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가족이다.
지구의 각성자들은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블랙 돔’의 현상이 도무지 끝나질 않았으니까.
바다 전역에 드리운 저 먹구름은 사라질 줄 몰랐다.
하지만, 그 긴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침식률 30%》
《3차 침략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비하십시오.》
《’삼군주 마몬’과 원시정령 군단이 공격해옵니다.》
······3차 침략이 시작되었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가파르게 오르던 침식률이 순식간에 30%를 채워버린 탓이다.
전투태세를 갖춘 사람들의 얼굴엔 두려움이 역력했다.
“시스템은 여전히 이용 불가인가······.”
“경매나 상점을 이용한 거래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아껴 써야겠군.”
이전 침략과는 달랐으므로.
본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물자를 구하는 방식이었다.
예컨대 경매장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때그때 필요한 무기나 물약 따위를 구할 수 있었다.
세계수 커뮤니티, 혹은 성좌들에게 의견을 묻고, 대처하는 게 가능했다.
명예의 전당을 보고 랭커 중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조차 되었다.
황금률 상점은 어떤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헌데, 그 모든 게 이용이 불가능해졌다.
최악의 상황이다.
각정자 모두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침략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최악인 일은 따로 있었다.
“‘블랙 돔’으로 향한 결사대의 연락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깥에서 안으로 진입하는 방법은 있나?”
“몇 번이나 시도해봤지만······.”
“하필이면······젠장!”
블랙 돔의 탐사를 위해 떠난 500인의 결사대.
그들은 모두 세계의 최정상에 해당하는 강자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세계의 구심점이라고 봐도 무방한 영웅들.
그들이 블랙 돔에 입장한 뒤 3차 침략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연락이 끊겼고, 연락이 닿을 방법조차 없다는 것.
최악의 경우, 그들 전원이 전멸했을 가능성도 있다.
“끝이다······.”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어······.”
절망 어린 목소리가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시스템의 이용도, 지구를 지키던 최전선의 각성자들도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 상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히아아아아!
-휘이이이잉!
그때였다.
지구의 전 하늘에서, 수천 개의 워프가 열렸다.
침략의 워프다.
그리고 그 침략의 워프를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원시정령’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 전체가 잠겨버린 듯했다.
그 장면을 보며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아아.”
“신이시여······.”
“정녕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
콰득!
흑왕은 백왕의 목에 어금니를 박았다.
이후 백왕의 피를 탐했으며, 백호족의 권능을 강탈했다.
하지만 백왕을 죽이진 못했다.
“백왕······네놈이 감히.”
흑왕은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느덧 하얗게 변색된 털.
반점처럼 돋아난 하얀 털들이, 어느덧 손목까지 잠식한 것이다.
“나는 네놈따위에게 침식되지 않는다.”
틀림없이 침식되고 있었다.
영혼침식.
처음부터 백왕, 놈의 의도한 것이이리라.
정면에서 대결해봤다 승리할 수 없다는 것쯤은 ‘미래시’를 통해서 알았을진대.
그럼에도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애초부터 이럴 작정이었다는 뜻이다.
어금니를 박자마자 백왕은 곧바로 의도를 드러냈다.
흑왕의 영혼을, 근원을 뿌리째 없애버리려고 한 것이다.
백호족은 영혼의 진화를 통해 궁극을 달성하려 했으니, ‘혼’을 다루는 법에 있어선 가장 뛰어난 종족.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겠지만.
‘나의 영혼을 바란다면, 나는 네놈의 육체까지 강탈할 것이다.’
흑호족은 육체의 진화를 통해 궁극에 닿으려한 자들이다.
흑왕은 백왕의 의도를 눈치채자마자 백왕의 껍데기만 남은 육체를 자신의 몸과 융합시켰다.
더욱이 강인해진 육체엔 사사로운 영혼이 깃들 수 없는 법.
그런데 백왕의 영혼을 몰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시시각각 흑왕의 몸엔 하얀 털이 자라나고 있었다.
마침내 왼쪽의 몸엔 하얀 털만이, 오른쪽의 몸엔 검은 털만이 자리잡게 되었다.
정확히 반반의 형상이 갖춰진 것이다.
“크르르르르······!”
흑왕이 몸을 비틀었다.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건만, 이토록 끈질길 줄이야.
애초에 흑호족과 백호족이 영혼과 육체를 섞는 건 금기(禁忌)다.
두 종족 사이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할 규율이었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설령 왕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내놓아야만 한다.
하지만 백왕이 먼저 금기를 어겼다.
이에 흑왕도 금기를 깬 것이다.
금기는 오직 금기로만 맞상대할 수 있으므로.
이윽고, 육체의 비틀림이 멈췄다.
다시 자리에 선 흑왕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백호족과 흑호족의 융합이 금기인 이유를 알겠군.”
극히 다른 두 종족의 영혼과 육체의 일체(一體).
“이것이야말로 궁극이다.”
내부에서부터 느껴지는 전율스러운 힘.
모든 진화의 종착점에 선 기분이 이러할까.
시도는 좋았지만, 결국 승자는 흑왕 자신이었다.
전화위복.
화는 훨씬 커다란 복을 불러왔다.
“‘비스트 갓’······!”
흑왕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백왕과의 융합을 통해 얻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히든 특성의 진화!
그가 지닌 히든 특성 몇가지가 진화를 이루었고, 덕분에 그가 히든 특성을 선물한 ‘검은 짐승’들의 무력은 훨씬 더 강해졌다.
하지만 그중 가장 정점은 ‘비스트 갓’의 히든 특성이다.
모든 짐승들의 꼭대기, 유일무이한 신으로 군림하는 자.
‘검은 짐승들의 지배력은 두말할 것도 없으나.’
흑왕의 초대형의 거인을 바라보았다.
절망.
녀석에 대한 완전한 제어가 지금은 가능할 것 같다.
‘구제국은 사흉의 제어에 실패했다. 그들은 사흉의 쓰임새를 착각하고 있었으니.’
구제국은 사흉을 무기로만 사용하려고 했다.
거대한 초대형의 괴수들을 치고박고 싸우게만 하려고 했으니 그야 실패할 수밖에.
하지만 사흉의 쓰임은 그런 게 아니다.
흑왕은 사흉의 진정한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예컨대 사흉 바알은 저주의 소환을 위한 매개체다.
바알을 제물로 삼으면 악신조차 원형 그대로 소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절망’은 어떤 용도로 쓰일까.
세포이식?
그건 절망이 가진 기능 중 한 가지일뿐이다.
진짜 쓰임새는 따로 있었다.
‘지금이라면······가능하다.’
흑왕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절망을 향해 명했다.
“···내 손에 깃들거라, 절망이여.”
*
꽈아앙!
미칠 듯이 퍼져대는 폭발음.
벌써 수십, 수백차례나 반복된 일이지만, 이제는 끝이 보였다.
“······인정하마.”
황금 가면은 핼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킬날용신 하나.
사신교의 간부들을 상대로, 이만큼이나 혈전을 벌인 존재는 여태껏 없었으므로.
“여기까지 날 몰아붙인 건 네년이 처음다.”
황금 가면이 칼날용신 하나의 목을 쥔 채 말했다.
자신을 이토록 긴장케한 것도 칼날용신이 처음이었다.
칼날용신은 광란을 일으키며 몇 번이나 부활했다.
그 끝에 여섯 명의 간부가 죽었다.
허나, 그럴수록 황금 가면의 힘은 가파르게 증폭했다.
죽은 후견자들의 정통을, 황금 가면의 정통이 흡수함으로서 그는 완성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토록 쉽게 황금 가면에게 영혼을 내어주는 이유는 간단했다.
-황제폐하꼐서 깨어나고 계시다.
-그분께, 우리의 모든걸 바쳐야만 한다.
-나를 통해 우리는 모두 그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잠든 황제가 깨어나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황제가 눈을 뜨고 있다.
의식을 차리고 있었다.
‘황금 정령’이 이 세상 어딘가에 출현하여, 황제의 잠을 깨우는 중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황제가 깨어나는 날 그들은 다시 없는 부흥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지전능한 황제는 그들을 자신의 천사로 부활시킬 것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더욱이 강력한 존재로 깨어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들은 정통과 함께 황금 가면에게 영혼을 넘겼다.
꽈득!
황금 가면은 칼날용신의 목을 꺾었다.
그러자 실 끊긴 인형처럼 칼날용신의 육체가 축 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쿠르르르릉!
다시 미궁이 흔들리고, 움직인다.
그리하여 모든 게 정지되었을 때.
‘9레벨.’
벽면에 적힌 레벨의 규격이 달라져있었다.
방금 전 죽인 칼날용신이 있던 구역의 레벨이 8이었던걸 감안하면, 그보다 강한 존재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다는 말이다.
도저히 칼날용신보다 강한 존재가 이곳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지만.
“···드루이드?”
나타난 건 드루이드였다.
그 외에 인간인지 헷갈리는 존재들이 몇 더 있었다.
그것도 ‘라이가’와 비슷한 기류를 풍겨대는 놈들이었다.
“네놈들은···라이가와 무슨 관계냐?”
황금 가면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외톨이인 라이가와 비슷한 기색을 지는 자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이윽고.
전설의 드루이드 알비노가 함께온 각주들을 둘러보곤,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족’이다. 잡것.”
*
······어둠이, 너무 강하다.
새까맣게 밀려드는 어둠을 바라보며 허드슨은 입술은 깨물었다.
‘아아, 하나님······!’
칼날용신 하나마저 당했다.
만약 알비노마저 당한다면, 끝장이다.
“아직도···닿지 않는건가?”
“우리의 기원이?”
“팬텀이시여······!”
허드슨의 뒤에는, 팬텀의 아바타들이 ‘최초의 불’을 둥글게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벌써 삼백에 달하는 아바타들이 모여들었으나, 여전히 박현명은 깨어날 생각을 안했다.
그를 깨우기엔, 아직 숫자가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시간이 없었다.
흑왕의 군단은 끝도 없이 진격하는 중이었다.
특히 저 ‘오른손’이 변형된 이후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의 손.
닿는 모든 게 ‘절망’이 되어버린다.
절망을 전염시킨다.
흑왕을 막하섰던 에이션트 피닉스 ‘알 라움’도, 아우릴과 엘프들도 ‘절망’이 되어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적은 증식해가고, 아군은 줄어든다.
그나마 팬텀의 아바타들이 늘어나고는 있다고 해도, 전력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여기가 팬텀이라는 개자식이 있는 곳인가?”
그때였다.
불현 듯 미궁의 중심으로 들어온 남자가 있었다.
집행자들이 안내를 한 것도, 그렇다고 히프노스의 눈에 비친 것도 아니다.
“어떻게 들어온 거지?”
“워프를 통해서 들어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혼자서 미궁을 돌파했다고?”
“말도 안 된다······!”
집행자들도 당황하여 한 마디씩 꺼내들었다.
아무리 전쟁 통이라지만, 이 미궁은 절대 혼자서 돌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혼자 꿰뚫었다면 히프노스의 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
이곳에 모인 그 누구도, 저 남자의 출현을 인식하지 못했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혹은 압도적으로.
미궁을 최단으로 돌파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여기가 팬텀이라는 호로자식이 있는 곳이냐?”
남자가 짜증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남자는 농부였다.
허름한 옷에는 비료가 묻었고, 한 손에는 작은 낫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를 본 허드슨의 두 눈동자는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탓이다.
허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곧이어 입을 연 허드슨의 목소리가 짙게 떨렸다.
“다, 당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