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26)
“빛의 수호자.”
쿠릉.
석상이 움직였다.
빛의 수호자, 로열 가디언.
그는 거대한 석상이었다.
열두 장의 날개를 지니고 몸집만 한 검을 양손에 쥔 모습.
‘세계의 입구라고 칭해지는 곳에 존재하는 거대석상. 설마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자.
문의 왕, 문의 수호자 등으로 불리는 것.
물론 ‘세계의 입구’는 여태껏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봉인던전이다.
저 수호자의 주변으로 쳐진 ‘결계’가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저게 움직이는 모습은 처음 보았으니.
“남은 자리는······.”
“이제 하나.”
모두의 관심이 더욱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한 자리만 남았으므로.
당연히 남은 자들 중에선 ‘엘프여왕’이 제일 유력했다.
“······.”
엘프여왕 역시 은근한 기대를 갖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멸악의 거인과 백왕이 호명되었다면, 마땅히 자신도 호명되리라 믿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제법 타당한 선택일 것이었다.
엘프여왕을 호명하여 인정한다면, 그녀의 호의를 살 수도 있을 터.
신성영역의 주인들로부터 호감을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엘프를 다스리는 종주이니, 다른 엘프들을 따르게 만드는데 훨씬 수월할 것이다.
천하의 엘프여왕이 반대로 누군가를 따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입에 담았다.
“월계수의 엘프, 아우릴.”
“······?”
절대로 적대해선 안 된다고 했을 텐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이름.
당연히 자신이 불릴 줄 알았던 엘프여왕은 패닉에 빠졌다.
여태껏 호명된 다섯.
그들과 견줄 수 있는 존재는 자신 외엔 없으리라 확신했을 테니.
또한, 기겁하며 놀란 건 엘프여왕만이 아니다.
당사자인 아우릴도, 그 외의 모든 엘프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나 보군.’
나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아우릴을 고른 이유.
단순히 내가 아우릴을 알아서만은 아니다.
물론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집결된 엘프의 힘이 가장 성가시니까.’
이곳 세계수를 찾아온 ‘집단’은 엘프들이 유일하다.
집단의 경쟁이 되면 단연코 가장 신경 쓰이는 종족이 엘프였다.
여왕을 필두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거든 상당히 까다로울 터.
게다가 세계수로부터 온갖 혜택이란 혜택은 전부 받아온 종족이다.
그래서 그런지 엘프의 무력은 평균치가 높다.
이곳에 모인 하이 엘프들은 무려 평균 14Lv 수준의 무력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이 정도로 강력한 무력집단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다크엘프와의 전쟁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전쟁을 겪었다는 건 달리 말하면 그만큼 ‘위계’가 중요해졌다는 뜻.
그리고 이곳에 모인 엘프 중 가장 위계가 낮은 게 아우릴이었다.
“일개 엘프를······ 우리가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까?”
예상대로의 반응.
역시나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여왕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엘프들.
평범한 엘프를 따르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남자 하이 엘프가 물었으나, 저 물음은 여왕이 한 것과 진배없다.
하여 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게 싫다면 내가 앞서 호명한 이들 중 한 명을 따르면 된다. 물론, 상대가 받아줘야 하겠지만.”
엘프가 아닌 다른 종족을, 다른 존재를 과연 저들이 따를 수 있을까?
아서라.
절대로 그럴 일은 없다.
타지, 타종족과 일체의 교류가 없는 엘프들.
저들은 아우릴을 따르든가, 아니면 던전에 들어가는 걸 포기하든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할 따름이다.
더욱 당황한 채 하이엘프 한 명이 반박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시여. 아우릴의 자격은 여왕님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말하고 있으나 가시가 박혀있다.
아우릴의 명예는 엘프여왕과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
세계수가 검증했으니, 그야 틀린 말은 아니다.
허나.
“이곳은 세계수의 검증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내가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를 따지는 자리이지.”
“하, 하지만 ‘명예’로운 자라고 분명히······.”
“나의 인정이 곧 명예다.”
“······.”
반박하던 하이엘프가 입을 꾹 닫았다.
내 인정만큼이나 명예로운 일은 없다는 뜻.
세계수의 검증보다, 나의 인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엘프여왕은 내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거고.
“대체··· 무슨 기준으로······.”
끝까지 납득 못한 하이 엘프들이 중얼대자, 보다못한 대족장 알비노가 나섰다.
“그대들은 지금 황금률의 드루이드님을 의심하는 건가?”
“그, 그건 아닙니다. 다만······.”
“엘프들은, 드루이드를 적대할 생각인가?”
“······!!”
듣고있던 엘프들 모두가 기겁했다.
드루이드와 엘프는 공생관계다.
숲을 만드는 자, 그리고 그 숲을 관리하는 자.
허나 ‘관리’의 역할은 다른 종족에게 위임할 수 있는 일이다.
예컨대 ‘드라이어드’들.
숲과 함께 살아가는 드라이어드들도 마찬가지로 숲을 관리할 줄 알았으니.
고로, 엘프는 절대로 드루이드를 적대할 수 없다.
알비노는 분노한 얼굴로 엘프여왕을 향해 말했다.
“멸망의 출현 이전부터 드루이드들은 엘프들을 존중해왔다. 엘프들은 세계 전역의 숲을 보살피고 신록과 세계수를 지키는 막대한 임무를 수행해왔으니. 하지만, 지금의 엘프들은 변질했다. ‘태초의 숲’에 모여 다른 숲을 신경 쓰지 않아.”
“··· 말씀처럼 세계수를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요.”
“쯧.”
“······?”
알비노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명백한 ‘무시’의 태도.
하지만, 알비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선대 엘프의 여왕은 호기가 있었건만, 지금의 여왕은 형편없구나. 황금률의 드루이드께서 왜 그대를 호명하지 않았는지 알겠어.”
“알비노··· 아무리 그대가 전설의 드루이드라 할지라도 쉽게 흘려듣진 못하겠군요.”
“흘려듣지 못하겠다면?”
스윽.
알비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쩌어어억!
알비노의 몸이 불어나고, 그의 뿔이 더욱 길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의 전신으로 화염이 이글댔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불의 날개가 십여 미터 길이로 피어났으며 한 손에는 어느덧 긴 화마(火魔)의 창을 쥐고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불의 화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곧이어 그의 머리 위로 떠오른 숫자.
【18Lv】
······ 모습만 압도적인 게 아니었다.
멸망 이전부터 존재해온 전설의 드루이드.
어째서 그가 ‘전설’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
‘······ 18레벨?’
허나 아무리 그래도 불가해다.
대원정 이후 세계의 무력이 상향 평준화되었음을 고려해도 너무한 레벨.
완전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억겁의 세월.
오직 멸망을 죽이고자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 해왔을 터.
다시는 멸망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자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었을 것이다.
심연과 대륙을 통틀어서도 견줄 자가 거의 없는 최상위 포식자.
그게 바로 팔가의 대장로이자, 드루이드의 대족장인 알비노이리라.
명예의 세계수가 다시금 되찾아준 그의 본모습은 실로 경이로웠으니.
“······!!”
“으음······.”
알비노의 격에 지배되고 제압된건 엘프여왕만이 아니었다.
그를 본 이들 대부분이 침음을 흘리고 삼키며 자신을 보호하고자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한 발자국을 물러난 채 입술을 푸르르 떨어대는 자들도 부지기수.
‘신기하군.’
하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내게는 별 영향이 없었다.
알비노가 나에게 향하는 기운 전체를 차단한 덕이다.
물론 그런 이유로 신기해한 건 아니었지만.
【고유 권능 ‘세계수 영역강화(32Lv)】
【고유 권능 ‘신성불가침(32Lv)’】
【고유 권능 ‘적대 불가(32Lv)’】
【고유 권능 ‘접근 불가(32Lv)’】
《‘알비노’가 ‘세계수 영역’에서 강화된 상태입니다.》
《‘무신의 심검(무장해제, 35Lv)’을 사용해, 고유 권능을 베어낼 수 있습니다.》
알비노가 지닌 고유 권능들.
그것들은 ‘파괴불가’의 성향을 띤 절대적인 권한이었다.
접근 자체가 불가하며, 적대하는 마음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절대자의 권위.
그리고 그러한 권능들을 나는 베어낼 수 있다.
성역을 지키는 결계를 베어냈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신기한 점은 뒤에 표시된 ‘레벨’이다.
‘불가(不可)의 성격을 띤 것들도 레벨이 존재한다.’
그것도 엄청나게 높은 레벨의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한데 무신의 심검은 검술 숙련도, 레벨에 따라 더 낮은 ‘불가’의 성격을 가진 것들을 베어내고 파괴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 그런데 알비노의 레벨이 보이는 이유가 뭐지?’
다만, 알비노의 모든 ‘레벨’이 보이는 이유가 아리송했다.
본래 알비노를 비롯한 최강자들은 자신의 레벨을 숨기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레벨’이 육안으로 파악되는 건 절반 정도.
히든 특성으로도 쉽사리 분별해낼 수 없는 장비, 혹은 도구나 스킬, 특성 등으로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걸 막은 까닭이다.
문제는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알비노의 레벨이 보인다는 것.
‘특성 진화의 영향은 아니다. 그랬으면 진즉에 보였겠지.’
하이 드루이드의 히든 특성이 ‘황금률의 드루이드’로 진화하며 변화된 현상이라면 진즉에 보였어야만 한다.
지금 갑자기 보인다면 아예 다른 이유일 터.
아마도 지금 그가 내게 보이고 있는 태도와 관련이 있지 않을는지.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허드슨.
녀석이 카지노에서 자신의 전부를 내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그때 허드슨의 ‘전체 정보’를 열람할 수 있었다.
‘······ 알비노가 온전히 나를 믿고 있다?’
즉, 알비노가 나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드루이드의 신이라는걸.
내가 자신을 이끌어줄 주인이라는 것을, 비로소 확실하게 인정한 것이었다.
‘아마도 자리의 영향이겠지.’
가짜로 여기고 대한다면 티가 나기 마련.
이곳에 모인 모두가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필사적으로 지키며 숭상해야 할 지고한 존재라고 스스로 세뇌하지 않으면 이곳에 모인 모든 종주에게 발각되는건 시간문제일 테니.
이유야 어찌 됐든, 좋은 현상이다.
팔가, 그리고 드루이드가 나를 진심으로 따른다는 방증.
곧이어 알비노가 흉신과도 같은 기세를 펼치며 말했다.
“전대의 여왕에게 ‘드루이드’를 적대해선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나?”
“그, 그 모습은······.”
“특히 ‘세계수’와 가까이에 있는 ‘드루이드’는 절대로 적대해선 안 된다고 했을 터인데?”
“······.”
엘프여왕이 눈을 질끈 감았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알비노’에 관한 전승을 들은 바가 있다.
-‘알비노’는 가장 하이 드루이드에 근접한 자다.
-일곱 그루의 모든 세계수가 찬란하게 빛날 때, ‘알비노’는 전설이 된다.
-엘프는 결코 ‘알비노’를 적대해선 안 될지니.
전대의 여왕들이 남겨놓은 기록지.
그곳에서 알비노의 이름을 틀림없이 보았다.
드루이드들은 모두 강력하지만, 그중에서도 알비노는 전설이라고.
어째서 갑자기 사라졌는지 아무도 이유는 몰랐다.
설마, 이곳에서 ‘명예의 세계수’를 지키고 있었으리라곤 누가 알았겠나.
“······ 사죄드립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시여.”
“여, 여왕님······!”
엘프여왕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본 하이엘프들이 기겁했으나.
순간, 알비노의 분노가 누그러졌다.
고개를 숙일 대상을 정확히 알아본 탓이다.
만약 알비노에게 자신에게 사과했다면 도리어 실망했을 것이다.
이어 엘프여왕이 계속해서 말했다.
“드루이드를 적대하고,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답니다. 엘프와 드루이드는 태초부터 시작된 동반자니까요. 마찬가지로 황금률의 드루이드님의 선택을 의심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간곡하게.
간절함을 담아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부디 세계수의 던전에 입장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태초의 숲에 기거하는 엘프들.
그곳의 정점으로 군림해온 엘프여왕이 누군가를 향해 이토록 애절히 요청한 적이 또 있을까.
균열의 탑을 클리어한 신록의 주인, 란돌프의 출현을 알았을 때도 아루웬 장로를 보낸 여왕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부리는 존재이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다.
신성영역의 주인들과 갖은 종주들이 모여있는 자리.
하물며 드루이드가 출현하고 그들의 신이 위치했으니.
이제야 목소리를 높이고 주장을 펼칠 입장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태초의 숲에서 하던대로 행한다면 풀 한포기 남지 않고 멸절하리란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된 것이었다.
“허락하마.”
“··· 감사합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시여.”
내 허락을 듣고 엘프여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까다로우리라 여긴 여왕이 굴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내 선택과 의견에 토를 다는 자는 없을 터이므로.
또한, 자비를 베풀었으니 여왕은 더욱 나를 어려워할 것이다.
“그런데 13명씩 나누면 일곱 그룹으로 나뉘지 않소? 나머지 한 그룹의 대장 역할은 누가 맡을 생각이오?”
멸악의 거인이 다시 한번 말했다.
알비노를 염두에 두었느냐, 혹은 다른 자를 임명할 것이냐 묻는 것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답해주었다.
“나다.”
“······ 12명은 직접 선택하는 것이오?”
“아니.”
“그럼?”
“선택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