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46)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하기야 내가 언제부터 규칙을 지켰다고.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 진짜 어둠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잊힌 신이여.”
【흉의 장갑에 새겨진 ‘란돌프’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또 다른 멸망, 그 진정한 의미.
‘··· 결국, 필멸자인 것을.’
‘잊힌 신’은 여유를 되찾았다.
릴리스가 지닌, 절대로 항거할 수 없는 근원의 힘.
거기에 자신의 저주가 더해지자 판도가 뒤바뀌었다.
당연한 일이다.
여신의 사랑으로도 바꿀 수 없는 필멸의 운명을 지닌 자.
결국 멸할 존재가 릴리스와 악신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예상 외의 신성을 지녔다만······ 그래봤자 모두를 구원하는 건 불가능하단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이긴 했다.
본래 필멸자라면 근원적인 어둠의 힘을 버틸 수 없다.
잠식되어 자신의 명령을 따르는 인형이 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녀의 힘에 조종되고 있지 않은가.
북부의 지배자도, 전설의 드루이드도, 제국의 최강자도 마찬가지다.
필멸하는 운명을 지닌 자들은 모두 ‘근원’ 앞에 무력하다.
한데, 황금률의 드루이드만은 아니었다.
이름 없는 수리, 그리고 수많은 신성의 자격으로 말미암아 버텨낸 것이리라.
근원의 어둠을 버틸 수 있는 힘은 오직 신성뿐이니까.
하지만 역부족이다.
강력한 신성도 황금률의 드루이드 본인만을 구할 뿐이다.
그조차도 이곳에 모인 모두를 구원할 수준의 신성을 보유하진 못했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었다.
“포기하고 어둠을 받아들이려무나.”
‘잊힌 신’이 미소를 지었다.
비록 몇 차례나 그녀를 당황시킨 황금률의 드루이드지만, 힘에 부쳐 밀리고 있는 게 훤히 보였으므로.
진리 바깥의 존재를 불러오는 기행은 꽤 훌륭했다.
허나.
“‘신’인 척하는 연기는 꽤 훌륭했다. 하지만 너는 신이 아니란다. 아이야.”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녀석은 불멸하는 신이 아닌 필멸하는 인간이다.
그저 신의 신성을 보유할 ‘자격’만을 지녔을 따름이다.
하지만 자격을 지녔다고 해서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신의 조각을 가진 거지 신 자체가 된 게 아니었으니까.
······ 하.
우습다.
실로 우스웠다.
여태껏 긴장하며 놈을 대한 게.
놈의 연기에 완전히 속아넘어간 것이다.
상당한 신성의 보유자이긴 하지만, 자신과 릴리스를 동시에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상하다.
‘고작 이 정도로 진리의 시험을 이겨냈다고?’
말도 안 된다.
진리의 시련은 태초부터 검증된 ‘불가능’한 시험이다.
절대로 달성할 수 없는, 그리하여 수많은 신들도 좌절케 한.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이기에 세계의 법칙은 ‘진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직접 겪어봐서 안다.
그러니,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진리의 시련을 이겨내고 진리 바깥의 존재를 불러온 것도 어쩌면.
‘진리의 힘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어쩌면 ‘진리’ 자체가 약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희망이 보였다.
‘이 대결에서 승리하거든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다.’
잊힌 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
잊었다.
틀림없이 한때 강력한 악신이었을 터이나, ‘진리’에 의해 지워졌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또한 이곳, 세계수의 던전에 존재하는 수많은 ‘잊힌 신’들 중에서도 그녀의 위치는 입지적이지만, 그녀조차도 이름을 되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하나.
세계수의 뿌리에 닿는 것.
하지만 ‘잊힌 신’들이 세계수의 뿌리에 닿으려거든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우선 ‘도전자’들을 상대로 승리해 ‘잊힌 기사의 영혼’을 최소 100개는 획득해야한다.
다른 ‘잊힌 신’의 상징물도 필수다.
그래야만 ‘진리’의 눈을 피해 이름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진리’의 힘이 약해졌다면······.
‘잊히고, 빼앗긴 전부를 되찾을 수 있다!’
세계수의 뿌리에 닿아봤자 찾을 수 있는 건 이름밖에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각성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진리’가 빼앗아간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를 따르던 모든 자들을, 그녀의 이름이 새겨졌던 모든 것들을 파멸로 몰아갔다.
뿐만인가.
자신의 힘을 상징하던 전부가 사라졌다.
그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되찾는 방법도 간단했다.
바로 진리의 시험을 당당히 마주하는 것.
세계수의 뿌리에 닿아, ‘진리’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피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순간 ‘진리’가 그녀를 바라볼 터이니.
그때였다.
“네가 이겼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지.”
수세에 몰린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말했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줄이야.
하기야 연기가 들통났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늦었다, 아이야. 얌전히 죽으려무나.”
처음 잊힌 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차라리 자신의 반쪽이 되었다면 진정으로 영원불멸할 수 있었을 텐데.
놈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대결’이 속행됩니다.】
【규칙이 바뀝니다.】
【‘존재의 말살’만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합니다.】
잊힌 신은 마음대로 규정을 바꾸었다.
이는 진리가 정해놓은 규율을 벗어난 행위.
‘진리’가 눈을 돌려 그녀를 쳐다볼 수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리의 힘이 약해졌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바라는 건 말살.
저 가짜를 영원토록 없애버리는 것.
그리하여 전부를 빼앗고, 전부를 갖겠다.
특히 가증스러운 두 여신들은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내 자리다. 그곳은 본래 나의 자리였어야만 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허나, 여신들에 대한 깊은 후회와 원망이 남았다.
아마도 이름을 되찾으면 이유도 기억나겠지.
확실한 건 잊힌 신은 여신의 자리가 본래 자신의 것이었다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저 아이를,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빼앗음으로써 두 여신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려 했지만······.
‘전부를 되찾은 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두 여신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면 그만이었으니.
진리로부터 전부를 되찾아올 수만 충분히 있다면 가능할 터였다.
악신이 어떻게 여신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 방법이 눈앞에 있지 않나.
두 여신의 사랑을 받는 자.
강렬한 신성으로 말미암아 신으로의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자!
저 존재를 죽여 인형으로서 가질 수만 있다면, 그녀가 여신이 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므로.
‘죽어라. 죽어서 나의 인형이 되려무나.’
변수는 없다.
도망갈 곳도 없었다.
확정된 승리에 ‘잊힌 신’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 그 순간이었다.
“······ 진짜 어둠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잊힌 신이여.”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진짜 어둠?
잊힌 신과 릴리스의 어둠은 진짜 어둠이 아니라는 말인가?
‘헛소리를 하는군.’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치기라도 한 모양이다.
게다가 오롯이 신성한 자가 ‘진짜 어둠’을 어찌 알겠나.
하지만 ‘잊힌 신’은 짓던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또 진화한다고······?’
갑자기 모습이 또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기가 찰 노릇이지만, 또 진화라도 하는 듯싶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발악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걸 잊힌 신은 곧 깨달았다.
푸스스스스-
신성이 사라져간다.
균열이 가고,
그 틈으로 ‘어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변한 것은 모습만이 아니다.
성향 자체가 뒤바뀌었다.
빛은 순식간에 어둠이 되었다.
찰나와 같이 순간 잠식되고 사라져 아예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어둠이 차지했다.
아니, 아니다.
저것은 그저 빛의 자리를 차지한 어둠의 모습이 아니었다.
저것은 방금 전 신성했던 모습이 빛바랠 만큼, 여태껏 펼쳐낸 신령한 신위가 무색할 정도로 거대하기 짝이 없는 어둠이었다.
하여, ‘잊힌 신’은 멈췄다.
모든 존재가 멈춰섰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그 현상은 이곳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쿠르르릉!
【‘???’가 출현했습니다.】
【모든 ‘잊힌 신’이 출현한 존재를 감지합니다.】
【모든 층계의 시련이 중단됩니다.】
【세계수의 뿌리가 흔들립니다.】
【‘???’의 존재력이 세계수의 던전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흔들린다.
세계수 전체가.
잊힌 신의 두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너, 너는······.”
보자마자 알았으니까.
저 ‘존재’가 무엇인지.
동시에 깨달았다.
“진리의 시험을 이겨낸 건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아니라······.”
바로 저 존재다.
저 어둠이다.
진리의 시험을 돌파한 것은, 바로 저 ‘멸망’이었다.
부르르르!
‘잊힌 신’은 몸을 떨었다.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진리’를 겪어보았다.
그렇기에 멸망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진리가 휘두르는 힘 중에는 ‘멸망’의 힘도 있었으므로.
‘도망쳐야한다.’
잊힌 신은 두려웠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
‘죽고싶지 않아······!’
······ 죽고싶지 않다니.
마치 필멸자들이나 할만한 이야기 아닌가.
언젠가 끝이 정해진 인간과 같은 생명체들이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신이다.
신으로 태어나,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대체 왜 ‘살고싶다’는 생각이 든 걸까.
두려워서?
저 존재야말로 진리의 시험을 이겨낸 자니까?
단지 ‘멸망’의 힘을 느껴서는 아닐 것이다.
‘완전 다른 것이다. 저것은, 저것은 또 다른 멸망일지니!’
······ 애초에 달랐다.
멸망은 신의 이름을 지우고 바깥으로 퇴출시킬 수 있지만, 신을 온전하게 소멸시킬 순 없다.
그러나 저것은 ‘또 다른’ 멸망이었다.
멸망으로 불리우나 결코 멸망과 같은 게 아닌.
‘아아!’
알겠다.
저게 뭔지.
어찌하여 진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지!
“너는······!”
잊힌 신은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놈의 어둠이 어느덧 자신을 휘어감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다.
악신의 어둠을 넘어서는 어둠이라니.
그런 게 있을 수가 있나?
하지만 저것은 더욱이 근원적이고, 진정으로 끝에 있는 것이었다.
멸망이되 멸망이 아닌 것.
신을 소멸시키는 어둠.
저런 존재를 무엇이라 불러야할까.
그리고 만약,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다면.
“너는, 종말이로구나······!!!”
······ 그건 오로지 ‘종말’뿐일 것이다.
*
멸망은 모든 걸 파괴한다.
하지만 종말은 모든 것의 끝을 고한다.
신이라 해도 예외는 없다.
불멸자들의 상극에 있는 자.
그것이 바로 ‘종말’이다.
멸망은 세상을 파괴할 순 있어도 세상 자체의 끝을 고하진 못한다.
그러나 종말은 가능하다.
‘이곳은 또 하나의 세계다.’
란돌프로 변신하자 세계의 진실이 보였다.
세계수의 던전이 또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잊힌 신들의 세계다.
그들이 헝클어놓고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잘못된 세계였다.
‘애초에 이곳에는 패배하여 잊혀진 악신들밖에 없다.’
명예의 세계수에 왜 잊힌 악신들이 깃들었나.
왜 그들은 명예로운 기사의 혼을 불러들여 잊히게 만들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