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집’을 짓는 의미.
집이란 무엇인가.
살아갈 장소다.
추위와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안전하게 기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었다.
큰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을만큼 튼튼하고, 안락하며, 자신의 중요한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는 곳.
한 마디로 ‘집’이란 그 사람을 표현해주는 전부와 같다.
그런데 박현명은 집을 짓고 있었다.
누가 짓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뼈대를 만들고 토대를 세우며 차근차근 벽돌을 쌓아나가는 중이었다.
단순한 움막 따위가 아니라, 거대한 성과도 같은 집을.
그래서······ 묘했다.
박현명이 혼자 살아가는데 저 정도로 큰 집은 필요없을 것이다.
설령 완성한들 관리조차도 불가능하리라.
그럴진대······ 대체 안에 무엇을 두려고 저토록 큰 집을 짓는 걸까.
심지어 앞서 무너진 12개의 벽들을 전부 가져와도 집을 완성하긴 힘들 듯싶었다.
-······.
‘눈’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가 생겼다.
박현명이 오롯이 스스로 완성되고 있음에.
보통의 인간은 죽음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사고하지 않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성은 일찌감치 소멸해버린다.
하지만 박현명은 죽음을 받아들인 뒤 오히려 자신의 창작욕구를 더 강렬하게 폭발시키고 있었다.
죽음을 초월했다.
일개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죽음의 신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다.
죽음이란 완전한 무(無)의 영역으로 인도되는 일.
인지하고, 받아들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정상이다.
허나, 만약 죽음 끝에도 끊임없이 움직일 원동력이 남아있다면.
-······ 탐욕의 악마.
그건 틀림없이 ‘탐욕의 악마’뿐일 것이다.
하여, 눈의 밑으로 나타난 ‘입’은 박현명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박현명은 탐욕의 악마 그 자체다.
먼 옛날 한순간 멸망조차도 위협했던.
천상도 눈여겨 보았던······.
마귀들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존재.
빛도 어둠도 아닌, 그저 탐욕할 뿐인 그 괴물이 본격적으로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빌헬름은 무신(武神)이 되었다. 란돌프는 종말로 완성되었다.
‘입’은 계속해서 말했다.
‘눈’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흥미가 짙었으니까.
빌헬름은 ‘천지개벽’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현화해냈다.
여타 히든 특성을 만들어낸 ‘종주’들과 비교해도 더 뛰어난 완성도의 ‘무신(武神)’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무신 빌헬름.
그의 격은 이미 주신에 다다랐다.
특히 1:1의 대결이라면 전성기의 탐욕의 악마와도 능히 견줄 수 있을 정도.
반면, 란돌프는 어떤가.
극한의 어둠을 받아들인 끝에 또 다른 멸망, 종말의 이름을 거머쥐었다.
이는 ‘천상’에도 없는 네 번째 멸망의 이름이다.
천상에는 오직 파멸, 절멸, 그리고 멸망만이 존재했으므로.
란돌프가 자신의 모든 어둠을 풀어낸다면 능히 하나의 세계를 종말시킬 수 있으리라.
또한, 지금도 ‘천상의 열쇠’로서 작동하고 있었다.
-탐욕의 악마여. 너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 것이냐?
··· 이제 남은건 박현명뿐이다.
탐욕의 악마가 가진 기질로 인해 빌헬름과 란돌프는 완성될 수 있었다.
반면, 박현명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너무나도 강력한 두 존재가 뒤에 있어서일까.
어떻게 완성되어야할지 모르고 있는듯했다.
그런데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인 뒤.
박현명은 도리어 더 열심히 본인의 완성을 위해 움직였다.
모순이다.
성립될 수 없는 전제였다.
-허. 빌헬름과 란돌프는 사전연습이었나······.
‘입’은 어째서 ‘눈’이 이토록 흥미롭게 박현명을 지켜보고 있는건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 옛날, 탐욕의 악마는 멸망을 죽이는데 실패했다.
멸망에게 닿기는 하였으나 그뿐이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닿았다.
닿았다는 건 상대를 어느정도 따라갔다는 것이다.
격차를 느끼고, 보았다는 의미다.
말인 즉슨.
···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무한하게 탐욕하기만 한다면.
그래.
탐욕의 악마가 가진 기질은 실험이 필요했던 게다.
멸망에게 닿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지.
놈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화해야할지.
그것을 알아보고자 빌헬름과 란돌프를 완성시켰다.
말 그대로, 사전연습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종말을 야기하며 양면의 극의를 보았던 건.
탐욕의 악마로선 알 수 없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빌헬름과 란돌프를 통해 학습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탐욕의 악마는 단순한 기질로 작용하지 않고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박현명은 탐욕의 악마와 다를 게 없었다.
저 거대한 성과 같은 집은 멸망을 죽일 거점이었으며, 탐욕의 악마가 깨달은 총아를 담아낼 그릇이었다.
··· 놀랍지 않은가.
저 비상식적인 행동이.
모든걸 계산한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게.
오로지 이기기 위한 욕망.
탐욕에서 비롯된 억겁의 수련이다.
-······ 완성이 기대되는구나.
상상이상이다.
탐욕의 악마는.
설마 이 집을 짓기 위해 빌헬름과 란돌프로 사전연습을 했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완성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저 집은 너무 컸으니까.
12개의 벽을 허물어도 부족할만큼.
남은 자재를 어디서 구할지도 궁금했다.
완전히 새로운 구상이라면 천상과 빌헬름을 건드리진 않을듯한데.
그리고 설령 완성한다고 해도 박현명의 의지가 이미 ‘죽음’을 전제하고 있다.
이미 ‘집’은 바깥에도, ‘미궁’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박현명을 ‘생존’시키려거든 그가 반응할만한 강력한 기억이 필요했다.
-헌데, ‘불’이 꺼질 수도 있겠군.
‘눈’이 바깥을 바라보자, ‘입’이 말했다.
미궁.
그 끝에 있는 ‘최초의 불’이 꺼지거든, 박현명의 영혼도 사라질 것이다.
그를 증명할 최후의 수단이 바로 최초의 불인 탓이다.
허나 미궁을 침략한 이들의 저항이 거세다.
박현명의 동료들은 최초의 불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평생을 정처없이 떠돌았던 탐욕의 악마가 마침내 자신의 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지.
‘눈’과 ‘입’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
“······ 젠장할.”
판게니아의 대륙 어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한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떠오른 이름은 다름이난 ‘민트초코맛있어요’였다.
“하필이면 칼날용신이 나타날 줄이야······.”
칼날용신 하나.
지구의 용신으로 자리매김했으나, ‘용신회’가 인정한 용신은 아니다.
그런데도 비상식적으로 강했다.
처음 출현했을 때보다 더.
“아끼던 아바타를 잃었군.”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크엘프 로드는 그가 오랜시간 공들인 아바타였다.
투신의 탑에서도 혼자 살아남았건만.
그걸 한순간 잃어버렸다.
칼날용신의 무력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2차 침략에서 이군주 이세라를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남자는 가볍게 혀를 찼다.
잃은 건 잃은 거다.
다시 되살릴 수는 없었다.
‘아직 흑왕은 죽으면 안 되는데······.’
다만, 공을 들인 일들이 물거품이 될까봐 걱정이 됐다.
특히 흑왕의 경우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퇴장하기엔 이르다.
비록 자신이 죽기는 했으나, 어쨋든 그래서 미궁의 탐사에도 적극 참가한 거고.
‘남은 두 사흉의 위치를 알아내는건 절망을 깨운 흑왕만이 가능하다.’
그의 목적은 사흉 전부의 부활이었다.
흑호족이 절망을 갖게 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그가 잠든 절망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주었으니.
바알과 절망이 부활했으나, 남은 두 마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바알이 부활한 것도 믿기지는 않았다.
‘란돌프······.’
란돌프와 엮인 일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게 없다.
비정상적인 존재이니 바알을 부활시킨 것이겠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신교의 침략에 방비하는 존재들이 하나같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슬란님. 프리드릭 왕께서 찾아오셨습니다.”
“······ 곧 나가마.”
그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가 작게 답했다.
아슬란.
판게니아 3대 상회의 하나인 ‘아슬란 상회’의 주인.
그도 ‘민트초코맛있어요’의 아바타였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 새겨진 이름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카르마를 회복하기 전까진 한동안 이 아바타로 활동해야겠군.’
다크엘프 로드가 죽으며 대량의 카르마(Karma)를 상실했다.
‘이래서야······ 본캐에 로그인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슬란이 방문을 나섰다.
*
“끄아악!”
“내, 내 팔이!”
사실상 학살이었다.
사신교의 병사들은 칼날용신의 앞에서 도륙당하고 있었다.
대항할 수 없다.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신교의 간부들은 그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광란하고있군.”
“아아, 틀림없이 ‘버서커’다.”
저 상태.
마치 발광하는 것만 같다.
정상적인 용신이라 보기엔 어려웠다.
아마도 다크엘프 로드가 제대로된 반항조차 못하고 죽은 이유일 터.
어째서 광란의 상태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 결코 저 상태가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결국 스스로 자멸하리라.
“그렇다면 내 차례인가?”
‘돼지’의 탈을 쓴 남자가 앞서나왔다.
거구에, 살이 디룩디룩 찐 자.
“저만한 상대라면 그대가 제격이긴 하겠군.”
황금 가면이 수긍했다.
광란 상태의 칼날용신을 상대로 정면대결을 펼치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피부로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으로 보건대, 그들도 아무런 희생 없이는 승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만 끌면 자멸할 괴물.
그리고 시간끌기에 황금 돼지만한 인물은 없었다.
후우우!
황금 돼지의 탈을 쓴 남자가 입을 벌리고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쿠오와아아아앙!
지면이 들썩이고, 주변의 모든 게 그의 입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
심지어 ‘칼날용신’마저도 말이다.
“꺼어억!”
이윽고 100여명에 이르는 병사와 칼날용신을 흡수한 황금 돼지가 트름을 내뱉었다.
경이로운 먹성.
모든걸 빨아들여 가두는 권능은 그가 제일이었기에.
별 수호자들처럼 커다란 것들을 먹는 건 한계가 있지만, 칼날용신처럼 일반 인간과 다를 게 없는 크기라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위장은 마찬가지로 무적이다.
외신들을 흡수한 끝에, 더더욱 강화되었으니.
하물며 용신 정도야.
광란이 끝나거든 그대로 소화되리라.
“소화가 될 때까지 잠깐 쉬지.”
유일한 단점은 소화 전까지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이내 황금 돼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순간이었다.
“음······?!”
꿀럭!
꿀럭!
갑자기 배가 요동친다.
“이, 이게 왜 이러지?”
황금 돼지는 당황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으니.
미칠 듯한 복통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그 찰나.
“커, 커헉!”
황금 돼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복통에서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쩌어어어억!
······ 배가 갈리고, 양쪽으로 찢어지며.
황금 돼지의 단말마는 거기서 끝났다.
그대로 절명한 것이다.
이어.
쫘아아악!
무언가가 배를 가르고 나타났다.
전신에 피칠을 한 괴물.
칼날용신 하나.
동시에.
······ 그녀를 바라보는 사신교 간부들의 눈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황금 돼지가 소화하지 못한 괴물은 그들도 처음 본 탓이다.
하물며 저 눈빛과 모습은······.
“······ 우리도 총력을 다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