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King went to school RAW novel - chapter 52
그림자 하나만으로 이 근방을 어둠으로 덮는 엄청난 크기.
그것이 숨을 내쉬면 나무에 달려 있던 잎사귀들은 하나같이 공중에 흩날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걸어간 자리에 박혀 있는 나무의 줄기는 모두 허리가 꺾인 채 부러져 있었다.
B급 몬스터 키메라를 한낱 쥐새끼 수준으로 만드는 저 거대한 몬스터는 바로.
『비룡(飛龍) 카이메로』였다.
『비룡(飛龍) 카이메로』
[A+급 몬스터.거대한 용의 형태를 한 몬스터로, 입에서 용암보다 뜨겁다고 전해지는 보랏빛 불꽃을 뿜어낸다.
또한, 날갯죽지 부분에서 주변 생물에게 위압감을 주는 페로몬을 뿜어내 상대를 굳게 만들 수 있다. 데빌혼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 몇 안 되는 A+급 몬스터.]
“니아이스. 플레임. 움직이지 마.”
-호…… 호…… 호야…….
-이…… 인간…… 안 그래도 안 움직여져…….
데빌혼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와는 다른 감각이 몸을 휘감는다.
카이메로의 페로몬이 내 오금을 저리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것의 위압감에 압도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다리는 얼어붙은 채 그대로 땅에 박히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
나는 그렇게 다리가 얼어붙은 채로 겨우 손을 이용해 니아이스와 플레임을 품 안에 넣었다.
-으으…….
내 품속에 들어간 니아이스와 플레임은 카이메로의 위압감에 짓눌린 것인지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정령들을 품 안에 안은 채 천천히 얼어붙어 버린 다리를 향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길 방법 따윈 없어. 도망가야 한다.’
현재의 정령들에게 가장 취약한 약점은 바로 ‘정신’ 이른바 멘탈이다.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 봤자 아직 정신은 어린아이인 정령들.
상대에게 지레 겁먹어 버린다면 강한 위력은 공포감에 의해 선보일 수도 없다는 것이 정령들의 유일한 약점인 지금.
저 카이메로의 페로몬은 정령들의 어린 정신을 무너뜨리는 데 너무나도 효과적이었다.
“괜찮아…….”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천천히 굳어 버린 다리를 움직이며 정령들을 진정시켰으나 니아이스와 플레임은 쉽사리 진정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히끅…… 히끅…….
‘이게 페로몬인가. 나까지 얼어붙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내가 공포에 떠는 니아이스와 플레임을 품에 안은 채 서서히 다리를 움직이려던 바로 그때.
카이메로의 거대한 눈동자가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펄럭.
카이메로의 거대한 눈동자는 나와 정령들을 그 안에 담더니 이내 푸른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내 코앞까지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꿀꺽.”
A+급 몬스터와 바로 코앞에서 아이 컨택을 하는 상황.
만약 여기서 카이메로가 숨을 거칠게 몰아 내쉬기라도 한다면 나와 정령들의 목숨이 위험할 만큼 지금 상황은 절체절명. 그 자체였다.
“…….”
그러나 내 눈은 페로몬에 의해 굳어 버린 다리와는 달리 차가운 눈빛을 부릅뜬 채 카이메로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A+급 몬스터와 정령사.
그 둘의 눈빛이 교차하는 절체절명(絕體絕命)의 상황.
이때 내 머릿속에는 수만 가지 생각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엘림의 힘을 발현시켜야 해. 자칫하면 진짜 죽는다.’
그렇게 내 눈빛이 카이메로의 눈동자를 향하고 카이메로의 눈동자 안에 내 모습이 담긴 바로 그때.
펄럭!
거친 날갯짓과 함께 카이메로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내 존재를 한참 응시하던 카이메로는 흥미가 사라진 것인지 거대한 날개를 펼쳐 순식간에 높은 하늘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뭐지…….”
날개를 거칠게 펄럭이며 상공으로 날아간 카이메로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그 거대한 덩치를 감추었고, 그제야 얼어붙은 내 다리는 점점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진짜 죽을 뻔했다.”
카이메로가 사라지자 내 다리를 굳게 만들었던 페로몬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고 내 품 안에 안긴 정령들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호야아…….
-인가안…….
이내 카이메로의 페로몬이 전부 사라지자 니아이스와 플레임은 품속에서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 내 미소는 입꼬리만 올라가 있을 뿐, 웃고 있는 얼굴과 달리 내 머릿속 상황은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저게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인 건가.
그렇다면 결국은 저 페로몬을 뚫고 저걸 쓰러트려야 한다는 거고.
저게 지금 날아가는 곳에 선생님들이 계신다면.
…….
전부 몰살이겠지.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풀숲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부스럭.
‘또 뭐지.’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곧바로 반응한 채 풀숲을 향해 경계 태세를 갖췄다.
제발 강한 몬스터만 아니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부스럭. 부스럭.
내 경계에도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나 또한 마른침을 삼키며 풀숲을 응시하던 바로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정체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부스럭!
“강호! 괜찮아? 너 무슨 미친놈이야? 왜 그랬어!”
“아, 너희를 잊고 있었네.”
다행히 풀숲에서 튀어나온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나머지 특별반 학생들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쟤들을 잊고 있었네.
안수진과 이슬기는 카이메로의 페로몬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인지 김대호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왔고, 이내 나는 김대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괜찮냐.”
“별로 다친 곳은 없어. 너는?”
“아직까지는.”
나는 양쪽 어깨에 각각 안수진과 이슬기를 부축해서 나오는 김대호와 서로의 안위를 살핀 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후…… 생각보다 큰일인…….”
…….
잠깐.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속 움직이는 태양.
지금 해가 지고 있는 건가.
분명 여기는 게이트 안이잖아.
게이트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아야 하는데.
어째서.
여태까지 세상에 출현했던 게이트들은 모두 비슷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게이트 안에서는 시간의 변화가 없다.’라는 것이다.
게이트에 입성한 뒤 현실 시간이 얼마가 흐르든 게이트 안의 시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알던 게이트의 정보인데.
지금 우리 위에 떠 있는 해는 분명 서서히 서쪽으로 지고 있다.
“해가 진다는 건. 밤이 온다는 거잖아.”
뭐, 시간이 흐른다는 것만 보면 그냥 다른 게이트와 다르다고만 느끼며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지금 이 게이트 안에는 ‘생태계’가 존재한다.
일반 게이트와 달리 생태계가 존재하고, 시간까지 흐른다는 것은 밤이 되면 해가 떠 있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밤에만 활동하는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지금 해가 지는 속도로 봐서는 밤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남은 것 같지 않다.
“너희들.”
나는 이 사실을 자각한 뒤 곧이어 굳은 표정으로 다른 애들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 이 사실을 모르는 다른 애들은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고,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캠핑 좋아하냐.”
* * *
까악–
까악–
예상대로 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게이트 안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애들에게 장작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구해 오라고 시켰고, 그로 인해 완전한 밤이 오기 전까지 어둠을 피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완성한 건 커다란 모닥불 하나였지만 불의 존재만으로도 나와 학생들은 어둠 속에서 꽤 안정감을 느꼈다.
“근데 우리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야?”
“어두울 때 움직이는 건 오히려 위험해.”
그렇게 나와 학생들은 밝게 타오르는 모닥불에 둘러앉은 채 어둠을 피하기 시작했다.
‘해가 빠르게 진 만큼 밤도 빠르게 지나가겠지.’
현실 시간보다 세 배 이상 빠르게 흐르는 게이트 안의 시간 덕분에 밤은 그렇게까지 길어 보이지 않았다.
이것 가지고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게 생각하는 게 아무래도 낫겠지.
아우우우!
크워어어!
역시 밤이 되자 낮에는 들리지 않던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적나라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의 밤은 역시나 잔혹했고, 몬스터들의 울음소리와 숨통이 끊어지는 소리는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역시 밤에는 움직이지 않는 게 맞았네.’
“저…… 근데 혹시 게이트가 다 이런 거야?”
그렇게 내가 울음소리가 들리는 주위를 경계하던 그때. 모닥불을 쬐던 안수진이 내게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긴 아무리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도 게이트 입성은 이번이 처음일 터.
처음 들어가는 게이트 안이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니. 여기만.”
나는 그런 안수진을 바라보며 무심한 듯이 말을 툭 내뱉었고 안수진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그래도 캠핑 온 거 같고 좋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의 긍정 에너지만큼은 멀쩡한 것인지 안수진은 웃으며 자리에 쪼그려 누웠다.
하긴 친구들과 모닥불,
어두운 밤과 차가운 밤공기.
지금 이곳이 게이트만 아니었다면 최고의 캠핑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친구들과의 첫 캠핑이라고 칠 만한가.’
…….
‘우습군.’
그렇게 차가운 밤공기가 흐르는 게이트 속의 밤은 속절없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Zzz…….
전지훈련 때 받은 피로가 몰려온 탓인지 어느새 나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모닥불 옆에 웅크린 채 곯아떨어졌고, 나 혼자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모닥불을 지키기 시작했다.
화르르…….
“은근 유용하네 이거.”
정령사 이전의 내 원래 능력이었던 손가락 라이터.
그렇게 강한 능력은 아니지만, 실생활에서는 꽤 유용한 능력이었다.
이렇게 모닥불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데도 쓰고 말이야.
-음냐음냐…….
-함냐함냐…….
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켜자 내 품 안에서 곤히 잠이 들어 있는 니아이스와 플레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 아직 어려.’
나는 곤히 잠든 니아이스와 플레임을 바라보며 차가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옷을 꽉 여민 뒤,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별이 많네.”
현실에서는 시골에서나 볼 법한 하늘에 수놓인 수많은 별.
난 그 별들을 눈에 담으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파훼법을 찾지 못하면, 전부 죽는다.’
밝게 빛나는 저 별들과는 달리 내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카이메로에 대한 파훼법뿐.
이런 현실이 비참하다고 느껴지지만 지금 내겐 그런 감정을 느낄 시간조차 없다.
‘찾아내야 해.’
아마 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는 바로 저 ‘비룡 카이메로’일 것이고,
이 말인즉슨 카이메로를 쓰러트리지 않고서는 이 게이트를 닫을 수 없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저 A+급 몬스터인 카이메로를 쓰러트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엘림의 힘뿐인 건가.’
그렇게 내가 어둠 속에서 별과 함께 카이메로의 파훼법에 대해 머리를 굴리고 있던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어두운 밤하늘의 조용한 적막을 뚫은 웅장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크워어어어어!
“뭐지.”
“뭐야! 뭐야! 무슨 일인데!”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다른 학생들 역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숲속에서 거대한 보랏빛 화염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푸화아아아아아!
‘보랏빛 불꽃. 저 정도의 화력이면 무조건 카이메로일 테고, 그 상대는.’
…….
‘선생님들인가.’
“다들 빨리 따라와.”
나는 보랏빛 불기둥의 정체를 카이메로와 선생님들이라고 확신한 후 서둘러 보랏빛 불기둥이 치솟는 숲속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 어! 야! 강호!”
“같이 가!”
다른 학생들 역시 허겁지겁 일어나 내 뒤를 쫓기 시작했고, 나는 품 안의 니아이스와 플레임을 꼭 감싸며 미친 듯이 화염이 솟구치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으응……? 호야…… 어디 가…….
-인간…… 추워…….
“둘 다 움직이지 말고 꽉 잡아.”
정령들은 어느새 잠에서 깬 것인지 내 품 안에서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고, 나는 품 안에 안긴 두 정령을 떨어지지 않게 꽉 움켜잡은 후 전속력으로 불기둥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헉…… 허억…….”
그리고 마침내 내가 거대한 보랏빛 불기둥이 치솟는 숲 한가운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과 보고 싶었던 얼굴을 동시에 마주하고야 말았다.
“선생님들…… 그리고.”
…….
“카이메로…….”
■ 제54편 이상 게이트 (4) □
화르르르르!
카이메로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 불길은 숲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선생님들은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카이메로의 화염에 맞서고 계셨다.
그리고 그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내가 난입했다.
“선생님들.”
“강호? 여긴 어떻게 찾은 거야!”
선생님들은 갑자기 난입한 나를 바라보시며 하나같이 놀란 표정들을 지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