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45)
‘감정을··· 흉내 내고 있다.’
··· 흉내에 불과하리라.
하지만, 왜?
잊힌 신의 지배력을 약화해가면서까지 릴리스는 황금률의 드루이드에게 집착하는가?
만악의 근원, 시초의 여인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건 단연코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럽다.
뭐에 반응한 건지 모르겠다.
다만 상대의 환심을 사고자 감정을 흉내 내고 있다면, 그 정도로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탐이 났다는 의미일 터.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변했다. 더욱이 신성하게. 태초 짐승의 형태로서.’
태초의 짐승과 인간이 융합했다.
도저히 그렇게 밖엔 보이지 않았다.
이름 없는 포식자가 인간의 형태로 변한 것만 같았다.
허나······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태초의 짐승은 절대로 누군가의 손에 길들지 않아. 동화하며 융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태초의 짐승들.
그 거대하고 우악스럽던 짐승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고 했다.
서로를 죽이고 잡아먹으며 끊임없이 진화해갔다.
물론 끝을 모르는 탐욕 때문에 결국 자멸하긴 하였으나, 그중에서도 ‘올드원’이라 불린 짐승들은 신조차 오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정 분야에 있어선 가히 압도적이며 초월적이지만.
문제는 태초의 짐승들 전부가 반목했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파괴적이고, 본능적인 탓에, 전부 사라져 잊혔다.
‘만약 태초의 짐승이 계속해서 존재했다면 찬란한 문명 따윈 세워질 수 없었을 것이야.’
찬란한 모든 문명은 기초부터 밟혔으리라.
꽃을 피기도 전에 졌을 것이다.
그런 태초의 짐승을, ‘올드원’을 길들인다고?
아서라.
태초의 짐승에게 주인이라는 개념따윈 없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보이고, 호감을 갖는 것도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파괴본능은 몬스터 혼으로 진화시켰다한들 사라지지 않는다.
도리어 증폭되고 강화되면 모를까.
하지만······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완벽하게 길들여냈다.
태초의 짐승과 융화하는 이변까지 선보였다.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그건.
‘태초짐승의 신.’
······ 태초의 짐승들을 설계한 주신밖에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원시 시대의 신이다.
신은 죽지 않고 불멸한다고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뀔수록 신은 잊히며, 사라진다.
원시 시대의 신들 중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신은 없었다.
그러니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원시의 신일 리 만무했다.
‘거짓이다. 그럴싸한 모습으로 유혹하고 있을 뿐이야. 모두 저놈에게 속은 거다.’
꽈아악!
잊힌 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우아! 아우우!”
······ 도저히 저 작태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형이, 릴리스가 고작 저따위 남자에게 꼬리를 흔드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했으므로.
-그만두어라.
멈춰라.
“아우우-!”
-놈은 가짜다. 너를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아웅!”
-······ 끝까지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냐?
잊힌 신이 몸을 부들부들떨었다.
전혀 말을 들어먹질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내가 직접 움직여야겠구나.
스스슥!
순간 잊힌 신의 몸이 증발했다.
그리곤.
“아······!”
릴리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으으으!”
눈을 감고, 몸을 떨며 저항해봤지만 소용없다.
곧이어 모든 떨림이 멈추자 릴리스가 눈을 떴다.
하지만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까맣게 물든 동공.
머리 위에 솟은, 상처처럼 붉은 점이 곳곳에 나있는 검은색 태양.
툭!
릴리스의 몸을 차지한 잊힌 신이 손을 꺾었다.
그리곤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전과는 다른, 음습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 진짜 어둠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아이야.”
처음에는 여신들에게서 빼앗을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두 여신이 놈을 수호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모두 저놈에게 속은 것이다.
여자를 미혹하는 권능이라도 지닌 게 분명했다.
두 여신을, 자신을, 그리고 릴리스마저도 유혹해내다니!
그러니, 반드시 죽여야겠다.
‘경험해본적 없을 어둠에 질식시켜주마.’
······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
어둠이 몰려온다.
콜로세움을 전부 채우고도 남을 막대하며 막강한 어둠이.
하나, 둘 어둠 속에 잠식되어 사라져간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시여······!”
“이건······.”
알비노와 라이가도 피해갈 수 없었다.
모두가 경험해본 적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의’속에 묻혔다.
“멈춰! 안돼!”
“아아악!”
모두가 어두운 유리 안에 갇힌 채 옴짝달싹 못했다.
비명을 내지르고, 자신의 몸을 마구 쥐어뜯어대며, 고통을 호소할 뿐이었다.
두 눈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스스로를 인지조차 할 수 없다.
그나마 나는 침범당하지 않았으나.
《‘근원의 악의’가 흩뿌려집니다.》
《‘이름 없는 수리’에 의해 신성 효과가 강해집니다.》
《‘태초의 신성’ 효과가 추가됩니다.》
어둠이, 악의가, 끊임없이 내 주변을 돌며 틈을 찾는다.
조그마한 틈이라도 내어준다면 그 즉시 침범하려 들 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네놈은 버틴다고 해도 다른 자들은 어떠할까?”
잊힌 신이 비웃었다.
명예로운 대결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잊힌 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추하군.”
너무 추했으니까.
이 정도로 추한 신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처음 세계수의 던전에 입장하고 만난 잊힌 신이 양반이라 느껴질 정도다.
불쾌하긴 했으나 적어도 공정하긴 했다.
하지만 눈앞의 잊힌 신은 다르다.
“그만둬!”
“내 잘못이 아니라고!”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꾸물! 꾸물!
어둠이 움직인다.
어둠에 잠식된 이들이 머지않아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하나같이 나를 노려보았다.
··· 한 가지는 인정해야겠다.
악신의 힘을 고스란히 사용하는 릴리스의 어둠은 너무나도 짙었다.
진짜 신성을 지닌 자가 아니면 버틸 수 없을만큼.
‘이게 악신의 힘이로군.’
이 정도로 저열할 줄이야.
이윽고 하나, 둘, 나를 노려보던 자들이.
“죽어-!”
“으아아아아아!”
······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황금률의 기사단 전원이.
백왕의 기사단 전부가.
*
백왕은 자신했다.
아무리 놈이 대단하다고 해도, 영혼의 그릇만큼은 자신이 더 크리라고.
그래서 ‘진화의 구’를 만들어 놈의 영혼을 포식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백왕의 생각은 틀렸다.
놈의 영혼이 생각보다 방대했던 것이다.
아니, 단순히 방대한 걸 넘어섰다.
그 결을 읽은 순간 백왕은 정신을 놓았다.
‘내가······ 무엇을······.’
놈의 영혼에는 두 가지 결이 있었다.
하나는 황금률의 드루이드와 갖가지 신성적인 것들.
하지만 문제는 다른 한 가지 ‘결’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상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절대로 함께할 수 없고, 함께해서도 안 되는 이질적인 것.
그러나 영혼의 결이란 결코 나뉘지 않는 법이다.
생명체가 욕망을 분리할 수 없듯이.
모두 하나로 공존하기 마련이었다.
그럴진대.
‘잡아 먹힌다······!’
본 순간, 알았다.
저것은 자신이 잡아먹을 수 없는 종류라는 걸.
건드렸다간 역으로 자신이 잡아먹힐 것이라는 사실을.
하여 건들지 않았다.
그저 바라만 보았음에도 기절한 것이다.
-떨어져라. 최대한 멀리.
-저것은 진화의 선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아서도 안 된다. 느껴서도 안 된다. 등을 돌리고 도망쳐라.
-잊어라. 지워라. 너는 아무것도 본 적이 없다.
백호제의 피가, 백호족의 염원들마저도 저 영혼을 거부하고 있다.
절대로 등을 보이지 말라던 그들의 목소리가.
백호족의 왕이라면 무릇 싸워야한다던 그들이.
도망치라고, 잊으라고 말하고 있다.
그제야, 정신을 놓기전 백왕은 ‘불쾌한 냄새’가 어디서 난 건지 알았다.
바로 저 어두운 ‘결’이다.
저것은 닿으면 지운다. 모든걸 먹어버린다.
죽음도, 패배도 아닌 소멸.
그래서 그토록 불쾌했던 것이다.
한데, 그 뒤로도 백왕은 계속해서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어둠에 잠식되고, 악의에 물들었다.
“오오, 빌헬름이여.”
자신의 앞에 놓인 상대가 왜인지 빌헬름으로 보인다.
백왕은 기꺼이 다시 싸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상대의 모습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오주력? 살아있던 것이냐!”
기뻤다.
죽은 줄 알았건만, 잡아먹힌 줄 알았건만.
다시 돌아와라.
크람델로. 자신의 품으로.
아리아를 선물로주마.
아리아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다른 자식들도 있다.
북부를 가질 자격을 부여하마.
그런데······ 그 순간.
놈은 또 바뀌었다.
백왕은 처음으로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넌············ 누구냐?”
*
“포기하고 어둠을 받아들이려무나.”
잊힌 신이 여유롭게 말했다.
어느덧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탓이다.
그리고 잊힌 신의 말마따나,
··· 나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더 이상의 진화는 없다.
현재의 내가 가진 것만으로는 이들을 전부 상대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이름 없는 수리’와 융화했다고 한들 알비노와 라이가, 백왕을 전부 상대하려거든 턱없이 부족하다.
‘버티면······.’
허나, 희망은 있다.
강력한 존재일수록 어둠에서 깨어나는 시간 또한 빠를 터.
실제로 알비노와 라이가, 백왕 전부 조금씩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문제는 그보다 나의 죽음이 더 빠르리라는 사실이다.
‘명예로운 대결을 하라.’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것이, 명예로운 대결인가?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나타난 규율에는 그리 적혀있었다.
오로지 명예로운 대결을 하라고.
허나······ 그 ‘명예’를 왜 나만 지켜야하는가.
게다가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잊힌 신이 악명을, 악업을 싫어한다고?’
저 악신이?
되려 좋아 죽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명예와, 잊힌 신이 생각하는 명예가 다른 모양이군.’
다를지도 모른다.
애초에 명예라는 건 모두 다른 법이었다.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마련이었고.
저들의 입장에선 ‘이기는 것’만이 명예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여, 나는.
“네가 이겼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지.”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자 잊힌 신은 빙글 웃어보였다.
“늦었다, 아이야. 얌전히 죽으려무나.”
··· 역시.
내심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패배를 인정한다고, 상대는 멈출 생각이 없다.
저게 과연 명예인가?
처음부터 불공평한 싸움이다.
상대가 저렇게 나오는데 내가 예의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저 잊힌 신에게 명예를 보일 마지막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나는 여태껏 규칙을 지켜가며 대결에 임했다.
몬스터 혼을 진화시키고, 수를 숨겨 마지막까지 임하려고 했다.
최선을 다하여 최대한 공정한 싸움을 구축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