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Korea's absolute chaebol! RAW novel - Chapter 16
대한민국 절대 재벌! 16화
“자네를 못 믿는 것은 아닐세. 자네만큼 믿음직한 사람도 없지.”
“감사합니다.”
아직 나를 신뢰하는 나카무라 사장이다.
“그러시다면 오해 말고 제 말씀을 잘 들어 주십시오.”
“그래, 하고 싶은 말을 해 보게.”
“일본이 망하자마자 지폐는 바로 휴지가 될 것이고.”
“당연히 그렇겠지.”
“또한, 그 부피가 너무 크니 다 가져가지 못합니다. 금괴 역시 무게가 엄청날 겁니다. 이럴 때는······.”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나카무라 사장님은 한층 더 집중해서 나를 봤다.
지금은 무조건 나카무라 사장님께 이로운 의견만 제시해야 한다.
“다이아몬드가 좋겠습니다.”
물론 다이아몬드는 구하기 쉬운 보석이 아니다.
“다이아몬드를 구하기 어렵다면 종류를 가리지 말고 다른 보석들을 구매하십시오.”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보석이라……?”
“부피와 무게를 최대한 줄일 방법을 모색하셔야 합니다. 모든 재산을 일본으로 다 가져가시겠다면 그리하셔야 합니다.”
내 말에 나카무라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일세.”
“예, 주인 나리.”
“처분하기에는 너무 안타깝군, 다른 일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 조선 땅에서 해온 사업들이 내 인생이나 다름없네.”
어린 날에 와서 지금까지 이 땅에 살았으니까.
“이 경성은 내 제2의 고향이기도 하고······.”
이것이 사업가의 마음일 것이다.
자신이 만든 기업을 인격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팔고 자식을 파는 부모는 없다.
“그러실 겁니다. 자식같이 생각하고 키운 사업체들이시지 않습니까?”
내 말에 나카무라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좀 더 생각해보겠네.”
“예, 주인 나리.”
“또 주인 나리인가? 허허허!”
“제게는 영원한 은인이시고, 주인이십니다.”
이건 진심이다.
처음에는 광복 후에 배신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나와 나카무라 사장님은 이익으로 뭉친 관계가 아니라 신의로 뭉친 관계니까.
“자네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은 든든하군.”
순간 나카무라 사장은 뭔가 결심한 눈빛을 보이셨다.
‘······뭐지?’
몇 년을 모셨다.
나카무라 사장님은 무엇이든 결심할 때 살짝 오른쪽 귀를 만진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셨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게나. 참, 자네, 혹시 내게서 독립할 생각은 없나?”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내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 주겠다는 어투로 들렸다.
아마 내가 그러고 싶다고 말하면 상점 한두 개를 줄지도 모른다.
“독립이라고 하셨습니까?”
놀랐다.
이 말이 나카무라 사장님의 입에서 먼저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이제는 제 그늘이 되어 주시기 싫으신 겁니까?”
“자네를 내 옆에 두기에는 자네의 능력이 너무 출중한 것 같군. 그리고 나는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이고······.”
언젠가는 독립해야 한다.
조선이 독립하는 것처럼.
나도 나카무라 사장에게서 독립해 내 사업체를 가져야 한다.
내가 나카무라 사장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으려면.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
양자가 되어 성을 물려받거나.
리에 아가씨와 결혼해 사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어렵다.
그리고 아직은 독립할 때가 아니다.
내 신용의 일부는 나카무라 사장님으로부터 나온다.
“그래도 저는 조선인입니다. 주인 나리의 그늘에서 일해야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은 무시당할 수밖에 없고.
또, 차별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카무라라는 그늘이 없다면.
내가 능력을 보이는 순간.
고등계 경찰의 요시찰이 되어 감시당할 것이다.
“그래, 그런 세상이지.”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의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알았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
“예, 주인 나리.”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눈빛이 달라지셨다.’
달라진 눈빛이 내게 좋은 쪽으로 흐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뢰를 얻었을 때 나를 더 낮추자.’
그러면 더 큰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이제는 나를 양아들쯤으로 생각하시려나······.’
내게 이로운 점이 있다면 나카무라 사장님께는 일가친척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혈육은 리에 아가씨다.
‘아니지, 욕심은 버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다.
나는 조선인이니까.
* * *
명월관 대문 앞.
1943년 12월 25일.
1943년의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내 부탁하이.”
광복군 오덕수는 명월관이라는 기생집 대문 앞에서.
가야금을 든 기생에게 담담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오덕수의 뒤에는 젊은 남자 둘이 주변을 살피며 대기하듯 서 있었다.
“몸은 어떠십니까?”
기생은 오덕수의 얼굴을 빤히 보며 조심히 물었다.
“크게 아픈 곳 없네.”
“몸이라도 상하실까 걱정입니다.”
“괜찮다네.”
오덕수가 기생에게 말하며 주변을 살폈다.
“위험한 일인 줄 알지만, 이곳에 내 수하들을 심어놓아야······.”
“저를 보고 말씀해 주세요. 제 얼굴을 보고······.”
“미안하이, 또 잊었군.”
오덕수가 가야금을 든 기생을 보며 말했다.
“예, 그리하지요.”
기생의 말에 오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가이.”
오덕수가 돌아서며 두 명의 남자를 봤다.
“이곳에서 동지들이 할 일이 뭔지 명심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오동지.”
“급히 전할 일이 있다면 마포 선술집으로 오시게.”
“예, 알겠습니다.”
“광복의 그 날까지.”
오덕수는 그 말만 남기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고.
사라지는 오덕수를 가야금을 든 기생이 담담히, 그리고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이곳에서 숙식하시며 뽀이를 하시면 됩니다.”
“예, 아가씨.”
조선에 침투해 있는 김원몽 선생 휘하의 광복군 비밀 조직이 명월관에 침투하는 순간이었다.
* * *
리에의 방.
문이 급하게 열렸다.
“아가씨, 강 주임이 곧 가실 것 같아요.”
삼순이가 방에 들어서며 리에에게 말했다.
“그래?”
“얼굴이라도 보세요.”
“안 봐도 돼.”
“보고 싶으시잖아요.”
“눈을 감으면 얼굴이 보여, 나는 떠올릴 수 있거든.”
리에가 미소를 보였다.
“병이세요, 병! 주인 나리가 아시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귀족 가문에 시집보내시려고······.”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죄송해요.”
놀랍게도 리에는 조선인 청년 강철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강 주임은 출세했어요. 처음 볼 때는 상거지 꼴이었는데 말이죠. 이게 다 아가씨 덕이에요.”
“내 덕이 아니라 그의 노력이야.”
“또 웃으시네, 병이에요, 병! 우리 아가씨, 상사병 걸려서 어째요?”
“그러게······.”
“그런데 듣기로는 강 주임한테 중매 자리가 아주 많이 들어온대요.”
“그래······?”
“예, 좀 이르지만 결혼할 나이는 됐죠.”
삼순의 말에 리에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용기······.’
그리고 강철이 그날 자신을 위해 용기를 냈던 그 날을 떠올렸다.
‘목숨 걸고 나를 지켜 준 거야.’
그리고 편지지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무엇을 그렇게 적으세요?”
“내 마음.”
“아, 아가씨! 어쩌시려고요?”
리에의 행동에 삼순이 놀란 표정이 됐다.
“만약 주인 나리가 아시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이거를 강 주임에게 전해줘.”
“아가씨······.”
“부탁해.”
“······예.”
삼순이는 마지못해 편지를 받았다.
“전해……. 줘.”
“저, 이러다가 회초리 맞아요.”
“아버지께서는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않으시는 분이셔.”
“그건 아가씨한테 그러신 거죠.”
“너, 혹시 아버지께 맞은 적 있어?”
“예, 있어요.”
“정말?”
리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안해.”
“괜찮아요. 맞고 기분 좋은 적은 그때뿐이거든요.”
“뭐? 그게 무슨 소리니?”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조선어라도 배우라고 회초리를 드셨어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잘 알겠어요.”
삼순이는 강철에게 글을 배워 조선어뿐만 아니라 일본말도 제법 배웠다.
배우기 시작하면 사람은 똑똑해진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바로 권력자들이고.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지배할 민중을 개돼지로 알고.
우매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 어느 시대든 더욱 깨치고 일어서야 한다.
그것을 게을리 하다가는 일제 치하의 조선처럼 점령당하게 된다.
“아, 그렇구나.”
“제게 주인 나리는 고마운 분이세요.”
“부탁해.”
“예.”
삼순이 방에서 나갔고 리에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을 내가 사랑합니다.’
역시 여자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