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36)
436화 새로운 엘프 여왕
아무리 봐도 별것이 없다.
마른 몸에 나이 어린 인간.
태초의 숲에 인간을 들인 건 처음이다.
그것도 이렇게 유랑하듯 자유로이 놔두는 일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만 아니었다면, 저 작은 인간은 태초의 숲에 발을 들인 즉시 척살되었을 것이다.
엘프들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왜 굳이 ‘태초의 숲’까지 데려온 걸까.
“···여기서 머무시면 됩니다. 황금률의 드루이드님.”
가장 좋은 어미 나무를 내주었다.
주인이 있었으나 이제는 없는 곳.
흑왕에게 납치당한 엘프들 모두가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저······.”
“더 할 말이 남았나?”
그가 묻자 아우릴이 머뭇거리며 시선을 옮겼다.
“같은 방에 머무를 생각이십니까? 원하신다면 따로 방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딸꾹!”
그 순간 디트리히가 딸꾹질을 흘렸다.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
인간에게 엘프는 절대로 닿아선 안 되는 괴물이다.
그러한 괴물들이 잔뜩 몰려있는 태초의 숲에 혼자 있는다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와 같았다.
‘혼자 있으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디트리히는 엘프와 관련된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해적들은 해역을 누볐고, 세계를 돌았으니 어느 방랑시인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적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게 있다.
노래를 불러 사람을 유인한 뒤 먹는 ‘세이렌’에 대하여.
‘세이렌’과 ‘엘프’는 먼 친척쯤 되는 종족이다.
실제로 엘프를 납치했다가 사라진 해적단은 시체 한 구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먹은 것이다.
그것도 다른 엘프들을 모두 불러모아 먹어치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루아침에 전부 사라져버릴 수 있겠나!
“따로 방을 원하나?”
도리도리!
디트리히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괴물의 땅에 혼자 남을 순 없는 노릇이다.
“싫다는군.”
그의 말을 듣고 아우릴이 잠시 디트리히를 쳐다봤다.
‘왜 저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지?’
한데, 그 눈빛이 묘하게 살벌하다.
적어도 호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디트리히의 등 뒤로 소름이 쫙 돋았다.
역시 혼자 두어 허튼 수를 부리려던 게 분명하다.
“······ 알겠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아우릴이 뜸을 들여 대답한 뒤 방을 나섰다.
이에 디트리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팬텀의 옆에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할 일은 없을 터이니.
그러나 안심하긴 일렀다.
디트리히는 최대한 입구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곤 슬쩍 눈치를 보며 팬텀의 반경 안에 자리했다.
*
‘여기가 태초의 숲.’
엘프들과의 교류는 진즉부터 있었지만, 태초의 숲에 직접 온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태초의 숲으로 향하는 길은 복잡하기 그지 없다.
수십 개의 워프를 공식대로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
‘앤드류 사제가 제대로 길을 터놓은 덕이지.’
엘프 장로 아루웬의 구출을 위해 앤드류 사제가 미리 길을 터놓았다. 그 덕에 헷갈리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워지지 못했지만, 앤드류 사제는 아루웬 장로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인간과 엘프 간의 사랑이라니.
무엇보다 아루웬 장로는 앤드류 사제를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다.
‘기억이 강제로 지워졌다.’
둘 사이에서 생긴 아이, 안다사르는 지금 미궁을 지키는 수호자가 됐다.
엘드리치로 소생했으나 결국은 언데드.
아이가 죽어서 언데드가 된 걸 알면 억장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차라리 기억을 잊고 사는 게 낫다.
게다가 아루웬 장로의 기억을 지운 게 누구인지 얼추 예상은 갔다.
‘엘프여왕이 앤드류 사제에 관한 기억을 전부 지운 것일 터.’
인간과 엘프의 결실을 여왕이 가만히 두고 볼 리 만무했다.
앤드류 사제가 지금의 상황에 만족한다면, 나도 더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
다만······ 보고 있는 입장에선 답답하긴 했다.
어쨌든 아루웬 장로를 구하고자 앤드류 사제는 먼 길을 돌아, 타락까지 해가며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던가.
흑왕의 영토까지 가서 엘프들을 인도한 것도 앤드류 사제다.
그 노력이라도 알아주면 좋겠건만.
고개를 털었다.
‘나무가 죽어가고 있군.’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우릴이 나를 안내해준 곳은 커다란 나무의 안이었다.
하지만 주인을 잃은 어미 나무는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 이 어미 나무뿐만이 아니었다.
‘···숲 전체가 죽어가고 있다.’
숲의 신음이 들린다.
태초의 숲은 점차 말라가고 있었다.
이유는 명명백백하였다.
‘세계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비록 내 지배하에 있는 세계수는 아니지만, 이미 여러 그루의 세계수를 지녔으니 보다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세계수가 힘을 잃어가는 중이라는 걸.
게다가 그 원인이······.
‘세계수가 말라비틀어지는 원인은 오직 여왕에게 있다.’
······ 현 엘프들의 여왕에게 있다는 것도.
인정하기 싫겠지만, 여왕도 알고 있을 테다.
내가 왔음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건 그런 까닭 아니겠나.
드루이드는 세계수의 씨앗을 옮기는 존재들이다.
당연히 세계수와 관련되어서 프로라고 할 수 있었다.
하물며 나는 황금률의 드루이드다.
직접 보지 않더라도 어떤 문제인지 알 듯했다.
‘여왕이 너무 오래 산 게 문제겠지.’
땅이 지력을 잃으면 생명이 자라날 수 없듯이.
세계수와 연결된 여왕도 너무 오래 살아 생명을 잃었다.
그녀가 엘프의 수명을 훌쩍 넘겼는데도 아직 살아있는 건 오로지 세계수 덕분이다.
이미 죽었어야 할 육신. 여왕의 권위를 새로운 후보에게 계승해야 함에도, 여왕은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고여도 너무 고여버렸다.
생존 욕구 때문일까?
아니면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일지.
나를 보고서도 관련된 사안을 일절 얘기하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전자인 것 같았다.
‘어찌한다.’
엘프들의 일이다.
나랑은 관계없다.
구태여 끼어들었다가 엘프들과 틀어질 가능성도 컸다.
허나··· 세계수가 얽혀있다.
드루이드 알비노였다면 이 상황을 절대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세계수를 한 번 봐야겠군.’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냥 쉬라고 해서 쉬고 있을 수만은 없을 듯했으므로.
“어, 어디 가십니까?”
자리에서 움직이자 누워있던 디트리히가 벌떡 일어났다.
“세계수를 보러 간다.”
“저··· 저도!”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좀 쉬고 있거라.”
“아, 아닙니다. 완전 쌩쌩합니다! 저도 꼭 세계수를 보고 싶습니다!”
디트리히가 열변을 토했다.
‘갑자기 왜 이러지?’
피로가 누적된 얼굴.
걷다가 그대로 쓰러질 것 같음에도 열정을 다한다.
그렇게 세계수가 보고 싶은 걸까?
하긴. ‘태초의 세계수’를 본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할 테니.
그 탐구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얌전히 따라와라.”
“옙!”
*
세계수로 향하자, 앞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었다.
“··· 죄송합니다. 세계수에 가까이 가실 수 없습니다.”
귀에 돋아난 세계수의 꽃잎.
하이 엘프들이다.
이곳 태초의 숲에서 가장 강하며, 가장 권위 있는 존재들이었다.
“드루이드인 내가 세계수를 볼 수 없다?”
“여왕님의 명입니다.”
역시나.
여왕은 내가 세계수를 보는 걸 탐탁지 않아 한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럼에도 세계수를 봐야겠다면?”
“아무리 황금률의 드루이드라 하셔도······.”
“나와의 전투도 불사하겠다?”
“······.”
하이 엘프들의 눈가가 작게 떨렸다.
그들은 내가 누군지 안다.
단순한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연히 전투가 벌어지면 이 숲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것이다.
덜덜덜덜덜!
이제는 사시나무의 수준을 넘어 경기를 일으키는 디트리히.
허나 나도 이들과 싸울 생각은 없다.
굳이 막고 공격을 하겠다면, 받아주기야 하겠지만.
다만······ 이토록 필사적으로 막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그때였다.
장로 아루웬이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내지르며 다가왔다.
“아루웬 장로님. 여왕님께서 지시한 일입니다. 개입하지 마십시오.”
“저분이 어떤 분이신지 정말 몰라서······!”
“여왕님의 명입니다.”
“닥치세요!”
“······!”
평소 온화하기 짝이 없던 아루웬 장로.
그녀가 분노하자 하이엘프들도 살짝 주춤거렸다.
여왕을 제외하면 아루웬 장로를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태초의 숲에서도 없었다.
“무, 무슨 일이죠? 드루이님은 왜 여기에 계시는······.”
곧이어 아우릴도 나타났다.
얌전히 방에 안내해준 게 조금 전이거늘.
그 사이에 이런 충돌이 벌어질 지는 예상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야? 왜 하이엘프들이 저분을 막고 서있는거야?”
“설마 싸우는 거 아니야?”
소란을 듣고 조금씩 엘프들이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여왕의 독단이 맞는 듯싶었다.
엘프들은 아예 영문이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잊었습니까? 황금률의 드루이드님은 우리 엘프의 은인입니다. 당장 무기를 거두세요!”
아루웬 장로가 목대에 핏줄을 세워가며 단호히 외쳤다.
하이엘프들을 나무라는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여왕께서 저한테는 아무런 말도 없으셨는데······ 지금 이게 무슨 짓들이죠? 당장 무기를 놓지 않으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아우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내 편에 서서 하이엘프들과 대치했다.
단순한 무력만을 따지자면, 아우릴은 이미 어지간한 하이 엘프들을 넘어선지 오래다.
이곳 태초의 숲에서 아우릴은 논외적인 존재였다.
엘프가 아님에도 세계수의 축복을 받고, 하이엘프들과 똑같은 권리를 거머쥐었으니까.
이는 태초의 숲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아우릴은 하이 엘프들이 두렵지 않았다.
일촉측발의 상황.
“······ 비켜드리세요.”
저 멀리서, 여왕이 행차했다.
*
작은 소란 끝에 나는 세계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모든 엘프가 보는 와중에 말이다.
나 혼자 갔다면 조용히 끝났을 일.
굳이 막아서며 일을 키운 것도 여왕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군.’
세계수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세계수는 죽을 터였다.
그 원인 역시, 내가 생각한 바와 다르지 않았다.
여왕의 생명이 다하자 세계수는 자신의 생명력을 이용해 여왕을 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생명력이란 무한하지 않은 것이다.
설령 세계수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말라 죽기 마련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있는 그대로 말하느냐, 아니냐의 기로.
여기서 말을 한다고 여왕이 그를 얌전히 용인하고 인정할까?
자신이 죽어야 세계수가 산다는 말이니 쉽사리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하이엘프들을 통해 나를 막아선 여왕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선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른다.
하여 나는 여왕과 하이엘프들, 그리고 모든 엘프가 지켜보는 와중 똑똑히 말했다.
“새로운 여왕을 선출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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