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천둥 사자.
사신교가 바라보는 판게니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바로 ‘죄인’과 ‘죄인이 아닌 자’.
죄인은 ‘신병’을 통해 다른 존재에게 육체를 저당잡힌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사신교에게 있어서 반드시 벌하여야만하는 악(惡)이다.
세계의 균형을 비틀고 어지럽히는 악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 플레이어를 사신교가 죽이는 것은 신벌(神罰)이었다.
죄가 아니다.
도리어 권장되는 사항이다.
검역을 통해 ‘솎아내기’를 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빙의한 플레이어를 찾아내어, 죽이는 것.
사신교에선 그것을 ‘소독을 한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더러운 걸 지워내는 일인 탓이다.
그리고 간혹, 신병에 걸린 자들 중 스스로 깨우친 자들이 있다.
속박에서 벗어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조종한 ‘악의 화신’에 대한 단서를 알게된 초월자들!
사신교에서 그들은 ‘집행자’로 통하며 중역을 맡게된다.
자신을 조종한 플레이어에 대한 깊은 원한과 원망을 갖고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소독’에 열과 성을 다했다.
“사, 살려줘!”
“나, 나는 죄인이 아니야!”
신벌의 대상이 되는 30명가량의 사람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들은 사신교의 제단 앞에 무릎꿇었다.
‘집행자’들이 데려온 ‘플레이어’라 확신되는 이들이었다.
“영지 하나에서 30명이 넘게 나왔다고?”
“잠깐. 저중에 한 명은 아르딘 영주 아닌가?”
“음. 더러운 벌레들과 유착관계가 있었다더군.”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군댔다.
제국의 영토는 주기적으로 사신교의 ‘소독’ 대상이 되곤 했는데, 최근들어 한 도시에서 30명이 넘게 잡힌 일은 없었다.
한 명만 나와도 질책의 대상이 되건만, 30명이 넘는 숫자라니!
영토의 주인이 ‘플레이어’와 유착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죄인······ 플레이어 역시 ‘소독’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제국의 영토에 들어올 일은 어지간해선 없었으니까.
플레이어에게 제국은 금지(禁地)의 땅.
절대 발을 들여선 안 되는 지옥이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거예요! 집에 아내와 어린 딸이 있단 말입니다!”
그때, 한 남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항변했다.
아내와 자식이 있으니,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는 말.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다.
죄인은 보통 가족이 없었으므로.
이 세계에 적을 두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오락처럼 이 세계를 마주하곤 했으니.
동정을 살 법한 이야기지만 주변에선 코웃음만 쳤다.
“죄인이 가족까지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제법 노력했군.”
“하긴, 저정도는 해야 제국에서 살 수 있지.”
“쯧쯧. 그런데 하필이면 ‘천둥 사자’님한테 걸려버렸군.”
집행자들은 이미 한 번 죄인이었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초월하여 깨우쳤다.
당연히 플레이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떠한 사고를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천둥 사자’라 불린 남자의 적중률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천둥 사자’가 잡아온 사람은 무려 100%의 확률로 죄인이었다.
그는 천둥을 다루는 대마법사이며, 집행자들 중에서도 세손가락안에 들어가는 강자.
또한, 죄인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집행자였다.
왜냐하면.
“그 소문이 사실일까?”
“뭐가?”
“‘천둥 사자’님이 ‘팬텀’의 아바타였다는 게······.”
······ ‘팬텀’의 아바타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팬텀’이 애지중지 육성한 아바타라는 소문이 있었다.
아바타란, 악의 화신에게 빙의되어 조종되는 육체를 뜻한다.
그리고 ‘악의 화신’ 중에서도 ‘팬텀’은 굉장히 유명한 존재였다.
아바타는 스스로 초월하면 조종당할 때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조종한 ‘악의 화신’에 대한 단서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예컨대 목소리, 이름, 실루엣이나 배경과도 같은 것들을.
그런데 집행자 중에서 유독 겹치는 단서가 많았다.
팬텀······ 그에 대한 증거가.
죄인들이 말하는 ‘팬텀’과 같은 인물임이 분명하며, 팬텀이 육성한 아바타는 유독 초월자가 많이 탄생했다.
집행자들의 대략 30%정도는 ‘팬텀’의 아바타라 추정되고 있다.
‘천둥 사자’도 마찬가지.
다만, ‘팬텀’의 아바타가 사신교 내에서 받는 취급은 그다지 좋지 않다.
‘팬텀’은 반드시 멸해야하는 ‘악의 화신’이었으므로.
악의 화신들 중에서도 제일 꼭대기에 있는 괴물이다.
‘기필코 찾아내어······ 죽인다.’
당연히, ‘팬텀’에 대한 천둥 사자의 원한은 깊고 깊다.
초월했을 때 그는 자신이 아바타로 조종당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뇌신강림’이라는 이상한 이름과 함께 시작되어 수도 없이 죽음으로 몰아붙여졌다.
허나, 그에겐 아픈 딸이 있었다.
아픈 딸조차 망각해버린 채로 팬텀에게 조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억을 되찾았을 때, 그의 딸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어디에도 없었다.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그 원한을, 울분을, 어찌 잊으란 말인가.
팬텀도, 다른 죄인들도, 그에겐 모두 처분 대상이다.
“천둥 사자. 다른 집행자들도 다들 그대만큼만 했다면 이미 제국 내에 죄인은 멸절했겠지.”
한 남자가 제단으로 걸어들어왔다.
그가 나타나자 모두 급히 고개를 숙였다.
황금 가면.
그는 사신교의 대사제다.
다른 짐승 탈을 쓴 대사제들보다도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실상의 교주였다.
물론 사신교는 ‘잠든 황제’를 교주로 내세우고는 있으나 그는 이미 오랜세월 일어나지 않았으니.
“······ 황금 가면을 뵈옵니다.”
“아아, 그대라면 굳이 확인절차가 필요없다. 모두 처형토록.”
천둥 사자에 대한 황금 가면의 신의는 이미 두터웠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30여명의 사람들은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죄인이 아닙니다!”
죄인을 처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화르륵!
제단에 불길이 솟아났다.
······ 태우는 것이다.
현재 ‘악의 화신’이 깃든 ‘아바타’는, 전과 달리 일체화해있다.
아바타를 죽이면 악의 화신도 죽는다는 건 사신교에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불태운다.
가장 끔찍한 고통을 맞이하도록.
“뜨, 뜨거워!”
“끄아아아악!”
천둥 사자는 그들이 타는 장면을 한 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
무감정하게.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저 무덤덤히 ‘악’의 최후를 바라보는 것이다.
*
“······.”
벌떡!
‘그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수면을 취하던 도중, 천둥 사자는 부리나케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 꿈인가?”
이상했다.
방금 전 꿈 속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너무 생생해서.
주르르륵!
눈가에 타고 내려오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천둥 사자는 조용히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무슨 짓을······.”
꿈이다.
꿈일 것이다.
하지만, 꿈이 아닌 것 같다.
방금 전 겪은 기억은 지독할정도로 현실과 같았다.
그리고 그건.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또 다른 기억’이었다.
“내가······ 내가 죽인 거였나······.”
딸의 목숨을 끊은 게,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좋지 않은 아이었다.
불치의 병은 낫기는커녕 아이를 좀먹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죽여달라는 아이의 수도 없는 요청을, 그는 결국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파랑새······.’
파랑새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실제로 목숨을 끊었으리라.
-모든 걸 잊고, 잃어도, 한 가지 소원을 이룰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도전해보고 싶지 않니?
-··· 죽기 전에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이건 현실이란다. 그리고 나는 ‘운영자’란다.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나타났다는 거냐?
-그럼.
-내 딸을 건강하게 되살리는 것도 가능한가? 나의 목숨은 상관없다.
-당연히 가능하단다.
딸을 건강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말.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계약 후, 전후의 기억이 사라졌다.
그때 이미 ‘아바타’가 된 것이다.
결국, 스스로 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악의 화신······ ‘팬텀’이 자신의 육체를 조종하게 된 건.
‘내게는 막대한 빚이 있었다. 그래서 흑마법사에게 실험체로 팔려가고 있었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이의 병을 낫게하고자 진 빚이 미친 듯이 불어,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자 사채업자들이 그를 흑마법사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흑마법사의 실험체가 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팬탬은 자신을 구출했다.
좀비가 득실대는 그곳에서.
단순한 구출이 아니라 흑마법사를 죽이고, 번개의 마법마저 익히게 했다.
이후 끊임없이 단금질을 하며 그를 육성해냈다.
목표는 오직 하나.
세계의 끝을 보기 위해.
······ 자신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딸을, 건강하게 되살리고자.
‘초월했을 때도 알지 못했건만.’
그러나 초월하며 되찾은 기억은 조종당했을 때의 기억뿐이다.
이토록 중요한 기억이, 봉인되어 있었다.
왜?
파랑새는 왜 그 부분을 잠구었나.
사신교는 그 부분을 파고들어, 플레이어에 대한 원한을 자극시켰다.
혹시 파랑새와 사신교는 한패일까?
확실한 건.
이건, 꿈이 아니다.
지독할 정도로 끔찍하지만 현실이다.
그는 스스로 깨달은 초월자다.
꿈과 현실을 분간못할만큼 멍청하지 않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문제는 그가 ‘집행자’가 되며 저지른 일들.
플레이어를 ‘악의 화신’으로 확신하고, 미친 듯이 찾아다녔다.
어쩌면 그중에 ‘팬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다른 플레이어는 몰라도, ‘팬텀’은.
팬텀만큼은.
‘나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주었다. 구원했다.’
··· 다르다.
반드시 찾아내어 죽이려했던 대상이, 사실은 자신을 구원한 구원자라니.
그가 아니었다면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흑마법사와 좀비들을 상대로 감히 살아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터였다.
이후 팬텀이 자신의 육체로 진행한 수많은 업적들.
그 또한 하나하나가 경이롭지 않은 게 없다.
죽음으로 몰아붙인 게 아니라, 자신이 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 해줬을 따름이었다.
모든 게 착각이다.
섣불렀다.
멍청했다.
“··· 너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있나보군.”
천둥 사자가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의 앞에 다수의 집행자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모두 ‘팬텀’의 아바타였던 자들이다.
아마도 자신과 같이 동시에 알게 된 것이리라.
“사신교는 근간부터 잘못된 집단이다.”
“우리는 속은 거다.”
“천둥 사자. 어찌할텐가?”
모두가 천둥 사자의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천둥 사자는 고민했다.
무언가를 하려거든 기회는 지금뿐이다.
머지않아 사신교도 그들이 기억을 되찾았음을 알게 될 터.
그들이 알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었다.
천둥 사자가 이내 결론을 내렸다.
“······ 우선 ‘황금 가면’을 죽이도록하지.”
*
제국제일검 라이가.
세계수의 던전을 클리어한 이후, 그는 곧장 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의 깨달음을 보다 완숙히 하고자.
그리고 그가 제국에서 해야할 일이 남아있음에.
“······.”
저 멀리, 더 먼 곳을 바라보던 라이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화르르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