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20)
420화. 진리급 보상.
황금 가면의 육체가 조금씩 사라져간다.
이어 모두 재가 되었다.
보라색으로 빛나는 보석 하나만을 남긴 채로.
곧이어 보석의 위로 이름이 나타났다.
《궤멸의 정수(태고, 2급 진리)》
바로 황금 가면의 심장에 박힌 궤멸의 정수였다.
한데, 등급의 표식이 이상하다.
태고 등급의 뒤에 ‘2급 진리’라는 명찰이 붙었다.
진리와 천상의 영향을 받은 존재의 정수라서 그런 걸까.
나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휘이이이이-
허공에 ‘문’이 나타났으므로.
진리의 문이다.
“정수를 회수하고 싶나?”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히 나는 ‘문’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신의 섬’에서 나는 ‘진리의 문’을 활용한 바가 있다.
신의 섬에서 벌어진 일들을 초기화시켜 이자벨라를 돌려받았다.
그때, 나는 분명히 ‘진리’를 보았다.
거기서 깨달았다.
진리란 다른 게 아님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임을.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진리’는 다르다.
“······ 천상.”
천상이 멋대로 다루는 무기다.
그들은 진리의 너머에서 진리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러나 내겐 분명히 보인다.
진리의 너머에 있는 천상의 존재들이 확고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천신(天神)이라 불린 자들이겠지.
내가 눈치챘듯이, 저들 역시 나를 확인했을 터.
“꺼져라.”
쿵!
나는 강제로 문을 닫았다.
어차피 대화가 통하는 족속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대로 정수를 회수해가게끔 놔둘 수도 없었다.
다만-
“······.”
궤멸의 정수를 주워들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게 파괴된 대지.
평화롭던 미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남아있는 거라곤 ‘최초의 불’과 인접한 땅뿐.
모든 게 사라지고, 많은 이가 죽었다.
이것이 천상과의 전쟁이다.
본격적으로 그들과 전쟁을 벌이면 이 땅에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설령 승리한다고 한들.
이미 모든 걸 잃었다면 승리가 무슨 소용인가.
“전장을 옮겨야겠군.”
하여, 나는 생각했다.
나의 땅이 아닌, 저들의 땅 위에서 전쟁을 벌여야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더욱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이 전쟁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반격의 시작 말이다.
반격의 첫 번째는 우선.
콰득!
궤멸의 정수를, 손으로 힘껏 쥐어 부쉈다.
이 안에 모든 게 들어있는 탓이다.
궤멸로 완성될 수 있었던 모든 힘들이.
동시에.
화아아아악!
검은 불길이 치솟으며 갇혀있던 모든 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들의 존재는 너무 애매모호하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그들의 영혼은 존재를 되찾지 못한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바알, 릴리스, 절망, 백왕, 흑왕, 멸왕 모크······.”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검은 영혼은 자신만의 색깔을 되찾았다.
허나, 영혼이 돌아왔다한들 육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애초에 사흉은 생명체라기보단 소환물에 가까웠으니 괜찮다고 하더라도, 릴리스를 비롯한 이들에겐 엄연한 육체가 있었다.
물론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나약했던 탓에······.”
어느덧 부활한 릴리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릴리스가 다루는 인형 중 하나만 남아있어도 그녀는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잊힌 신’에게 조종당하던 인형이었고, 나로 인해 ‘영혼’을 부여받아 활동한 존재이기에 릴리스는 그 영혼이 본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장소에 자신의 인형을 숨겨두었고, 숨겨둔 인형들 중 하나로 부활한 게다.
“괜찮다.”
“정말······ 정말······ 은혜로우신 분······.”
용서를 하자 릴리스가 울먹였다.
하지만 릴리스가 아니었다면 최초의 불은 진즉에 꺼졌을 터.
개의치 않았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내 옆으로 바알과 절망이 서있었다.
그중 나는 ‘절망’을 바라보았다.
절망.
궤멸을 멸한 즉시, 바알과 함께 나는 녀석의 지배권을 갖게 됐다.
그러자 보이는 게 있었다.
“사왕. 오랜만이군.”
······ 흑왕은 저 거인의 육체에 사왕의 영혼을 장착했다.
백왕 산하의 주력이었던 거대한 해골, 사왕.
북부 크람델에서 유일하게 내게 호의적이었던 자.
나를 대신해서 남부로 떠난 사왕이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만나게 된 것이다.
“잘 지냈나?”
-······ 넌······ 시체까마귀 란돌프. 오주력인가?
절망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사왕의 천연덕스러운 그 목소리가 맞았다.
절망이 내게 귀속되며 동시에 오주력의 존재감을 느낀 듯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래. 나다.”
-놀랍군. 아니, 그보다······, 남부탐사를 진행하다가 흑왕에게 붙잡힌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절망에게 영혼을 저당잡혀버렸나.
“네 본체는 어디있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파괴되었을 수도. 하지만··· 덕분에 ‘절망’이 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땅’이겠지.”
-······ 으음, 맞다. 절망은 ‘땅’인 듯하다. 대지 말이다.
놀라운 기색으로 사왕이 말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깨닫고는 있었다.
절망이 귀속되며 보다 확실해진 것이다.
사흉에 대해.
사흉의 진정한 쓰임에 대하여.
“미궁의 새로운 땅이 되어다오.”
-······ 그래야겠군. 미궁 도시가 이렇게 텅 비어버릴 줄이야.
곧이어.
쿠우우우웅-
절망의 거대하기 짝이 없는 육체가, 쓰러지듯 허공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초의 불’과 맞닿은 순간 돌연 없어진 땅들이 수복되어갔다.
이내 절망의 육체는 ‘대지’가 되었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크고, 단단하며 아름다운 대지가.
대지에는 순식간에 풀이 자라나고 나무가 솟아올랐다.
미궁 역시 그대로 재생됐다.
동시에.
《‘미궁 도시’가 모두 복구되었습니다!》
《지력이 강해집니다.》
《‘최초의 불’이 더 강하게 타오릅니다.》
《‘미궁 도시’에서 자라는 모든 생명체는 50% 증가된 성장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또한 탄생조건에 따라 ‘히든 특성’이 생성될 가능성이 대폭 증가합니다.》
《‘종족 특성’이 강화됩니다.》
《‘한계레벨’이 1 늘어납니다.》
《특정 분야의 ‘달인’이 태어날 가능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궤멸이 세운 12개의 멸망의 탑이 ‘시련의 탑’으로 변화합니다.》
《미궁을 찾아온 이들, 혹은 미궁에 기거하는 이들은 ‘시련의 탑’을 올라 퀘스트를 부여받고 보상을 획득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
······.
《‘궤멸’과의 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시스템이 복구됩니다.》
《업적 점수 ‘30,000점’을 획득했습니다.》
《온전한 황금률 ‘5개’를 획득했습니다.》
《멸망포인트 ‘15’를 획득했습니다.》
《‘2급 진리’를 탐구하여 ‘2급 이하 선지자의 땅(외신의 정원, 바라믈 성운, 아수라의 권역, 무한 심연, 용신회······)’에 출입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전우주적인 존재들이 당신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
······.
《‘미궁 도시의 수호영혼’으로 ‘사왕’이 선택되었습니다.》
《‘수호영혼’은 미궁을 관리하는 관리자입니다.》
수없이 떠오르는 글귀들.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다소 시간이 걸릴 수준이었다.
하지만, 놀랍지 않은가.
절망이 땅이 되었다는 게.
애초에 ‘절망’의 용도는 이런 것이었다.
‘절망은 땅, 바알은 존재, 나머지 사흉은 하늘과 바다······.’
사흉은 세계를 구상하고 구성한다.
단순한 권속이 아니라, 멸망은 세계 그 자체를 만들려는 생각이었을까.
멸망의 의도를 도무지 모르겠다.
놈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한 건 덕분에 미궁 도시가 예전보다 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하하하! 훨씬 자유롭군!
‘검은 불’의 형태가 된 사왕이 내 주변을 마음껏 돌아다녔다.
절망에 갇혀있던 시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것이다.
‘2급 이하 선지자의 땅이라.’
나는 재차 문구에 주목했다.
익숙한 단어들이 눈에 띄었으니.
그것도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이름들이다.
높은 진리를 탐구할수록 갈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난다면.
‘최종적으로 천상에 오를 수 있는 건가.’
그래서 천상은 2급 진리가 담긴 궤멸의 정수를 회수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내가 천상에 오르지 못하게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상에 오를 방법을 알았다.
더 높은 등급의 진리는 아마도 저 영역들에서 획득할 수 있을 터.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나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으므로.
백왕과 흑왕은 분리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둘의 영혼을 동시에 언급했기에 가능한 일.
둘중 하나만 불렀다면 육체가 그대로 붕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웃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군주님. 심연구역에 떨어진 이들을 찾아왔습니다.
황금 고블린의 왕이 땅을 뚫고 나왔다.
녀석은 궤멸에 의해 미궁이 사라진 이후 심연 구역에 떨어졌던 사람들을 데려왔다.
그중 하나가 알비노다.
“······ 알비노.”
허나 알비노의 상태는 이전과 달랐다.
결국, 죽음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했다.
전설의 드루이드 알비노.
황금 가면은 그를 흡수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에.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완전무결한 죽음을 맞이했다.
육체와 영혼 모두.
······ 입 안이 쓰다.
팔가의 대장로이자, 명예의 세계수를 오랜세월 지키고 있었던 알비노.
라이가와 함께 든든하기 그지없던 내 최강의 아군.
함께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나를 덮쳤다.
그러나, 모두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
칼날용신 하나.
나로 인해 광란을 일으켜 폭주했던 그녀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상처가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의식이 불명하다는 것.
이미 한 번 광란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하나다.
두 번의 기적은 없다는 건지.
내 능력으로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놔둔다면, 그녀 역시 내 곁을 떠나갈 건 자명해 보였다.
“그녀는 지금 모든 자격을 잃고 소멸하는 중이다.”
그때였다.
워프가 열리며, 내 곁으로 다가온 이가 있었다.
“······ 바사라인가.”
마계의 칠군주 바사라.
본래라면 적대관계이나, 나를 향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심연에서 나를 도운 게 그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최초의 파장.
내가 죽음으로부터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나를 인식할 수 있었던 건 최초로 그녀가 내 안에 돌멩이를 던진 덕분이었으므로.
바사라가 말했다.
“살리고 싶나?”
“살리고 싶다.”
“다른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되더라도 말이냐?”
“모든 세계를 적으로 돌리게 되더라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그 무엇도 나는 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게다가 칼날용신 하나가 죽으면 어린 이세라와 루카리아는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 부럽군.”
무엇이 부럽다는 걸까.
나와 눈이 마주친 바사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 함께 용신회로 가자. 그곳에서 정식으로 ‘용신’의 자격을 얻으면, 그녀는 살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