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44)
그 속도는 여태껏 경험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빨랐다.
빌헬름으로도 녀석이 도망치는 걸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빨라진 것 같다.
백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알비노와 라이가를 재친 뒤.
구오오오오오오!
··· 내 앞에 당도했다.
앞발에 동그랗게 모인 마력.
검환이다.
주변의 모든 걸 빨아들이고 삭제하는 검환의 묘리가 적용된 빛의 구였다.
만약 눈앞에서 터트릴 수만 있다면 신조차 죽이는 힘.
한 번의 주먹질에 모든 마력을 담은 백호신권(白虎神拳)이다.
곧이어 마주친 백왕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듯싶었다.
죽어라.
······ 진정으로 미친놈이 따로 없다.
백왕은 이 공격 한 번에 모든 걸 쏟았다.
뒤를 아예 생각하지 않는 총공격.
동귀어진이다. 함께 죽자는 거다.
“아, 안 돼······!”
-······!
누군가의 비명이 들린 듯했다.
하지만 이내 비명은 삭제됐다.
꽈아아아아아아앙!
백왕의 마력이 바로 내 코앞에서 터졌기 때문이다.
*
굉음이 터진 즉시.
“······!”
라이가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구오오오오오-
마력이 한 차례 터지며, 이내 백왕을 중심으로 거대한 블랙홀이 나타난 탓이다.
그것은 반경 수 미터를 집어삼키고 닿는 모든걸 소멸시켰다.
밖에 있는 것도 이러할진대, 저 안쪽은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화, 황금률의 드루이드시여!”
알비노는 사색이 됐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검은 구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치직! 치지지직!
타는 소리와 함께 닿은 알비노의 손이 사라졌다.
이에 알비노가 재빨리 손을 빼내자, 사라졌던 손이 다시 나타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쩌어억!
검은 구의 위로 거대한 눈알 하나가 떠올랐다.
멸왕 모크의 눈과도 닮은 그것이.
동시에 라이가의 표정은 더욱 굳어버리고 말았다.
“소울 이터······.”
“소울 이터?”
“영혼을 먹는 심연의 괴물이다. 멸왕 모크는 그 종으로부터 진화한 개체였나보군.”
알비노의 되물음에 라이가가 답했다.
하지만 소울 이터는 심연의 깊숙한 곳에 사는 종이다.
숫자도 적고, 상대하는 건 더욱이 까다로우며, 심연의 괴물들조차 기피하는 ‘비홀더’ 형태의 괴물.
그것을 계속해서 진화시킨 게 바로 멸왕 모크인 것 같았다.
문제는 멸왕 모크와 백왕이 합쳐졌다는 것.
그로 인해 저 ‘검은 구’ 자체가 백왕이 되었다.
라이가는 백왕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먹어치울 생각이다. 똑같이.’
오주력을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먹어치웠다고 생각한 백왕은, 똑같이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먹어치울 생각이다.
스릉.
라이가가 검을 들었다.
놈은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모두 먹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허나, ‘검은 구’는 파괴불가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닿는 순간 영혼을 빼앗아가리라.
그나마 알비노의 영혼이 커서 휩쓸리지 않았을뿐.
-포기하거라.
라이가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잊힌 신’이 말했다.
-‘저것’에 물리력은 닿지 않는다. 백호제보다 더욱 큰 영혼만이 영향을 줄 수 있지.
그리고 이곳에 백왕보다 큰 영혼의 그릇을 지닌 자는 없다.
애초에 백호제의 피를 강하게 이었다면, 영혼의 크기 자체를 따라올 이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수많은 종을 진화시키고 만들어온 백호제.
진화의 욕망만큼이나 큰 힘을 주는 건 존재치 않았으므로.
허나, 예외적인 경우라면 바로 황금률의 드루이드다.
‘진리로부터 승리한 자. 완벽한 규칙 바깥의 존재이니.’
과연 백왕은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온전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소화하지 못한다면, 역으로 잡아먹힐 것이다.
‘진화의 구 안에서 무엇이 만들어질지 실로 흥미롭구나.’
그리고 저 ‘진화의 구’에 의해, 진화하리라.
백왕이 이기든,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이기든 간에, 승리하여 나온 자는 다른 형태가 되어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때였다.
슈웅-!
한 줄기의 빛이, 진화의 구를 꿰뚫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라는 듯.
슈슈슈슈슝!
수많은 빛줄기가 구를 뚫고 나왔다.
‘끝났나보군.’
생각보다 빠르지만, 결판이 났다는 의미.
진화의 구에서 무엇이 만들어졌을지.
하지만 한참을 지켜보던 ‘잊힌 신’은 이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쫘아악!
구를 찢어발기며 나타난 자.
허나 ‘잊힌 신’의 예상과는 다르다.
나타난 건 둘.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변신이 풀린 ‘백왕’을 둘러멘 채 나왔다.
영혼을 잠식하고, 먹어치운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달라졌다.
무언가가.
‘저 투구는······?’
우선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본 적 없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독수리가 새겨진 황금 투구를.
게다가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마치 ‘이름 없는 수리’처럼 외관이 변했다.
인간형태의 이름 없는 수리가 된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 순간.
“우아······?”
-······!
잊힌 신은 움찔했다.
······ 반응했으니까.
시초의 인간이.
그녀의 아이가.
정확히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바라보고 있다.
-······.
잊힌 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도 그럴게.
아무런 감정도, 반응도 없어야할 영혼 없는 인형이, 어찌 제스스로 입을 열고 움직인단 말인가?
*
결과적으로.
백왕은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 영혼을 먹어치우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녀석이 ‘멸왕 모크’의 힘을 빌렸듯, 나 역시도 ‘이름 없는 수리’의 힘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시 ‘이름 없는 수리’가 투구로 변화하자 백왕의 힘은 나를 침범할 수 없었다.
도리어 그는 내게 잡아먹히고 지워질 운명이었으나.
나는 백왕의 영혼에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오해해서 비롯된 일.
오주력인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몸을 던진 놈이었다.
다만, 그렇다한들 바라는 게 없진 않았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진화의 힘.’
그가 가진 권능이다.
곧이어 나는 백왕의 영혼에 새겨진 ‘뿌리’를 읽을 수 있었다.
마치 DNA의 줄기처럼 오랜세월 두각되어 나타난 능력.
백호족의 권능과 백호제의 기록, 그 이름마저도 알아냈다.
그러자.
《‘태초의 짐승들’에 관한 생명 정보를 획득합니다.》
《히든 특성 ‘비스트 로드’가 ‘비스트 갓’으로 진화했습니다!》
*
결판이 났다.
나는 기절한 백왕을 바닥에 눕힌 채 다가오는 알비노를 만류했다.
“괜찮다. 놔두어라.”
“허, 허나······!”
드루이드 알비노는 화가 끝까지 치밀었다.
예상하지 못한 속도였다고는 하나, 눈앞에서 백왕을 놓쳤으니까.
게다가 이대로 다시 눈을 뜨면 또 같은 짓을 반복할 놈이다.
“다시 공격하지 않을 거다.”
······ 그런 알비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백왕과 한차례 영혼을 부딪혔다.
백왕 스스로도 느낀 게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으리라.
녀석이 의외로 오주력을 기껍게 여긴다는 것도 알았으니.
내가 연이어 괜찮다고 말하자, 알비노가 의외라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용서할 줄은 몰랐다는 듯.
“너희들도 보고만 있지 말고 데려가거라. 너희들의 단장 아닌가?”
“··· 고맙소.”
그제야 쭈뼛대며 폭군 그리즐리가 다가와 백왕을 데려갔다.
나를 바라보는 괴수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경외, 고마움 따위가 뒤섞여있었다.
진짜 ‘신’을 대하듯.
아예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나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명예로운 대결을 하도록.”
“······ 그러겠소. 그렇게 전하리다.”
백왕이 깨어나면 전하겠다는 말.
백왕의 돌발행동이 명예롭지 않았음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른 괴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결승전이 5분 뒤에 시작됩니다.】
나는 떠오르는 문구를 가만히 직시했다.
백왕은 실격했고, 앤드류도 결구 잊힌 신을 상대로 패배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덧 옆으로 다가와 몸을 잘게 떨고 있는 앤드류가 있었다.
“조, 조심하십시오. 저 여자는······ 규격외입니다. 그 정도로 두려운 존재입니다.”
어둠의 심장은 처참하게 박살났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앤드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여신의 사도로서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앤드류가 말이다.
툭.
나는 그의 등을 한 차례 토닥인 뒤, 대결장으로 나섰다.
-······.
여태껏 주절대던 잊힌 신은 왜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지.”
잊힌 신에게 이 이상의 패는 없다.
시초의 인간, 감정 없는 인형의 여자.
물론 패가 없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투구를 한 차례 매만지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나는 ‘이름 없는 수리’와 동기화한 상태.
비스트 갓으로 히든 특성이 진화하자, 이름 없는 수리와 일체화 하여 아예 녀석의 형상으로 변할 수 있었다.
곧이어.
【경기가 시작됩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이름 없는 수리) VS 잊힌 신(시초의 여인, 릴리스)】
······ 릴리스라.
어두운 기운을 무한정으로 뽑아내는 여인.
척 보기에도 불길하다.
그 불길함의 정도가 상상이상이라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한데.
-릴리스, 뭐하는 짓이냐······? 내 명령에 따르거라!
잊힌 신이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다.
‘음?’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웅···?”
릴리스가 적의 없는 태도로 불쑥 다가와, 내 손을 붙잡곤.
“아우우!”
······ 환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진짜 어둠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잊힌 신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짜증 섞인, 혐오스럽다는 얼굴.
여태껏 이 정도로 잊힌 신이 감정을 표현한 건 처음이었다.
‘인형 따위가 내 말을 무시해?’
릴리스.
최초의 여인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라 불리는 존재.
그러나 릴리스에게는 영혼이 없다.
당연히 감정도 없고, 표현도 하지 못한다.
입을 열고 말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잊힌 신이 거두었으나, 단 한 번도 릴리스가 누군가에게 스스로 다가가는 것을 그녀는 본 적이 없었다.
꼭두각시 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건만.
“아우우-!”
마치 어린아이가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며 묘한 짐승의 소리를 내는 것.
저 행위는.
‘구애다.’
······ 구애(求愛)의 표시다.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혼이 없는 릴리스는 마찬가지로 사랑도 할 수 없다.
한데 지금, 릴리스는 스스로 움직이며 구애를 하고 있었다.
잊힌 신의 명령도 듣지 않고서.
‘······ 어떻게?’
불쾌하기 그지없으나 그 이상으로 의문이 들었다.
릴리스에게 영혼이 생긴 걸까?
‘그럴 리가.’
잊힌 신은 고개를 저었다.
릴리스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텅 빈 그릇을 악이 채웠을 따름이다.
그러니 릴리스가 보이는 행동은 전혀 다른 결이라고 해야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