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78)
378화. 천마.
‘대지의 씨앗’은 정령왕 움의 상징이다.
움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자만이 움과 계약할 수 있다.
또한, 발아된 씨앗의 성장 정도에 따라 움의 힘을 빌려오는 게 가능했다.
동시에 대지에 뿌리내린 씨앗은 ‘움’이 그곳에 소환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매개체였으니, 씨앗의 발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
-‘움’의 계약은 어떠한 정령왕들보다도 까다롭다.
-우선 ‘대지의 씨앗’을 발아시켜야하는데 발아된 씨앗에서 자라난 나무가 형편없다면 계약을 안하느니만 못하다.
-무엇보다 ‘대지의 씨앗’에서 성장한 나무는 생명력이 약하다. 툭하면 시들고 죽어나간다. 병충해와 재해에도 취약하니 계약자는 나무만 신경쓰게 된다.
-‘움’과 계약할 바에는 농사를 지어라. 그게 낫다.
-가능하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움’과의 계약은 하지말도록!
정령사 사이에선 이러한 격언이 따로 있을 수준이었다.
그만큼 ‘대지의 씨앗’은 발아시키는 것도, 이후의 과정도 까다롭기 그지없었으니까.
씨앗에서 자라난 나무들은 한결같이 허약했고, 툭하면 시들어버리기 일쑤였다.
문제는 나무가 시들면 계약자도 죽는다는 점이다.
결국 계약자는 정령왕과 계약했대도 평생 나무만 돌보게 된다.
너무나도 큰 약점이 생기기에, 스스로 나무가 되려는 게 아닌 이상에야 움과의 계약은 권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어떨까.
절대로 시들지 않는 나무가 씨앗에서 발아한다면?
뿌리내린 대지의 힘이 너무나도 강해서 구태여 지킬 필요가 없다면?
‘움과의 계약은 엄청난 이득으로 돌아올 테지.’
아그니스는 생각했다.
정령왕들 중에서도 계약자들이 가장 크게 고생하는 게 ‘움’이다.
‘대지의 씨앗’에서 발아한 나무는 대지의 힘을 엄청나게 끌어다가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나무가 온전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 땅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비옥해진다.
대지의 정령들이 끊임없이 태어나며.
······ 그 땅은, ‘오염’되지 아니한다.
정령왕들은 모두 ‘오염’에 특화되어 있었다.
아그니스는 태웠고, 움은 오염물을 무려 ‘발아한 씨앗’의 비료로 사용했다.
물의 정령왕 이퀘렐은 정화하며,
바람의 정령왕 샨디는 실어보내 오염의 농도를 묽게 만든다.
오염물이 처리되지 않으면 세상은 전부 ‘심연’처럼 변할 것이다.
혹은 수많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넘어와 혼돈을 초래하게 된다.
그 정도로 세계의 균형을 맞추는데 정령왕들의 역할은 중요했다.
‘이곳에는 오염물이 넘쳐난다.’
하여, 이곳에서 씨앗이 발아를 할 경우 지력이 약해지는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좋다.
도리어 먹을 것이 넘쳐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약한 나무로 발아할 경우인데······ 너무 많은 영양분은 약한 나무를 죽이는 법이었으니.
하지만.
지금, ‘대지의 씨앗’에서 발아한 나무는 뭔가가 달랐다.
달라도 아주 많이 달랐다.
-······ 성장이 아니다. 이건······ 성장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씨앗은 발아했다.
아무도 발아시키지 못했던 걸, 박현명은 피워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 뒤 대지에 터를 잡고 천천히 성장해야 정상이다.
뿌리를 내리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그런데.
-신록······?
씨앗은 ‘신록’이 되었다.
신록은 세계수의 친척과도 같다.
신록이 있는 숲은 번창하고, 숲의 종족들의 한계레벨도 올라갔다.
숲의 종족들이 제알아서 모시고 키우니 관리가 따로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이 역시 없던 일이다.
‘대지의 씨앗’이 신록으로 변한 일은.
하지만 이내 그조차도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아, 아니다. 신록이 아니야······!
‘움’은 경악하고 말았다.
신록이라 착각한 나무는, 계속해서 커져갔다.
순식간에 주변의 오염물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이내 ‘대지의 산’에 있던 모든 오염물질이 사라지고, 정령들도 폭주를 멈춘 채 안정화하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속도다.
성장보단 ‘진화’로 봐야할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신록이 세계수의 친척과도 같다고 한 건 크기를 제외하면 생김새가 매우 비슷한 탓이다.
-이, 이런 게 가능할리가······!
그러니 신록에서 크기가 계속해서 커진다면.
······ 그것은, 무엇일까.
-‘씨앗’이 어떻게 세계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세계수일 것이다.
허나, 이런 경험은 ‘움’에게도 없었다.
대지의 씨앗이 세계수로 발아한 일 따위는.
아무리 ‘대지의 씨앗’이 모든 나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나.
애초에 세계수는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설령 드루이드라 할지라도, 씨앗을 옮길뿐 ‘세계수의 씨앗’을 만들 수는 없다.
세계수의 씨앗은 오직 ‘최초의 세계수’에서만 생성되기 마련이었으므로.
그런데 지금, 세계수가 만들어졌다······.
《‘깊은 심연’에 ‘정령의 세계수’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땅에 만연한 ‘천상의 오염물’이 대폭 감소했습니다.》
《무너진 정령탑이 조금씩 구조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불’과 ‘대지’의 정령들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심지어 그 이름마저도 ‘정령의 세계수’다.
정령들이 반드시 지켜야만하는 이름인 것이다.
《‘대지의 정령왕 움’이 ‘정령의 세계수’에 종속됩니다.》
《‘부서진 황금률의 조각’이 더욱 많이 배출되기 시작합니다.》
《‘정령의 세계수’의 주인은 1,000시간마다 1의 ‘온전한 황금률’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
‘······ 내가······ 내 씨앗에 강제 종속 당했다고?’
이건 대체 무슨 경우인가.
대지의 씨앗은 움 자신의 상징이다.
자신의 상징에 자신이 강제로 구속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말인즉슨, 정령의 세계수를 피워낸 자에게 종속되었다는 뜻.
나무를 키우고, 지키는 의무는 본래 계약자에게 있다.
하여 나무가 죽거나 시들면 계약자가 죽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의무와 책임이 지금 ‘움’에게 배정되었다는 의미다.
‘정령의 세계수가 시들면······ 내가 소멸할 수도 있다······.’
이상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상적인 게 없었다.
정령왕과 계약했으면서 아무런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다.
그저 정령왕의 힘을 다루는 게 전부일뿐인 계약이라니.
이런 게 계약일 수 있는가?
‘움’의 시선이 문득 그 옆에 선 존재에게로 향했다.
-환영한다, 동지여.
그러자 아그니스가 지금껏 보인적 없던 미소를 띠며 말했다.
*
명예의 세계수.
그리고 정령의 세계수.
이로써 나는 두 그루 세계수의 주인이 되었다.
특히 명예의 세계수는 ‘세계수의 던전’을 클리어하며 천시간마다 2의 ‘온전한 황금률’을 얻을 수 있었으니.
‘대략 40일마다 세 개의 온전한 황금률을 획득할 수 있겠군.’
미쳤다.
누군가는 신화적인 업적을 달성해야만 겨우 하나 얻을까 말까한 게 ‘온전한 황금률’이었다.
그걸 숨만 쉬어도 가질 수 있다.
그것도 한 개도 아니고 무려 세 개나!
“세, 세계수라니······!”
“잠깐. 그럼 ‘세계수 커뮤니티’도 연결된 거 아니야?”
“··· 아니야. 아직 뿌리가 외부로 닿지 못하고 있대.”
지켜보는 이들도 난리가 났다.
느닷없이 세계수가 나타났으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세계수 커뮤니티’와의 연결은 아직이었다.
물론, 희망적인 관점은 있었다.
“어쨌든 이제 황금률의 조각을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잖아!”
“업적에 따라서 분배되겠지.”
“생각보다 속도가 빨라. 이대로면 물과 바람의 정령왕도 금방 정복하겠어!”
“그런데 대지의 정령왕과 계약한 게, 설마 저 남자야?”
환희와 환호도 잠시.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이 역시 당연한 의문이었다.
내 차례에서 씨앗이 발아해 세계수가 되었으므로.
“진짜 누구지?”
“한국 파견팀이랑 같이 온 사람 아니야?”
“맞아. 분명히 파견팀 ‘명단’에는 없었다고······.”
“정령왕 둘과 계약하다니······ 틀림없이 엄청난 사람이겠지?”
사상초유의 사태다.
불의 정령왕 때에는 검게 물든 알카르에게 시선이 쏠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지의 정령왕까지 거머쥔 남자다.
대체 누굴까.
누구기에, 파견팀의 명단에도 없었는가?
“그의 정체는 기밀이다.”
이아린이 소란을 종식시켰다.
절대로 알려줄 수 없노라고.
박태우와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그가 ‘박현명’인 것이 들통나면, 전세계가 그를 원하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박현명의 이름은 ‘슈퍼 루키’로 명성이 드높았는데 두 정령왕과 계약했다는 이야기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한국은 그를 지켜줄 힘이 없다.
영웅연합도 마찬가지다.
모든 나라가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특혜들을 그에게 부여할 것이고, 박현명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리하면, 이아린 그녀와도 자연스레 멀어질 테지.
“흠. 한국이 그동안 감춰둔 강자란 소리로군.”
“한국······ 생각보다 저력이 있는 곳이었어······.”
“그동안 우리가 잘못 파악하고 있었구나······.”
이아린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제멋대로 생각했다.
다크스타를 순식간에 꺾은 이아린도, 두 정령왕과 계약한 저 남자도 모두 한국인이다.
저 둘만으로도 여태껏 그들이 파악한 한국의 전력을 순식간에 압도한다.
“다음 목적지는 ‘물의 산’이다. 그곳에서 ‘물의 정령왕 이퀘렐’을 제압한다.”
그때였다.
팬텀······ 아니, 검게 물든 알카르가 말했다.
언제까지 주절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 순간이었다.
꽈르르릉!
산이 흔들린다.
깊은 심연 전체가 미친 듯이 흔들려댔다.
“지, 지진?”
“아니야······!”
“저길 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매몰되었다.
그곳은 ‘물의 산’.
하지만 떨림이 길지는 않았다.
대신, ‘물의 산’이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것을 본 ‘아그니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퀘렐이 소멸했다······.
······ 소멸했다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곧이어 아그니스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산 전역에 넘실댔다.
-아그니스. 진정해라. 대지의 정령들이 버티지 못한다!
대지의 정령왕 움이 말려세웠으나 소용없었다.
아그니스는 억겁 이래 처음으로, 극한의 분노를 느꼈다.
동시에 누가 이퀘렐을 소멸시켰는지 깨닫게 되었다.
-천······ 마······!!
*
계획이 바뀌었다.
인간들이 불의 정령왕을 제압하고, 계약한 순간부터.
온전한 ‘혼돈의 정령왕’은 이제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심연의 주인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혼돈왕이 되겠노라.”
물의 정령왕 이퀘렐을 강제로 소멸시켰다.
이후 정령왕의 인자를, 천마는 먹어치웠다.
‘천축의 고래······ 눈치가 빠른 년이군.’
다만, 목적한 바를 전부 이루진 못했다.
천마는 ‘천마도’의 악신을 전부 흡수해냈다.
더 이상의 벽이 없고, 더 이상의 하늘이 없으니, 그야말로 무적 아니겠나.
그래서 물의 정령왕과 함께 ‘천축의 고래’도 먹어치우려고 했다.
천마.
그는 이미 이곳에 있는 심연의 주인을 둘이나 헤치웠으니.
‘기다리고 있거라, 가라앉은 황제여.’
하지만 가장 탐이 나는 건 단연코 ‘가라앉은 황제’였다.
그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화할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이 무릎 꿇을 것이다.
천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세계수······?”
난데없이, 대지의 산에 세계수가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인간사냥을 나갔던 ‘혈월신녀’도 돌아오지 않는다.
천마는 턱을 쓸었다.
그리고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