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갓겜.
부활(復活).
죽음에서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다.
실제로 마왕이 부활하며 죽은 8군주들 모두가 살아났듯이.
하지만 엄밀히 말해 진정한 부활은 아니었다.
빌헬름의 죽음과 함께, 그의 영혼을 지키고자 몸을 던진 여신 피나.
그녀가 산산조각나며 흩트린 ‘별’에 의해 재생했을뿐.
말 그대로 재생이다.
파괴된 마계가 복구되며 군주들도 재생되었을 따름이다.
애당초 군주(君主)란 마계의 영역에 적을 둔 자.
마왕에게 생명과 혼을 바친 자들이다.
군주들은 굳이 따지자면 생명체보단 죽은 언데드에 가깝다.
언데드가 되살아났다고 그걸 부활이라 부르지는 않는 것처럼.
“··· 인간은 부활할 수 없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박현명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의 죽음은 공평하다.
항상 ‘끝’으로 귀결된다.
그걸 되돌릴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딴 짓은 하지 않는다.”
가라앉은 황제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한데, ‘그딴 짓’이라니.
시간을 되돌려보기라도 한 것 같은 묘한 표현이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박현명은 완전히 죽은 게 아니다.”
“······ 어이가 없구나. 죽음에 정도가 있다는 것이냐?”
가라앉은 황제의 말은 어폐가 있었다.
죽음이란 단어는 정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라앉은 황제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완전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면, 저 두 정령왕은 즉시 소멸했을 터.”
불의 정령왕 아그니스.
대지의 정령왕 움.
그들은 박현명과 직접 계약한 정령왕들이다.
왜인지 계약한 것만으로도 상상이상의 기적을 일으켰다.
-거대한 존재들이 그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아그니스와 움이 말했다.
그들이 힘을 잃고 크기가 계속해서 작아져가듯, 박혀명의 ‘완전한 죽음’도 이제 초읽기라는 뜻이었다.
“시간이 없다, 칠군주 바사라.”
“······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칠군주 바사라와 가라앉은 황제는 만난 적이 없다.
심연의 존재가 바깥의 존재를 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물며 마계는 심연이 생긴 뒤에 나타난 세계다.
그 전에 알았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황금의 정령은 자격없는 자들에게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오직 너만이 보고, 물을 수 있다.”
“너는 자격이 없다는 거냐?”
“아아. ‘마몬’도 자격이 부족했지.”
마몬은 자아를 상실했다.
완전히 먹혀버렸다.
자격이 부족했기에.
추악한 말로다.
하지만······.
“두려운가?”
두렵냐고?
무엇이?
칠군주 바사라, 무적이라 일컬어지는 자신이?
“용신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
바사라는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용신이란 세계의 수호자.
그런 자격 같은 건, 바사라에게 없었다.
··· 쫓겨나듯 도망쳐 마계에 도착했을 뿐.
마계의 수호자라면 수호자이겠으나, 도망친 끝에 낙원은 없는 법.
황금의 정령이 바라는 온전한 수호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이 자는.
아니,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넌······ 단순한 심연의 주인이 아니로구나.”
심연의 주인이 이러한 사실들을 알 리 만무했다.
가라앉은 황제는 단순한 심연의 주인이 아니라, 어쩌면 ‘심연 그 자체인 자’일지도 모른다.
심연에서도 공포로 자리잡은 존재들을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다.
그 순간.
“··· 나는 가라앉은 황제.”
스윽.
가라앉은 황제가 천천히 투구를 벗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자마자.
“······!”
바사라의 두 눈에 경악이 스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얼굴이.
너무나도······.
“멸망한 세계에서 몰락한 황제였던 자.”
······ ‘잠들어있는 황제’와 똑같았으므로.
*
아르혼 제국의 기원.
잠들어있는 황제가 언제 나타났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제국은 그를 신처럼 우상했다.
때문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제국 어느 영토를 가도 황제의 얼굴을 딴 석상은 존재했으니까.
닮을 수는 있다.
세상에는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세 명은 있다고 하듯, 상당부분이 비슷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사라가 착각할 리 없었다.
확실하게 일치한다.
본인이 아니라면 이해가 안 될 수준이었다.
···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 경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신병’······.”
신병이란 플레이어가 빙의한 자를 뜻하는 단어다.
하여, 신병(神病)에 걸린 자들을 제국은 지웠다.
대신 비슷하거나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들어, 그 자리에 세웠다.
“궁금할 테지. 나 역시도 궁금하니.”
허나 그 답에 대해선 가라앉은 황제 본인도 모르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는 심연 속에서 억겁의 세월을 보냈다.
제국의 신병과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우연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작용이 있는건지.
전부를 아는 듯 행동하나,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
‘박현명을 본 순간, 신의 섬에서의 기억이 재생됐다.’
분명한 것은 대지의 산 앞에서 박현명을 본 순간 지워진 기억이 재생되었다는 것이다.
사라진 조각이 등장하자, 그의 힘이 나머지 부분을 자동으로 복구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심연에 갇혀 자신이 그동안 잊고 있던 기억도 어느정도 수복됐다.
‘나는··· 타차원의 회귀자다.’
수복된 기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시간을 되돌려, 멸망할 세계를 구해냈다.
오롯이 황제가 됐다.
하지만 결국 세계는 멸망했다.
그것도 더 참혹한 형태로.
차라리 구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살아갈 순 있었을 터인데.
‘천상’은 황제를, 황제의 세계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리는 행위가 천상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하여, 난도질했다.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기억과 힘을 잃은 채 황제는 심연의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그 뒤의 기억이 없다. 소실되었다.’
문제는 모든 게 100% 떠오르진 않는다는 것.
솔직히 왜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현명의 이름과 바사라에 대한 사실들을 말이다.
이건 과거의 기억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수많은 정보들을 취합해 알아낸 결과일 수도 있었다.
그의 능력은 신조차 불가한 연산을 가능케하므로.
가장 높은 확률을 택해, 미래시와 같은 수준으로 앞을 내다보는 게 가능하다.
박현명을 부활시키면 어느정도 해답이 나올 테다.
놈을 죽여야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할지도 말이다.
‘천상과 관계되어 있다면 필히 죽여야겠지.’
······ 물론, 박현명이 ‘천상’과 관계되어 있다면, 죽일 것이다.
그러니.
“물어보도록.”
전부 물어봐라.
궁금한 모든걸.
황금의 정령이라면 답해줄 것이다.
“······.”
바사라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허나, 더는 망설일 수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박현명에게 계속 시선이 갔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 이유를 알고싶었으니까.
툭-
칠군주 바사라가 마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쥔 황금상을 빼앗았다.
동시에.
“······!”
바사라의 신형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이어 세상의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점 시야가 확대되며 이곳 심연의 전부가 보인다.
심연 전체와 지구가, 판게니아가.
우주가, 또 다른 멸망한 세계들이,
그리고 ‘천상’조차도.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열쇠가 없기 때문이다.
황금의 정령은 ‘문’이지만, 모든 ‘문’을 열기 위해선 열쇠가 필요하다.
그녀가 지닌 열쇠로는 천상을 열 수 없다.
허나······ 지금 그녀가 궁금한 건 천상이 아니었다.
‘보인다.’
보였으니까.
박현명이.
그의 영혼과 육체는 아직 완전하게 붕괴되지 않았다.
어느 수준에서 고정된 채 지켜지고 있다.
아마도 정령왕들이 말하는 ‘거대한 존재’들에 의해.
-또 실패했나.
박현명은 자조적인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이러한 실패를 겪었는지.
슬슬 신물이 난다는 말투였다.
그러자 그의 영혼 주변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여신들.
레아와 피나의 형상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하지만 박현명은 느끼지 못한다.
그저 계속해서 작아져만 가고 있다.
실패를 후회하며 어둠속으로 매몰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다른 존재가 나타났다.
-일어나라, 당장! 이 머저리 같은 놈!
그는 원시천마였다.
처음보는 존재일진대, 알 것 같았다.
황금의 정령과 일체화한 덕이다.
허나 원시천마의 꾸짖음도 소용없다.
-······.
묵묵히.
조용히 나타나, 옆에 선 존재가 있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다독이지도, 꾸짖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옆에 있을 따름이다.
무엇을 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듯이.
그를 본 바사라의 두 눈동자가 여느때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흔들리기 시작했다.
‘빌, 헬, 름······.’
정적이 흘렀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 왜 그가 박현명의 옆에 있단 말인가.
기사왕, 마왕을 죽인 자.
그와 박현명 사이에 어떠한 인연이 있기에?
하지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틀림없이 죽었을 터인 그가.
어딘가로 사라진 그의 영혼이.
지금, 분명히 박현명의 옆에 있다는 게.
혼란스럽다.
설마 그녀가 계속 박현명을 눈여겨본 이유가 이것일는지.
빌헬름의 영혼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까?
그의 옆에 있는 빌헬름을 보고서 끌렸던 걸까.
허나,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으나.
저 멀리서 박현명을 바라보는 존재가 한 명 더 있었다.
-······.
란돌프.
온갖 어둠을 뒤집어 쓴, 또 다른 멸망.
종말이라 불리는 괴물!
너무 어두워서 하마터면 황금의 정령도 못 볼 뻔했다.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어둠 속에서 박현명을 지켜보고 있었다.
표정도, 눈빛도 읽히지 않지만.
부르르르!
바사라는 몸을 떨었다.
저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공포스러운 존재다.
빌헬름과는 완전히 상극에 있었다.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는 조합.
저 둘을 이어주는 것 역시 박현명이었다.
‘두 여신과 빌헬름, 란돌프······.’
왜?
왜 그들이 이곳에 한데 모여있는 거지?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존재들이다.
한데 모여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이들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가 무엇일까.
‘박현명.’
답은 간단하다.
이들은, 박현명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되고 싶었던 자가 바로 박현명인 탓이다.
당연히 착각할 수밖에 없다.
2세대 각성자로 뒤늦게 각성한 것도 알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 각성한 것이다.
자신을 자각하여 비로소 완성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실패했다.
자신의 안일한 선택이 죽음을 불러왔다.
빌헬름이나, 란돌프라면 실패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렇다면 박현명은 누굴까?
그와 같은 생각이 듦과 동시에.
다시, 세상이 바뀐다.
탁. 타타탁.
어느덧 나타난 좁은 방.
박현명은 그곳에서 게임을 하고있었다.
“칠군주 바사라? 와- 이 녀석 진짜 강한데? 이렇게 복잡한 패턴이라니!진짜 갓겜이네!”
박현명이 두 팔을 걷으며 입술로 혀를 훑었다.
재밌다는 듯이.
아주 흥미롭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한 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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