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백왕 VS 흑왕.
배신자가 있다.
이곳에.
사신교의 간부이자, 11명에 달하는 정통의 후견자들.
오직 그들만이 이 은밀한 밀행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속단하지 마라, 황금 가면.”
그때, 금빛의 여우 가면을 쓴 여인이 말했다.
제국의 무수히 많은 여우 가면의 검사들을 키워낸 장본인이자, 발로그 교단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존재.
사신교 서열 3위인 그녀의 말은 황금 가면도 쉬이 무시할 수 없었다.
“별 수호자들이 입구를 틀어막았다. 이게 배신자의 소행이 아니라는 게냐?”
“네가 말했지 않느냐. 오주력이 염소이고, 염소가 란돌프······ ‘팬텀’이라고. 처음부터 우리를 농락한 놈이니, 우리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테지.”
······ 팬텀.
그렇다.
그들은 이미 12번째 정통의 후견자로 나타난 ‘염소’를 ‘팬텀’이라 확정하고 있었다.
놈이 팬텀이라면 모든 게 들어맞았다.
심연 미궁을 정복하고, 사신교에 입단해 그들의 면면을 살폈으니 움직임과 동선을 예상하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것이리라.
팬텀의 아바타들이 배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팬텀’은 높은 확률로 ‘빌헬름’의 화신이다.
그리고 ‘황금 가면’은 빌헬름을 증오했다.
제국이 대원정을 돕지 않은 건 황금 가면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한데, 증오의 대상이 사신교를 농락했으니.
······ 파멸시키지 않고선 성에 차지 않는다.
사신교의 간부들이 오랜만에 ‘미궁 침략’에 의견을 일치한 까닭이다.
“놈은 우물이다. 우리도 끝을 알 수 없는 우물.”
“아아, 만만한 녀석이 아니지.”
여우의 말에 사자도 동의했다.
사신의 만찬회에서 연거푸 모든 영혼을 독차지한 자가 바로 염소였다.
그들을 도발하고, 어울리지 않으며, 라이가와 사신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행동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아무도 놈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실로······ 소름돋는 놈이었다, 팬텀은.
“별 수호자들이 미궁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들로선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아니 그런가, 황금 가면?”
“······.”
황금 여우의 말은 구구절절 정론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별 수호자들은 ‘여신의 별’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어지간해선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런데 미궁도시를 침략하려하자 별 수호자들이 대거 나타났다.
미궁도시, 혹은 오주력과 별 수호자들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뜻일 터.
게다가······.
‘······ 멸악의 거인이 움직였다.’
냉정하게.
황금 가면은 작금의 상황을 돌아봤다.
우선 별 수호자들 무리와 그 가운데에 위치한 멸악의 거인.
멸악의 거인은 ‘어머니 별’을 지키는 수호자다.
그 강함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다.
‘멸악의 거인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팬텀뿐이다.’
멸악의 거인이 직접 움직였다면, 염소와 오주력의 정체가 ‘팬텀’이라는 게 더더욱 확실해진다.
팬텀 란돌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농락한 존재 말이다.
“열을 좀 식히거라. 멸악의 거인은 내가 상대할 테니.”
“······ 알겠다, 황금 여우여.”
황금 가면이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여 배신자를 찾겠다고 균열을 일으키는 건 좋지 않은 수다.
지금이야말로 사신교가 단합할 때였다.
그것을 알기에, 그들 모두가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이번 한 번은 네놈의 장단에 맞춰주마, 팬텀.’
황금 가면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놈이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해놨을 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자신을, 사신교를 상대할 순 없을 테니.
*
미궁에 진입한 다크엘프들은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은신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
모든 종족을 통틀어 가장 은밀한 게 다크엘프다.
아무리 강력한 괴물이라도, 감히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대체 몇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거지?
-벽을 봐. 구역마다 레벨이 적혀있다.
-······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3레벨.
-로드시여. 더 올라가시겠습니까?
다크엘프들은 황금률의 실선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중, 로드라 불린 자.
얼굴과 전신을 검은 천으로 가린 존재.
그는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마치 탑처럼,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
구역을 지날 때마다 계단을 오른다.
구역 하나하나가 워낙에 방대해서, 같은 구역도 입장한 위치에 따라 다른 구역처럼 여겨질뿐, 구역 자체는 10개로 나뉘어 있다.
이건······
‘미궁이라기보단 탑이다.’
탑에 가깝다.
문제는 계단을 잘못 선택하여 오르면 반대로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구역마다 오를 수 있는 계단은 수십군데나 있었고, 그중에 제대로된 계단은 하나뿐이 없을 터.
그리고 9레벨의 구역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미궁의 중심으로 뻗어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확실히 미궁이다.
역대급 고난이도로 설계된.
또한, 계단을 오르는 순간 전혀 다른 구역이 나타나며, 올랐던 계단은 사라진다.
이는 즉.
‘돌아가긴 힘들 것 같군.’
··· 돌아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미 그들은 미궁에 갇혔다.
입장한 순간 그렇게 되었다.
흑왕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생존부터 걱정해야할 판국이다.
계속해서 오르고, 또 올라, 미궁의 중심으로 나아가거나.
운좋게 얻어걸려 워프를 찾고 되돌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올라간다.
오를 수밖에.
애초에, 이곳엔 올라가는 계단밖에 없었으니.
하지만 분명히 규칙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패턴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하여 몇 번이나 계단을 올랐을까.
-······.
-······.
다크엘프들이 숨을 멈췄다.
벽에 적힌 ‘7Lv’이라는 숫자.
어느덧 미궁의 끝에 거의 다다랐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은신한 다크엘프들을 ‘소녀’가 정면에서 쳐다본 탓이다.
“······ 안녕?”
“아······.”
“도망······!”
보자마자 알았다.
저건, 다크엘프들이 상대할 수 없는 종류의 괴물이라는 걸.
그들은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 하지만, 이미 계단은 사라졌다.
도망칠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 만나서 반가워······ 그러니까··· 으음.”
그 순간이었다.
스르르르르르!
소녀의 뒤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손’이 나타난 건.
본 적이 있다.
다크엘프 로드는 저 손들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투신의 탑.’
그곳에서 빌헬름이 안정시킨 괴물이 있지 않은가.
루카리아라고 했던가.
그 ‘절망’을 다시 여기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저 절망이 고작 7레벨이라니.
그렇다면 이 위의 레벨에 있는 존재들은 대체 어떤 괴물이란 말인가.
이윽고, 소녀는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 죽어줄래?”
*
······ 정찰을 보낸 다크엘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로드도 함께 보내었건만.
심지어 사신교도, 발로그 교단도 마땅한 소식을 보내오고 있지 않았다.
‘전부 따로 놀고있나.’
모두가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듯했다.
다크엘프들마저도 말이다.
이래서야 시간낭비일뿐이다.
더는 지체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진입한다.”
미궁으로 진입하여 결판을 낼 수밖에.
흑왕이 명하자, 검은 짐승들이 물결처럼 쏟아지며 워프로 향했다.
살인병기이자, 완전체의 생명체들.
그들을 감히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걸 아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침내 흑왕마저도 워프를 넘어갔을 때.
갸아아아악!
그오오오오오-
파괴와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이 그의 눈앞에 펼펴졌으니까.
검은 짐승들의 진격을 막는 건 왜인지 눈에 익은 무리였다.
‘······ 북부의 괴물들.’
허.
설마 백왕이 벌써 참전했다는 의미인가?
허나, 북부의 괴물들은 검은 짐승을 이길 수 없다.
주력들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할진대······.
“··· 진화했나.”
백왕이 백호족의 능력을 각성한 듯싶었다.
종을 진화시키는 그 절대적인 힘을 모두에게 흩뿌린 것이다.
흑왕이 검은 짐승을 만들고, ‘히든 특성’을 부여했듯이.
저게 바로 ‘백호족’의 권능이다.
‘백호족’과 ‘흑호족’은 태생부터 천적관계였다.
하지만 백왕은 풋내기다.
어금니를 잃고, 능력조차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반푼이에 불과했다.
‘재밌군.’
일이 재밌어졌다.
백왕을 죽이는 게.
그간은 너무 시시할까봐 걱정이었거늘.
하지만, 이상하다.
주력이라는 놈들이 남부전선을 형성하며 진격을 막은 것도 그냥 지켜보았다.
백왕의 능력과 주력들의 무력을 평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당시 확인한 주력들의 능력은 기대이하였다.
애초에 이주력 ‘사왕’이라 불리던 놈도 형편없었으니.
그저 사왕의 영혼이 그 특성상 ‘절망’에게 걸맞았을뿐.
‘백호족의 권능을 각성한 게 최근인가보구나.’
과연.
그렇다면 앞뒤가 맞는다.
흑왕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제 막 각성한 권능으로 자신이 완성한 ‘검은 짐승’을 전부 막을 수 있을까?
콰지지직!
쿠르르르릉!
순간.
모든걸 찢어갈기며 나타난 괴물이 있었다.
전신이 근육으로 이루어졌으며, 수많은 눈이 육체에 박혀있는 괴물.
놈은 등장 즉시 검은 짐승들을 유린하기 시작헀다.
흑왕은 그 괴물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웠다.
자연스레 지워졌다.
그리고 정색하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무엇인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멸왕······ 모크······?”
······ 백호족의 가장 뛰어난 완성품이라 칭해지는 존재.
종의 궁극이라 불리던 괴물.
멸왕 모크!
허나······ 멸왕 모크는 이 세상에 남아있을 수 없다.
단순히 백호족의 권능을 각성했다한들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지금 백왕이 다루고 있다는 건가?
흑왕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찰나.
“오랜만이로구나, 흑왕.”
저 멀리서, 백왕이 등장했다.
윤기나는 흰색의 털과, 잃어버린 어금니를 되찾은 채로.
“겁쟁이가······.”
흑왕이 혀로 입가를 쓸었다.
백왕은 겁쟁이다.
하여 한 번을 제외하면 절대로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런데 자처하여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일는지.
“또 옛날처럼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빌 작정이냐?”
게다가 이미 백왕은 흑왕에게 패배한 전력이 있다.
백호족과 흑호족이 마지막으로 전쟁을 벌였을 때.
그가 백왕이기 이전에.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의 일이다.
“··· 백호족과 흑호족의 전쟁은 우리 대에서 끝내도록하지.”
“그때도 말했다만, 네놈은 백왕의 그릇이 아니야.”
“네놈도 흑왕의 그릇은 아니었지.”
백왕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그가 처음부터 백왕인 건 아니었으므로.
어렸을 때부터 겁이 워낙에 많았으니.
무적무패의 제왕이라 불린 건 오직 이기는 싸움만을 해서다.
하지만 단순한 자격을 논한다면 그건 흑왕도 마찬가지다.
백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데······, 나는 네놈에게 패배한 적도, 울고불고 빈 적도 없다만. 그건 네놈 아니었나, 흑왕?”
“··· 아무래도 기억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겠군.”
촤르르르르-
흑왕의 전신이 부풀어오른다.
신체의 모양이 변하고, 마침내 네 발로 보행하는 짐승처럼 변화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마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쩌어어어억!
그건 백왕도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나타난 거대한 백호와 흑호의 모습.
너무나도 강한 탓에 감춰두어야만 했던 형태다.
곧이어,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오오오-
크롸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