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23)
“진짜로 캐릭터를 천 개나 만들었었다고요?”
“전부 키운 건 아니다만······.”
“그중에 생존률 99%요? 50%를 넘긴 사람이 제가 알기로는 없는데? 아니, 50%는커녕 40%도 손에 꼽을 텐데?”
판게니아의 튜토리얼은 난이도가 극악하기로 유명하다.
매번 바뀌는 상황, 도저히 생존이 불가능한 배경.
생존률 40%만 넘겨도 ‘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판게니아였다.
그런데 99%라니!
전무후무다.
도리어 팬텀의 전설은 과소평가 되어있었다.
판게니아가 오픈된 초기.
일명 ‘생존런’이라는 게 있었다.
당연히 메인 퀘스트 1, ‘생존’을 클리어하는 게 목적이다.
‘생존런은 메인 퀘의 보상을 받는 게 목적이지. 어려운 생존 상황일수록 클리어했을 때 보상이 커지니까. 하지만 대부분 생존률은 20% 안팎에 불과했을 텐데.’
그러니까 박현명은 일부러 ‘생존런’을 뛴 것이다.
이후 보상이 좋은 캐릭터만 육성해서 제대로 키운 것이고.
문제는 생존률이다.
‘캐릭터를 마구잡이로 만들어서 생존률을 낮추면 SP의 획득률이 낮아지는 저주를 받는다.’
모두가 ‘생존런’을 하다가 그만둔 이유다.
SP의 획득은 판게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
하지만 판게니아에는 ‘생존률’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게 낮을수록 다른 캐릭터가 죽었을 때 받는 ‘SP’가 적어진다.
가뜩이나 어려운 ‘생존’ 퀘스트.
진행할수록 생존률은 낮아만지기 마련이니, 구태여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99%가 넘는다고?
생존률은 낮으면 저주에 걸리지만 높으면 보너스 계수가 붙는다.
도전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생존의 성공 확률이 높아질수록 말이다.
하여 물었다.
“저, 혹시 SP 보너스 계수가 몇 정도 되셨는지······.”
“250%쯤?”
“쿨럭!”
듣도 보도 못한 보너스 계수였다.
그리고 상태창에는 나오지 않지만, SP 보너스 계수는 현재의 상태에서도 적용이 된다.
같은 걸 해도 더 빠르게, 더 많이 SP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쩐지 성장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더니.’
수많은 이유 중에 하나겠지만, 비로소 이해가 확실하게 됐다.
허드슨이 다시 물었다.
“현명 님도 란돌프가 되고 SP를 받으셨습니까? 저는 그동안 생존했던 SP를 몰아주던데요.”
“받기는 받았지.”
“혹시 몇이나······?”
허드슨은 자신이 받았던 SP를 떠올려보았다.
마지막 캐릭터가 죽고, 빙의된 직후.
상태창을 보자 쌓여있는 SP가 있었다.
그동안 키운 캐릭터들의 SP를 한꺼번에 몰아받은 것이다.
그게 대략 1,500쯤 되었으니 그렇게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수치다.
덕분에 생존에 성공했으니까.
그래서 더욱이 궁금했다.
자신이 이 정도인데 빌헬름이 죽었을 땐 몇이나 받았을지.
아니, 빌헬름만이 아니라 그동안 만들고 생존시킨 캐릭터가 천여 개에 가깝다면 그간 쌓인 게 대체 몇 포인트가 될지 상상조차 안 갔으니.
곧이어 박현명이 입을 열었다.
“대략 160만 정도 됐다.”
“······.”
‘원탁의 기사’를 부활시킨다.
허드슨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정보를 취급해왔다.
이 세상에서 상인으로 살아남으려거든 필사적으로 눈과 귀를 연 채 살아가야만 했으므로.
심도 있는 조사는 필수이며, 정보의 가치와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보를 다룸에 있어서 허드슨은 초일류였다.
그중 플레이어에 관한 내용은 열과 성을 다해 조사했으니, 지금 들려온 숫자가 좀처럼 현실감 없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게.
‘1만 6천도 아니고, 16만도 아니고, 160만?’
······ 160만이라니!
1천이 조금 넘는 SP로 허드슨은 유니크 클래스인 ‘대상인’을 손에 넣었다.
이 또한 ‘팬텀’이 홈페이지에 적어놓은 공략을 기반하여 최적의 경로로 얻어낸 것이지만, 어지간한 클래스의 획득은 이 선에서 정리가 된다.
심지어 랭커들도 초기 SP 보유량은 기껏해야 1만에 못 미쳤다.
아무리 ‘생존런’을 무식하게 뛰었대도 초기 보유량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허드슨이 조사한 바로 가장 많은 초기 SP 보유자가 그라시아였다.
‘그라시아가 8만이라 알려졌는데.’
그조차도 8만에 불과하다.
란돌프는 그의 20배에 달하는 SP를 보유한 채 시작한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SP 160만이면 뭘 할 수 있지?’
SP는 재능과 스킬 등에 관계되어 있다.
그로 인해 클래스를 개화하거나, 혹은 히든 특성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있다.
‘달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1만 SP면 충분하건만.
160만이면 그야말로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는 수치.
SP계의 만수르가 따로 없는 셈이다.
‘SP의 사용처는 아직 전부 밝혀진 게 아니야.’
암암리에 도는 소문들이 있었다.
황금률만큼이나 중요한 게 SP라고.
후반부로 갈수록 SP의 사용처가 많아진다고 말이다.
물론, 아직은 소문일 뿐이다.
소문일 뿐임에도 허드슨은 꽤 신빙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SP의 획득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기껏해야 특수한 퀘스트나 던전 등에서 소수로 얻을 수 있는 게 전부.
아직 인류가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은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경우이리라.
발견되거나, 업데이트가 진행된다면, SP의 사용처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현시점에서 160만은커녕 16만 SP를 가진 사람도 없어야 정상이다.
······ 정상일 터였다.
‘더 무서운 건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천 개에 가까운 캐릭터의 ‘생존런’을 행하고, 육성하며, 정점에 섰다.
160만?
그가 행한 기적에 비하면 오히려 적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숫자다.
SP는 스킬 포인트(Skill Point)의 약자가 아니라, 소울 포인트(Soul Point)의 약자.
명칭 그대로 영혼의 가치를 수치화해놓은 것.
그렇다면 160만 소울 포인트를 획득한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작 그라시아의 20배에 불과할 리가 없다.
도리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획득했다고 봐야 할 터.
그게 뭘까.
허드슨으로선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 그러니까 박현명 님께서 천명에 가까운 이들을 ‘구원’했다는 건가요?”
그때였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세아 성녀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은 절반도 되지 않았으나, 앞선 대화들이 어느 정도 정리는 되어가는 듯했다.
박현명은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판게니아를 플레이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수많은 이들을 ‘생존’시켰다.
허드슨의 반응으로 보아 생존률 99%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치.
고로, 박현명은 그들에게 구원자나 다름이 없다는 의미다.
파랑새와의 계약부터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말이다.
허드슨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맞습니다, 성녀님. 말이 천명이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엄두도 못 낼 성과입니다. 저였다면 천 명 중 백 명도 제대로 못 살렸을 테니까요.”
“그 정도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채 시작했다······ 라는 말이로군요.”
“예. 시작은 항상 어렵습니다. 단 한 번도 쉬운 상황에서 ‘생존’한 예는 없습니다. 죽음이 어느 정도는 확정된, 극한의 공포와 마주한 상황. 일반적인 이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현명 님께선 ‘게임’을 하듯 해결한 겁니다. 다만······.”
허드슨이 박현명을 쳐다보았다.
그도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랑새’가 뭡니까?”
파랑새.
그리고 계약에 관하여 물었다.
플레이어에 관해 다방면에 걸쳐 조사를 해왔던 허드슨도 금시초문인 내용이었으므로.
“······ 자신을 ‘운영자’라 칭하는 존재다. 죽음이 닥친 상황에서 ‘신병’을 유발하는 자. 여기 있는 이자벨라도, 아이작도, 발테도 모두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만나서 ‘계약’을 했다는 겁니까?”
재차 묻자 이자벨라가 답했다.
“그건 제가 이야기해드릴 수 있겠군요.”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녀만이 모든 기억을 떠올렸다.
어쩌면 모든 ‘신병’에 걸린 자들 중에서도 그녀만 온전한 기억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의 섬, 그리고 진리의 문을 통해 그녀는 보았으니까.
이자벨라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계속해서 말했다.
“··· 저는 제국 데르시안 가문의 복제품. 언제 갈아치워질지 모르는 운명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예견하고 있을 때, 창가로 ‘파랑새’가 날아왔죠.”
“······!”
“모든 걸 잊고, 잃어도, 한 가지 소원을 이룰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도전해보고 싶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하겠다고 답하셨습니까?”
“예. 도전하겠다 했습니다. 문제는 정말 기억을 잃었다는 거예요. 파랑새를 만난 기억도, 신병에 걸려 조종당할 때의 기억 역시도.”
“그 기억을 어떻게 떠올리신 겁니까?”
이자벨라가 슬쩍 시선을 돌려 박현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작게 미소 지었다.
“죽음을 각오하자 떠오르더군요.”
박현명을 살리고자 죽음을 각오하며 뛰어들었다.
그 덕분에 모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소노라와 관련된 소중한 기억마저도.
다시는 잊지 않을, 잊어선 안 될 기억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자벨라가 마저 이야기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병’에 걸린 자들. 저를 포함한 그들 모두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자.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고자. 그러니 우리는 우리를 움직인 자들을 ‘죄인’이라 호도할 수도, 호도해서도 안 됩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까요.”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 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
이해는 쉬우나, 납득은 어려웠다.
특이 아이작에겐.
“······ 분노할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거냐?”
“분노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아이작.”
“난······ 젠장,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받아들이기엔 어렵군.”
아이작이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이자벨라가 괜한 말을 할 리도 없거니와, 저 남자가 란돌프라면 그에겐 은인이었다.
설령 모습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평생을 갚아야 할 은인에게 분노를 쏟아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 모순적인 상황에 아이작은 애써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기억이 돌아온다면, 그땐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진대.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이 기억나질 않으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파랑새는 왜 굳이 기억을 지운 걸까요?”
그 찰나, 허드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곤 생각을 정리하곤 턱을 쓸며 입을 열었다.
“‘파랑새’는 빙의가 가능한 육체를 만들고, ‘두 여신’은 황금률을 이용해 우리가 그들에게 ‘빙의’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파랑새’는 일종의 설계자인 셈인데······ 게다가 ‘플레이어’는 모두 빙의했으니, ‘파랑새’는 더는 계약을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왜 계속 숨어있는 걸까요?”
“모두의 기억을 지웠다는 건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기 싫다는 거겠죠.”
이자벨라가 답했지만, 허드슨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문제는 기억을 지움으로써 ‘신병’에 걸린 이들이 우리 플레이어를 ‘죄인’으로 취급하며 분노하고 있다는 겁니다.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였으면 어쨌든 서로 돕게 해야 정상 아닙니까?”
“······ 확실히 그 부분은 이상하군요.”
“별을 먹고 초월하면 자신을 조종한 자에 대한 기억의 편린이 떠오르는 방식도 이상합니다. 강해졌으니 찾아내서 죽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건 비약······.”
“이자벨라. 아이작. 둘 다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
맞다.
허드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초월했을 때, 그리하여 ‘박현명’의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없는 원망, 그리고 분노를 느꼈다.
허드슨은 결론을 내렸다.
“‘두 여신’은 인간의 편입니다. 하지만 ‘파랑새’는 인간의 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다른 목적이 느껴집니다.”
“서로 부추기고 싸우게 만들어서 얻어낼 목적이란 게 뭘까요?”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
허나 파랑새의 행동 원리에 대해선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로 인해 파랑새가 얻어 낼 이득이 무엇인지.
모두가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전체.”
“현명님. 완전체라면······?”
“멸망,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생각이다. 파랑새는.”
답은 그밖에 없었다.
개미왕 페르몬.
그 녀석처럼 말이다.
서로 죽이고, 또 죽이며, 마지막 남은 하나로 완성되는 것.
끊임없이 진화하게 하여 완전해지는 것.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치밀한 설계를 해 놓았을 리 만무했다.
감히 ‘두 여신’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모두가 목적을 가진 채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목적’을 가져야만 한다.”
침묵 그 사이에서.
······ 나는 ‘목적’을 입에 담았다.
모든 걸 밝힌 이상, 본격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고.
동시에 주변 모든 시선이 내게로 얽힌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원탁의 기사’를 부활시킨다.”
“예······?”
허드슨이 더없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드슨을 포함한 모두가 경악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또한, 이곳에 모인 그대들 전원을 ‘원탁의 기사’로 임명하지.”
“예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야 할 때다.
원탁의 기사가 세상에 부활했음을 공표할 시간.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세렝게티.”
“······ 말씀하십시오.”
세렝게티가 강렬한 눈빛으로 내게 시선을 주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세렝게티였을 텐데도, 그녀는 모든 걸 이해한 듯 태도를 바꾼 상태였다.
이미 란돌프를 빌헬름이라 여기고 있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원탁의 기사’와 관련해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나?”
세계수의 검증에서 압도적인 명예를 성취한 그녀라면, 원탁의 기사들의 명예를 함께 거머쥔 그녀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자.
“예. 반드시 전해야 할 비사(祕事)가 있습니다.”
세렝게티가 즉답했다.
비사.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그건 내가 밝힌 진실만큼이나.
“모두 살아있습니다. 이곳, 세계수의 던전에.”
······ 아니, 그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
비로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잊힌 명예의 던전’에 입장할 파티원 구성을 끝마친 것이다.
내가 구성한 파티원들이 모여 있는 곳.
세계수의 앞으로 나는 천천히 등장했다.
나를 아는 자도 있지만, 모르는 자들이 태반일 터.
종족의 종주, 스스로를 증명한 초강자.
그들은 하나같이 당황하거나 의혹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여, 나는 그들을 향해 느지막이 말했다.
“반갑다. 내가 황금률의 드루이드 ‘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