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146
145화. 달콤한 초대 (11)
쌓이는 일감에 캄캄해지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으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견달래와 폭삭 으깨지는 리조트를 보고 휘파람을 휙 불었던 모란을 쏘아봤다.
누가 봐도 너희 쪽의 수작질인 것 같으니 뭐라도 내뱉으라는 무언의 항의였다. 연혜훈이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윤혜아에게 비뚤어진 집착을 보이는 견달래라면 설명해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 눈초리는 능청스레 흘리던 견달래가 윤혜아의 날카로운 기세를 받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주인님이 아끼는 친구야~! 아니지, 이제는 아꼈던 친구라고 해야겠네. 신여월 앞에 내려두고 사지 멀쩡히 살아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으실 테니까~”
“어휴, 저거 만드는 데에 품이 얼마나 들었는데요. 더 귀하게 쓰실 줄 알았더니만 여기다가 보낼 줄은 몰랐네요.”
“어머나? 모란이는 연구원 아니잖아~?”
“재료 조달을 누가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내 담당이었다고요. 얼마나 까다로운 걸 원하시던지 한참 고생했었어요.”
눈이 없는 뱀의 머리, 길고 튼튼한 뿔, 단단한 등껍질, 어두운색의 비늘, 칼날보다 날카로운 발톱 등등 어찌나 구체적이고 구하기 어려운 것들만 주문했는지 모른다며 모란이 투덜댔다.
신여월이 마주하고 있는 괴생물체는 모란이 주르르 읊은 ‘재료’를 한데 모은 것처럼 생겼다.
크기가 어찌나 큰지 그 앞에 선 신여월이 인형보다도 자그맣게 보였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너희. 하기야 인체 실험도 자행하는 곳에서 말 못 하는 동물은 얼마나 쉬이여길까.”
윤혜아는 아직 풍월주 쪽이 인간을 마수로 개조하는 실험을 했다는 걸 모르는 때일 텐데? 그야 인체 실험의 범주는 굉장히 넓고, 윤혜아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문득 어쩌면 풍월주가 유달리 윤혜아를 빨리 죽이려고 했던 게 눈치가 빠르고, 똑똑해서 실험이 탄로 날까 무서웠던 게 아닐까 싶어졌다.
아무튼, 경멸을 감추지 못하는 윤혜아의 낮은 목소리에 모란이 코웃음을 쳤고, 견달래는 낄낄 얄밉게 웃었다.
“살아있는데 인간이 아닌 짐승이니 동물이긴 하지~! 그런데 쟨 걸어 다니는 시체에 가까워, 아무래도~? 동물 사체 일부분을 조각조각 구해다가 보자기 마냥 꿰매서 만들었는데, 그걸 동물 취급하는 사람의 마음이 넓은 거지~!”
“어디까지나 주인님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고, 자아 같은 건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죠. 게다가 주인님이 힘을 거두면 한낱 쓰레기가 되는데, 생명체로 존중할 필욘 없지 않나요?”
“맞아, 맞아~ 결과물이 특이해서 그렇지, 사체는 특이한 재료가 아니잖아~? 가죽이나 모피만 봐도 죽은 동물로 만든 거니까.”
난데없이 튀어나온 괴생명체를 응시하고 있다가 견달래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한숨을 삼켰다.
풍월주 밑으로 들어가려면 거짓말을 잘해야 한다는 조건이라도 있는 걸까? 청산유수로 나오는 말 중 맞는 거라고는 ‘사체는 특이한 재료가 아니다’라는 문장 하나뿐이었다.
‘저건 처음부터 창조된 생물이 아냐. 본래 커다란 몸집의 살아있는 마수를 가져와서 개조 실험을 거친 결과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터라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 애를 먹긴 했는데, 매번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이종 합성 마수’다.
흔히 ‘키메라’라고 불리는 종류인데, 풍월주 쪽에서 몹시 공들여 연구하는 분야다.
풍월주는 언제고 제 뜻대로 다룰 수 있는 마수 군단을 원했고, 적어도 그 군단의 우두머리는 생각할 줄 아는 존재, 즉 마수의 탈을 뒤집어쓴 인간이기를 바랐기에 연구에 많은 지원을 했다.
내가 이걸 잘 아는 이유는 풍월주 밑에 있어 봤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게임 후반부로 가면 반드시 키메라 실험 내막을 알 수 있는 이벤트가 생기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수는 동물 이하 취급이라 무엇을 해도 상관없긴 해. 윤혜아가 하는 연구도 마수와 관련된 것들이 꽤 있으니까 말이지. 다만 쟤들이 문젯거리가 되는 이유는 인간을 기초로 하는 인조 마수를 만든 후에 그걸 개조해서 키메라를 만드는 거여서지.’
소설로 읽었을 때만 해도 독자인 나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풍월주 쪽은 하나같이 인간말종이구나.’ 정도의 감상만이 남았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게임은 텍스트 묘사로는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 선명한 그래픽과 상세한 일러스트로 실험실 내부 모습과 키메라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전까지 심의 등급이 왜 만 18세 이상인지 궁금했었는데, 이것 때문에 그랬다고 바로 이해가 갈 정도로 구역질이 나왔었다.
‘미성년자를 위한 블라인드 버전도 있었지만, 해보지는 않아서 이 부분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고….’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이 있던 제작진이었으니까 시각적인 묘사는 덜었어도 텍스트 묘사는 덜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충격적이었던 장면을 애써 잊으려 노력하며 윤혜아를 힐끔 살폈다. 깨져나간 가면의 아랫부분으로 인해 드러난 입가가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영리한 사람이니까 짐작한 거겠지. 결국, 저 괴물의 속 알맹이엔 실험체가 된 인간이 있다는걸.’
거기에 윤혜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이온학의 권위자며, 지금껏 진행해 온 연구도 수없이 많다. 인체 실험으로 탄생한 인조 마수가 복종만을 머리에 새기고 자아마저 잃어버린 키메라가 될 때까지의 과정도 추측할 수 있을 거다.
‘윤혜아는 연구에 있어서 윤리 의식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니까, 지금은 혐오감을 참는 것만으로도 용하지.’
자잘한 흉이 가득한 주먹이 꽉 쥐어지는 걸 못 본 척 눈을 돌렸다. 감정 표현에 인색하지 않은 윤혜아지만, 까마득한 후배 앞에서 분노로 날뛰었다는 평은 받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아, 그런데 쟤를 왜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통로만 멀쩡했어도 우리가 알아서 주인님 곁으로 돌아갔을 텐데요.”
“우리가 감히 주인님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워낙 변덕이 심하시잖아~! 총애도 여기저기 옮겨 다녀서 종잡을 수 없잖아? 애지중지하시던 쟤가 신여월 앞에 던져질 줄 예상한 사람은 없을걸~”
“하긴 그건 그렇네요. 난 쟤는 오래 아껴두실 줄 알았는데, 벌써 질리신 걸까요?”
“글쎄? 그것보다는 아마 쓸모가 있어서겠지~? 쟬 아끼던 것도 특이한 능력이 있어서였으니까.”
자아가 없는 키메라는 실패작으로 분류하는 주제에 아낀다는 말이 왜 붙었나 했더니만 특수 능력이 있다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에 애써 진정하고 있는 윤혜아와 일부러 신여월이 여유롭게 사냥하고 있는 괴물에 신경을 쏟는 척 견달래와 모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동시에 고개를 휙 돌렸다.
날개가 부서지면서 등짝이 난장판이 된 견달래는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얼른 쉬고 싶다며 태평하게 재잘거렸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모양인지 가면 위를 두드리고 있던 모란이 이제 통로가 열릴 거라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지. 다쳤어도 견달래는 상대하기 까다로우니까 모란만이라도 잡아야 해.’
용왕의 저주를 풀어버렸던 터라 풍월주와의 연결 고리도 끊어진 상태다.
몇 개의 아지트를 중심으로 일정 기간마다 거처를 옮기는 풍월주는 견달래의 말처럼 변덕이 심해서 경향성이라는 게 없는 수준이다.
용왕이 꾸준히 저주를 통해 아지트의 개수와 위치를 특정해냈고, 풀리기 직전에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냈지만, 그걸로는 역시 모자라다.
‘방어만 하다간 어영부영 풍월주한테 휩쓸려. 무조건 아지트로 기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목표 장소를 세 개 안쪽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어.’
내가 오래전부터 짜두었던 습격 계획이 실행될 시점이 오면, 협회의 병력 상 최대 세 개의 조로 나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협회 본부를 방어하는 인력으로 배치되어야 하니, 습격에 참여할 인력은 두 조인 셈이다. 고등급 감응자의 수가 적으니 조를 하나 더 늘릴 수도 없다.
‘모란이 정확히 어떤 위치인지는 몰라도 풍월주가 직접 조달 임무를 맡길 정도면 충분히 아끼는 부하겠지. 잡아두면 쟤가 입을 열지 않더라도 풍월주가 수를 쓸 거야. 그럼 그 뒤를 따라붙어서 아지트를 캐내면 돼.’
여차하면 아이온을 써서라도 모란을 구속해서 끌고 갈 다짐을 하며 봉을 꽉 잡는데, 그 순간 쿵쾅쿵쾅 괴물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바람을 잔뜩 머금은 포효가 사방을 채웠다.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가 한순간 싹 비워질 정도의 오싹한 공기가 칼날처럼 세워졌다. 신여월의 불편한 기색에 반응한 아이온이 공격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괴물의 몸집에 자잘한 상처만 계속 내던 신여월은 본격적으로 해치울 셈인지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섬섬옥수라 칭해도 아깝지 않을 고운 손이 희게 아이온을 머금었고, 괴물이 난동을 부리며 입을 쩍 벌리는 찰나 견달래가 모란의 팔을 거머쥐고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지금 무슨…!”
“놓칠 줄 알고?”
놀란 내가 멍청하게 굳어버린 것과 다르게 윤혜아는 신속하게 발치에 아이온을 모으더니 폭발적인 속도로 지상을 향했다.
나도 뒤늦게 그들을 따라 수직으로 낙하하는 수준으로 바닥으로 내려갔지만, 윤혜아를 따라잡는 일도 요원했다. 게다가 먼저 일을 벌였던 견달래와 모란이 아주 조금 윤혜아보다 빨랐다.
모란의 석장을 빼앗아 괴물의 쩍 벌린 입에 세로로 끼워 닫히지 않게 고정한 견달래가 석장에 매달려서 경쾌하게 인사했다.
얼떨결에 견달래에게 과격하게 끌려간 모란은 멀미라도 하는 듯 가면을 꾹 누른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우리 오랜만이다, 그죠? 그런데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엔 장소가 영 그렇네~!”
“두견(杜鵑)이로구나. 아이들에게서 보고서를 받기도 전에 이 더러운 곳이 너희가 한 짓임을 알게 되었으니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저번에도 짐작은 했으면서 못 잡았지 않았느냐고 주인님께서 꼭 전해달라고 하셨어~!”
“그자가….”
“그리고 오늘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야, 신여월 협회장.”
석장의 주인인 모란이 짝- 손뼉을 쳤고, 기다란 석장이 빠르게 수축하여 금강저로 변했다. 당연한 순서로 괴물의 입이 꽉 다물렸다. 까드득. 이빨끼리 부딪치며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쫙 퍼졌다.
견달래가 신여월에게 말을 거는 바람에 끼어들지 못했던 윤혜아가 하염없이 괴물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신여월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고는 여전히 아이온을 모아두고 있던 오른손을 휘둘렀다.
다시금 입을 크게 벌렸던 괴물이 그 상태로 잠깐 멈췄다가 이내 쿵 넘어갔다. 어디를 공격했는지 보이지도 않았는데, 시체에 흔적이 남아서 알게 됐다.
목 부근에 잔뜩 돋아 있던 비늘이 형편없이 뭉개진 채로 머리가 잘려서 바닥에 두어 바퀴 굴렀다.
그리고 눈이 없는 뱀을 썼다더니만 눈 대신 들어 있던 둥그런 구슬 두 개가 데굴데굴 굴러서 신여월의 발치에 멈췄다.
불쾌하게 내려다보던 신여월이 아이온을 이용해 구슬을 띄웠고, 정신을 차린 윤혜아가 빠르게 구슬을 눈으로 훑었다.
“영상 도구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 괴물의 안구 대용이고, 눈이 연결된 건 아마도….”
“그래, 말하지 않아도 알지. 풍월주, 그자 말고 누가 있겠느냐.”
붉은빛이 명멸하는 구슬을 들여다보던 신여월은 깊게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바로 부숴버렸다.
챙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구슬이 산산이 조각났고, 그 파편들은 저마다 나비의 형태를 취하더니 괴물 시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다가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진짜 나비도 아닌데 비늘 가루를 흩뿌려서 시체에 하얀 흔적이 도드라지게 남았다.
특수 능력이 뭔지를 모르는 상태로 절명해버려서 괜히 찝찝한 마음이 들어 비늘 가루가 묻은 부분을 노려봤다.
그때 훅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비늘 가루가 묻은 곳부터 시체가 녹는 것처럼 뭉그러지더니 거대한 웅덩이만을 남겼다.
몹시 꺼림칙한 검붉은 웅덩이는 서서히 소용돌이치며 균열이 열리는 것처럼 문을 ‘열었다.’
“이건 균열보다는 통로 같습니다.”
“나도 동감이야. 그런데 만들어진 걸 봐서 그런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데 어떡하죠, 여월 님?”
“우리가 협회인 이상 이걸 무시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보렴.”
마치 얼른 안으로 들어오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것처럼 검붉은 문은 자그만 깃털 하나를 툭 내뱉었다. 윤기가 흐르는 새파란 깃. 풍월주를 상징하는 파랑새의 깃이다.
“정성을 무시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
협회의 인물만을 노린 풍월주의 노골적인 ‘초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