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31)
431화 잘못된 만남.
아지랑이 마을이 뒤집어졌다.
“수호 성검이 견습 대장장이의 검을 선택했대!”
“진짜 믿기지가 않네. 세르닐 왕국에 납품할 검은 300년 동안 역대 장주들께서 맡아왔는데······.”
“장주께서 실력으로 패배한 거라고?”
“말도 안 돼!”
아지랑이 마을의 대장간은 대장장이들의 성역과 같은 곳이다.
특히 아지랑이 공방의 장주들은 항상 동시대 최고의 대장장이로 이름이 드높았다.
그 자부심과 자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
대장장이의 세계에서 운은 없다.
오로지 실력만이 존재한다.
한데 이제 막 쇠질을 시작한 견습 나부랭이에게 장주가 졌다는 이야기는 마을사람들 모두에게 거센 충격을 안겨주었다.
충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거지가 왕으로 선택됐다면서?”
“수호 성검이 꽂힌 바위를 반으로 쪼개버렸다던데?”
“심지어 창고에서 훔친 검이래.”
“그럼 뭐야. 도둑이 왕이 되는 거야?”
“들어보니까 전왕의 사생아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자기가 ‘팬텀’이라고······ 진정한 왕의 계승자이며 검의 주인이라고 하던데.”
창고에서 훔친 검으로 왕이 된 거지.
막장 소설을 봐도 이 정도로 막장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거지가 아니라 왕의 사생아라면 말이 달라진다.
문제는 어린 거지가 스스로를 ‘팬텀’이라 칭했다는 점이었다.
“팬텀? 팬텀이라면······ 미궁 도시의 주인 맞지?”
“사신교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 미궁 도시의 주인?!”
제국의 사신교가 미궁 도시를 공격한 건 판게니아의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신교가 수만의 병사를 일으켜 대대적으로 공세를 가한 전례 없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모두가 ‘미궁 도시’의 패배를 예상했다.
-일개 도시가 제국을 어떻게 이겨?
-아무리 백왕의 비호를 받는다지만.
-백왕이 북부의 괴물들 전부를 이끌고 내려와도 불가능해.
-역사가 증명하잖아. 제국과 전쟁을 벌여서 남아있는 곳이 없는데.
사람들의 인식 속에 제국과 사신교는 이미 한 몸이었다.
고로, 사신교가 공격을 감행했다는 건 제국이 움직였다는 의미.
판게니아 역사상 제국과 전쟁을 벌이고 살아남은 도시와 왕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전쟁 역시 사신교의 승리하리라 모두가 확신했다.
그럴진대.
대륙 전체가 들썩일 이변이 생겼다.
······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궁 도시가 승리한 것이다.
그것도 그냥 승리가 아닌 대승리였다.
공격을 감행한 사신교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사신교의 간부들마저도 전멸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고, 허무맹랑한 헛소리로 치부 받던 그 내용은 이내 사실로 밝혀졌다.
-사신교와의 전쟁에서 미궁 도시가 승리했다!
-사신교는 전멸했다!
-대체 미궁 도시가 뭐 하는 곳이길래?
-도시의 주인은 누구지?
-팬텀? 팬텀이 뭐야?
미궁 도시는 세간의 모든 주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도시의 주인에게 관심이 쏠렸다.
그 과정에서 ‘팬텀’의 이름이 언급되며 다시금 파문을 낳았다.
여태까지 미궁 도시의 주인이 ‘오주력’인줄 알고 있었으나 진짜 주인은 ‘팬텀’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판게니아에서 팬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확한 정체에 관해선 불분명하지만.
팬텀의 실체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세르닐의 왕으로 선택된 소년이 자신을 ‘팬텀’이라 말했다는 것이다.
“사칭이겠지.”
“어쨌든 세르닐 왕국의 왕은 그 아이가 된 건가?”
“그렇지 않을까?”
“······ 그나저나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군. 장주께서 패배하다니.”
“공방도 조용하잖아. 다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겠지.”
“하기야 나라도 그러겠다.”
“이로써 차기 장주는 확정이로군······.”
*
수호 성검이 선택한 검이 ‘반려검’이라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
“······.”
한껏 나를 낮추던 대장장이들이 입을 꾹 닫아버렸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초리였으나 결과로 증명했기에 할 말이 없는 것이리라.
허나 그러한 결과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세르닐 왕국. 히든 퀘스트의 시작지점이 그곳에서 멀지 않아.’
내 머릿속엔 온통 칠대 불가사의, 히든 퀘스트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조금만 더 실력을 쌓으면 즉시 그곳으로 떠날 셈이었다.
이제 막 초금속을 다루기 시작했으니.
그러나 ‘반려검’을 만들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여 나는 장주를 찾아갔다.
“장주. 초금속을 다룰 줄 아시오?”
“······ 다룰 줄은 안다만, 다룰 초금속이 없지.”
정식 대결에서 패배하였음에도 장주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호들갑을 떠는 건 마을 사람들과 다른 대장장이들뿐이었다.
“그럼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소?”
“‘반려검’을 만들 때 이미 초금속을 썼다고 들었는데. 설마······ 더 있나?”
“있소.”
“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주가 눈을 빛냈다.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대장장이다.
“얼마나? 검 한 자루는 더 만들 분량은 되나?”
“양은 걱정하지 마시오.”
“몇 자루 만들 정도는 있나 보군. 한데······ 어디서 구한 거지?”
“운이 좋았소.”
“······ 알겠다. 철과 함께 오리하르콘을 섞어서 쓰면 백 자루도 만들 수 있겠지. 그 정도면 꽤 익숙해질 거다.”
“순수 오리하르콘으로 검을 만들 생각이오.”
“음······? 한, 두 자루만 만들고 끝낼 건가?”
“그래도 백 자루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겠소?”
“······? 잠깐, 그렇게 많다고?”
장주가 눈을 깜빡거렸다.
하기야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손톱만큼의 양으로도 천금을 받는 게 초금속 오리하르콘이다.
철에 약간만 섞어 써도 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순수 오리하르콘제 검?
한 자루면 대도시에 집을 열 채는 사고도 남을 터였다.
열 자루면 작은 도시 하나를 살 수 있을 테고.
백 자루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리하르콘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순수 오리하르콘제 검은 왕국의 대귀족이나 겨우 한 자루 갖고 있을까 말까 했다.
물론, ‘순수 오리하르콘제’라고 표현했지만 순도 100%의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검은 더욱이 없었다.
장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 농담할 기분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말장난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대결에서의 패배가 내심 속 쓰리긴 한듯싶었다.
보여주지 않으면 믿지 않을 기세.
나는 품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었다.
이어 바닥에 털어내자.
콰르르르르르!
정제되지 않은 오리하르콘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커, 커헉······!”
장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을 닫을 줄 모르는 사람 마냥 크게 벌린 채 경악하고 있었다.
백 자루를 만든다고 했지만, 그 이상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재료는 충분했다.
‘세계수의 던전에서 가져온 초금속의 양이면 성도 만들 수 있지.’
잊힌 신을 상대하며 거의 복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초금속을 획득할 수 있었다.
오리하르콘만이 아닌 성물의 주재료인 별의 상아까지 얻었다.
말인즉슨, 실력만 갖춰지면 성검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내,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느냐? 아니, 아니다. 뭐든 말만 해라. 내가 다 해주마!”
언제 침울했냐는 듯 장주의 두 눈이 열망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탐욕은 아니다.
출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눈과 표정엔 오로지 순수한 탐구욕만이 가득했다.
초금속 오리하르콘을 다루고 싶다는 대장장이로서의 욕망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
그날 이후.
‘아지랑이 공방’에서 제작된 오리하르콘제 무기가 세상에 나왔다.
순도 100%의 오리하르콘제 검도 한 자루가 공개되자, 수많은 이들이 아지랑이 공방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대도시의 주인이나 대귀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대 상회의 주인들도 앞다투어 아지랑이 공방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공방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
장주가 외부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한 탓이다.
그러나 아무리 장주의 의지가 강해도 막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프리드릭 왕께서 행차하십니다!”
뿌아아앙-!
나팔소리와 함께 등장한 남자.
아이언 왕국의 주인, 프리드릭 왕!
수많은 도시와 왕국을 정복한 정복왕으로 이름이 드높은 자.
판게니아에서 단연코 가장 위험한 인물이며, 자신이 마음먹은 모든 걸 해야만 하는 무자비한 폭군이었다.
프리드릭 왕은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마저 있었다.
일개 마을의 장주 따위가 막아설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랬다간 마을 전체가 지도상에서 사라질 테니.
덜덜덜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튀어나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숙였다.
감히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프리드릭은 오만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말을 탄 채 공방을 향해 나아갔다.
소식을 들은 대장장이들도 모두 공방의 입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태였다.
“이 검을 만든 자가 누구지?”
프리드릭 왕이 오리하르콘제 검을 꺼내 들었다.
영롱한 빛깔을 자랑하는 검.
시장에 유일하게 풀린 오리하르콘 순도 100%의 검이다.
그는 전쟁을 밥 먹듯이 하는 정복왕. 순수 초금속 검이 등장하자 지대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검을 얻었을 때, 그는 확신했다.
‘과거에도 이 정도로 초금속을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는 거의 없었건만.’
초금속을 이토록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라면 왕국으로 직접 데려가야만 하는 인재인 것이다.
비록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는 ‘교만의 악마’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존재이니 확신할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대장장이가 이곳에 있다고.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길 싫어한다. 마지막으로 물으마. 이 검을 누가 만들었느냐.”
“······ 제, 제가 만들었습니다.”
대장장이들의 가운데에 선 장주가 급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프리드릭 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지랑이 공방의 장주. 네 실력은 익히 알고 있다. 네 실력만으로 이만한 검을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마지막으로 물으마. 누가 만들었느냐?”
그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선고하자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검을 꺼내들었다.
허나 장주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제가······ 제가 만들······.”
“공방 안에 있습니다. 아직 견습이라 나오지 못하게 했을 뿐입니다!”
대장장이 한 명이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프리드릭 왕이 한차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히 자신에게 거짓을 고한건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그보다 안에 있다는 대장장이가 궁금했다.
고작 견습이 만들었다니.
왕이 등장했음에도, 이런 소란 속에서도 얼굴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뚝심이 있는 녀석인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직접 확인해봐야겠군.’
생각보다 별 게 아니라면 시간을 소모하게 했으니 죽음으로 갚아야할 것이다.
툭!
말에서 내려온 프리드릭 왕이 공방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공방의 안에 있던 ‘그’와 얼굴을 마주쳤다.
동시에.
“······.”
프리드릭 왕이 등을 돌려 공방을 나왔다.
시체마냥 새하얗게 얼굴이 질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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