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399)
399화. 그가 만들고 있는 것.
허드슨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틀림없이 승리하리라 확신한 계획이 전부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신교와 흑왕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으니까.
별 수호자들이 심연에 입장한 사신교의 뒤를 친다면 충분히 그들을 뒤흔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흑왕도 멸왕 모크를 완성한 백왕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 아서라.
모든 게 착각이고, 착오였다.
“······ 전부 제 잘못입니다.”
꽈아악.
허드슨이 쥔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렇게 된 원인은 명명백백하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자신의 잘못이다.
사신교도, 흑왕도, 전부 그의 손바닥 안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허드슨은 지구와 판게니아에 모두 정보 길드를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통계를 내린 뒤 판단했다.
사신교와 흑왕 역시 주의할 대상이었으므로 면밀하게 살폈으며, 충분한 데이터를 토대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절대로 만만한 적이 아닌데.’
박현명은 손쉽게 사신교를 농락하곤 했다.
흑왕의 진출도 막아냈으니, 대단한 집단이 아니라는 편견이 생길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나의 모든 승리는 현명님에게서 비롯되었다.’
그 사실을 망각했다.
그는 박현명이 아니라는 걸.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역전은 모두 박현명이 일으킨 기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사신교와 흑왕 모두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는 진실을 말이다.
모든 이들의 상식 밖에서 노는 박현명의 움직임이 언제나 승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박현명이 없는 지금, 그러한 기적을 바라선 안 될 터.
-아악!
-물러서지마라!
-배, 백왕님!
히프노스의 눈을 통해 본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대로면 미궁의 탈환도 시간문제일 듯했다.
저들의 무력이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그야말로 압살(壓殺)당하고 있었으므로.
한 번의 착오로 전력의 절반을 잃는다니.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너의 탓이 아니다.”
원탁의 부단장, 아벨로프.
그가 허드슨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원탁의 기사들은 이곳 미궁 중추를 지키는 역할이었다.
여기서 ‘최초의 불’을 사수하는 게 그들의 사명이다.
“너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그걸 바라지 않아.”
“하, 하지만······ 저의 잘못된 판단이 저들을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사지? 저게 정녕 사지로 보이는가?”
“······?”
허드슨은 아벨로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벨로프가 말했다.
“잊지마라, 허드슨. 모두가 그분을 지키는데 진심이라는 사실을. 너의 책임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
꽈르릉!
반토막 난 멸악의 거인이 지상에 내리꽂혔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아무리 힘이 강하다고 해도, 수많은 ‘신’을 먹어치운 그녀의 상대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별 수호자들도 마찬가지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 별을 강탈하는 것도 퍽 재미있으리라.
허나, 황금 여우는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 손맛이 없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베었고, 쓰러졌는데도, 손맛이 없다.
외신의 힘을 빌어 영혼까지 소멸시켰음이 분명한데도.
죽지 않았다.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 두등분된 멸악의 거인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게 시작했으므로.
그때였다.
돌연, 별 수호자들의 행태가 이상해졌다.
-다들 멀어져라!
-멸악의 거인이시여!
-우리의 어머니시여!
별 수호자들이 급히 거리를 벌린다.
그들은 지금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걸리는 표현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라니.
어머니 별을 지키는 수호자 아니었나?
왜 별 수호자들이 멸악의 거인을 ‘어머니’라 칭하는가.
반토막난 멸악의 거인이 다시금 하나로 합쳐진다.
척추의 뼈가 이어지고, 피부와 근육이 재생되며.
“······ 왜 한번도 세상에 ‘어머니 별’이 등장한 적이 없었는지, 알겠구나.”
황금 여우가 작게 읊조렸다.
어머니 별에 대한 소문은 많았다.
그러나 실체를 확인한 자는 없다.
지금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았다.
“너 자체가 ‘어머니 별’이었군.”
멸악의 거인.
저놈이 바로 ‘어머니 별’이었으니까.
움직이는 별이다.
다른 별 수호자들과는 달리, 누군가를 시험할 필요가 없는 존재.
멸악의 거인은 어느덧 황금의 갑주와 투구를 쓰고 있었다.
성스러운 별의 기사다.
-······.
멸악의 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스으으으으.
갑옷과 투구의 사이로 연기가 흘러나왔다.
쉬잉.
꽈아아아아아앙!
순간, 공간을 접듯 내달린 멸악의 거인이 그대로 황금 여우를 내리쳤다.
찰나지간 반응하여 도를 꺼내들었으나 그대로 토막났다.
‘뭐 이딴 힘이······!’
황금 여우의 눈이 경악으로 들이찼다.
그저 힘만 강해서는 절대로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그냥 힘이 부족했을 뿐이다.
더 큰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었던 게다.
콰드드드드드드득-!
튕겨나간 황금 여우의 신체가 병사들을 헤집으며 심연 끝까지 떠내려갔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거리.
그 장면을 지켜본 사신교의 병사들은 동시에 생각했다.
··· 아무래도 살아서 돌아가긴 힘들 것 같다고.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확실한 건 ‘멸악의 거인’이 각성하며 사신교의 병사 절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니, 비단 병사뿐만이 아니었다.
“··· 셋이 당했나.”
사신교의 간부들도 멀쩡하진 않았다.
여우와 원숭이, 쥐가 당했다.
원숭이는 중태에 빠졌고, 쥐는 죽었으며, 여우는 심연 아래로 떨어져 찾을 수도 없었다.
여태껏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여우도 죽었으리라.
이 모든 걸, 멸악의 거인 혼자 해냈다.
진정 전율스러운 괴물이다.
외신을 먹어치워 더할나위없이 강력해진 사신교를 상대로 혼자 이만한 무위를 선보이다니.
판게니아에서 저런 괴물은 본 적이 없다.
다만, 놈도 무사하진 못하다.
“비록 멸악의 거인을 죽이진 못했으나, 놈도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하진 못하겠지.”
황금 사자가 말했다.
말마따나 멸악의 거인도 죽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여력도 없겠지.
그러나 마저 몰아붙일 수도 없었다.
놈을 죽이려거든 적어도 그들 증 최소한 한 명은 더 죽었어야할 터이므로.
“··· 황금 쥐가 죽었군.”
“황금 가면. 어찌할텐가?”
모두의 시선이 황금 가면에게 쏠렸다.
간부들 사이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나,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시체는 소각하고, ‘정통’은······.”
-키키케케케케!
-······.
황금 가면의 정통이 황금 쥐의 정통을 쳐다보았다.
이미, 그들의 사신들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외형자체는 달라지지 않았으나, 웃는 소리도 눈빛도 모두 괴이하게 변해있었다.
이어, 황금 가면의 정통이 입을 벌리더니.
쏘옥!
···황금 쥐의 정통을, 빨아들였다.
-키키키크크키케케케!!!
그러자 황금 가면의 정통이 몸을 비틀며 더욱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돌아가고, 전신을 떨어대면서.
도무지 제정신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미궁으로 이동한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황금 가면의 명령과 함께 사신교의 무리가 다시 미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미궁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
“······ 백왕과 흑왕이 전투를 벌였나보군.”
“둘 다 없다. 결판이 나지 않은건가?”
검은 짐승과 괴물들이 뒤섞인 장소가 나타났다.
시체의 산이다.
하지만 전투를 벌인 백왕과 흑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미궁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전투의 흔적은 격렬해졌다.
그리고 7Lv이라 적혀있는 장소에 도달했을 때.
“다크엘프 로드······.”
“놈도 죽었나.”
다크엘프 로드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것도,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로.
무언가 날카로운 칼날에 갈기갈기 절삭된 모습이다.
다크엘프들도 모두 전멸해 있으나, 정작 이들을 죽인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황금 가면은 인상을 구겼다.
미궁을 점령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않다.
별 수호자와 멸악의 거인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크엘프 로드를 죽이고 흑왕을 고전케할 정도라면 무엇이 더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쿠르릉!
지형이 변한다.
다크엘프와 로드의 시체가 바닥 아래로 꺼졌다.
미궁을 나아가며 몇 번이나 겪은 현상.
구역 자체가 제멋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미궁 자체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 같았다.
이윽고, 지형의 변화가 멈추자.
“······ 용신?”
그들의 앞에 나타난 존재를 보며, 황금 가면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색은 분명히 ‘용신’이었으니.
허나, 이곳 미궁에 왜 용신이 기거한단 말인가.
게다가 저 모습은······.
“··· 다크엘프 로드를 죽인 게, 네년인가보군.”
저 무수히 많은 ‘칼날’들은 보건대, 틀림없다.
다크엘프 로드를 썰어버린 흔적과 같다.
칼날용신 하나!
투신의 탑에서 소환된 ‘가짜’의 이미지가 아닌.
“우리의 신께서 너희의 죽음을 원하고 계시는구나.”
··· ‘진짜’다.
본래라면 지구의 ‘용맥’에 있어야할 그녀가.
모든 제약을 풀고 마침내 사신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걸까, 저놈은.
커다란 ‘눈’은 박현명이 벽을 만드는 걸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히든 특성, 그 고유의 형상을 제스스로 바꾸고 있었으니.
하지만, 만들던 벽을 재차 허문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고 있다.
이제는 벽이라고 할 수도 없는.
심지어 다른 무너진 벽으로 다가가, 벽돌을 공수해오기까지 했다.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놈치곤 부척이나 부지런하지 않은가.
문제는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히든 특성은 멸망한 종족이 지닌 근원의 힘이 표출된 이름.
그것을 진화시켜 완성할 수는 있어도, 아예 다른 걸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근원을 비트는 짓.
섣불리 했다간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올 테니.
불멸자가 한다면 불멸이 꺼질 테고, 필멸자가 한다면 생명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놈은 자신을 죽었다고 생각해서, 서스럼없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 처음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들이.
대체 박현명은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걸까.
란돌프는 ‘종말’로 완성됐다.
기존에 있던 열쇠들을 진화시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했다.
반면, 박현명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박현명에게도 13개의 열쇠가 새로이 주어지긴 했으나, 정작 자신이 무엇으로 완성되어야할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빌헬름처럼 빛의 궁극이 되지도, 란돌프처럼 어둠의 궁극이 되지도 못했다.
애매모호한 정체성.
그래서일까.
‘만들고 있다.’
창조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아갈 길을.
기존의 것들을 모조리 부수고,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저게 무슨 행동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듯했지만.
지켜보는 ‘눈’은 이내 박현명이 만드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저건, 고작 일개의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할지라도 불가하다.
주신. 아니, 그 이상.
태초신의 영역이다.
말 그대로 가장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박현명은.
자신의 모든 걸 담은,
자신이 살아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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