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탐욕과 교만.
프리드릭 왕.
그를 수식하는 호칭은 셀 수 없이 많다.
정복자, 왕 찬탈자, 전장의 폭군, 악귀, 살인의 귀재, 인간 박물관 등등.
공통점은 누군가를 죽여서 생긴 호칭이라는 것이다.
인간 박물관은 사람을 해체한 뒤 박물관처럼 전시해놓는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외에도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잔악한 소문이 많았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사람을 썰어버리는 살인귀.
어느 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기에 인간이 아니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변함없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창백함을 넘어서 핏기 하나 없는 얼굴.
언제나 위엄만이 넘치던 프리드릭 왕에게선 단연코 처음 보는 모습.
‘······ 왜 다시 나온 거지?’
‘얼굴이 너무 하얘졌는데?’
‘마치 못 볼 걸 본 것처럼······.’
들어가자마자 등을 돌려 나왔다.
그 모습이 꼭 천적을 만나 뒷걸음질 치는 듯했다.
하지만 공방의 안에 있는 건 견습뿐이다.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지만, 고작 견습을 보고서 프리드릭 왕이 뒷걸음질 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리드릭 왕이 누구이던가!
판게니아 대륙의 패자 아니던가.
물론, 그만한 인물이 대장장이 마을 따위를 찾아온 건 ‘인재 영입’ 때문일 것이었다.
프리드릭 왕은 ‘인재 영입’에도 꽤 진심이다.
마음에 드는 인재가 있으면 천길 물길 속이라도 직접 찾아가서 영입하기로 유명했다.
프리드릭 왕의 제안을 거부한 사람은 없다.
거부하면 죽으니까.
당연히 아지랑이 마을도 ‘순도 100% 오리하르콘제 검’을 만든 대장장이의 영입을 위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프리드릭 왕은 잔뜩 굳어버렸나.
‘저놈이 왜 이곳에······!’
프리드릭 왕.
아니, 교만의 악마는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칠 죄 종 중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며 먼 과거에는 멸망과 함께 공포로 군림했던 악마.
아이언 왕국의 왕을 연기하며 그는 빠르게 인간 세상을 정벌하고 있었다.
판게니아에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신도 없으니 그를 막아설 존재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생각이 변했다.
세계가 급격하게 변하는 와중이었다.
신들이 부활하고, 신격을 갖춘 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들도 이놈 하나에 비하진 못한다.
‘탐욕! 분명히 탐욕이다!’
잘못 보았을 리가 없다.
악마는 악마를 알아보기 마련.
특히 교만은 모든 악마를 확신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지금 대장간 안에 있는 건 틀림없이 탐욕의 악마였다.
틈만 나면 백신전의 신들과 싸우고, 멸망과도 싸웠던 유일한 악마.
악마들 사이에서도 별종으로 유명한 놈이었다.
멸망에게 죽은 뒤 소멸하여 없어진 줄 알았건만 다시 환생이라도 한 걸까?
했다면 언제 한 거지?
멸망의 편에 서서 싸웠던 교만이기에 탐욕만큼은 피하고 싶다.
놈과 엮여서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프리드릭 왕의 낯빛이 하얗게 새어버린 결정적인 이유.
탐욕도 탐욕이지만, 놈이 휘두르는 또 다른 존재가 문제였다.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탐욕의 곁을 수호하듯 돌아다니는 먼지구름 같은 게 하나 있었다.
일반인에게는 안 보이겠지만 악마인 그에겐 또렷하게 보였다.
‘그건 필시 멸망이다. 이번에 출현한 멸망과는 또 다른 멸망!’
탐욕도 느꼈다.
미궁 도시에서 궤멸이 출현했음을.
동시에 ‘또 다른 멸망’이 함께 나타나 격돌했음을!
두 존재가 격돌하자 세계의 선이 흔들렸다.
그 충돌만으로도 교만의 악마의 머리가 지끈거렸을 정도다.
프리드릭 왕이 군을 확장하고 내실을 다지려는 것도 모두 저러한 괴물들의 출현 탓이었다.
그런데 궤멸과 부딪혔을 것이라 추정되는 ‘또 다른 멸망’이······ 탐욕과 함께하고 있다.
‘탐욕. 이 미친놈이 끝내 멸망의 힘까지 손에 넣었다. 도망쳐야 한다.’
자신이 탐욕을 알아보았듯, 탐욕도 자신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탐욕은 백신전의 신들과 멸망에게만 싸움을 건 게 아니다.
멸망의 편에 섰던 악마들도 쥐잡듯이 잡아댄 게 탐욕이었다.
그때의 치욕이, 그때의 두려움이 아직도 교만에겐 남아있었다.
어째서 이 작은 대장장이 마을에 놈이 있는 건지 의문이지만, 분명한 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철수한다.”
“처, 철수······ 말입니까?”
기사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냥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철수란다.
전장에서나 사용할법한 단어가 프리드릭 왕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대체 안에서 무얼 보았기에?
저 안에 악마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프리드릭 왕은 악마도 두려워할 폭군 중의 폭군이다.
그가 무언가를 보고 놀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잠깐.”
······ 그때였다.
대장간의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지금 대장간 안에 남아있는 남자는 견습이라 불린 그밖에 없었다.
그런데 잠깐이라니?
“좋게 말할 때 다시 들어오지.”
“컥······!”
“아······!”
순간 대장장이들의 넋이 나가버렸다.
장주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스릉!
“저······!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의 수급을 당장 베어오겠습니다!”
“천한 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눈치 없는 기사들이 검을 뽑았다.
이들의 문제라면 충성심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프리드릭 왕과 얽힌 일이라면 앞뒤를 따지지 않고 검을 든다.
평소에는 그도 그 모습을 즐겨보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콰득!
“··· 와, 왕이시여?!”
“검을 거둬라. 당장.”
앞선 기사의 검을 맨손으로 부숴버리며 말했다.
탐욕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
교만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차라리 신들과 싸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악마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신들이 감지할 수 있으므로.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느끼며, 교만은 씁쓸히 공방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마을의 분위기가 냉랭하게 굳었다.
다시 공방으로 들어간 프리드릭 왕은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바깥으로 나왔고, 이내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 모두 보고 들었다.
마음대로 프리드릭 왕을 부리는 것을.
그의 목소리를 듣고 프리드릭 왕이 다시 공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그, 그동안의 결례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장주가 급히 말투를 바꾸었다.
처음부터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프리드릭 왕을 부릴 수 있는 존재이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
여타 다른 대장장이들도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떤 위대하신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희가 잘못한 게 있다면 부디······.”
“그런 건 없소.”
견습.
아니, 위대한 분께서 말했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군.”
떠난다니.
이곳 공방을 떠난다는 뜻일까?
“그간 고생 많았소. 그리고 앞으로도 공방은 안전할 것이오.”
“헙······!”
그제야 장주의 눈가에 안심이 깃들었다.
프리드릭 왕을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이다.
그가 안전하다면 안전한 것일 테다.
장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떤 위대한 분이신지 여쭈어도······.”
“아지랑이 공방의 견습 대장장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오.”
이후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잘 지내시오, 장주. 그동안 고마웠소.”
그 순간이었다.
휘익!
······ 마치 거짓말처럼, 그가 사라졌다.
“어, 어딜 간 거지?”
“순간이동이야 뭐야?”
“내가 헛것을 본 건가······?”
대장장이들은 기겁했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다.
동시에 가슴 한 켠이 싸늘해졌다.
‘내, 내가 뒤에서 욕한 걸 들었을까?’
‘견습 나부랭이라고 매일 낮잡아 불렀는데······.’
‘자, 잡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거 아닐까?
대장장이들은 숨을 죽였다.
이래서 겉만 보고 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귀인(貴人)께서 오셨었군······.”
장주가 중얼거렸다.
정말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지고하고 고귀하신 분께서 잠시 들른 것이다.
장주는 떠올렸다.
자신이 제대로 귀인에게 기술을 전달했는지를.
장주는 그가 있던 자리를 향해 한 차례 더 고개를 숙인 뒤 공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허어어어억······!!”
공방의 안을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한쪽에 초금속 오리하르콘이 가득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
빠드득!
교만이 이를 갈았다.
자신을 키우는 개처럼 부리며 이리 와라, 저리 가라 하다니.
공방의 안에서 탐욕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
딱 한 마디.
그 이상의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평화를 원하는 건지는 더 묻지 않아도 알겠다.
‘더 이상의 영토확장을 멈추라는 의미겠지.’
정복왕 프리드릭 왕에게 정복을 멈추라고 경고한 것이다.
아니면 ‘아지랑이 마을’의 평화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그 한 마디에 프리드릭 왕은 수족이 묶였다.
꼼짝도 할 수 없다.
끔찍할 정도의 격(格)의 차이를 몸소 느꼈으니까.
탐욕.
놈은 괴물이다.
예전에도 괴물이었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 확실한 건, 그의 눈에 자신이 담겼다는 것.
탐욕이 그를 봤다.
교만의 악마가 프리드릭 왕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최악이다.
왕 행세를 그만두고 숨거나, 아니면 전쟁을 멈추고 가시방석 위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됐든 썩 유쾌하진 않았다.
‘다른 악마들에게도 알려야 하나?’
악마 회의를 소집해야 할 수도 있다.
탐욕이 나타났다고. 멸망의 힘을 두르고 있다고.
악마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평화를 원한다.
“빌어먹을······.”
그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아른거린다.
낙인처럼 각인되어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남은 칠죄종의 악마들을 소집하면 달라질까?
멸망의 편에 섰을 때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절망이 넘쳐나며 악마들의 힘이 하늘에 닿았을 시기도에 그놈 하나를 어찌하지 못했다.
그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아직은 힘을 회복하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진대 악마들이 모여봤자 뭘 할 수 있겠나.
‘애초에 탐욕은 거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그만한 놈이 저 작은 마을에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리하르콘제 검을 만들어서 어디다가 쓰려고?
‘견습이라고 했다. 배우고 있던 거다.’
아.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탐욕은 대장장이의 기술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순도 100%의 오리하르콘제 검도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산물일 뿐이었다.
그걸 아무런 미련없이 시장에 내놨다.
전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교만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체······ 무엇을 만드려는 거냐?”
*
언제나 여행은 즐거운 법이다.
아지랑이 마을을 떠나자 도리어 상쾌했다.
지금의 나는 하루하루가 충실한 기분이었다.
‘이게 판게니아지!’
있는 그대로를 즐기는 것.
이 세계는 아직도 내가 달성할 것들로 넘쳐났다.
정처없이 떠도는 듯싶지만 아예 목적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르닐 왕국으로 가보자.’
칠대 불가사의 중 하나.
원하는 클래스의 획득과 히든 퀘스트의 달성을 위해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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