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Class Suicide Hunter RAW - Chapter (323)
2.
당신의 소원은 잘 들었어요.
모든 소원에는 대가가 필요해요.
첫 번째, 당신의 이름을 가져갈게요.
두 번째, 당신의 얼굴을 가져갈게요.
세 번째로, 당신의 두려움을 가지도록 하지요.
만일, 상관없다면.
그런데도 여전히 좋다면.
부디.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3.
“…….”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다만 침묵의 방향성은 달랐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기 위해 입을 다물었고, 성좌는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에메랄드의 머리칼과 잿빛의 눈동자를 가지게 된 ■■■■ ■■ ■■■은, 천천히, 숨결을 흘렸다.
“……하지만.”
하지만.
“저도, 모르는걸요.”
숨결엔 독이 있었다.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할 수 없어요. 사왕님께서 찾아주신다 말씀하셔도, 그건, 그저 불가능한 일이어요. 제가 어떤 말투를 썼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입을 수 있었는지. 저조차, 떠올릴 수 없는걸요.”
없는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숨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폐에 고아버린 독을 흘리면서.
“저는 저를 찾을 수 없어요. 버렸으니까요. 사왕님께서도 저를 찾아주실 수 없어요.”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원래의 당신을 찾기란 어렵겠지요. 설령 찾았다 생각해도 그게 정말 맞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무런 장비 없이, 설원 한복판에서 남극점을 찾았다면서 붉은 깃발을 꼽는 거나 다름없어요.”
“네에, 그러니…….”
“하지만 당신에게 원래의 자신 따위는 필요없습니다.”
나는 성좌의 뺨을 어루만졌다.
째깍.
[스킬이 작동합니다.]하얀 윤곽이 드러났다.
먹칠이 벗겨졌고, ■가 바스라졌다.
별자리를 가린 창살의 작대기가 하나 더 부러진 것이다.
“원래의 당신을 찾는 것이, 당신에게 행복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왕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버렸잖아요. 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나는 싱긋 웃었다.
“당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저는 모릅니다. 먼 옛날, 어린 시절, 당신이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상처를 입었는가. 어떤 쪽 팔린 일을 했었는가.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저는 몰라요.”
트라우마로도 볼 수 없었다.
어떤 스킬을 동원해도 보기 어렵겠지.
“그렇지만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너는 모험을 좋아한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함께 적들을 깨부수며, 아슬아슬한 위험을 겪고, 진정한 고통을 무릅써서 죽음을 건너뛰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랑한다.
그것을 이룰 수만 있다면 원래의 이름과 얼굴을 버릴 만큼.
“당신은 저를 좋아합니다.”
“…….”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을 써서,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려도 괜찮을 만큼.
“그렇다면, 저에게 [보여주고 싶은 얼굴]을 골라주세요.”
“…….”
“당신이 저한테 보여지기를 원하는 대로 당신을 보겠습니다. 당신이 저한테 보여주는 것을 볼게요. 그 이외에 뭐가 중요할까요?”
“…….”
“저를 좋아하잖아요. 모험을 좋아하잖아요. 좋아하는 것을 쫓아서, 쓸데없이 무거운 걸 버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당신은.”
째깍.
“자신을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째깍.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찾으려고,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모두가 여행을 한다.』
『5평짜리 골방에는 무한(無限)한 사막이 놓여 있다.』
“…….”
움찔.
성좌가 한 차례 어깨를 떨고 나를 바라보았다.
[스킬 ‘우주홍황’이 작동합니다.]그렇다.
나는 지금 우주홍황의 힘을 빌려 세계를 작성하고 있었다.
눈앞의 성좌가 나를 세뇌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이 아이의 성좌가 되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 마리의 새끼 여우.』
『사막에서 태어난 여우는, 마실 것이 없고, 놀 것도 없어, 밤 사이에 바람이 불면 언덕이 흘러가고 계곡이 메워져서, 하루가 지날 때마다 잃는 것이 집이다.』
『사막의 아이 모두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는 없다.』
『다만 밤하늘이.』
“…….”
성좌가 고개를 올려보았다.
[스킬이 작동합니다.]내 심상에 우주홍황이 의지하여, 우리 두 사람의 머리 위로는 까마득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도 올려다보면 별이 흩뿌려져 있다.
“괜찮아요.”
나는 속삭였다.
『태어난 곳에 이정표가 없는 아이들은, 밤하늘을 지도로 삼아 걸을 수밖에 없다.』
“저는 당신을 속이지 않을 겁니다.”
“…….”
세계가 상상된다.
한 마리의 어린 여우의 여정이 시작된다.
『귀를 기울여서 들려오는 것은 사막의 모래가 바스락, 바스락, 건조하게 까지는 소리뿐.』
『메마른 바람뿐.』
『마음에 모래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여우는 걷는다.』
“괜찮습니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어 여우는 걷는다.』
『먹을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항상.』
『사막에서 자라고 난 것들은 언제나 모래 바람을 머금고 있어, 깨물면, 입가에 모래알이 묻는다. 먹어도 먹어도 갈증은 풀리지 않는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마음에, 무언가가 쌓여가지만, 그것은 밤하늘의 별빛이 아니라 메마른 사토(沙土)다.』
『내가 사막이 되어버린 걸까.』
“…….”
『나 역시 사막이 되는 것인가.』
“…….”
『세상을 뒤덮은 모래 알갱이는 무수하고도 무한하여, 지금까지 이 땅에서 죽어온 모든 증거들이 항하사(恒河沙)를 이루고, 지금부터 죽어갈 것들이 나유타(部由他)를 헤아릴 텐데, 나는 다만 이미 무한한 모래에 더해지는 한 틀의 모래 알갱이인 것일까.』
『사막이, 여전히 사막이다.』
『어디를 보아도 죽음의 흔적밖에 없다.』
『모두가 죽어가고 있다.』
“…….”
『여우는 먹을 것이 없어 선인장을 고른다.』
『목이 마른 탓이다.』
『사막을 가로짓다 보면 가끔, 선인장이 전봇대처럼 서 있다. 그 안에 물이 있음을 아이는 안다. 물. 죽을 것 같은 갈증을 씻어줄, 유일한 위안.』
『가시가 잘 돋혀 있다.』
……한줌의 물을 지키기 위해서…… 이 모래 지옥에서…… 가시를 많이도 돋혔구나……
『여우는 울먹이면서 선인장을 뜯는다. 맨발이다.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다. 발가락에 날이 스친다. 피가 흐른다. 가죽이 뚫리기도 한다. 하지만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여우는 선인장의 과육을 자른다.』
……미안해……
『한방울의 물까지 남김없이 빨아마신다.』
……미안해……
『가시 돋힌 물.』
『여우는 해갈했다. 잠시 동안은 조금 더 걸어갈 수 있겠지. 그러나 목구멍이 아프다. 날카로운 가시 하나가 걸린 것이다.』
『어린 여우는 값을 치렀다.』
『선인장은 자신을 빼앗아 마신 짐승에게 복수하는 걸 잊지 않았다.』
“…….”
『첫 번째 물을 마시고, 두 번째 물을 마신 뒤, 여우는 깨닫는다.』
『어쩌면.』
『어쩌면 사막을 만들고 있는 건 나 아닐까?』
『여우는 선인장의 과육에 코를 파묻은 채 문득 하늘을 올려본다. 태양이 아프다. 여지껏 왜 세상은 사막일까 궁금했고, 어디서 사막이 오는지 궁금하여서, 아마 태양이 뜨거운 탓이려니 싶었다.』
『어쩌면 이 사막에서 태양 다음의 죄인(罪人)은 나 아닐까?』
“아아…….”
『선인장을 많이도 죽였다.』
“아,”
『왜 오아시스가 되지 못했느냐며, 선인장을 욕한 적도 있다.』
“아…. 으…, 아.”
『한줌의 물이라도 지키려 가시를 돋힌 자들에게, 왜 내 발바닥에 상처를 내었느냐며, 검은색 가시를 부러트렸다. 그 가시는 단지 피가 굳어져서 새까맸을 뿐인데.』
『자신이 모랫길을 걸으면 가시의 시체들이 널브러진다.』
“…….”
『사막은 조금 더 사막이 된다.』
“……아니야. ……아니에요, 사왕님. 저는…….”
『따끔.』
『여우는 목구멍이 아프다.』
“아니야! 저는, 아무런 잘못도.”
『모래를 너무 많이 먹었어.』
『가시를 너무 많이 삼킨 거야.』
“……왜…….”
『하지만.』
『그것밖에 없었는걸.』
“…….”
『살려주세요.』
『누가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나조차, 아무것도 없습니다.』
“……응…….”
『발에 익은 것은 가시를 부러뜨리는 방법뿐.』
『이제는 선인장을 마실 때 발이 다치지 않는다는 것도, 자랑이라면 자랑일까.』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것.』
『어른의 증거다.』
『언제부터인가 이 사막에 능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싫어.”
『물을 마시는 법에도 익숙해졌다.』
『요령은, 선인장을 전부 가르지 않는 것에 있다.』
『가시도 전부 뽑을 필요가 없다.』
『한두 가닥.』
『많아봤자 세 가닥.』
『그러면, 가시가 사라진 부분의 껍질만 살짝 벗겨, 과즙을 마신다. 약간만. 아주 약간의 도락(道樂)을.』
『다치지 않는다.』
『선인장도 죽지 않는다.』
『죄인도 없고, 시체도 없다.』
“싫어!”
『목이 마를 뿐.』
『영원히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서, 어느새 심장만한 크기가 되어버렸다.』
『어느 밤에는 토했다.』
『심장이 쏟아낸 것은 피가 아니라 모래였다.』
“증오스러워…….”
『밤하늘의 별이라 생각했던 것들도.』
『돌이켜보면 이미 죽어버린 모래들.』
『태양에 비치어, 반짝거리는 사토.』
『이 사막도 밤하늘도 오직 무덤이었다.』
“…….”
『수천 년 동안 사막을 걸어와 어느 별빛을 올려보게 된 여우는, 천천히, 숨결을 흘렸다,』
“저는,”
저는.
“이 세계가 싫어요.”
숨결에 독이 있었다.
“무료해. 지루해. 아니, 의미가 없어. 왜? 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어째서 웃을 수 있는 거야? 뭐가 재미있는 건데? 없잖아. 부족하잖아. 사실은 다 부족하잖아. 왜 여기에 있어? 왜 계속 거기에 있는 거야? 어떻게. 이, 지긋지긋하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는가.
“……공자님.”
[■■■■ ■■ ■■■■ ■■■ ■■■■■.]째까.
“공자님은, 저를 행복하게 해주실 거지요?”
어느새.
여우의 발치에는 오아시스가 펼쳐져 있다.
“그렇지요?”
사막의 거울.
상처 입지 않은 백사장(白沙場)이 하얗게, 물에 젖는다.
물결이 칠 때마다 모래알이 째깍, 째깍, 작게 바스락거린다.
“…….”
나는 여우에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아시스 한복판에서 걸어가, 얕은 물살을 헤치고.
고작 발목이 잠길 뿐인 물을 건너서.
여우의 등 뒤로 돌아갔다.
“예.”
나는 여우의 어깨를 잡았다.
“저를 마셔도 괜찮아요.”
약간, 손에 힘을 주었다.
뒤에서 어깨가 잡힌 여우는 자연스레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수면(水面).
“당신이 오늘 깨어나서 한 모금을 마시면, 저는 당신이 잠든 사이 그만큼 물을 길어오겠습니다. 하루, 다시 하루. 언젠가 제가 메마르게 될 날까지.”
닿으면 부서질 것처럼 투명한 물의 거울에, 여우가 비춘다.
여우의 얼굴이 비춘다.
황금처럼 반짝이는 털빛도.
잿빛이 되어버린 눈동자도.
■마저.
“그러니.”
나는 여우의 등을 잡아주고, 어깨를 지탱해준 채, 귀에 소곤거렸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
“제가 당신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얼굴을. 저에게 보여지기 위한 얼굴과 저에게 발음되기 원하는 이름을 말해주십시오. 정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원할 때까지.
“저를 마시고 살아도 괜찮아요.”
뚝.
여우의 얼굴에서 ■가 떨어진다.
까만 녹물이 흐른 것이다.
“……저는 당신을 속였어요…….”
녹물이 떨어진 부분이 새까매졌다.
오아시스는 그만큼 조금 탁해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물은 많이 맑아서, 여우가 흘린 녹을 집어삼켜, 여우의 얼굴을 투명하게 비춰줄 수 있었다.
그래.
다행이야.
“당신을 세뇌했어요. 기억을 조각냈어요. 당신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찢어버리고, 당신에게 닿는 손길을 전부 쳐냈어요. 그런데도, 저를.”
“말했잖아요. 괜찮다고.”
나는 새끼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 딸아이는 저를 수백 번 죽인 마왕이고.”
한점의 거짓 없이 쓰다듬을 수 있었다.
“제 아들은 심심할 때마다 결투를 걸어오는 전사인데다.”
그럴 수 있어서, 또한 다행이었다.
“제 연인은 저의 심장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
“세뇌? 기억 조작? 미안하지만, 당신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웃었다.
“저는 제게 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여우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유수하라는 사람은…….”
“그 이야기는 좀 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아예 안 하면 더 좋고. 어어, 아무튼 이름 좀 말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다만 침묵의 방향성은 달랐다.
“……저의 이름은…….”
나는 대답을 기다리기 위해 입을 다물었고, 여우는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황금빛의 털과 잿빛의 눈동자를 가지게 된 어린 여우는, 천천히, 숨결을 흘렸다.
“■■■■ ■■ ■■■…….”
수면에 비친 여우의 입술이 조그맣게 움직였다.
“당신만을.”
아마도.
자신이 정할 수 있는 일곱 음절의 발음을, 여우는 고민한 것 같았다.
세상이 자기에게 허락해준 일곱 칸의 공백에 대하여 어린 여우는 생각했고.
잿빛으로 물든 자신의 눈동자를 문득 내려보았다.
“…….”
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째깍.
여우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마침내 녹이 다 벗겨졌다.
먹칠이 사라진 얼굴, 가시가 사라진 목소리에, 모래가 사라진 심장으로.
“당신만을 위한,”
사막의 아이는 말했다.
“저는,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이 스킬을 발휘합니다.]사막이 무너져 내렸다.
꼭 거꾸로 뒤집어진 모래 시계처럼.
무한한 지평을 이루던 모래는,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무너져 사라졌다.
“사왕님을 위해 노래할게요.”
[스킬이 작동합니다.]“저를 위해주는 한, 저는, 사왕님이 새겨놓은 음각대로 노래할 뿐. 공자님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연주할 수 없는 악기가 되어. 오로지 하나의 음악만을 기억할 뿐인 악기가 되어서, 있을게요.”
사르륵.
황금빛 털이 가라앉았다.
“그러니.”
“예.”
나는 여우의 발을 잡아주었다.
“이제부터, 제가 섬기는 별자리는 당신뿐입니다.”
나의 신이 될 아이를.
[축하드립니다.]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은 당신의 성좌입니다.] [당신은 ‘당신만을 위한 오르골’의 유일한 신도입니다.]5평 남짓한 어느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나는 한 마리의 회색 여우와 계약을 맺었다.
32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