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98)
398화. 베일이 벗겨지다.
별 수호자.
여신의 별을 지키는 영험한 괴수들.
그들은 별을 지키는 대가로 영생과 힘을 부여받는다.
또한, 자격 있는 자를 판별하는 시험자의 의무도 떠안게 된다.
일반적인 종의 규격을 넘어선 존재가 바로 그들이기에, 본래라면 별을 지키는 것 외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지금.
“물으마. 별 수호자들은 종의 전쟁에는 끼어들지 않는 게 규칙 아닌가?”
별 수호자들은 불문율을 깼다.
미궁을 공격하려 들자, 역으로 그들의 뒤를 점거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규율 위반이며 사례조차 없던 일이었다.
‘황금 여우’가 허리춤에서 얇은 나신의 도(刀) 한 자루를 꺼내 들며 묻자, 멸악의 거인은 그 물음을 부정했다.
“별 수호자의 의무는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뒤를 치는 게 세계의 균형과 무슨 관계가 있지?”
“··· 그 이유까지 너희가 알 필요는 없다.”
황금률의 드루이드.
그는 다시금 세계를 정화하는 존재다.
어둠으로 가득한 판게니아에 빛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세계수의 태동, 드루이드의 부활.
심연에 가라앉은 대지가 떠올랐으며, 또 다른 세계수의 잉태를 별 수호자들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이 모든 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세계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마침내 정상화되는 것이다!
멸악의 거인은 환호했다.
전부를 파괴하고 심연에 가라앉힌,
······ ‘멸망’의 출현 이전으로, 세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가 원상복구 된다면 마찬가지로 여신 역시 돌아올 것이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었다.
어쩌면, ‘멸망’과의 재대결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같은 멸망을 반복할 순 없는 노릇.
당연히 별 수호자들은 ‘황금률의 드루이드’를 돕는 데 총력을 다해야만 하는 게다.
물론, 그러한 사실까지 구태여 밝힌 이유는 없다.
특히 사신교, 저 악한 무리에게는.
도저히 놈들의 정체를 별 수호자들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
세계의 균형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놈들은 움직였고, 세력을 부풀려나갔다.
스릉.
황금빛으로 물든 여우가면을 착용한 여인이, 작게 미소지었다.
설마 별 수호자들이 움직이리라곤 예상조차 못 했지만.
저들도 그들을 모르는 건 매한가지다.
특히 그녀, ‘황금 여우’에 관해선.
“항상 궁금했다. ‘어머니 별’은 어디에 있는 건지.”
여신의 별 중 가장 위대한 별.
하지만 한 번도 출현한 적 없는 별.
수문은 무성하지만, 실체를 확인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그 능력에 대해선 많은 말들이 있었다.
-멸망을 몰아낸 절대적인 빛의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 어머니 별은 시간과 관계된 권능을 지니고 있다.
-무에서 유를, 생명을 만드는 별이다.
수많은 가설들.
그중에서도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소름돋는 가설을 내세우는 자들도 있었다.
-어쩌면, 멸망은 모든 세계를 심연에 쳐박았고 판게니아는 여신에 의해 ‘복사’된 세계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별’에 모든 진실이 담겨있을 것이다.
-‘어머니 별’은 이 세계, 판게니아 자체다!
하지만 가설은 가설일뿐.
정작 그 위치를 아는 건 오직 ‘멸악의 거인’밖에 없다.
문제는 멸악의 거인의 위치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허나 황금 여우는 항상 궁금했다.
그녀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주 실체가 없는 가설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놈을 베면, ‘어머니 별’도 찾을 수 있을 터.”
그런데 지금 멸악의 거인이 스스로 자신을 찾아왔다.
황금 여우가 씰룩 웃었다.
그리고-
스슥!
순간,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
멸악의 거인조차 놓쳐버렸다.
어디로 간 거지?
주변을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나, 황금 여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 여기다.”
이어, 마치 증발하듯 사라진 황금 여우가 나타난 곳은 멸악의 거인의 등 뒤였다.
‘어느새?’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인지 자체가 불가능했다.
맹점을 파고드는 것처럼.
-낙화(落花).
찰나, 분홍빛 매화의 꽃이 사방을 수놓는다.
꽃잎이 떨어지자.
쿠릉!
멸악의 거인이 균형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
물리적인 타격은 전부 무효화시킬 정도로.
그런데 당했다.
육체가 관통당한 것이다.
멸악의 거인이 몸을 비틀어, 황금 여우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잡았다.’
그러나 덕분에 확실히 잡았다.
이 타격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인간 따위는 절대로 자신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
툭-.
··· 하지만.
그 주먹질조차도 허망하게 막혀버렸다.
황금 여우는 오른손의 검지 하나로 멸악의 거인이 내뻗은 주먹을 막았다.
압도적인 크기와 힘의 차이일진대.
그것을 고작 검지 하나로 상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힘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란다.”
“······!”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멸악의 거인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도저히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일개 인간은 그의 주먹을 견디지 못한다.
하물며 검지 하나로 상대하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그렇다는 건, 황금 여우는 일개의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
그제야 멸악의 거인은 알 것 같았다.
인간이 자신의 주먹을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를.
피부가 닿자, 여태껏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외신’을 받아들이고, 잡아먹은 것이냐······?”
“너에게도 보이나보군.”
황금 여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발로그 교단’을 움직이는 실세가 바로 그녀였으므로.
외신.
사사로운 신.
이 세계에 존재한 적 없던, 침략자들이다.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인 것이다.
별 수호자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이미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균형을 무너트리려한다면 총력을 다해 막을 생각으로.
하지만, 지금 황금 여우에게서 느껴지는 ‘외신’의 기색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외신이 이 여우의 몸에 빙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황금 여우는 모조리 잡아먹은 것이었다.
“설마··· 최근들어 외신의 소환이 빈번해진 것도?”
“아아, 우리는 선택받은 자들이다. 세계에 일어나는 기적은 모두 우리에 의해 의도된 것이니라.”
잠깐.
‘우리’라고?
멸악의 거인이 떨리는 눈으로, 황금 여우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 보이는구나.’
황금빛의 가면을 쓴 자들.
그들은 이제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의 등 뒤로, 평범한 존재는 볼 수 없는 ‘신의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외신’을 먹어치우는 건, 도저히 상식밖이었다.
일개 그릇이 어떻게 외신을 역으로 잡아먹는단 말인가.
멸악의 거인은 그 원인조차도 알 수 있었다.
-키키키키!
-케케케케케케!
‘정통. 저 사신들이······.’
정통이라 불리는 11마리의 사신들.
그들이 외신의 영혼을, 힘을, 먹어치웠다.
사신의 만찬회에서처럼 그저 만찬을 즐기듯 외신의 영혼도 먹어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저런 용도로······!’
사신교의 교리에 따르면, ‘잠든 황제’는 천상에서 11개의 알을 갖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들은 영혼을 먹어 성장했다.
미리 예행연습을 하듯이.
정통은 처음부터 ‘외신’의 영혼을 잡아먹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발로그 교단을 이용해 외신을 소환시킨 것도 이러한 맥락 탓이었으리라.
왜 미리 알지 못했나.
신경쓰지 않았던가.
성장하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았다면.
시간은 충분했을 터인데.
‘지금이라도 막아야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너를 죽이면 ‘어머니 별’의 위치를 알 수 있을 터.”
번쩍!
황금 여우의 도에서 섬광이 몰아닥쳤다.
도는 정확히 멸악의 거인을 베었고.
“··· 이제 죽거라.”
쿠르릉!
몸이 두등분나며 멸악의 거인이 지상에 쳐박혔다.
*
“크아악!”
“쿨럭!”
비명이 난무한다.
처음에는 비등해보이던 전쟁은, 어느덧 승기가 잡혀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크람델의 괴물들은 숫자가 줄어들었다.
······ 허나, 검은 짐승들은 죽여도 죽지 않았다.
단 한 마리도.
상처를 입고 쓰러지면, 옆에 있는 다른 ‘검은 짐승’에게서 검은 기류가 쏟아졌다.
검은 기류가 닿은 검은 짐승은 다시 일어나서 싸우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생명이 연결이라도 된 듯이.
고오오오오오오-!
멸왕 모크도 비명을 내질렀다.
검은 짐승들은 멸왕 모크를 아예 상대도 하지 않았다.
대신, 멸왕 모크를 몰아붙인 건 초대형의 괴수.
······ ‘절망’이었다.
절망의 손아귀에 잡힌 멸왕 모크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러긴 커녕, 멸왕 모크의 몸에 새겨진 눈들이 하나씩 감겨갔다.
“백호족의 권능을 깨달아도, 반푼이는 반푼이로구나.”
흑왕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발 밑에는.
크르르르르······.
거친 숨을 몰아붙이는, 백왕이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차다.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흑왕······.”
상식을 벗어났다.
흑호족의 권능을 아득히 벗어난 일이다.
흑왕이 미소지었다.
“이게 진정한 ‘절망’의 힘이니라.”
“절망······ ‘사왕’의 영혼을 집어넣은 저 괴물 말이냐?”
이주력 사왕.
그의 영혼이 저 ‘절망’에게서 느껴진다.
절망은 멸왕 모크도 어쩔 수 없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흑왕이 저런 괴물을 다룰 수 있다는 것도 의아했다.
“흑호족은 오랜세월동안 ‘절망’을 연구했다. 저것이야말로 ‘진화의 궁극’이니.”
······ 흑호족이 오래전부터 ‘절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말.
백호족은 알지 못했다.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알았다면, 필사적으로 제거하려 했을 테니, 흑호족 또한 사력을 다해 숨겨온 것이다.
그걸 지금 보였다는 건 완전한 제어가 가능해졌다는 의미일 터.
꽈아악!
흑왕이 백왕의 얼굴을 짓밟으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사흉은 정말 신기하고 어려운 생명체다. 구제국도 ‘사흉’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만큼. 허나, 우리 흑호족은 그 기원과 비밀을 풀어냈다. 너희 멍청한 백호족이 놀고먹을 동안 말이다.”
흑왕은 자신했다.
사흉 절망.
저것이야말로 자신이, 흑호족이 만들어낸 궁극이다.
멸왕 모크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저딴 괴물에 기원이 있다는 게냐?”
“사흉은 천상에서 떨어진 신이다.”
“······.”
“이제 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완벽해지리라.”
백호족의 권능과 흑호족의 권능.
두 가지가 합쳐지면 비로소 진정한 궁극에 닿을 수 있다.
다른 사흉조차 찾아내어 깨울 수 있을 것이다.
쩌억-
흑왕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푸욱!
백왕의 목에 어금니를 박아넣었다.
*
다크엘프 로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일이 꼬였군······.”
주변에는 시체가 난무했다.
전부 다크엘프의 시체다.
그를 제외하면, 단 한 명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용신 루카리아.
다크엘프들을 몰살시킨 소녀는, 눈을 감은 채 기절해 있었다.
로드인 그가 숨겨둔 힘을 발휘한 탓이다.
“······ ‘나’를 보았으니 죽일 수밖에.”
루카리아를 죽이는 계획은 본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다.
급히 ‘장막’을 펼쳐 히프노스나 다른 이들도 볼 수 없게 만들었으나, 그의 앞에 있던 루카리아는 확실하게 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다크엘프 로드.
아니.
그의 머리 위에 선명하게 떠오른 또 다른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