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43)
‘그것’의 정체가, ‘잊힌 신’이 상상하는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회색의 왕, 이름 없는 포식자】
······ 짐승의 왕이라.
하지만 저것은 단순한 ‘왕’이 아니다.
태초, 수많은 종의 짐승이 난립하고 신격을 지니기도 하였으나, 그중 ‘왕’이라 불린 존재는 단연코 없었다.
그럴진대.
‘태초 짐승의 왕······.’
저것은 감히 ‘태초 짐승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
하물며 녀석이 사용하는 힘은 그마저도 뛰어넘었다.
*
진화하고, 진화하고, 또 진화한다.
끝없이 무한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기가 질려버릴 정도였다.
끝이라 생각하면 또 다음이, 이제는 끝났겠지 여기면 또 다음이 나타났다.
그러나 상관없다.
종의 끝에 이르른 멸왕 모크를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 회색의 왕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르륵. 그르르륵.
멸왕 모크가 묘한 소리를 내며 경계하는 자세를 취한다.
동시에 백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냄새가······.’
냄새가, 짙어졌다.
허나 패배의 냄새는 아니다.
알 수 없는, 묘하기 그지없는, 처음 맡아보는 종류의 향.
‘뭐지?’
죽음의 향이라면 진즉에 알았을 것이다.
한데, 그보다도 더욱 음울하고 쾌쾌했다.
게다가.
“오주력······.”
놈의 냄새 또한 더욱 짙어졌다.
본인이 아니라면 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무엇보다도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진화시킨 존재치고는 너무 어둡지않나.
저것이 드루이드가 지닌 영혼의 진짜 색이라는 의미다.
회색의 왕.
‘이름 없는 포식자.’
일순간, 의문이 들었다.
진정으로 저게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지닌 정체성이라면.
회색의 왕이며, 동시에 포식자라면.
“네놈······.”
백왕의 표정이 한없이 굳었다.
비록 가정일 뿐이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불쾌했으니.
“오주력을······ 먹은거냐?”
··· 도저히 그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오주력을 먹어치운 게 아닌 이상에야 지금의 냄새는 도무지 설명이 불가한 것이다.
“······.”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거면 됐다.
저 반응.
뭐라 대답할 수 없는 분위기.
그거면 충분하다.
백왕은 표정을 굳혔다.
아무리 오주력이 불길하며 상하개념이 없는 미친 까마귀라고 해도.
‘그럼에도 오주력이다. 나의 주력이니라.’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오주력은 그가 직접 임명한, 다섯 가신 중 하나인 게다.
오주력 역시 별 수호자들이 아닌 자신을 택하지 않았던가.
딸인 아리아와 깊은 관계를 지녔으며, 어금니를 되찾아줬으니,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였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그런 오주력을 먹어치웠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황금률의 드루이드에 대한 호의와, 예의는,
“죽여라, 모크.”
없다.
그오오오오-!
멸왕 모크가 전신을 부풀렸다.
‘갈기갈기 찢어버려주마.’
*
“차원이··· 다르군.”
“······ 역시 황금률의 드루이드님이시다.”
지켜보던 단원들이 하나, 둘 입을 열었다.
숨막힐 듯 진행되는 전투.
자신들과 비교해도 너무 차이가 컸으니까.
드루이드 알비노가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영혼······이라 칭하지만, 이는 곧 욕망과도 같지.”
몬스터 혼은 소환자의 영혼을 투영한다.
하지만, 영혼이란 무엇일까.
영혼의 격과 크기는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알비노는 ‘욕망’이라 정의했다.
결국, 영혼과 욕망은 큰 결에서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얼마나 큰 욕망을 지니느냐가 그 영혼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강해질수록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벽을 넘고 한계를 초월해 극에 이르려거든 욕망해야하는 법이며, 또한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커지는 게 욕망이고 영혼이다.
“그럼 저 수리의 형태가 현이 지닌 욕망이라는 건가?”
라이가가 물었다.
영혼과 욕망이 일치한다면, 저 형태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단순히 회색의 왕이어서가 아니다.
전투가 시작된 직후.
저 회색의 포식자는 연기로 변해 멸왕 모크의 눈을 흐렸다.
연기는 곧이어 12개의 분신체가 되었으며, 모든 분신체의 중심에 쟂빛의 태양이 떠올랐다.
쟂빛의 태양은 점차 까맣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모크의 육체에 새겨진 눈들이 빠르게 감겨갔다.
아니, 단순히 감기기만 하는 게 아니다.
‘··· 지워지고 있다.’
눈이 사라진다.
마치 포식을 하듯.
잡아먹히고 있는 것이다.
라이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현이 지닌 영혼의 정체성이라면, 결국 모든걸 포식하는 자라는 의미.
실로 탐욕적이며 욕망적이지 않은가.
너무나도 압도적인 크기였다.
그롸아아아악-!
멸왕 모크가 비명을 내질렀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연기에 스쳐 지나갈 따름이다.
열 두 개의 분신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놈들이 연기 속에서 부리를 쫄 때마다 모크의 살점은 처참하게 뜯겨나갔다.
그때였다.
“······ 뜻대로 놔두진 않을 것이다.”
쉬익-!
꽈아아아아앙!
두 혼의 대결 와중, 백왕이 난입했다.
그는 난입한 즉시 정확히 ‘이름 없는 포식자’의 본체를 타격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각과 본능으로, 무엇이 실체이고 가짜인지 백왕은 구분해낼 수 있었으니.
허나.
그의 행위는 분명히 규칙을 위반한 것이었다.
【‘백왕’의 실격패입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상관없다.
실격이든, 패배이든.
‘감히.’
쩌적-
순간, 백왕의 전신이 푸불어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형태를 벗어던졌다.
힘을 억제한 상태가 아닌 ‘본체’로.
빌헬름과의 대결 이후,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형태로 말이다.
심지어 그때보다도 더 커졌다.
덩치도, 힘도,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오랜세월 북부의 지배자로 군림해온 백호족의 진정한 모습.
흑왕을 상대할 때나 보일 줄 알았으나, 그만큼 저 회색의 왕은 위협적인 존재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감히-.’
감히 자신의 주력을 먹어치운 놈이다.
······ 그런 존재를 살려둘 수는 없지 않나.
*
잊힌 신은 멸왕 모크가 당하는 과정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리의 힘마저 흉내냈다······?
저건 단순한 포식이 아니다.
먹어치우는 걸 넘어선 권한.
먹고, 지워버리는 힘이었다.
성공했다면 그대로 혼은 사라졌을 것이다.
다시는 멸왕 모크가 세상에 나올 일은 없었겠지.
틀림없는 진리의 힘이다.
하지만 어떻게 ‘진리’의 힘을 흉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진리로부터 한 번 승리했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진리는 분명히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지우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리의 방해로부터 살아남았다.
어떻게 해낸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이겨냈고, 심지어 진리의 힘마저 은연중 영혼에 새겨버린 것이었다.
그게 저 포식자에게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리라.
‘··· 너라는 존재는 정말 어이가 없구나.’
허.
대체 무엇을 만들어낸 것이냐는 물음이 깊숙이 차올랐다.
멸왕 모크는 저것을 당해낼 수 없다.
백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호제······.
백호제라면 어떨까.
멸왕 모크를 만들어낸 것도, 멸왕 모크를 죽인 것도 모두 백호제였다.
오랜 역사상 백호족의 가장 꼭대기에 올라 군림했던 자.
백호족들 중 누구도 백호제의 업적에 다가선 이가 없었다.
그런데 본체를 드러낸 백왕은 그녀가 기억하는 백호제와 다르지 않았다.
잊힌 신은 더욱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백왕과 회색의 왕, 그리고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궁금했으니까.
백호제의 피를 각성한 백왕은 과연 저 권능으로부터 빗겨나갈 수 있을지.
비록 흉내에 지나지 않다고 하나 진리의 힘마저도 다룰 수 있게 된 황금률의 드루이드 중 누가 더 강할지가 말이다.
게다가 백왕은 더 이상 승패 따윈 상관이 없는 듯싶었다.
백왕의 목적은 단 하나.
-······!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최대한 빨리 끝내지.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콜로세움 전체가 흔들리는 폭음.
“··· 죽고 싶어서 환장했느냐, 네놈.”
먼지가 걷히며 나타난 건 백왕과 알비노, 그리고 라이가였다.
순식간에 백왕의 공격을 인지하고 막아선 것이다.
“······.”
하지만 백왕은 답하지 않았다.
거대한 백호의 모습으로 변신한 뒤 성난 짐승처럼 날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녀석의 눈빛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변했군.’
솔직히 놀랐다.
내가 알던 백왕이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백왕이다.
백왕은 이기지 못할 싸움에 절대 나서지 않는다.
제아무리 본체로 변신했다 한들 알비노와 라이가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할 터.
짙은 패배의 냄새를 맡았을진대, 그런데도 거침없이 공격해온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 나를 공격한 이유가 뭘까.
‘오주력. 시체 까마귀의 왕.’
답은 하나다.
오주력.
란돌프가 변한 불길한 까마귀의 형태.
박현명과 란돌프로 모습과 성향이 나뉘었지만, 영혼까지 반으로 쪼개지진 않았다.
내 영혼은 나 하나뿐이다.
하여 백왕은 나의 영혼에서 까마귀의 냄새를 맡은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백왕은 내가 오주력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그러한 향을 풍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확실했고.
한 마디로.
‘오해다.’
··· 놈은 오해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직접 오주력을 언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신성한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사실 불길한 시체 까마귀의 왕과 관계되어 있다는 말을 구태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단순히 오해라고, 모른다고 해도 어차피 믿지 않을 기세.
백왕의 고집을 여기서 나보다 잘 아는 자는 없으리라.
이럴 땐 말을 아끼는 게 상책이다.
다만.
‘잠깐. 설마 오주력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건가?’
······ 아무리 생각해도 백왕과는 딱히 사이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매일 싸우면 싸웠지.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할 사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
그래서다.
백왕이 오주력의 죽음에 반응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위험을 무릅쓰고서.
이곳에서 알비노와 라이가를 동시에 상대한다는 리스크를 안고서 말이다.
그어어어어어어!
백왕이 울부짖었다.
그 순간.
쩌억! 쩌어억!
백왕의 육체에 재차 변화가 생겼다.
멸왕 모크의 ‘눈들’이 백왕의 육신 위에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곤.
쉬익!
“······!”
“······!”
찰나와 같았다.
백왕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