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at the peak of wealth RAW novel - Chapter 60
61. 금융실명제(2)
유서준은 서하나로부터 삐삐로 음성 메시지를 받았다.
오늘 밤에는 회식 때문에 하이텔 채팅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연락이었다. 회식이 있더라도 대부분 서하나는 참여하지 않거나 1차로 마무리를 지었기에 유서준은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녀의 직장 생활이니 그가 간섭할 성질은 아닌지라 그는 홀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유서준은 혼자서 하이텔 통신망을 돌아다니다가 실로 오랜만에 주식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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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일 8월 12일 장세전망.
글쓴이 : 주신
내용 : 오랜만에 신이 강림하사 주신이 돌아왔다. 내일 주식시장은 조금 오를 거다. 그렇다고 절대 좋아하지 마라. 오르든 내리든 다 팔아치워라. 큰 게 온다. 모래부터 폭락이다. 이달 말까지 볼 거 없다. 그냥 현금으로 남겨두고 여행이나 다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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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에 따르면 8월 12일 저녁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가 시행된다. 13일 주식시장은 개장부터 거의 전 종목이 하한가로 폭락이었다. 하한가를 벗어나는 종목은 사실상 없다. 실명제의 그늘에서 회복되는 것은 이달은 지나고 나서다. 유서준은 일단 이 폭락을 피하라고 경고하고 싶었다. 물론 금융실명제란 말을 올릴 수는 없었다.
그가 올린 직후에 몇몇 아이디의 반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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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친놈 주신 또 왔네.
글쓴이 : 오늘도폭등
내용 : 하락 노래 부르는 놈 누군가 했더니 또 주신 저놈이네. 아직 버릇 못 고쳤냐? 주식 방에서 하락 외치면 다구리 맞는다. 저놈 때문에 안 사던 주식 풀베팅 해야겠다. 저놈 좀 잡아가는 귀신은 없나.
제목 : 오오!! 주신이 강림하셨다.
글쓴이 : 주신만세
내용 : 너네 지난 주신 글 봤음? 그동안 틀린 적 없다. 주신이 내린다면 내리는 거다. 왜 그런지 묻지 마라. 난 월말까지 주식 끊고 놀러 간다. 다음 달에 보자.
제목 : 주신만세 너 디진다
글쓴이 : 깡통탈출
내용 : 주신만세 너 주신 서브 아이디지? 여기서 장난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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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들어오며 룸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룸이라면 밴드에 시중드는 아가씨까지 풀세트였지만 노래방기기가 보급되면서 밴드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대신에 손님과 아가씨만 룸 안에 있는 구조로 바뀌면서 분위기는 더욱 은밀해졌다.
아무리 직장 상사이고 중요 고객이지만 서하나가 룸 서비스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술에 취해 2차를 외치고 있는 두 사람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일단 자리만 만들어주고 그녀는 적당히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지점장과 김사장은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쪽 벽에 붙은 커다란 티비 브라운관에는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이 지나가고 신청곡의 반주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점장이 김수희의 남행열차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점장이 회식 자리에서 항상 부르는 십팔 번이다. 김사장 역시 질 새라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 모두 반쯤 벗어진 대머리에 짤막하고 퉁퉁한 외모를 가졌다. 지금 보니 하는 짓도 비슷했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시끄러워서 들리지도 않겠지만 서하나는 지점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가씨 둘이 곧 들어올 겁니다. 저와 최훈재 씨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끝나면 연락 주세요.”
그녀가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지점장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아, 서대리. 조금만 있다가 가지? 아가씨 올 때까진 같이 놀아줘야지. 김사장이 섭섭해하잖아?”
“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지점장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서하나가 제대로 말을 듣기 위해 지점장에게 다가갔다.
지점장이 노래를 계속 부르는 가운데 그녀의 팔을 잡더니 김사장에게 넘겼다.
“반짝 반짝이는 희미한 어둠 속에- 말이 없는 그 사람-”
김사장이 서하나를 끌어당겼다.
“아가씨 올 때까지 같이 부르자고.”
김사장에게서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서하나는 정중하게 그의 손을 뿌리치며 대답했다.
“아가씨 둘이 곧 올 겁니다. 저는 이만…….”
노래를 부르던 지점장이 서하나를 노려보았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김사장은 중요 고객이야. 블루스 한번 추고 가.”
지점장의 강압적인 요구가 잇달았다.
황당해진 서하나가 멈칫하는 사이 김사장이 그녀를 끌어안고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서하나는 어쩔 수 없이 최대한 김사장을 밀치며 블루스를 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그동안 김사장과의 회식을 멀리해왔었다. 항상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역시나였다.
김사장과 뒤엉켜 춤을 추는 그녀를 본 지점장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녀는 될 수 있으면 서로 간의 거리를 두려 했지만 김사장은 그 반대였다. 그녀에게 몸을 수시로 밀착시켰다. 서하나는 그가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몸을 뺐다. 하지만 취한 김사장이 몸을 비틀거리며 그녀에게 자꾸 몸을 기대는지라 그녀의 노력은 쉽지 않았다.
그녀의 허리를 두른 김사장의 손이 슬금슬금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놀란 그녀의 움직임이 뻣뻣해졌다.
김사장은 술에 찌든 숨을 토해내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급기야 김사장의 손이 그녀의 둔부를 향했다.
참지 못한 서하나가 그를 밀치려는 순간 노래가 끝이 났다. 동시에 야한 옷차림을 한 두 아가씨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천만다행이었다. 서하나는 황급히 김사장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지점장과 김사장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그녀는 룸을 나섰다. 그런 그녀를 본 지점장과 김사장의 안면에 음흉한 웃음이 걸렸다.
밖으로 나온 서하나는 부근의 편의점을 찾았다. 그녀의 뒤로 최훈재가 뒤따라 나왔다. 그녀는 화를 삭이며 편의점 밖의 파라솔 의자에 앉았다. 더운 여름이라 밤이 늦은데도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탁.
뒤따라온 막내 최훈재가 차가운 캔커피를 내려놓았다.
“힘드셨죠?”
“직장 생활에서 항상 있는 일이야. 커피 고마워.”
서하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캔커피를 땄다. 차가운 커피가 목을 적셨다. 꿀맛이었다. 실제로는 매우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부하 직원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최훈재 역시 커피를 마시며 투덜댔다.
“저 김사장이란 사람 비위 맞추어주려니 죽겠네요.”
“큰 고객인데 어쩌겠니. 저 사람이 계좌에서 돈을 빼내 가면 지점 실적이 휘청거리는데. 지점장이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서하나도 맞장구쳤다. 사실 이런 접대의 가장 큰 피해자는 그녀였다.
어쨌든 지금 룸에서 유흥을 즐기고 있을 두 사람이 마무리를 지을 때까지 그들은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아니면 들어가서 함께 어울리든가. 그것이 상사를 섬기는 직장인의 숙명이었다.
따분한 시간이 흘렀다.
지나가는 버스가 끊어지고 오가는 사람도 거의 사라졌다. 시계는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을 가리켰다.
최훈재와의 대화마저 끊어지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룸 오빠가 그들을 불렀다. 지점장과 김사장이 나온다는 신호였다.
서하나와 최훈재는 재빨리 룸으로 내려갔다.
룸 내부 탁자에는 빈 위스키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여기서 또 술을 거나하게 마신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안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서… 서대리 오…… 어디 갔어?”
김사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서하나는 지점장의 법인카드로 계산을 한 다음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의 술이 떡이 된 지점장이 서하나에게 소리쳤다.
“서… 대리, 기… 김사장 자… 알 모셔다드려.”
술에 취한 탓에 발음이 불분명했다.
둘 다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이 매우 위험해 보였다.
서하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최훈재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네가 지점장님 모셔다드려. 내가 김사장님 모셔갈 테니.”
택시를 태워 보내는 정도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두 사람은 임무를 나누었다.
길가에 주차된 택시를 잡고 먼저 지점장과 최훈재를 떠나보냈다.
비틀거리며 엉겨 붙는 김사장을 간신히 부축하며 서하나는 다음 택시를 잡아탔다.
정말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 것인지 김사장은 계속 횡설수설이었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사장님, 댁이 어디세요?”
서하나는 몸을 흔들며 깨웠지만 엉뚱한 반응만 돌아왔다.
“뭐……? 아…… 안 들려.”
“사장님!”
서하나가 그를 흔들며 다시 물었다.
김사장이 손을 허우적거리며 그녀를 밀쳤다.
“몰라…… 아… 아무데로나 가…….”
서하나는 난감했다. 택시 기사가 뒤를 돌아보며 그녀에게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택시 기사에게 부근의 호텔로 가자고 요구했다.
**
적당한 방을 잡아 김사장을 끌고 올라갔다. 술에 취한 김사장이 축축 늘어지긴 했지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기분이 더럽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서하나는 방문을 열고 김사장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창으로 건너편 높다란 건물의 불빛이 들어오는 가운데 잘 정돈된 침대가 보였다.
그녀는 김사장을 침대 위로 대충 던져놓고서 곧바로 빠져나올 생각을 했다.
“김사장님, 다 왔어요. 편히 주무시고…….”
“서… 서대리…….”
“다 왔다니까요.”
서하나는 김사장을 침대 위로 내던지다시피 밀어 넣었다.
김사장이 뒤로 넘어지며 서하나의 팔을 잡았다.
“악.”
서하나는 비명을 지르며 김사장 위로 넘어졌다.
김사장이 침대에 누운 형태에서 그녀가 그 위로 마주 본 상태로 엎드린 모양새가 되었다.
“기… 김사장님!”
그녀가 소리를 지를 때 갑자기 김사장이 몸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는 상대방을 밀칠 생각도 못 했다.
그녀가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이번에는 김사장이 침대에 누운 형태가 된 그녀를 위에서 짓눌렀다. 곧바로 김사장의 얼굴이 마구잡이로 그녀의 안면을 향했다.
서하나는 깜짝 놀라 얼굴을 젖혀 키스를 피함과 동시에 상대의 가슴을 팔로 힘껏 밀었다.
김사장이 완력으로 그녀를 누르며 하소연했다.
“서… 서대리, 내가 서대리 정말 예뻐한다니까.”
놀랍게도 김사장의 말은 지금까지의 취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곧바로 서하나는 김사장의 간악한 흉계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상대는 술에 취한 척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점장에게도 배신감을 느꼈다. 지점장이 그런 김사장의 계략을 몰랐을 리가 없었다. 헤어질 때도 김사장을 데려다주라고 적극 밀어 넣었던 게 지점장이 아니었던가.
김사장이 발버둥 치는 그녀를 힘으로 억눌렀다. 그의 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누르면서 그녀의 가슴과 배를 자신의 체중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서하나는 사내를 밀고 빠져나오려 했으나 곧바로 사내의 힘에 제압당했다.
그녀는 그다음 순간 자신의 치마 밑으로 사내의 손이 쑥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위험했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사내를 밀치며 몸을 뒤집었다.
퍼석.
김사장이 옆으로 떨어져 나갔다.
짝!
동시에 그녀의 손이 김사장의 뺨에 작렬했다.
서하나는 황급히 일어났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고칠 틈도 없이 방문으로 도망치며 소리쳤다.
“김사장님! 이건 심하신 겁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김사장을 노려보고는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김사장이 한 손으로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았다.
“서대리, 네년이 그랬단 말이지…….”
서하나가 사라진 자리에 김사장의 음흉만 눈초리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