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healer's hidden ending strategy RAW novel - Chapter 35
34화. 거울 속의 꽃 (2)
강제로 차에 탑승한 후, 피로에 못 이겨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밖이었다.
고즈넉한 산속. 하얀 울타리가 빙 둘려 있는 빨간 지붕의 펜션 앞에서 멈춘 차는 우리 셋을 내려주고 쌩하니 사라져버렸다. 나는 멍하게 눈을 끔뻑이다가 펜션을 손가락질했다.
“여긴 대체 왜 왔는데…. 지금 오후 3시거든? 여기서 뭐 저녁만 먹고 다시 상경해?”
“굳이? 오늘 그냥 여기서 자고 가면 되지. 얼른 들어가자. 아버지가 준비 다 해주셨댔어.”
“내일 결석하려고?”
“으하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쩐지 내가 내일 등교 가능하냐고 물었을 때 핀잔을 안 주더라니.”
박호승이 깔깔 웃으며 내 머리에 팔을 걸었다. 아프다고 피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라붙은 박호승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달력을 켰다. 새빨간 글씨의 15일, 그 옆의 16일을 누른 박호승이 깐족댔다.
“자, 이거 보세요, 김요한 친구님. 여기에 뭐라고 쓰여 있나요?”
“네 손가락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거든?”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박호승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때 옆으로 총총 다가온 이세환이 손에 든 커다란 가방을 추스르며 말했다.
“내일이 개교기념일이라서….”
“개교기념일?”
“왜, 요즘은 스승의 날도 오전 수업만 있으니까…. 우리 학교 올해로 3년 됐잖아? 담임 선생님이 첫해부터 계셨는데…, 스승의 날이랑 붙여서 쉬려고 5월 16일에 개교한 거래….”
이세환이 오늘도 소심하게 말끝을 흐렸다. 신나게 웃던 박호승은 우리밖에 없는데 어깨 좀 펴라면서 이세환에게 잔소리를 한 번 하더니 후다닥 달려가서 펜션 문을 활짝 열었다. 이세환이 여기는 오랜만이라며 그 뒤를 쫓았고, 나는 가장 나중에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이긴 하네.’
하도 수더분하게 다녀서 가끔 잊을 때가 있는데, 박호승은 손꼽히는 재벌가 자제다. 그것도 위로 나이 차이가 꽤 있는 형과 누나가 있어서 금지옥엽으로 잘 키운 막내.
그런 집안에서 살다 보면 재정적인 감각이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언제 받았다고 했더라? 중학교 입학 기념? 그랬던 거 같은데.’
이런 별장 정도는 턱턱 선물로 안겨주는 게 자연스러운 집이라는 거다. 실제로 어지간한 재물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박호승은 우리한테 이 별장을 소개할 때도 정말 별것 아닌 선물이라고 말했었다.
나름 사는 편인 이세환이 입을 쩍 벌렸고, 소시민이던 나는 그 자리에서 이거 완전 기만자라며 등짝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건 세계가 바뀌어도 똑같더라.’
일기장에 그날의 감정을 듬뿍 담아 적은 내용이 내 기억과 똑같아서 그저 웃음이 나왔었다. 묻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린 타임캡슐을 여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찾을 것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지만, 협회에 자리를 잡고 나서부터는 머리를 식히려고 일기를 찾았다.
어쨌든 일기장 덕분에 중학생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얘네들과의 대화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고 깨끗한 현관이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보여서 혀가 내둘러졌다. 여기에 박호승이 드나드는 건 1년에 세 번이면 많을 정도일 텐데도.
그때 우당탕 소리를 내며 먼저 들어갔던 박호승이 2층 계단에서부터 두 칸씩 뛰어 내려왔다.
“이야, 역시 최 실장님! 우린 뭐 손댈 것도 없이 다 해놓으셨네.”
2층으로 이뤄진 펜션을 싹 둘러봤는지 손가락으로 위층의 방과 아래층의 부엌을 가리키며 박호승이 기분 좋게 웃었다. 거실 소파에 짐을 내려둔 이세환이 그 말이 둥그렇게 눈을 뜨면서 물었다.
“최 실장님이…. 이런 일도 하셔?”
“요새 이래저래 흉흉한 일이 많아서 혹시나? 싶은 거지. 우리 아버지가 또 한걱정하시잖냐. 덕분에 최 실장님 일이 느신 거 같긴 한데, 내가 여기 간다고 하니까 최 실장님께서 직접 하겠다고 나서시더라고.”
“흉흉…? 요즘 무슨 큰일…. 같은 게…. 있었나…?”
“미디어에 공개될 만한 일은 아니고, 그냥 이것저것 있는 거야. 사실 나한테는 딱히 영향이 없을 거 같기는 한데, 보험이지, 보험.”
어깨를 으쓱인 박호승은 곧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놀면 된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세환은 연신 불안한 눈치였지만, 아는 것이 없는데 떠들 사람이 아니었던지라 금방 마음을 다잡고 소파에 앉았다.
진작에 앉아서 몸을 반쯤 눕히고 있던 나는 팔랑거리며 과자를 들고 오겠다는 박호승의 뒷모습에 잠깐 시선을 줬다. 그러자 이세환이 조심스럽게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을 걸었다.
“그으…. 요한이 너는 저 얘기 뭔지 알아…?”
“뭐? 흉흉한 일?”
“으응…. 혹시 호승이도 위험해지거나…. 뭐 그런 건…. 아니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주변을 자꾸 힐끔거리는 이세환의 모습에 픽 웃음이 샜다.
세계적으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백호 그룹에서 회장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의 별장을 위험에 빠지게 두겠는가. 설령 철통 보안이 뚫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바로 경호팀이 날아올 것이다.
지금까지 이세환은 경험해보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 철통 보안의 대상자가 되어 봤던 입장으로선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협회 기숙사보다도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계속 불안한 상태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니 풀어는 줘야겠다.
“괜찮아. 호승이네 말고, 다른 부잣집들이 신명 나게 싸우는 중이거든. 부딪치는 계열이 없는 건 아닌데, 쟤한테까지 손 뻗을 정도는 아냐. 전부 누님 손에서 컷 당할 거거든.”
“누님…? 누님이면, 그, 유승 누님?”
“어어, 그런 거 잘 하시잖아. 여차하면 지승 형님도 손 보태실 거니까 쟨 여기서 노닥거리는 게 돕는 거야. 여기만큼 안전한 곳도 드물고.”
보안부 부장 자리를 꿰차면서 본의 아니게, 사실은 노림수였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재벌가 사이의 일을 좀 알게 됐다.
이전 세계의 이맘때는 워낙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때라서 하나도 몰랐던 내용들이라 흥미로워서 좀 파봤다.
보안부 부장이 새파랗게 어린놈이라고 자꾸 신경을 긁는 놈이 그쪽에 있기도 해서 정성스럽게 조사를 했기 때문에 잘 안다.
겸사겸사 박호승네 집안도 연막으로 조사하기는 했는데, 내가 저기를 잘 아는 건 경험담이라….
‘후계자 싸움은 늘 피바다지, 뭘. 드라마나 영화가 오히려 양반이라니까. 원래는 어땠는지 몰라도 여긴 아이온까지 있는 세계라 아주 난장판이던데.’
전투계열의 고등급 감응자는 협회에 필수적으로 가입해서 일해야 하지만, 그 외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균열을 공략할 수 있는 핵심 인재들은 나라가 꽉 잡고 있어야 하지만, B등급 아래는 감응자의 숫자도 많고, 전투계열이 아닌 자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비감응자에 비하면 그들은 체력도 좋고 특수한 능력도 있어서 취직이 편한 축에 속하는데, 그런데도 불법적인 일을 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세림 그룹은 청렴하다고 선전을 그렇게 하면서 뒤가 제일 구리단 말이지. 첫째는 대놓고 암거래하고, 둘째는 밀수에 손댔길래 윗선에 익명으로 찔러놨는데 잘 받아먹었나 몰라. 그러니까 은신과 차폐라는 좋은 능력을 그딴 곳에다가 쓰지 말았어야지.’
비감응자들은 감응자의 능력을 구분할 수 없고, 같은 감응자여도 등급이 높을수록 보는 시야가 넓다. 당연히 나는 CCTV만 봐도 아이온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인다.
세림 그룹 측에서는 저 감응자들을 고용해서 안심하고 뒷주머니를 차고, 경매장 쪽으로 손을 좀 뻗었나 본데, 나한테 딱 걸린 셈이다. 후계자 후보가 둘이나 걸렸으니 더 진흙탕이 되는 건 예삿일이다.
나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부러 조사하지 않았을 텐데 어쩌겠는가. 이것도 인과응보다.
다만 워낙 협회 내부를 단속하느라 바빠서 소스를 던져주고 결과를 못 봤다.
그게 조금 아까워서 속으로 혀를 차는데 아예 큰 쟁반 두 개에 간식거리를 잔뜩 담아온 박호승이 나와 이세환 사이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끼어 앉았다.
“자리도 많은데 왜 굳이 여기를 끼어 앉는 건데?”
“먹을 거 가지고 온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닌지? 그나저나 무슨 얘기하고 있었냐? 누나랑 형 이름 들린 거 같았는데?”
“여기 안전하다는 얘기. 일 터져도 누님하고 형님이 알아서 해준다는 얘기.”
“아하.”
건성으로 대답한 내가 박호승이 가져온 쟁반에서 사과 주스를 골라 뚜껑을 열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인 박호승은 콜라를 탁 따면서 짓궂게 눈웃음쳤다.
“우리 세환이, 이 형님이 그렇게 걱정이 됐어용?”
“어…. 어? 으응…? 그, 그러니까….”
“여기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가드 쫙 깔려있고, 그 비싸다는 결계도 구해서 설치해놨다니까용? 걱정일랑 하실 필요가 없어용~ 그리고 여기! 우리의 자랑스러운! S급 친구가 있는데!”
이세환이 당황해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우물쭈물하자 박호승은 신이 났다. 사람 놀릴 때만 쓰는 어미를 꼭꼭 붙여가면서 가증스럽게 눈을 깜빡인 박호승은 콜라를 꿀꺽 한 모금 마시더니 내 어깨에 팔을 척 둘렀다. 물론 나는 그걸 가만히 두진 않았다.
“징그러, 이 자식아. 손 빨리 안 치워?”
“아니~ 어떻게 둘밖에 없는! 친구한테 징그럽다는 소리를 할 수가 있어? 나 진짜 상처받는다?”
“아, 받던가.”
어깨동무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건 헤드록에 가깝잖아, 이 자식아.
점점 힘이 들어가는 박호승의 팔을 억지로 떼어놓고 소파 제일 끄트머리로 떨어져 앉았다. 박호승이 입으로만 흑흑 울면서 우리의 우정이 여기까지냐며 열연했지만, 이번엔 이세환도 넘어가지 않았다.
얌전히 사이다를 따서 홀짝거리는 이세환의 반응에 박호승은 곧 연기를 그만두고 협탁에 있던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삑. 작은 전자음이 울리고 정면에 걸려있던 커다란 텔레비전이 켜졌다.
“지금 뭐 재밌는 거 하기는 하냐.”
“요즘 잘 안 봐서 나도 모르겠네. 뭐든 하겠지. 정 볼 거 없으면 영화나 연결해서 보면 되고.”
여기서 안 되는 것은 없다며 박호승이 으스댔다. 그 옆에서 이세환이 야금야금 과자를 집어 먹다가 휴지로 손가락을 닦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동갑내기의 몸뚱이를 가지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좀 웃기는데, 이세환은 요즘 애들답지 않게 휴대폰을 잘 쓰지 않는 축에 속했다.
여기서도 별다르지 않아서 넘어갔는데, 어쩐 일인가 싶어서 졸음에 가물거리는 눈으로 그쪽을 슥 쳐다봤다.
“으음, 여기…. 이 채널에서 오늘…. 안내 프로그램한다고 그러네.”
“안내? 무슨 안내?”
“경매. 보름 후부터 시작이라….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하는 물품 안내래….”
“아, 그거. 나름 볼만하긴 하지. 나 카탈로그 받았는데, 그거 가지고 왔어. 같이 보자.”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 사이로 곧 안내 방송을 시작한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경매…. 방송까지 탈 정도의 경매면…. 루나 이클립스겠고….’
세계 최고 규모의 ‘균열 부산물 및 아이온으로 인한 특수 효과가 부가된 물품’을 판매하는 경매다. 두 번째 달이 태양보다 존재감이 커지는 것 같다는 의미로 월식이라는 뜻의 루나 이클립스란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경매의 시작은 뉴욕이었는데, 경매장의 주인이 A급 비전투계열 감응자에 그의 파트너는 A급 전투계열 감응자다.
들리는 바로는 두 사람 모두 혼혈에 방랑벽이 대단해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덕분에 1회는 뉴욕에서 열렸지만, 2회부터는 무작위로 열렸다. 어디에서 열리는지는 두 사람이 경매가 열리는 매해 5월과 11월에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올해는 무려 한국.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5일 후, 금요일에 입국하는 그 두 사람 때문에 보안부 부장인 내가 일을 두 배로 했다.
‘고등급 감응자가 물건 잔뜩 들고 들어온다니까 협회로 일감 전부 넘기는 거 실화냐고.’
그래 놓고 이득은 얻어보려고 온갖 수작을 다 하던 정·재계 인사들이 떠올라서 손에 힘이 팍 들어갔다.
손아귀에서 빠득 불길한 소리가 들려서 힐끗 내려다보자 아직은 안 깨진 주스 병이 바들바들 떨렸다. 행여 쏟을까 싶어서 반 정도 비운 주스 병을 탁자 위에 내려두고 거의 눕다시피 소파 팔걸이를 베개 삼아 몸을 파묻었다.
일 생각은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오후의 따뜻한 햇볕과 한가로운 분위기에 몸을 맡기자 저절로 머리가 꾸벅꾸벅 흔들렸다.
‘졸려…. 밥 먹을 때 되면 알아서들 깨워주겠지….’
어차피 피곤한 내 얼굴을 보고 끌고 왔으니, 여기서 내가 잔다고 해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자라고 데려온 거 같기도 해서 그냥 편하게 마음을 먹고 정신을 놨다.
그리고 볼에 닿는 찬 기운에 퍼뜩 놀라서 일어났을 땐, 고기 구울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식탁이 눈앞에 있었다.
“크, 역시 이게 직방이라니까. 잘 잤냐? 아까보단 눈이 맑아진 거 같은데, 몸은 좀 괜찮고?”
“야, 박호승 이 자식아, 내가 그렇게 깨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었냐?”
“그랬나~?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박호승은 오늘만 살 생각인지 한껏 약 올리는 표정으로 깝죽대다가 손에 든 차가운 콜라 캔을 내게 던지듯 건넸다.
얼떨결에 받아들자마자 박호승은 냉큼 집게와 가위를 손에 쥐더니 고기를 굽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이세환이 자기가 하겠다며 손을 뻗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는 이세환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대충 손사래를 쳤다.
“언제 도련님이 직접 굽는 고기를 먹어보겠냐?”
“그건 그렇지만…. 걱정이 돼서….”
“걱정?”
“그으…. 고기를 구워…. 봤을까? 구워준 것만…. 먹지 않았을까? 응? 이러다가 다 태우지 않을…. 까?”
“뭔 그런 걱정을 하고 있냐. 불판이 눈앞에 있고 쟤가 거창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탈 거 같으면 그냥 건져 먹으면 되지.”
“아…! 그렇구나…!”
한순간에 환하게 개는 이세환의 얼굴에 박호승이 너무한다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착한 이세환은 그런 게 아니라며 박호승을 달래려 들었지만, 못돼먹은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입맛에 맞게 기름장 배합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래서 나 자는 사이에 너희 둘이서 뭐 하고 놀았냐?”
“보던 방송 계속 봤지. 카탈로그도 봤고. 생각보다 볼만하던데?”
“으응. 신기한 게 많아서…. 한번 참여해보고 싶었어.”
다소 심드렁한 박호승과 다르게 이세환은 정말 재밌었는지 드물게 상기된 얼굴로 즐거워했다.
오랜만에 보는 신난 얼굴이 신기해서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세환은 따가운 눈길도 못 느끼는지 정말 기대된다는 눈빛을 하며 해맑게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호승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덕분에 말끝을 흐리지도, 더듬지도 않는 말에 반응이 반 박자 늦고 말았다.
“뭐라고?”
“나랑 간다고, 나랑. 카탈로그랑 같이 이클립스 티켓도 왔거든.”
입장 티켓은 보통 2인 1매로 보내주는데, 매번 혼자 가면 지루해서 안 갔던 거라며 박호승이 고기를 뒤집었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단면을 보며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았다.
‘왜 하필 이클립스 티켓인데! 데이만 즐기면 안 되겠냐!’
머릿속으로 미리 준비해놨던 경매 당일의 보안 체계와 그 틈을 이용해서 움직이기로 했던 감사부 사람들과 대어를 낚을 예정이었던 내 동선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플랜 수정해야겠다….’
친구 두 사람의 눈까지 완벽하게 속일 동선을 짜기 위해 예정된 야근에 속이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