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시시하군.
“날 아냐?”
남자가 무심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의 반응과는 대비적으로 허드슨은 여전히 불신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말이 안 됐으니까.
남자의 정체를 아는 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부정할 것이다.
그가 직접,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음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살귀’······아니십니까?”
허드슨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귀(殺鬼).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살귀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감히 그를 ‘전설’로 치부하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었다.
명실상부 판게니아 최강의 암살자.
네임드 NPC 중에서도 ‘초네임드’로 분류될만큼 그 위상은 비할 데가 없다.
또한, 살귀는 아무나 암살하지 않는다.
강자들.
특히 현상수배의 최상단에 오른 이들을 우선적으로 암살했다.
하여 수배가 많이 걸린 자들은 살귀의 출현을 가장 두려워했다.
모든 암살자들의 우상이자 암살 대상에겐 공포 그 자체였던 괴물.
“살귀······?!”
순간 아이작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는 자들만 아는 이름이라고는 하나, 아이작 역시 ‘거물 수배범’중 하나였으므로.
당연히 전설의 암살자를 모를 리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진정 저 농부와 다를 바 없어보이는 남자가 살귀란 말인가?
애당초 살귀의 정체에 대해선 모든 게 베일에 싸여있었다.
한 번도 공식선상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가 모습을 보인 곳에는, 죽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흠, 내 얼굴이 노출된 적은 없을텐데.”
남자가 의문의 눈초리를 보냈다.
딱히 자신을 숨길 생각도 없다는 듯이.
이에, 허드슨은 짧게 전율하고 말았다.
‘살귀가 네임드 NPC가 아니었다고?’
팬텀의 이름을 부르고, 이곳을 홀로 찾아왔다는 건, 살귀 역시 팬텀의 아바타라는 뜻.
하지만 살귀는 판게니아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네임드였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활동시기가 너무 다르다.
“아아, 이 ‘낫’을 알아본건가?”
이윽고 살귀가 농사에 쓰이는 작은 낫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자가 들고 있는 낫은 평범한 낫이 아니었다.
살귀의 시그니쳐이며, 수백의 강자들을 도륙한 병기가 저것이다.
“나를 가르친 남자를 죽이고 빼앗은 것이다.”
“살귀의 후계자란 말입니까?”
“지금은 후계자가 아니다. 내가 그를 뛰어넘고 죽였으니, 이제 내가 살귀이지.”
···미친.
허드슨은 더욱이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살귀의 이름을 계승했다는 말.
전설의 암살자조자 뛰어넘는, 암살의 신이라는 말이다.
“설마 그래서······.”
“미궁을 은밀하게 돌파할 수 있었던 건가······?”
집행자들이 작게 중얼거렸다.
살귀의 이름은 제국에서도 유명하다.
제국의 주요인물을 몇이나 암살했으니,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탓에 살귀의 행방은 그들조차 찾지 못했다.
대륙 전역을 뒤져도 도저히 누구인지 알 수 조차 없었다.
그런 살귀조차 뛰어넘는 존재라면······.
···허나, 말이 안 된다.
그 다크엘프들도 방황한 미궁이다.
그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단번에 돌파했다는 건 아무리 남자가 뛰어난 암살자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암살자라는 건 몰래 다가가 죽이는데 능통한 것이지, 복잡한 길을 찾는데 특화되어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팬텀의 아바타’들은, 특히 집행자들은 남자를 본 순간 알았다.
-팬텀의 아바타 중 가장 강한 3인, 그중 한명이 틀림없다.
낚싯대를 든 남자가 말한 세명 중 한 명이 살귀인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조언처럼.
“팬텀이 나보다 뛰어나지 않다면, 나는 팬텀을 죽일 거다.”
살귀는 오만한 남자였다.
전대의 살귀와 달리, 얼굴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터.
“팬텀께서 깨어나시려거든, 이곳을 지켜야합니다.”
“흐음···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것같군.”
살귀의 눈이 ‘최초의 불’에 닿았다.
주변을 둘러싼 팬텀의 아바타들도.
그리곤 피식 웃었다.
“지금 쳐들어오는 놈의 목을 따주면 되는 건가?”
“······.”
“기다리고 있어라.”
툭, 툭.
낫을 흐늘흐늘 흔들며 살귀가 다시 미궁의 중심부를 벗어났다.
*
전설의 암살자는 그를 보자마자 환희에 젖어 외쳤다.
-드디어 찾았다······! 살성(殺星)의 재능을 지닌 자를!
압도적인 암살자의 재능을 지닌 남자를 발견했으니까.
오랜시간 헤맨 끝에 드디어 자신의 뒤를 이를 후계자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 환희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남자의 재능은 뛰어났다.
우선 남자는 모든 ‘확률’을 볼 수 있었다.
이는 히든 특성 ‘황금의 은총’에 의한 것이다.
보통은 도박과 관련되어있는 특성이지만, 남자가 지는 ‘황금의 은총’은 일반적인 히든 특성과는 결이 달랐다.
아니, 그걸 처리하는 남자의 머리가 남다르다고 해야할까.
-너는 괴물이다. 여태껏 존재한 적 없는 암살의 신이 될 것이다!
남자는 살귀의 가르침을 고작 반년만에 전부 몸에 익혀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재능에 살귀는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전설로 치부될만큼 천재소리를 들었던 그조차도 남자가 배우는 속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살귀를 넘어서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년이었다.
1년.
그 짧은 시간만에 살귀의 수십년 정수를 녹여버린 것이다.
뿐만인가.
남자의 성장은 멈출줄을 몰랐다.
끊임없이 배움을 갈구했고, 스스로 끝없이 벽을 넘었다.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초월?
그런건 남자에게 계단 하나를 오르는 일에 불과했다.
그래서였을까.
인지를 뛰어넘는 성장속도가 너무나도 두려워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부러워서였을 수도 있고.
어느날 살귀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남자를 죽이고자했다.
-시시하군.
하지만 남자는 너무나도 쉽게 살귀를 죽였다.
전설을 짖밟았다.
이후 남자는 자신을 조종한 조종자를 찾아다녔다.
허나, 최근 남자는 깨닫게 된 것이다.
팬텀.
그가 자신을 살렸다는 걸.
모든 게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팬텀은 나보다 뛰어난 자여야만 한다.
남자가 떠올린 ‘생존’의 광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팬텀조차 몇 번이나 실패할뻔했으니.
아마도 팬텀이 도전한 생존의 내용 중에서도 수위를 달렸으리라.
1% 미만의 확률을 뚫고 그를 살려낸 것이다.
그러니.
그는, 반드시 자신보다 뛰어난 자여야만 한다.
‘저놈, 강하군.’
살귀가 어둠 속에 자리잡았다.
그에겐 미궁의 길도 모두 확률로 보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의 확률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기에 손쉽게 미궁의 중심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0.3%라.’
검은 짐승들 사이에 홀로 군림하는 괴물을 바라본다.
···그가 흑왕을 죽일 확률 역시 보였다.
0.3%.
수많은 가능성을 합산한 결과다.
아마도 팬텀이 자신을 생존시켰을 때의 가능성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 정도면, 뭐.
‘할만하군.’
어둠 속에서 살귀가 움직였다.
*
나는 집을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벽을 세울 생각밖에 없었는데, 어느새 커다란 궁전과도 같은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벽돌이 부족했다.
주변에 쓰러진 벽의 벽돌을 모조리 공수했음에도 80% 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았다.
어디서 더 가져와야할까.
가져올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남은 벽은 두 개······.’
나는 잠시 고민했다.
저걸 부숴야하나?
그러나 남은 두 개의 벽은 너무 높다.
천상, 그리고 무신 빌헬름.
견고하며 쓰러지지 않는 저 벽돌을 내가 직접 부숴서 집을 만들 수 있을는지.
부수고 싶다고하여 부술 수 있는 벽이 아니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며 ‘무신 빌헬름’의 벽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울타리를 부술 수는 없지.’
이건 집의 울타리가 되어줄 벽이다.
당연히 부술 수 없고, 부숴서도 안 된다.
나는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럼······’천상’은 어떨까.
툭. 툭.
주먹으로 두드려봤지만, 꿈쩍도 안한다.
아무도 부수지 못한 벽.
이건 여태껏 부서진 적 없는 벽이다.
셀 수 없이 오랜 세월, 억겁의 가간 동안 말이다.
하지만 재료로 공수할 수 있는 벽이라곤 이게 전부다.
완성을 포기해야되나?
나는 천상의 벽 앞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여길 때 즈음.
‘어?’
눈앞에 네모난 스크린 화면이 떠올랐다.
화면 안에 비치는 건 과거의 기억이었다.
주마들인가 싶었지만, 아니다.
눈앞에 펼쳐진 기억은 내가 과거 ‘생존’시킨 캐릭터의 한 장면이었다.
‘아, 기억난다. 진짜 어려웠는데.’
생존시키는 캐릭터가 많아질수록 난이도도 올라갔다.
기억에 남는, 가장 생존시키기 어려웠던 캐릭터는 총 4개.
하나는 당연히 빌헬름이다.
그 숲에서 살아서 나간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화면은 나머지 셋 중 하나의 기억.
희미했던 기억의 편린이 떠오른 것이다.
‘저땐 재밌었지.’
순수하게 판게니아를 즐겼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확신하던 시기.
어떤 방법으로 최고 난이도를 갱신할지 기뻐하며 고민했던 때였다.
가끔은 ‘나만 이렇게 어렵나?’싶을 정도로 황당한 생존 퀘스트에 직면할 때도 있었지만, 도리어 그러한 역경과 시련도 당시의 내겐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즐기지 못하게 됐더라.’
기준은 분명하다.
빌헬름이 게임오버를 맞이하고, 란돌프로 빙의되며 더 이상 판게니아가 게임이 아니게 되었을 때.
게임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이전과 달라졌다.
달라져야만 했다.
게임의 목숨과 달리 실제 목숨이, 세계가 달려있는 일을 어떻게 게임과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겠나.
‘다시 한 번 해볼까.’
하지만 지금 나는 죽었다.
마침, 눈앞에 떠오른 기억의 편린은 희미해져가던 내 즐거움을 상기시켜주었다.
이윽고 나는 컴퓨터의 앞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화면 속 캐릭터의 생성창에는 익숙한 이름이 놓여있다.
낵네임 ‘잭 더 리퍼’, 가장 어려웠던 ‘생존 퀘스트’의 캐릭터 중 하나.
살리는 게 불가능한 환경에서 극적으로 구해내었으나,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시 할 수 있다면 더 완벽하게 구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가 지금, 내게 주어졌다.
스윽.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초집중할 때 한 번씩 썼던 알이 둥근 안경을 쓰고, 입술로 혀를 훑으며.
“좋아, 좋아···해보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마우스와 키보드.
이리저리 굴러가는 눈과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며 움직이는 판단력.
모든걸 예측하고, 더 나은 수를 내고자 발악하던 그때로 돌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브라보!”
함성을 내질렀다.
손뼉을 치고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순수한 재미. 짜릿한 쾌감!
보다 완벽한 수준으로 생존을 완료해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었다.
배경이 바뀌고, 어느덧 나는 ‘천상’의 벽 앞에 서있었다.
한데.
쿠르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