문이었다.
“바로 어제는 아프리카 연합의 장 또한 유럽과 아시아의 주변국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던전과 마나가 출현한 이래로, 계속해서 국지적인 내전을 이어온 아프리카의 헌터와 길드들.
칼라미티의 리겔을 주축으로 한 아프리카 연합은 혼란스러웠던 아프리카를 단일국가로 통일시켜버렸다.
그리고 칼라미티의 대인류 선전포고가 있었던 다음 날, 그들 또한 주변국으로 전쟁을 선포했던 것.
팔짱을 끼고 지휘성의 설명을 듣던 검선, 허도준이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는 듯 말을 꺼냈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그들도 칼라미티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 자들이 분명할걸세.”
“백악관 사태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일어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놈들은 검은 폭풍인가 뭔가 하는 이상 현상을 일으키고 다닌다지?”
“맞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전염병처럼 퍼지는 대정전 속에서, 마나를 쓸 수 없게 하는 폭풍이 몰아닥친다라……. 이건 그야말로 원시의 전쟁이나 다름이 없겠어.”
그때 허유강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런 그들이 현재 태평양을 건너와서 일본 후쿠오카 쪽에 자리를 잡았다죠?”
“쯧. 아무리 일본이 몬스터 때문에 무정부상태라고는 하지만,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어.”
“공식적으로 칼라미티를 지지한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놈들은 칼라미티를 도와 대한민국을 치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씁쓸하게 말하는 지휘성의 말을 들으며, 허유강은 지구본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중국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아프리카 연합보다도, 현재는 인천 쪽이 더욱 시급합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해야 하겠죠.”
현재 인천 앞바다에는 중국의 대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방과 헌터자원이 모조리 그쪽으로 쏠려있는 상황이었는데.
중국 해군의 항공모함 여단.
그리고 스톰차저 길드에서 보낸 전투선단.
즉, 이전에 안남항에서 나를 공격했던, 그 마력포가 달린 어선들이 무려 100,000대 이상 웅장하게 도열해있었다.
만문이 넘는 마력포는 인천을 불바다로 만들기 위해 점점 더 해안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고문님과 지휘성 부길드장님께서는 예정대로 인천을 향해 출발해주십시오.”
“그래도 되겠는가? 그놈들은 쪽수만 많지 사실 대단한 헌터는 없다고 알려져 있네. 차라리 우리가 부산 쪽에 머무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유사시를 대비하여 검선께서 그 자리에 꼭 계셔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쪽수 싸움이기 때문에, 부길드장님꼐서 꼭 그 자리에 함께 계셔주어야 할 것입니다.”
“흘흘.”
“흠. 알겠습니다.”
부길드장 지휘성은 버프와 디버프를 걸 수 있는 깃발형 지휘 스킬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길드장 허유강의 말대로, 인천 앞바다를 통해 다가오는 중공군을 상대로는 그가 꼭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 쪽에는 한세훈 군을 보낼 생각이로군.”
“사실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한세훈 길드장님의 생각입니다.”
“흘흘. 그런가?”
검선과 지휘성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언제 쇄도 길드의 길드장, 허유강과 단둘이 이러한 결정을 끝내놓은 것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백악관에서 있었던 칼라미티의 대인류 선전포고 이후 모두 예정되어있는 일이었다.
나는 곧바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급한 사항들에 대해서 먼저 연락을 돌렸고, 쇄도 길드의 허유강과도 대략적인 이야기를 모두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나대신 대답을 이어갔다.
“놀랍게도, 한세훈 길드장님께서는 지금의 상황을 모두 예측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저희가 조금은 숨을 돌려가며 상황에 대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마나스톰 길드가 쳐들어와서 우리 쇄도 길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이후,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면 분명 지금 저희는 숨 쉴 틈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세훈 군. 자네에게는 항상 여러모로 신세를 지는구먼.”
“별말씀을요. 저 또한 쇄도 길드와 항상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어서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문득 검선은 작게 웃으며 나를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일이 조금 잠잠해지거든, 자네에게 내 손녀를 소개시켜주고 싶은데. 어떠한가?”
“손녀요……?”
“혹시 궁금증이 동하는가? 홀홀. 필요하면 말하게나. 언제든 프로필을 보내줄 터이니.”
갑자기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갤러리를 실행시키는 검선을 바라보다, 나는 허유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쇄도 길드에 왔는데, 뭔가 조금 허전해서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하, 제 조카 녀석이 궁금하신 겁니까?”
조카? 순간 누구를 뜻하는 것인지 생각에 잠겼으나, 곧 이해할 수 있었다.
허유강의 조카라면, 검선의 손녀를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카가 몇 살이길래…… 허유강이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그의 조카를 소개해준다니?
문득 미래 기억 상 검선이 다자녀를 거느렸던 걸로 유명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할 수 있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
나는 누군가 앉아있었어야 할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쇄도 길드의 수뇌부 회의에 항상 함께했던 사람이 없었다.
“혹시, 연소율 씨는 어디에 계십니까?”
원채 바쁜 사람이다 보니 지금까지 얘기를 못 꺼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연락도 안 받는걸 보며 당연히 상황이 시급한 인천 쪽에 먼저 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의 이름이 완전히 배제되어있어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급속히 어두워져 가는 지휘성과 검선 그리고 길드장, 허유강의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내가 뭐라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검선, 허도준이 ‘흘흘’거리며 먼저 말을 내뱉었다.
“잡혀갔다네.”
“네……?”
***
어두운 랜턴 하나가 내부를 비추고 있는 어두운 실내.
쐐액!
창살이 가로막고 있는 수감실 내부에서 핏물 한줄기가 튀어 올랐다.
“꺽!”
이어지는 검 끝은 간수의 심장을 파괴한 뒤 그대로 뽑혀져 나왔다.
푸슛!
근 며칠 동안 물도 마시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다.
그저 간수가 확인하러 들어오는 이 순간만을 위해, 숨 쉬는 것조차 조절을 하며 죽은 척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벌컥! 벌컥!
“허억!”
식수대에 고여 있던 물을 한 번에 들이킨 연소율은 잠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며칠 사이에 상당히 초췌해졌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죽을 뻔 했네…….”
야심한 새벽에 길드의 사옥을 습격해온 마나스톰 길드의 마법사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수장이자 S급 마법사였던 드레이크와 격전을 치렀다.
마지막 순간 양쪽 다 최후의 기술을 사용했고, 그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빛 한줌 없는 장소였기에, 시간의 흐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체감 상으로 대략 일주일은 지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시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한 자세로만 가만히 누워있었다.
근육과 관절이 굳고 욕창이 생길 뻔했지만, 그녀의 S급 체력 스탯은 그러한 극한의 상황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가진 건…… 전부 다 빼앗겼고.”
들고 있던 검이나 방어구 등, 입고 있던 옷가지를 제외한 모든 물건을 빼앗겼다.
연소율은 시체가 된 간수의 몸을 뒤져보다가 아무것도 건질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대로 발로 차버렸다.
그러나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간수가 들고 있던 검은 그나마 제법 쓸 만한 양산품이었다.
“다른 무기가 아니라 다행이네.”
꼭 검이 아니어도 못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가장 잘 쓰는 건 검이었기에.
저벅, 저벅.
그녀는 복도를 걸어가며 생각했다.
“여기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지?”
간간히 존재하는 흐릿한 랜턴을 제외하면, 빛 한 점 존재하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딘가의 감옥이 아닐까 싶었는데, 돌아다니는 내내 다른 수감자나 수감실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길게 이어진 컴컴한 복도 곳곳에는 그저 용도를 알 수 없는 빈방만 몇 개씩 존재했을 뿐, 다른 수감자나 창살 달린 수감실 같은 건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간수도 자신을 지키고 있던 헌터 한 명 외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곳이 어떤 목적의 시설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저기가 출구인가?”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하며 천천히 걸음을 이어나가던 도중.
미세하지만 분명 조금 더 밝은 빛이 흘러들어오는 출구를 찾아냈다.
“……!”
마침내 밖으로 나오자, 이곳은 우물 같기도 하고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 같은 장소였다.
위를 올려다보자, 분명 빛이 내려오고 있긴 했다.
문제는 그 빛의 근원이 너무나도 아득한 높이에 존재했다.
빛의 크기는 손톱보다 작았다.
“여길…… 어떻게 올라가지?”
당연하게도 점프만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이였고, 그녀에게는 비행스킬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위 마법사 계열 헌터가 아니면 비행스킬은 쉽게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기어 올라가도 한세월은 걸리겠는데.”
그 밑바닥에 우두커니 선 연소율은, 흠칫 고개를 돌리며 검을 바로잡았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쿠아아아아악!》
그것은 타겟을 부식시키고 느리게 만드는 독을 내뿜는, S급 몬스터 스냅드래곤(Snapdragon)이었다.
“어째서 저런 몬스터가 이런 곳에……?”
파아앗!
날아오는 독성 스프레이를 검풍을 쏘아내 흩트려버렸다.
직후 몸을 날리며 나머지 물질을 피해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옥의 우물 밑바닥.
그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날아오는 저 독성 물질에는 단 한 방울도 닿으면 좋을 게 없었다.
《쿠학!》
《쿠아악! 쿠아아아악!》
……
동시에 원통형 벽면 곳곳에서, 보이지 않았던 구멍을 통해 수십 마리의 스냅드래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
퉷! 퉤퉤퉷! 퉷퉷!
놈들은 마치 우물 바닥을 가득 채우기라도 할 기세로 저마다의 독성 물질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걱!
두 마리 째의 스냅드래곤을 처치한 연소율은, 곧바로 체내의 마나를 순환시켰다.
연녹색 기운이 외부로 방출되어나갔다.
마나를 한가득 머금은 그녀의 검은 이내 바람의 춤을 시작했다.
“블레이드 스톰(Blade Storm)!”
쏴솨솨솨솩!
휘몰아치는 연녹색 폭풍은 살포된 독성 물질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는 곳곳에 산재한 스냅드래곤들을 사정없이 난자했다.
그때였다.
쿵! 쿵! 쿵쿵!
끝없이 높게 솟은 위쪽 어딘가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몬스터들이 하나둘 지면에 착지해갔다.
그것들이 착지하는 충격만으로 몸이 날아갈 것 같은 격심한 파동이 불어 닥쳤다.
연소율은 그것들을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다.
“자이언트 씨 터틀……?”
그것은 S급 거북이였다.
스냅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숱한 던전 공략 실적에서 몇 번인가 마주쳤던 몬스터였다.
《트트틉!》
한 마리 한 마리 화물선크기는 되어 보이는 놈들은 빠르지는 않지만 착실한 속도로.
연소율을 향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왔다.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야 해……!”
쐐액! 쐐애애애액!
그녀의 검은 거북이들을 향해서도 끊임없이 춤을 췄다.
등딱지는 갈라져 있던 모양대로 분리되었으며, 급소라고 불릴만한 부위는 모조리 찔리고 베였다.
“또?”
쿵! 쿵! 쿵! 쿵!
이 지옥의 우물에 또 다른 몬스터가 리필되었다.
《하아아아아아악!》
이번에는 언젠가 상대했던 S급 몬스터, 히드라였다.
연소율은 손톱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 저 위에서 이 죽음의 구덩이를 향해 몬스터를 들이 붙고 있다.
“거기!”
들릴 리 없지만 크게 외쳐보았다.
“누구 있어요?”
도대체, 누가? 어떻게?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지?
갑자기 벌어진 알 수 없는 현상에 연소율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캬하아아앗!》
어느새 통속에 리필된 괴수의 종류는 수십 종에 달했다.
그리고 연소율은 마치 믹서기의 날이라도 된 심정으로 모조리 썰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공격속도와 이동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아바타 오브 온슬럿’을 한계까지 사용하며 그녀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블레이드 블라스트(Blade Blast)!”
콰과과과과과광!
흩어진 검기다발이 일제히 폭발하며 괴수들을 찢어발기고 터뜨려나갔다.
그리고 연소율은 튀어 오른 괴수의 살점과 진득한 타액에 점점 범벅이 되어갔다.
날의 예리함은 무뎌져갔고, 회전속도 또한 느려졌다.
애초에 연소율이 이곳에 끌려오기 전부터 마나스톰의 길드장과 전투를 벌이느라 격심한 소모를 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감옥을 탈출하기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소모한 체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큿…….”
그리고 이제는 몸에 남은 마나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털썩.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도륙한 뒤,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작은 하늘에서는 또다시 일련의 몬스터들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엔 또 어떤 몬스터일까?
그런데 이번에 떨어진 건 몬스터가 아니라, 의자였다.
의자?
“쇄도 길드의 S급 헌터, 연소율. 과연, 쓸 만한 자질이야.”
아니, 일반적인 의자라고 하기엔 등받이가 너무 높고, 흡사 왕좌(王座)처럼 생긴 의자였다.
“진작에 잡아올 수 있었다면 여러모로 유용할 수도 있었겠어.”
서서히 떨어지는 그 왕좌에 오만하게 앉아있는 검은 실루엣의 남자는 새하얀 흰자위에 연소율을 비추어보았다.
“이로써 테스트는 끝났다.”
“당신은……?”
천천히 추락하던 왕좌는 이윽고 연소율의 머리맡 위에서 멈춰 섰다.
“반갑다.”
검은 실루엣의 남자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칼라미티의 주인.”
그 말을 들은 연소율의 동공이 크게 떠졌다.
굽혔던 무릎을 바로 새웠고, 검 손잡이를 다시 한 번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들고 있던 검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
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을 끈적하게 뒤덮었던 오물도. 주변에 산처럼 쌓인 괴수의 사체들도.
이 지옥의 원통도 모조리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연소율은 그저 시커먼 우주 한 가운데에 디딜 수 있는 마땅한 발판도 없이 둥둥 떠 있었다.
왕좌에 앉아있는 이가 나직이 말했다.
“이제부터 내 것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