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level reincarnated councillor RAW novel - Chapter 6
Book 2 Chapter 1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정지호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간 정지원이 책상 위에 라이센스를 내려놓고 반걸음 물러났다.
정지원을 보고 정지호가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어제 상혁이를 따라나섰다가 미행하는 각성자가 있길래요.”
미행하던 자들의 라이센스라는 말일 터였다.
정지호가 라이센스를 집어 들어 확인했다.
미행자의 소속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각성자가 적응 기간을 지나 어느 길드나 단체에 속하게 될 때 그것을 기입해 재발급받기 때문이었다.
소속란을 확인한 정지호가 말했다.
“전주협회? 협회 녀석들이 무슨 일로 상혁이를?”
“저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물론 붙잡아서 캐묻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상혁이를 미행하느라고 경황이 없었거든요.”
“흐음…….”
정지호가 기억을 더듬었다.
‘전주협회면 그 친구가 있는 곳이로군…….’
기억하고 있다.
그야 당연한 게 정성호도 정성호였지만, 전동욱도 A+각성자인 만큼, 당시에는 각 길드에서 서로 낚아채 가려고 눈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히 정지호도 그중 하나였으니까.
“꽤나 심지가 곧은 청년이었지.”
나름 전동욱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던 정지호가 말했다.
“마침 조만간 이 친구를 만날 일이 있지. 내가 따로 처리하도록 하마.”
정지호가 라이센스 두 장을 정장 주머니에 챙기며 말했다.
“그보다 어제 상혁이가 외출한 이유가 무엇이더냐?”
정지원이 고민했다.
어제 각성에 관한 거라거나 베이칼에 대한 것은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지만, 다른 건 별다른 말을 들은 게 없었다.
‘이건 말해도 되겠지?’
딱히 말해도 상관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정지원이 말했다.
오염된 사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정지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외에도 오염된 마나? 같은 좀 영문 모를 소리를 했는데 딱히 자세히 답해 주진 않더라고요.”
“흠…… 그렇단 말이지……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아, 맞다. 자기 집에 좀 다녀오고 싶대요.”
“자기 집?”
정지호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전주에 말이냐?!”
“네. 뭐라고 해요?”
“안 된다고 하거라.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안 된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쪽에서 준비해 주겠다고 하고.”
아무리 정지호의 말이라지만, 자기 집에 간다는데 안 될 건 또 뭔가 싶었는지 정지원이 잠시간 생각하다가 답했다.
“알겠어요.”
* * *
Q. 오염 그리고 정화 [돌발 퀘스트].
「십 년 만에 외가에 방문한 주상혁은 우연히 던전에서 오염된 마나에 노출된 환자를 발견했다. 작은 오염도 취급하기에 따라서 거대한 질병으로 변질되기도 하는법. 참된 의원이라면 역병을 예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오염된 마나를 정화하자.」
달성 조건: 1. 오염된 사체를 정화할 것.(완료)
2. 오염된 마나에 노출된 상태의 모든 환자를 치료할 것.
실패 조건: 1. 환자 천 명 돌파 시 실패.
2. 사망자 서른 명 돌파 시 실패.
달성 보상: 던전 의약학 (상).
― 실패 시 스킬 레벨 페널티.
현재 감염자: 158명.
누적 사망자: 0명.
처방전
『정화의 탕약.』
[정제수: 0/1] [베이칼: 0/3] [폴라나: 0/2]어젯밤 정지원의 처방전까지 더해진 퀘스트창을 보던 주상혁이 한숨을 푹 쉬었다.
“뿌리당 이억이라…….”
진짜 앞이 막막했다.
치료제 하나에 최소 육억 원.
‘거기에 대충 환자가 백오십 명이면…….’
얼추 계산해 봐도 구백억 원이었다.
“삼백억으론 턱도 없겠군.”
제아무리 폴라나 포션을 판매하며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더라도 지금은 이제 막 한 달이 된 시점이다.
보충제니 산삼이니 써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 당장 주상혁이 박지훈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돈은 백억 원 남짓이었다.
‘나 참, 삼백억 원이 이렇게 작게 느껴질 줄이야…….’
몇 달 전까지 몇억 원이 없어서 던전행을 결정했던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5%짜리라도 몽땅 찍어 내는 거였는데…….’
역시나 이미 후회해도 늦은 일.
주상혁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모르지 가격을 착각했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정지원의 정보가 진리는 아니다.
주상혁이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주상혁이 침대에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인터넷에 베이칼을 검색했다.
폴라나 때에는 관련 기사나 정보밖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베이칼은 다르다.
폴라나야 주변 식물과 같은 모습으로 위장하는 특성 때문에 약초학 지식이 없는 사람은 채집하기 힘들지만 베이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있다.”
주상혁의 생각대로였다. 베이칼은 일반인들의 거래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디 보자 가격……이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2억.
정말로 2억이었다.
아니 오히려 뒷자리의 숫자가 0이 아니었으니 그것보다 더 비쌌다.
“진짜 조졌네…….”
주상혁이 갑갑한 심정에 휴대폰을 대충 침대에 던져 놓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달칵.
때마침 대화를 마친 정지원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
주상혁의 고민투성이인 표정을 보고 물은 것이었는데 자신을 슬쩍 흘길 뿐 주상혁이 별말이 없다.
흥미를 느낀 정지원이 주상혁의 침대 옆까지 와서 얼굴을 드밀며 물었다.
“뭔데, 말해 봐 이 누나가 해 줄 수 있는 수준이면 다 해 줄게.”
“몰라”
“에이, 그러지 말고.”
장난투로 귀찮게 하는 정지원에게 한 소리 하려던 주상혁이 멈칫했다. 방금 전 정지원이 했던 말 때문이었다.
‘잠깐…… 뭐든 해 준다고?’
주상혁이 말했다.
“진짜 뭐든 해 줄거?”
“들어보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애초에 정지호도 그러라고 정지원을 붙여준 것이다. 크게 문제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주상혁이 기뻐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던전 좀, C급 던전 좀 주라.”
* * *
한혜지는 주상혁이 팀을 탈퇴하자 따라서 팀을 탈퇴했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나마 자신과 나이 또래가 비슷하던 강민국과 주상혁 두 사람이 연이어 팀을 탈퇴하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 것이 이유였으니 말이다.
송치수와 그 일행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한혜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번 흐름을 놓치면 언제까지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불안감에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좋아, 완벽해.”
면접 준비를 위해 거울을 보고 복장을 정리하던 정장 차림의 한혜지가 집을 나섰다.
“할머니, 저 다녀올게요.”
한혜지는 어릴 때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난 뒤부터 할머니와 같이 산다.
한혜지는 아마도 자신이 보조 계열 각성자로 각성하게 된 게 같이 사고를 당했음에도 그날 현장에서 죽어 가던 부모님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고는 생각한다.
방문을 천천히 닫은 한혜지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 청각을 곤두세웠다.
한혜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안방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부리나케 할머니가 뛰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한혜지가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리가 아파서 뛰기는커녕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불편해하던 할머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가 몇 주 전부터 뛰어다니신다.
할머니의 말로는 어떤 청년에게 안마를 받아서 그렇다고 하던데 한혜지는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안마로 이러면 의사가 필요하겠어?’
그야말로 회춘에 가까운 효과다. 이 정도면 가히 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S급 보조 계열 각성자들마저도 고개를 젓는 게 노화로 인한 병세들이니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을 텐데.’
솔직히 말하면 의술을 동경해 오던 한혜지로서는 그 청년이라는 사람이 참 궁금했다.
“우리 손녀딸 조심히 다녀와. 면접 잘 보고.”
한혜지가 건강한 할머니를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응, 다녀올게. 할머니도 괜히 양로원 가서 다른 할머니들이랑 싸우지 말고.”
얼마 전 할머니가 화가 났는지 구시렁대며 집으로 들어오던 일이 있었다.
양로원 할머니들하고 싸웠다는데 그 이유가 참 웃겼다.
글쎄 매주 안마하러 양로원에 들르는 청년과 자신을 다리 놓으려다가 싸웠단다. 지금도 그날 할머니가 하던 말을 한혜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 혜지가 뭐 어땨서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라제 얼마나 똑똑헌디.’ 였지?”
그날 자신의 일에 화를 내던 할머니의 모습에 든든한 아군을 얻은 듯한 기분에 한혜지가 가벼워진 얼굴로 집을 나섰다.
오늘 한혜지가 면접을 보기로 한 곳은 전주에 위치한 4개의 길드 중 삼류 길드 청초길드였다.
한혜지가 청초길드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였다.
지이이잉.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려왔다.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 한혜지가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정준혁.
밥 약속을 해 놓고서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종종 주고받던 문자도 자신이 먼저 보낸 문자에만 시큰둥하게 답장받은 것 말고는 연락조차 없던 정준혁이 먼저 걸어온 것이다.
“여, 여보세요?!”
―혜지 씨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일……정이요?”
―네 지금 좀 보죠. 어디 보자 전주이실 테니까 세 시간쯤 뒤에 광주에서요.
한혜지가 말했다.
“에, 예? 세 시간 뒤요……?”
한혜지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인가 핸드폰 너머로 주상혁의 머쓱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오늘 많이 바쁘십니까?
한혜지의 머릿속이 초고속 회전을 시작했다.
청초길드와 다른 길드와의 장단점을 빠르게 비교하던 한혜지가 말했다.
“아니요, 오늘 완전 한가해요. 바로 갈게요 광주 어디에서 봐요?”
* * *
주상혁이 뜬금없이 던전을 정지원에게 부탁한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이유라고 볼 수 있었다.
치료제 재료를 모두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폴라나 때처럼 직접 던전을 돌며 몸으로 떼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역시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C급 던전을 분양받아야 한다는 문제였다.
베이칼이 채집 난이도가 간단함에도 비싼 이유.
그건 오로지 C급 이상의 던전에서만 서식한다는 접근성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뭐랄까 C급 던전부터는 나름 고급 던전으로 분류된다.
D급과는 고작 단계 하나 차이이지만, 난이도만 놓고 보면 열 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할 정도로 위험한 던전인 것이다.
그런데 협회가 이런 던전을, 서류상 아직 E급 각성자인 주상혁에게 양도할 이유 따위 없었다.
‘그래서 이 방법은 애초에 고려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정지원이 구해 주겠단다. 이러면 이제 빈약하더라도 믿을 만한 공격대만 모으면 되는 일이었다.
“좋아, 일단 혜지 씨는 불렀고.”
주상혁이 제일 먼저 호출한 것은 바로 한혜지였다.
한혜지는 박상운과 동시에 주상혁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비밀을 지켜 줬지.’
뭔가 찝찝하던 처음과 달리 의외로 한혜지는 조용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통화를 나눠 본 결과 뭔가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은 기색이었지만, 그럼에도 매우 협조적이었다.
주상혁이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하나 꺼냈다.
여러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송치수 일행이라거나 박상운, 박지훈 등 다양했다.
다섯 번째 장에서 한혜지라고 적힌 장을 펼친 주상혁이 펜을 움직였다.
‘한혜지 B.’
이름 옆에 C라고 적혀 있던 것에 두 줄을 긋고 B로 수정했다. 한혜지의 신용도였다.
“좋아, 이 정도면 됐고.”
주머니에 수첩을 집어넣은 주상혁이 다음 대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혜지와 마찬가지로 이전부터 B등급의 신용도를 자랑하던 박상운이었다.
“네, 그럼 이따가 보죠.”
당연한 말이지만 박상운과의 통화는 짧고 간단했다. 박상운은 연차까지 쓰면서 기꺼이 오겠다고 답했다.
“뭔가 순조로운가 보네?”
주상혁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방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장난기 넘치는 얼굴의 정지원이 보였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정지원의 목소리에 그렇게 답한 주상혁이 핸드폰을 조작했다.
주상혁이 핸드폰 주소록에서 송치수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믿을 만한 사람은 더 있거든.”
* * *
전주지부 지부장 전동욱이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게 정말입니까?”
“면목 없습니다. 나름 미행에 능한 자들로 꾸린다고 꾸린 것이었는데…….”
발각됐다. B급 하나에 C급 하나로 이루어진 손색없는 조합이었을 텐데 말이다.
“정지원 씨가 확실합니까?”
“인상착의를 볼 때 거의 확실합니다.”
하지만 운이 안 좋았다. A급 각성자가 하필 주상혁에게 붙어 있었다니…….
전동욱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다행히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라이센스를 도난당했습니다.”
전동욱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큰일이군요.”
확실한 증거를 빼앗긴 셈이었다. 물론 방법이 없지만은 않다.
각성자들의 독단이라고 말하고 꼬리를 자르라면 자를 수 있었지만, 전동욱도 정지호의 성격은 안다.
오히려 그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뻔히 보이는 개수작보다는 정직하게 밝히는 편이 순탄한 결과로 이어질게 분명했다.
“면목 없습니다…….”
“아닙니다. 애초에 A급 각성자라면 전주지부 내에서 안 들킬 사람이 없겠죠.”
당연히 전동욱을 포함한 말이었다.
전동욱이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주상혁 씨의 미행은 당분간 중단합니다.”
* * *
주상혁은 혹시 몰라 한 시간 정도 일찍 던전 앞에 도착해 있었다.
3m 크기 정도의 포탈 옆에 우체통 같은 측정기를 주상혁이 확인했다.
등급: C.
수용 인원: 30.
던전 브레이크: 155시간 13분.
차원 에너지: 16,050.
개체 수: 2,516.
당장에 D급 던전의 열 배 가량은 되어 보이는 차원 에너지와 명백하게 ‘C급 던전’이라는 정보가 보였다.
주상혁이 측정기의 정보를 보고 뒤돌아섰을 때였다. 주상혁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저 진짜 죽습니다.”
정지원이 말했다.
“아니 걱정 말라니까요? 저 못 믿어요?”
“믿죠, 근데 던전에 안 들어가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들어갈 거예요. 10시간 후에.”
“아가씨!”
일단 굳이 주상혁의 편을 따지자면 저기 뻔뻔한 얼굴의 정지원이다.
하지만 대화를 듣고 있자니, 주상혁은 남자의 심정도, 태도도 이해가 됐다.
‘불안하겠지.’
자그마치 C급 던전이다.
D급 던전도 D급 네 명에 E급 두 명이 들어간다고 하면 뜯어 말릴 판인데, 그 인원으로 C급 던전을 들어간다고 간다고 하니 저러한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또 어디 그뿐이랴?
타인에게 던전을 2 차 양도하는 건 엄밀히 불법이다.
그런데 정지원은 지금 그 불법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 불법을 실행해서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은 남자가 지게 됨에도 말이다.
어찌 됐든 남자의 태도는 정당했다. 대호길드의 각성자라 차기 대표로 지목되는 정지원의 눈치를 볼 이유만 없었다면 개x 같은 소리 하지 말라며 쫓아 버렸을 정도로 참고 있는 것도 보였다.
“소리 지르지 말고 귀 대 봐요.”
정지원이 남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들키지만 않으면 범죄가 아니잖아요?”
“확실하게 들킬 거니까 문제죠!”
사망자가 나오면 안 들키려야 안 들킬 수가 없다.
“제가 책임지고 안 들키게 할게요.”
“믿는 게 있으신 겁니까?”
정지원이 웃는 얼굴로 끄덕였다.
“정말로 자신 있으신 거죠?”
이런 답이 들려온 이상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한 정지원이 결정타를 날렸다.
“물론이죠. 자 그리고 이거요.”
정지원이 카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게 대체…….”
“어디 가서 팀원들이랑 좀 놀다 오시라구요.”
남자가 한숨과 함께 카드를 받아 들며 물었다.
“저 진짜 아무걱정 없이 맘편이 놀다 옵니다?”
“저만 믿어요.”
마침내 남자가 팀원들과 함께 퇴장했다. 정지원이 그제서야 주상혁에게 다가왔다.
“야, 봤지? 너 진짜 괜찮겠어?”
일단 주상혁이 부탁하니까 부탁은 들어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지원도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주상혁이야 C급 수준 정도 된다고 정지원이 판단했으니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실력을 모르니 걱정이었다.
일반적으로 B급 한 명에 C급 열 명 이상의 클리어를 권장하는 C급 던전.
‘주상혁처럼 등급을 위장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가정하에 B급 이상이 두 명 이상 된다면 아마 거뜬하겠지만…….’
정지원이 픽 웃고는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있나?“
애초에 위장 등급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번에 주상혁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된 정지원이다.
절대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나만 믿어.”
“퍽이나!”
정지원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때마침 던전 포탈이 존재하는 유원지 입구로 정장 차림의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주상혁이 텅 빈 유원지 입구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한혜지에게 손 흔들며 말했다.
“혜지 씨!”
* * *
한혜지는 약속 장소를 듣자마자 묘하게 들떴다.
유원지라니, 누가 봐도 데이트 코스였다.
그런데 정작 유원지 입구에 도착한 한혜지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평일 오전이라지만 유원지에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다. 그 흔한 매표소 직원마저도 없었다.
“혜지 씨.”
어째서인지 싸한 느낌은 항상 빗나가질 않는다. 설마설마했던 일은 사실이 되었다.
주상혁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틀어 보니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손 흔들고 있는 주상혁이 보였다.
뒤편에는 당연히 던전 포탈.
“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단박에 알아차린 한혜지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한혜지가 주상혁에게 기운 빠진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가서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준혁 씨.”
“어서 오세요.”
한혜지가 이미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근데 혹시 오늘 부른 이유가 던전 때문일까요?”
“그런데요?”
“진짜 던전 말고는 다른 이유는 없다는 거죠?”
“네. 그런데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상혁의 모습에 한혜지가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삼켰을 때였다. 주상혁이 말했다.
“아참, 공대장님이랑 다른 분들께도 부탁드렸습니다. 혜지 씨도 오랜만에 보는 거죠?”
한혜지가 어색하게 웃었다.
“네, 그렇죠.”
주상혁이 평소와는 다르게 한혜지의 단정한 복장을 보고 말했다.
“근데 어디 면접이라도 있었어요?”
“있었죠.”
“그럼, 면접은…….”
주상혁이 한혜지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정지원이 주상혁의 옆구리를 쑤시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혜지 씨인가 하는 분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느껴지지 않냐?”
주상혁이 한혜지를 쓱 보고는 말했다.
“아니, 별로?”
정지원이 안쓰럽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난 근처 카페에라도 앉아 있을 테니까 들어갈 때 말해.”
“어? 어.”
주상혁이 유원지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정지원을 바라보다가 한혜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음, 그러니까…… 면접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어디 면접이었어요?”
“괜찮아요. 어차피 끝난 일인데.”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좀 신경 쓰인달까…… 미안하달까? ”
주상혁이 잠시간 무언가 생각하다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혜지 씨 저랑 같이 일하실래요?”
“팀을 만들자는 말인가요?”
“아니요, 그거랑은 조금 다른데…… 그냥 오늘같이 부를 때만 오는 식이거든요. 돈은 가능하면 원하는 대로 맞춰 드릴 테니까. 프리랜서 느낌으로 일해 달랄까요?”
“…….”
한혜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차피 길드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도 결국 돈과 기회비용 때문이다.
주상혁이 한 달에 며칠이나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대우만 괜찮다면 다음 면접 준비하는 동안 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겸사겸사 주상혁의 얼굴 볼 기회도 생기고 말이다.
“얼마나 주실건데요?”
“음…… 글쎄요, 월에 삼천 정도면 될까요?”
“삼천이요?”
소일거리 정도로나 생각했던 한혜지 입장에선 많아서 반응한 것이었는데 주상혁이 오해했는지 곧바로 말을 수정했다.
“너무 적은가요? 사천……?”
“에…….”
“아니, 오천 드릴까요?”
한혜지가 주상혁의 입을 틀어막고는 말했다.
“잠깐만요.”
주상혁이 입을 다물자 주변을 살피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한혜지가 말했다.
“일단 폴라나 때문에 돈이 많으신 건 알겠어요. 근데 방금 육천이라고 하려 그랬죠?”
“네.”
“육천씩 주면 일 년이면 얼마인지는 생각해 보셨어요?”
“칠억 이천이 되겠네요.”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답하는 거 봐서는 계산 없이 지른 것 같은 기색은 아니었다.
자신 같은 고작 E급 각성자한테 월에 육천씩이나 주면서 어떤 일을 시키려는지 호기심이 생겼는지 한혜지가 물었다.
“어떤 일을 할건데요? 그보다 그렇게 해서 준혁 씨가 손해 본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손해?
웃기는 소리다.
이번에야 베이칼 때문에 한혜지를 급히 부르긴 했지만,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 없었다.
아니, 100% 일어날 것이었다.
“손해가 아니니까 제시하는 겁니다. 하실 거예요? 안 하실 거예요?”
한혜지가 말했다.
“월 육천은…… 너무 많아요. 뭔가 받으면 코 꿰일 거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물론, 거절하겠단 건 아니에요.”
“그럼요?”
“일단 다음 면접 준비할 때까지만 처음에 말씀하셨던 삼천만으로 임시 계약은 안 될까요? 뭐, 저에게 그 정도까지 주시겠다는 것도 이해 불가이긴 하지만…….”
주상혁이 자신을 흔한 E급 각성자 정도로나 생각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혜지 씨한테는 스스로도 모르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저한테요?”
주상혁의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처음으로 한혜지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걸렸다.
“뭔데요?”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의미가 있는 겁니다.”
신용도라고 직접 말한다고 해서 이해할 리 없었다.
조금 고민하던 한혜지가 말했다.
“그러시다면야 뭐, 잘 부탁해요.”
* * *
이십 분쯤 후였다.
“육천 만원…… 말인가?”
송치수 일행에게도 똑같이 임금 협상에 들어가자 송치수가 놀라워했다.
“그럴 돈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만.”
“돈이라면 있습니다.”
송치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당연할 것이다. 주상혁은 얼마 전까지 E급 던전에서 돈을 받아 가며 일했던 평범한 각성자다.
그런 그에게 월에 육천씩 다수를 고용할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알 수 있나?”
송치수는 전직 형사인 만큼 평소에도 정의감이 투철한 편이었다.
‘더러운 일이라면 거절할 생각이겠지.’
대충 얼버무려서는 송치수 일행을 끌어들이지 못할 것을 직감한 주상혁이 입을 열었다.
송치수가 경계하는 부분 정도는 긁어 줄 생각이었다.
“비밀이긴 한데 외부로 발설만 안 한다고 약속해 주신다면야 말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일이든 함께하겠다고는 말 못 하겠네만, 비밀은 지켜 주겠네.”
주상혁이 말했다.
“던전에서 약초를 캘 겁니다.”
“약초……?”
의외의 단어에 송치수가 황당해했다.
“이게 비밀씩이나 될 일인가?”
“이것만 들으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게 제법 돈이 되는 약초입니다.”
“돈이 되는 약초라…… 폴라나는 아닐 테고…….”
답을 요구하는 듯 흘기는 송치수의 눈빛에 주상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건 영업 비밀이라 죄송합니다.”
송치수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치수 나름대로 비윤리적인 일거리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주상혁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다.
“뭐, 결국 던전에서 약초를 캐야 하는데 자네와 함께 행동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군.”
“그런 거죠. 혼자서 던전을 들락거리는 건 부담되니까요.”
송치수가 말했다.
“마침 자네랑 혜지 씨마저 나간 후로는 E급 던전만 들락거리느라고 수입이 불만이었는데 잘됐군.”
“다른 두 분께는 공대장님이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걱정 말게.”
주상혁이 송치수도 무사히 포섭했을 때였다.
노일현이 다가와 말했다.
“형씨, 내가 말이야 이상한 걸 봐서 그러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네, 뭔가요?”
“저 측정기 고장 난 건가?”
주상혁이 픽 웃었다.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들어갈 던전은 C급이 맞습니다.”
“형씨, 미친 건 아니지?”
주상혁의 말에 송치수도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C급……. 준혁 군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그리고 미쳤냐는 질문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도 다 생각이 있거든요.”
“방법? D급이 C급 전전을 클리어하는 방법이라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야말로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할 방법이었으니까.
주상혁이 구석에 벗어둔 가방을 들고 와서 말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이게 그 방법입니다.”
주상혁이 가방에서 꺼낸 손에는 각양각색의 포션이 들려 있었다.
* * *
주상혁이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폴라나 포션은 최대 10%다.
처음 약탕기로 포션을 제작했을 때 이미 11%.
하지만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다운그레이드 제작해 10% 포션만 공개한 것이다.
이유라고 한다면 더 이상 박지훈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11% 이상의 포션은 자연스럽게 주상혁의 품에 남게 되었다.
주상혁의 전용 포션이 된 것이다.
『마나 증폭의 탕약 초급』
『힘 증폭의 탕약 초급』
『민첩 증폭의 탕약 초급』
『기력 증폭의 탕약 초급』
『방어력 증폭의 탕약 초급』
『활력 증폭의 탕약 초급.』
.
.
그리고 그로부터 약 한 달.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주상혁의 스킬이 하급 단계에 도달하도록 도와줬고 덕분에 지금은 12% 포션이 되어 있었다.
“이 포션들이 그 방법이라는 건가?”
“예, 그렇죠.”
각양각색의 포션을 송치수가 유심히 살펴보다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 혹시 폴라나 포션인가?”
송치수가 집어 든 것은 폴라나 포션. 주상혁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네. 제법 비싸더군요. 박지훈 씨 가게에서 구입했습니다.”
“허…… 그럼 다른 포션들은 갈랑 포션이라거나 페냐 포션이겠군.”
“그렇죠. 물론 다른 포션은 박지훈 씨의 포션이 아니지만요.”
역시 효과적인 거짓말은 진실을 내포했을 때 위협적이다.
송치수는 끔뻑 속아 넘어간 듯 보였다.
송치수가 진지한 얼굴로 고심에 잠기자 노일현이 말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말씀하시죠.”
노일현이 포션을 하나 눈높이까지 들어 올려 흔들거리며 말했다.
“이것들 지속시간이 있잖아, 두 시간이던가?”
두 시간이라는 제한시간은 바꿔 말하면 보통 열 시간 정도의 클리어 타임을 자랑하는 C급 던전의 경우 보통 다섯 번을 복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노일현의 질문은 이점을 짚은 것이었다. 폴라나 포션도 폴라나 포션이지만, 다른 포션도 다 합치면 상당한 가격을 자랑할 터였다. 이걸 마구잡이로 먹어 댄다는 게 애초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주상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가방 안에 든 게 하루치 수량으로 생각하고 가져온 거니까요.”
노일현이 슬쩍 봐도 가방 안에는 포션이 한가득했다. 어림잡아도 백 개는 거뜬할 것이다.
노일현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해서도 남는 게 있다는 건가?”
“네.”
노일현이 주상혁의 말에 송치수를 바라봤다.
“어떠슈, 형님?”
송치수의 표정은 아직도 심각했다.
“형님……?”
“아, 아, 미안하군. 생각을 좀 하는 터라.”
주상혁이 물었다.
“무슨 걸리는 게 있으시군요?”
송치수가 한숨 쉬었다.
“박지훈 씨의 폴라나 포션, 확실히 좋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단순히 도핑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건가? C급 던전이?”
송치수는 D급 초입.
폴라나 포션은 % 적용을 받는 만큼 송치수가 망설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주상혁이야 이걸 전부 복용하면 10레벨에 가까운 성장치를 보인다는 것을 앞선 실험으로 알고 있지만, 송치수 일행은 아니었다.
‘누나를 좀 팔아 볼까?’
주상혁이 한혜지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못 보셨군요? 혜지 씨는 아까 봤는데…….”
“봤다? 무얼 말인가?”
“A급 각성자요.”
“A급? A급 각성자도 오늘 같이 들어간다는…….”
주상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을 본 송치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A급 각성자를 고용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전에 같이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했지?”
“네, 그 A급 각성자는 제가 평균 클리어 타임을 넘기게 되면 투입할 겁니다.“
송치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확실히 안전장치는 있다는 말이로군.”
“그런 셈입니다.”
송치수가 포션을 바라보다가 결심이 섰는지 말했다.
“해 보지 C급 던전.”
* * *
던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주상혁이 일행들에게 포션을 종류별로 하나씩 쥐여 줬다.
“준혁 씨 이게 뭐예요?”
“포션입니다. 오늘 이거 먹고 C급 던전을 클리어할 거예요.”
“C급이요……?”
정보통이 느린 한혜지가 주상혁의 말에 반문했을 때였다.
꿀걱꿀걱.
옆에서 목구멍에 포션을 들이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혜지가 고개를 돌려보자니 박상운이었다.
처음 보는 물약에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저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Lv.31 박상운』
…….
『Lv.35 박상운』
…….
『Lv.40 박상운』
주상혁의 눈에 포션을 복용할 때마다 상승하는 박상운의 레벨이 보이고 잠시 후였다.
박상운의 레벨이 마침내 정지했다.
『Lv.45 박상운』
박상운의 레벨은 무려 45였다.
‘기존 레벨이 32이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주상혁의 경우엔 풀 도핑을 실시했을 때 47레벨.
불과 주상혁과 2레벨밖에 차이 나지 않는 레벨이었다.
자신처럼 얼추 10레벨 정도 오를 거라고 생각했던 주상혁의 예상과는 달리 박상운은 13레벨이 오른 것이었다.
주상혁이 박상운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박상운을 보고 결심했는지 한혜지도 뚜껑을 따더니 하나씩 마시기 시작했다.
포션의 마실 때마다 쓴맛에 표정이 심각해지던 한혜지가 모든 포션을 다 먹고 소리 냈다.
“으써…….”
주상혁이 사탕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Lv.39 한혜지.』
‘어……? 혜지 씨도 효과가 좋네……?’
한혜지는 더 심했다. 무려 20레벨이 상승한 것이다.
주상혁이 두 사람 외에 다른 세 사람을 빠르게 살펴봤다.
『Lv.41 송치수.』
『Lv.40 노일현.』
『Lv.40 백진호.』
마찬가지였다.
잠시간 생각하던 주상혁이 의문이 풀린 듯 중얼거렸다.
“하긴 이상하긴 했지.”
E급 각성자로 100레벨을 채운 열 명의 공격대가 D급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한다.
그런데 D급 각성자로 100레벨을 채운 다섯 명의 공격대는 D급 던전을 클리어한다.
주상혁은 그동안 이게 참 이상했다.
같은 수치의 레벨이라면 강함도 엇비슷해야 하는 것.
하지만 오늘에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레벨이 오를수록 레벨 업 1이 가지는 가치가 생각 이상으로 크다고 말이다.
어쩐지 %로 적용을 받는 포션은 당연히 주상혁이 가장 큰 효과를 받아야 함에도 레벨 상승이 작았는데 이런 논리라면 이해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포션 복용을 마친 주상혁이 말했다.
“준비 다 되셨나요?“
송치수가 입에 넣었던 사탕을 잘게 부수며 말했다.
”우리는 문제없네.“
주상혁이 박상운을 보아하니 단도를 꺼내 들고 있었다.
‘혜지 씨는?’
주상혁이 한혜지를 바라보자 목걸이와 비슷한 디자인의 은색 로자리오를 손가락과 손목에 교차해 감는 게 보였다.
한혜지가 말했다.
“저도 됐어요.”
한혜지를 마지막으로 모든 일행의 준비가 끝나자 주상혁이 말했다.
“그럼 들어가죠. C급 던전.”
* * *
무성한 수풀과 거대한 바위, 빼곡히 자라난 거대한 나무들.
주상혁이 던전에 들어간 후 확인한 풍경의 모습이었다.
‘시작이 좋아.’
지난번 폴라나 포션 때는 풀이 자라지 못하는 험지가 연달아 걸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운이 좋았다.
주상혁이 일단 입구 근처부터 대충 살펴볼까 생각할 때였다.
“준혁 군, 이동 대형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제가 이쪽은 솔직히 말해서 별 자신이 없어서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쪽은 항상 송치수가 해오던 일이었다. 송치수가 말했다.
“어렵지는 않네만.”
송치수의 눈빛이 박상운을 가리키자 주상혁이 말했다.
“아, 저쪽은 암살계열 각성자입니다. 실전 경험도 꽤 많아요.”
“알겠네.”
송치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행들에게 가자 주상혁이 본격적으로 입구 근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얼마나 구할 수 있으려나?’
다섯 뿌리?
“아니 그래도 모처럼 숲인데 열 뿌리는 가능하지 않을까?”
주상혁이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오백 뿌리 정도가 필요한 마당에 몸으로 구른다는 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진행도가 빠른 질병이 아니어야 할 텐데.’
병세가 며칠 만에 급격하게 악화되는 병들이 있는가 하면 흔히 말하는 잠복기가 긴 병들도 많았다. 그쪽에 비는 수밖에 없었다.
“뭘 찾으시는 겁니까?”
주상혁이 뒤돌아 바라보니 박상운이 보였다.
박상운이 주상혁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근데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각성하셨을 줄이야.”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아시죠?”
“비밀이라는 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절대로 상혁 씨, 아니 도련님 편이니까.”
박상운이 씨익 웃었다.
하급 단계에 오른 침을 한 차례 더 맞은 박상운이기 때문인지 주상혁에 대한 충성도는 거의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역시 박상운을 이번에 부른 건 정답이었다.
“준혁 군.”
주상혁을 찾는 소리가 때마침 들려왔다.
“근데 왜 준혁인 겁니까?”
“그냥 설명하자면 복잡하니까 적당히 맞춰 주세요.”
“아, 예! 그것도 걱정 마십시오”
* * *
송치수가 결정한 이동 대형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경험 있는 암살계 각성자인 박상운의 존재 때문이었다.
변화한 대형은 이랬다.
정찰꾼이 되어 최전방에서 박상운이 탐색 중이었고, 한참 떨어진 뒤편에 송치수 일행 그리고 그 뒤에 주상혁과 한혜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상혁이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박상운의 모습을 지켜볼 때였다.
‘발견했나 보네?’
작았던 박상운의 모습이 점차 커졌다.
아마 던전에 들어오고 삼십 분. 마침내 몬스터를 만난 것일 터였다.
주상혁이 미리 한혜지를 데리고 안전거리까지 이동했다.
일행이 대비하여 전투 대형으로 돌입하자 마침내 도착한 박상운이 말했다.
“옵니다.”
박상운의 말과 함께였다. 가려져 있던 전방 좌우 숲에서 70cm 크기의 거대한 벌이 수십 마리 떼를 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드럴인가?’
『Lv.33 드럴』
주상혁이 C급 던전에 들어오기 전 조사한 바에 이르면 ‘드럴’이란 이름의 몬스터는 하나의 개체가 위협되는 몬스터는 아니다.
하지만 그 개체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기 때문에 상당히 제법 껄끄럽기로 유명한 몬스터였다.
송치수 일행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드럴 떼를 향해 공격했다.
송치수의 주먹에 맞은 벌이 두세 마리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박상운도 질세라 단검을 휘둘렀다. 검에 맞은 벌 서너 마리가 토막이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금세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럴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큭…….”
“더럽게도 많군.”
공격을 맞힐 때마다 최소 하나씩은 꼬박꼬박 해치울 수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숫자가 적당할 때나 위력적인 법.
애초에 한둘쯤 죽어 나가는 건 표시도 안 날 만큼 압도적이라면 다른 이야기였다.
무리가 죽어 떨어지든 말든 무시하고 일행에게 달려들던 드럴들이 마침내 하나둘씩 엉겨 붙기 시작했다.
일행이 허벅지에 엉겨 붙은 녀석을 떨쳐 내면 드럴은 그 틈에 어깨와 머리에 엉겨 붙었다.
지독한 물량 공세에 점점 일행의 모습이 드럴로 덮여 사라져가길 잠시.
일행의 모습은 어느덧 눈에서 사라져 있었다.
* * *
드럴의 엄청난 물량 공세에 송치수를 비롯한 전방 공대원의 모습이 마침내 사라졌다.
본래 권장 인원의 반절에 가까운 숫자이니 공격이 그만큼 집중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 어떡하죠? 이러면 힐을 할 수가…….”
당황한 한혜지의 목소리를 들은 주상혁이 잠시간 지켜보더니 태연하게 답했다.
“괜찮은 거 같은데요?”
“……네?”
주상혁이 생각하기에 한혜지는 그저 당황해서 현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상혁은 아니었다.
애초에 정확하게 드럴과 송치수 일행의 레벨 차이를 알고 있는만큼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기의 상황이라면 나타나야 할 반응이 하나도 없었다.
예를 들면 드럴이 아무리 개체마다 공격이 약하더라도 대미지가 있다면 물어뜯으면서 생기는 출혈이 바닥을 적신다든가 그도 아니면 하다못해 일행의 비명이라도 들려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저런 상황임에도 드럴에 덮인 일행들은 태연하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도저히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주상혁의 판단이 정확함은 곧이어 모습으로 드러났다.
무서운 기세로 공격하던 드럴들이 당황스러웠는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주변으로 다시 날아오른 것이다.
“어? 정말이네……?”
지켜보던 한혜지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죠?”
“포션의 효과가 좋은가 보죠, 뭐.”
빙빙 돌며 다시 드럴들이 경계를 시작하자 풀려난 송치수 일행이 끔벅끔벅 눈만 감았다가 떴다 하더니 몸을 살폈다.
당황한 건 드럴들만이 아니었다.
“음…… 뭐랄까.”
그 흔한 상처 자국 하나 없는 것을 확인한 백진호가 말했다.
“……이 녀석들 완전 허접한데요?”
“거 포션이 맛대가리 없긴 해도 효과는 좋은 갑수.”
“역시 포션은 박지훈이지!”
정확히는 폴라나 포션 말고도 다른 포션도 한몫했지만 먹어 본 적이 있어야 비교도 가능하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반격의 시간임을 직감한 송치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젖혀!”
학살, 그야말로 학살이 시작되었다.
드럴 떼의 공격이 상처조차 줄 수 없었던 것과는 다르게 송치수 일행의 공격은 닿았다 하면 벌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으니 당연했다.
‘확실히 레벨이 좋긴 한가 보네.’
고작 5레벨 남짓의 차이였지만, 발군의 활약을 하는 것은 박상운이었다.
양손에 들린 단검이 춤을 출 때마다 드럴의 목과 몸이 네다섯 마리씩 분리되는 모습이 보였다.
“아하하하하! 죽어라, 죽어!”
박상운은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게 어릴 때 곤충 꽤나 괴롭혔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주상혁이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전투를 느긋하게 지켜볼 때였다.
패색이 짙어지자 갈피를 못 잡던 드럴 세 마리가 주상혁과 한혜지를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길동무라도 삼겠다는 거냐?’
주상혁으로는 딱히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잘됐네, 슬슬 실전에서도 사용해보고 싶긴 했는데.’
주상혁이 날아오는 드럴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맥.”
진맥할 대상과 접촉해 주십시오.
주상혁이 떠오르는 창을 확인하고는 가장 먼저 날아오는 드럴을 향해 뛰쳐나갔다.
드럴과 주상혁의 거리가 일순간에 지워졌다.
“일단, 혈 자리 좀 보실까?”
드럴의 얼굴을 낚아챈 주상혁이 그대로 바닥에 꽂아 버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렇게 생겨 먹은 녀석들이셨구만.”
진맥으로 드럴의 혈 자리를 머릿속에 넣어 둔 주상혁이 지면 깊숙이 박힌 드럴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상혁의 검지와 중지에는 어느덧 이글거리는 푸른색 마나 덩어리가 생겨나 있었다. 점혈을 사용한 것이었다.
주상혁이 뒤이어 날아오는 두 마리의 드럴에게 일순간에 서너 방의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위이이이이잉.
제자리에 정지해서 날갯짓만 하던 드럴 두 마리의 몸에 뒤늦게 변화가 일어났다.
주상혁이 쑤신 위치에 촛불 같은 작은 푸른 불꽃이 여러 개 피어났다.
툭. 툭.
두 마리의 드럴이 나란히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위이이이잉.
당황한 드럴들의 날갯짓이 빨라졌다. 물론 날갯짓의 의미는 없어 보였다
“뭐, 효과가 좋긴 하네.”
공격을 성공시킬 수만 있다면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는 건 제법 큰 메리트로 느껴졌다.
“야, 꿀벌.”
주상혁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째선지 날갯짓을 반복하던 드럴의 날갯짓이 한 차례 더 빨라졌다.
주상혁이 씩 웃었다.
“넣을게.”
콰직. 콰직.
발로 내리찍어 드럴의 허리를 끊어버린 주상혁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3분쯤 걸린 건가?’
백여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드럴들이었지만 오x기 짜장보다 빨리 정리된 모습을 보고 주상혁이 중얼거렸다.
“C급 별거 없네.”
* * *
주상혁이 던전에 들어가고 여덟 시간 후.
정지원은 지금 던전 입구가 있는 유원지 앞에 있었다.
주상혁이 걱정돼서냐고 묻는다면 아쉽지만, 전혀 아니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분명 그런 이유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개체 수: 1,211.
“또 줄었네…….”
계속해서 측정기의 개체 수가 줄어가고 있었다.
측정기를 지켜보던 정지원이 포탈을 바라봤다.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었다.
“진짜로 클리어하고 있는 건가? 여섯 명이서?”
D급 네 명과 E급 두 명.
물론 E급 중 한 명은 주상혁이었으니까 실제론 조금 다르겠지만, 어쨌든 한참 부족한 전력인 것은 분명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혹여 주상혁보다 더 높은 위장 등급 각성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짐을 짊어지고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적어도 B급, 그것도 A급에 근접한 각성자가 아니면 힘들기 때문이다.
‘B급이 아닐 수도 있어 어쩌면 A급 각성자가 있을지도……’
만약 A급 각성자라면 대호길드 쪽으로 재빠르게 채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냥 들어가 볼까?”
포탈을 향해 걸어가려던 정지원의 걸음이 멈춰섰다.
“아니! 아니야…… 들어갔다가 뭔 소리를 들으려고?”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정지원이 다시 포탈을 향해 돌아섰다.
“근데 만약 A급 각성자라면? 설령 B급이라도 그 정도의 각성자라면 할아버지도 용서해 주지 않을까?”
정지원의 고뇌가 계속될 때였다.
“어……?”
개체 수: 1,094
개체 수: 885
개체 수: 555
개체 수: 332
개체가 빠르게 줄어가는 게 정지원의 눈에 보였다.
“보스를 만난 건가?”
던전의 보스의 주위에는 많은 수의 개체가 모여있다.
무리를 지어서 행동하지 않는 개체더라도 최소한의 그룹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연컨대 이렇게 대량의 개체가 모여있는 몬스터라면 하나뿐.
“드럴인가……?”
단순히 던전 밖에서 측정기를 확인한 것만으로 몬스터의 종류를 파악한 정지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다른 몬스터라면 모를까 드럴은 절대 만만히 볼 몬스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Clear.
마침내 측정기에 떠오른 문자를 확인한 정지원이 결심했다.
“안 되겠어, 지금이라도 들어가 보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저녁에 두 발 뻗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치지직.
정지원이 포탈을 향해 걸음을 내딛자 때마침 주상혁이 불쑥 튀어나왔다. 주상혁이 정지원을 보고 말했다.
“뭐 해?”
정지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던전 안에 있지.”
“왜? 던전 클리어했잖아?”
주상혁이 말했다.
“아, 좀 사정이 있어서.”
“사정?”
주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게 있어”
“그게 뭔데?”
정지원이 평소와 다르게 관심을 보이자 주상혁이 경계했다.
“알아서 뭐 하게?”
“아니 뭐…….”
시선을 슬쩍 피하는 정지원을 수상쩍게 보던 주상혁이 시선을 거뒀다. 지금 이곳에서 정지원과 실랑이를 벌여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 던전 좀 조금만 더 빌려줘.”
“더……? 어째서……?”
아직 던전 내부에 돌아다니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곳의 베이칼과 폴라나도 깡그리 채집할 생각이었다.
“조금 더 할 일이 있어서.”
정지원이 측정기를 바라봤다.
던전 소멸까지 168시간 11분.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 마석과 재료를 회수할 시간은 얼마든지 충분했다.
“얼마나?”
“열 시간 정도?”
정지원이 조금 생각하다가 포탈 쪽을 보고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나도 같이 들어가면 안 되나?”
“안 되는데?”
주상혁이 던전으로 다시 들어가며 말했다.
“하여튼, 난 들어간다. 괜히 들어올 생각하지 마.”
* * *
주상혁이 던전으로 다시 들어오자 보이는 것은 3m 크기에 육박하는 거대한 드럴의 시체였다.
주상혁이 보스의 주변에 모여있던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퇴근해도 되는데요?”
주상혁도 애초에 던전 클리어가 문제였지, 약초 채집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혼자서 돌아가나?”
“괜찮은 숙소로 잡아 뒀는데 아깝게…….”
주상혁의 중얼거림을 들었음에도 송치수를 비롯한 노일현과 백진호는 던전에 남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긴 의리 빼면 시체인 분들이니까…….’
주상혁이 이번엔 한혜지를 보고 말했다. 한혜지는 주상혁과 계약하긴 했지만, 처음에 이곳에 부를 때부터 갑작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덕분에 현재 복장 상태라거나 여러 가지가 미흡한 상태였다.
“혜지 씨 눈치 보지 말고 그냥 가셔도 돼요. 상운 씨도요.”
한혜지와 박상운이 말했다.
“아뇨, 저도 그냥 할래요, 집에 연락을 드려야 하긴 하겠지만.”
“까짓거, 하루 더 연차 쓰겠습니다.”
사실상 보스가 죽으면 던전 안에 남은 몬스터는 공격성을 잃고 던전 외곽으로 흩어진다.
그나마 있던 몬스터도 주상혁에게 전혀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력 낭비 아닌가?’
주상혁이 완고한 공대원들에게 말했다.
“뭐, 정 그러시면 어쩔 수 없고요.”
수색은 이인 일조로 이루어졌다.
본래라면 주상혁 혼자서 여덟 시간 정도 잡고 제대로 수색해 볼 생각이었지만, 인력이 늘어난 만큼 이쪽을 선택한 것이다.
수색이 끝난 주상혁이 가방에 모인 약초들을 확인했다.
‘베이칼 열세 뿌리에 폴라나 세 뿌리인가? 확실히 하루 채취량치고는 많지만…….’
뭔가 아쉬웠다. 숲치고는 조금 적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갈 길이 막막하구만.’
심각한 주상혁의 표정을 보고 송치수가 물었다.
“역시 적자 때문인가? 그것 때문이라면 아까 계약에 대한 건 물러도 상관없네.”
아무것도 모르는 송치수의 입장에서야 충분히 오해하고도 남을 상황이긴 하다.
“아니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
송치수가 물었다.
“그 돈이 된다는 약초는 못 캔 거지?”
“아니요. 충분합니다.”
주상혁이 쓰게 웃었다.
“다만 당분간 집에는 못 들어가시겠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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