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50
51. 저 PER 혁명(1)
91년 말 기준으로 대한화섬의 주가수익비율(PER)은 5.7이었다. 일반적으로 PER가 10.0 이하이면 저평가라고 분류되는 것을 감안하면 저 PER 주임은 확실했다. 하지만 진정한 저 PER 주인 태광산업의 1.7, 남영나이론의 3.4, 신영의 2.4, 백양의 3.0에 비한다면 저 PER 주라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어쨌든 투자자에게 그런 수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92년 초 외국인 투자가 시작되면서 대한화섬은 태광산업과 함께 대표적인 저 PER 주로 이름을 올렸다. 저 PER 주 혁명이란 용어가 유행하면서 관련 종목 주가 역시 폭발했다. 대한화섬의 PER는 그 현재와 미래가치가 더해지면서 빛을 발했다. 대한화섬의 주가는 천장을 모르고 계속 상승했다.
91년 말 25500원이었던 주가는 92년이 시작되면서 3일간 상한가를 친 다음 조정을 받았다. 유서준은 이날 28000원에 전량 매수했다. 대한화섬의 주가는 단 하루의 조정 후에 다시 폭등했다.
대한화섬의 1차 상승이 마무리된 것은 1월 25일 경이었다. 이날까지 대한화섬은 유서준이 매수했던 그 날을 제외하고 내린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1월 동안 상한가를 친 날만 무려 15일에 달했다. 이전에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폭등이었다.
주가는 1월 25일에 45700원을 찍었다. 전년 대비 +79% 상승이었고 이 기간 유서준은 무려 +63%의 수익을 냈다. 폭발적인 상승 후에 조정이 시작되었다. 2월 중순까지 등락을 거듭하며 주가는 횡보했다. 많은 투자자가 상승이 끝난 것으로 예상하여 매도하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탔다. 사실 지금까지의 주가 움직임 패턴은 그러했다. 작전이 시작되고 투자자가 몰려 폭등한 다음 외면을 받는 순간 주가는 폭락했다. 대한화섬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유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이어리의 힘이었다. 이 종목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5월까지 상승세는 이어진다.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2월 19일, 대한화섬은 조정을 끝내고 다시 비상하기 시작했다. 개장 시 42400원인 보합에서 시작했던 주가는 곧바로 상한가로 밀려 올라갔다. 이것이 2차 상승의 신호탄이었다.
2월 19일 42400원에 시작한 대한화섬의 2차 상승은 4월 6일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동안 단 2일의 하락과 6일의 강보합을 제외하고 나머지 날은 모조리 상한가를 기록했다. 진정한 점상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시위가 계속됐다. 대부분 날은 상한가로 장을 시작하여 일찍 거래를 마감하고 상한가 잔량만 호가에 쌓았다. 팔자 물량이 없었다. 4월 6일의 주가는 113800원에 달했다. 유서준은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익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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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물러가고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일요일.
유서준은 서하나와 데이트를 했다. 장소는 여의도 국회 이면도로.
이 시기가 되면 여의도 순환도로는 벚꽃으로 물들었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는 벚꽃은 천지를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도로는 벚꽃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두 사람은 벚꽃이 우거진 거리를 걸었다. 점차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노란색 나트륨등 아래 화사하게 핀 벚꽃은 장관이었다.
서하나는 하얀색 바탕에 분홍색 꽃무늬가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그녀가 벚꽃 앞에 서 있을 때면 배경의 벚꽃과 원피스에 그려진 꽃무늬가 하나가 되어 그녀 역시 꽃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유서준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혔다. 주위의 벚꽃 구경은커녕 그녀를 바라보느라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녀는 여신이었다.
팔짱을 끼고 걸으며 서하나가 기쁨에 잠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제 정리해야 하지 않아?”
대한화섬 이야기였다. 무려 3배의 수익을 올렸으니 현기증을 느낄 법도 했다. 두 사람의 공동계좌 잔고는 그동안의 수익으로 8천만 원을 돌파하는 지점에 있었다. 최근 들어 서하나는 믿기지 않는 수익률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불어 이 수익이 다시 거품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
유서준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한편으로는 기쁨이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서준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아직 오를 여지가 남았어요.”
당연한 듯 말하는 대답에 서하나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서준아, 너 정말 대단하다. 주식이 그렇게 올랐는데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네. 난 너무 높아서 고소공포증에 걸릴 지경인데.”
“이제 겨우 3배 벌었는데 뭘요.”
“나라면 처음에 상한가를 쳤을 때 매수를 포기했었을 거야. 설사 지금처럼 매수했더라도 서너 차례 상한가를 먹은 다음에는 곧바로 팔아치우지 않았을까.”
“숫자에 현혹되지 않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죠.”
유서준은 대답하면서도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 역시 다이어리를 통해 미래를 알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여기까지 보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유서준. 대단해.”
“저도 자주 흔들려요.”
그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너도 주가가 오르면 흔들려?”
“아뇨, 전 누나만 보면 가슴이 흔들려요.”
“킥킥.”
서하나가 유서준의 농담에 웃음을 삼켰다. 곧바로 그녀가 작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는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입가에 기쁨이 묻어났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서하나가 말했다.
“어디까지 오를 것 같아?”
“15만원요.”
유서준의 확고한 대답에 그녀가 입을 쩍 벌렸다. 유서준이 기억하는 대한화섬은 5월 20일에 158900원이라는 역사적 고점을 찍는다.
서하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 10만 원을 넘긴 것만 해도 과하다고 여겨지는데 15만 원이나?”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유서준도 믿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이어리에 적혀 있지 않았다면 생각지도 못할 고가였다.
“저 PER의 대표주자인 태광산업은 20만 원을 돌파할 거예요.”
“와우!”
서하나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의 팔을 잡고 있던 서하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는 어떡하지? 그때까지 보유하는 거야?”
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1차 상승 이후 약 한 달간 횡보한 다음 2차 상승이 있었잖아요? 이 정도 지점에서 2차 상승도 마무리되고 다시 횡보할 거예요. 아마 4월 말이 되기 전에 3차 상승이 시작될 겁니다. 3차 상승이 마지막이고요. 목표치는 대략 15만 원이고요. 아마 5월경에 도달하겠죠?”
“그럼 15만 원 넘으면 팔아?”
“네, 욕심부리지 말고요.”
서하나는 머릿속에서 15만 원을 떠올렸다. 대한화섬이 15만 원이 되면 그들은 5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게 된다. 계좌도 당연히 1억을 돌파할 것이다.
그 가운데 그녀의 몫은 절반인 5천만 원이다. 그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큰돈이었다. 그 돈이면 강남에서 전세를 끼고 소형 재건축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다.
그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왕을 떠올렸다. 프리기아의 왕이었던 미다스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던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유서준이 그런 손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가 손댄 대부분 종목은 크게 올랐다. 이번 대한화섬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보기에 유서준의 능력은 정말 불가사의했다. 학문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서하나가 지금까지 찬탄을 금할 수 없었던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경제학에 대해 꽤 이해가 깊은 그녀였지만 이 두 사람만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은 신선영.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며 수익을 올렸다. 다른 한 사람은 유서준. 그녀가 보기에 유서준은 신선영보다 더욱 신기했다.
“이런 행운은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유서준은 그녀가 낀 팔짱을 풀고 손을 맞잡았다.
“일부 저 PER 주는 계속 오르겠지만 저 PER 혁명은 그즈음에서 마무리되겠죠.”
“아쉽네.”
“아직 남아있어요.”
“응?”
서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서준을 돌아보았다.
유서준이 미묘한 미소를 떠올리며 툭 내뱉었다.
“사람들은 한 테마가 지나가면 다른 테마를 찾게 되죠. 그럼 저 PER 다음 타자는 과연 뭘까요? 설마 다시 트로이카 시대가 올까요?”
“트로이카는 힘들지 않을까? 외국인이 들어오면서 증시 체질이 바뀌었어.”
서하나 역시 증시의 뚜렷한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역시 그녀의 증시 감각도 보통이 아니었다.
“생각해보세요. 맞추면 상을 드리죠.”
유서준이 제안했다.
상이란 말에 서하나가 열의를 보였다.
그녀는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 상이 뭔지 알고 그렇게 열의를 보이는 거예요?”
유서준이 핀잔을 주었다.
서하나가 배시시 웃으며 귀엽게 대답했다.
“몰라, 아무튼 상이란 것은 좋은 거니까.”
벚꽃 구경을 나온 시민이 많았다.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도 있었고 그들처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눈에 띄었다.
유서준은 서하나와의 관계를 생각했다.
그녀를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증권사 직원과 고객의 관계였다. 그것이 얼마 되지 않아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발전했다. 그녀는 그가 믿는 선배였고 그는 그녀가 아끼는 후배였다.
입대를 전후로 하여 그녀와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그의 계좌를 일임함으로써 그녀와의 신뢰와 관계가 두터워졌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연인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단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로 인하여 유서준 혼자 자주 가슴이 뛰었을 뿐이다.
휴가를 나왔을 때 가끔 찾아감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다. 그리고 예전의 그 파란 옷 아줌마 사건 때 두 사람의 관계는 급발전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관심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단순한 선후배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김현아가 유학을 떠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장애물이 사라졌다. 물론 김현아와는 그전에 이미 끝냈다고 생각했었지만.
유서준이 제대를 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선후배에서 연인으로 미묘하게 넘어왔다. 서로를 연인이라 정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 동의하고 있었다. 만일 두 사람의 나이 차가 연상연하가 아니었더라면 훨씬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유서준은 지금 두 사람의 관계가 과거 김현아와의 관계와 비슷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인이긴 하지만 그리 깊지 않게 사귀는 그런 사이. 지금 서하나와도 비슷했다. 외롭거나 보고 싶을 때면 만나지만 그 이상 관계를 발전시키지는 않는. 또 발전시킬 수도 없는 묘한 사이.
손을 잡고 걷던 서하나가 손을 놓고는 그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안면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녀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알았다!”
“뭔데요?”
서하나가 그를 향해 또렷하게 말했다.
“피. 비. 알.”
유서준은 그녀의 능력에 감탄했다. 역시 그녀는 주식에 대한 감각도 있고 똑똑했다. 그런 그녀가 지점에서 단순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니. 인재 낭비였다.
“맞아요. 저 PBR 주. 외인이 테마를 주도하는 경향이 바뀌지 않는다고 봤을 때 PER 다음은 PBR이죠. 주당 순자산비율을 나타내는 PBR이 다음 타자가 될 겁니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이른바 저 PBR 혁명이 다음 타자로 대기 중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PER 혁명 못지않은 폭등이 대기 상태다.
서하나가 물었다.
“언제 저 PBR 혁명이 시작되는데?”
“에이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거 외국인 마음이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저 PER 주 입질을 끝내면 저 PBR 주를 건드리게 될 것이다. 다이어리에 따르면 그 시기는 93년 하반기였다. 지금부터 약 일 년 뒤.
“난 서준이는 뭐든지 다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서하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유서준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심 헉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아리따운 이미지가 가슴을 진탕 시켰다. 예전에 김현아가 저런 모습을 보일 때 가슴을 망치로 내려치는 충격을 주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서하나는 가히 핵폭탄급이었다.
서하나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알았어. 저 PBR 주를 관찰해볼게. 그럼 맞추었으니 상 줘.”
깜찍한 그녀의 하얀 손이 눈앞에서 빛이 났다.
유서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주먹을 쥔 상태로 다시 꺼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덮었다.
“응? 뭐야?”
서하나가 손을 빼내려고 했다.
유서준은 잡힌 그녀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이 그에게 확 당겨졌다.
서하나의 가녀린 몸이 유서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유서준은 그녀를 꽉 껴안았다.
“으응?”
서하나가 놀란 눈으로 품속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주위에 드리워진 분홍빛 벚꽃과 하얀 원피스에서 피어난 꽃잎과 그녀의 화사한 얼굴이 만개 되어 다가왔다.
동시에 유서준의 입술이 그녀에게 내려앉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분홍색 벚꽃 잎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