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37)
437화 선을 넘다
“······.”
“······.”
순간, 정적이 돌았다.
엘프들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여왕의 면전에 대고 ‘새로운 여왕을 선출해야겠군.’이라니?
하물며 하이엘프를 포함한 모든 엘프들이 모여있는 자리다.
그 파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여왕 역시 자신의 앞에서 황금률의 드루이드가 떳떳이 저런 말을 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그 말은······ 저를 끌어내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엘프 여왕이 잔뜩 굳은 어조로 말했다.
이 숲은 엘프의 숲이며, 이 숲의 여왕은 자신이다.
당연히 황금률의 드루이드라고 할지라도, 미친 게 아니고서야 저런 말을 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 중심에 선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세계수는 죽어가고 있다. 여왕이 자신의 죽음을 뒤로 미루고 있어서. 세계수가 정기를 무리하게 나눠주고 있기 때문에.”
“······!!”
“저, 저게 무슨 소리야?”
“여왕님 때문에 세계수가 죽어가고 있다고?”
“세계수가 죽어가면서 여왕님도 약해져가고 있는 게 아니었어?”
엘프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가 죽어가는 정확한 원인을 그동안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도리어 세계수가 약해져서 여왕의 힘도 약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전성기 시절의 여왕이 숲에 있었다면 다크 엘프들이 그렇게 설치진 못했으리라.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심지어 그 이유가 반대라는 말인가?
그는 황금률의 드루이드.
드루이드는 세계수에 관해선 전문가였으니 거짓은 아닐 터.
그가 쐐기를 박았다.
“엘프 여왕의 수명은 다했다. 엘프의 평균 수명을 진즉에 넘어섰겠지. 그리고 세계수가 죽어가는 이유를 여왕, 너는 알고 있었을 터다.”
“···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엘프 여왕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안 거지?’
자신이 원인을 밝히지 않는 이상,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였기 때문이다.
우려한 대로 드루이드인 그는 세계수를 보자마자 문제를 알아냈다.
‘그래도 변하는 건 없어.’
그녀는 여왕이다.
이 숲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선을 넘지 마십시오, 황금률의 드루이드. 아니······ 팬텀이라고 해야겠군요. 그대는 외부에서 온 자. 하물며 태생부터 드루이드였던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전쟁을 통해 팬텀의 일면이 벗겨졌다.
황금률의 드루이드이며, 동시에 오주력이고 더 나아가 ‘팬텀’이라니.
그렇다면 그의 태생은 본디 인간이라는 의미다.
여왕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은 엘프의 숲입니다. 여왕인 저로 인해 세계수가 생명을 잃어간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모함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그대가 우리의 은인이고는 하나, 그렇다고 선을 넘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근거라. 근거만 있으면 되나?”
“······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마땅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있을 리가 없다.
태초의 숲 세계수와 연결된 건 오직 여왕 자신뿐.
설령 저 드루이드가 수를 쓴다고 해도, ‘모두가 이해 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할 가능성은 없다.
그제야 여왕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외지인이 자신을 끌어내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때였다.
팬텀이 웃어 보였다.
“좋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근거를 제시해주지.”
*
여왕이 세계수의 생명력을 대신 소모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
그것을 제시하면 만사가 형통할 일이었다.
다만, 너무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아주 개판이군.’
엘프들은 틀림없이 나의 우군이다.
그런데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자신들의 문제점을 모르고 있는 것이 첫째요, 자신의 욕심을 위해 숲을 죽이는 여왕의 태도가 둘째였다.
일말의 측은지심도 사라진다.
특히 여왕에게.
‘선을 넘은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여왕.’
여왕은 내가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싶었다.
선을 넘었다.
인정하고 뉘우치기만 했어도 다른 방식을 찾아보려 했을 텐데.
극단적인 방법으로 여왕을 교체하는 수는 쓰지 않았을 것이다.
여왕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세계수의 목소리를 읽을 수 있는 종족이 있다. 알고 있나?”
“···먼 과거에 그런 종족이 존재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자연의 노래를 부르는 자’라고 불렸지.”
여왕도 알고 있다.
이곳 엘프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한들 크게 변할 건 없었다.
“허나 그들은 멸종했다고······.”
“‘자연의 노래를 부르는 자’가 아직 남아있다면?”
“··· 세계수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겠지요.”
드루이드는 세계수의 문제를 찾아내고, ‘자연의 노래를 부르는 자’는 세계수의 목소리를 전한다.
이 둘은 세트와 같은 종족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은 먼 옛날 사라졌다.
대부분의 세계수가 자취를 감추자 자연스럽게 멸종한 것이다.
허나, 남아있었다.
“내일 ‘자연의 노래를 부르는 자’가 태초의 숲으로 도달할 것이다. 그를 통해 세계수의 목소리를 확인하면 ‘객관적인 근거’로는 충분할 터.”
“······.”
다시금 여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직 여유를 잃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공수표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사실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모이도록 하지.”
*
바스락 숲.
드라이어드들의 귀가 번쩍 뜨였다.
“그분께서 저희를 찾고 계세요.”
중성적인 모습을 한 아이.
신록의 옆에 앉은 채로 하루에 한마디 할까 말까 한 그 아이가 갑자기 입을 연 탓이다.
그리고 아이가 말하는 ‘그분’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분? 설마 우리의 형제 말인가?”
“예.”
“형제가 우리를 찾는다고? 그렇다면 벼랑 끝이라도 달려가야지!”
바스락 숲의 규모는 이전과 비할 데 없이 커졌다.
특히 숲의 주인인 드라이어드들은 신록에 의해 엄청난 성장을 맞이했다.
그들의 형제와 그리고 ‘자연을 노래하는 자’ 덕분에 거의 세계수 급으로 성장한 신록 덕분이었다.
맥스 레벨을 넘어 초월적인 무력을 지닌 드라이어드들도 나오기 시작했으며, 하이 드라이어드의 자격을 지닌 ‘드라이어드의 군주’도 등장할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이는 그들의 형제뿐이며, 형제가 그들을 부른다면.
“우리의 형제가 우리를 부른다!”
“가자! 태초의 숲으로!”
“전부 즉시 출발하도록!”
“휘리리리리리리릭-!”
바스락 숲에 있는 드라이어드 전부가 최고속력으로 ‘태초의 숲’을 향해 출발했다.
*
까득!
여왕이 손톱을 깨물었다.
처음에는 팬텀의 무리수, 혹은 협박 정도로 생각했다.
원하는 게 있어서 저러는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인간은 모두 그런 법이니까.
한데, 그녀의 예상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빗나갔다.
‘드라이어드들이 워프를 넘고 있다고?’
엘프와 드라이어드는 결이 비슷한 종족이다.
둘 다 숲을 근거해 살아가며 숲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종족은 절대로 가까이서 살지 않는다.
드라이어드는 불같은 성향이지만, 엘프는 불이나 바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태초의 숲’으로 향하는 워프만을 골라 오는 건지는 의문이지만.
······ 그 안에 ‘자연을 노래하는 자’가 섞여 있다고 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막아야 한다.
진짜로 ‘자연을 노래하는 자’가 세계수의 목소리를 들려준다면 여왕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태초의 숲을 향하고 있는 드라이어드의 숫자다.
무려 오천이 넘는 드라이어드가 이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자연을 노래하는 자’를 제지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었다니······!’
황금률의 드루이드는 진짜로 근거를 제시할 작정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급히 여왕은 그를 찾아갔다.
허나, 만나주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아서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했지만.
이대로면······.
‘나를 대신할 새로운 여왕이 나타나게 놔둘 수는 없다.’
여왕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게 놔두진 않을 것이다.
*
다음날 같은 시각.
‘자연을 노래하는 자’가 세계수의 앞에 섰다.
이어 손을 대고 눈을 감자.
후우우웅!
후우우우웅!
“세계수께서 반응하신다!”
“와! 저런 모습은 처음 봐!”
세계수가 반응하고 있다.
아마도 저 아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리라.
이윽고 눈을 뜬 아이는, 엘프들을 향해 말했다.
“······ 세계수는 슬퍼하고 있습니다.”
“왜 슬퍼하지?”
팬텀이 묻자 아이가 답했다.
“자신이 죽으면 이 숲이 사라질 것을 아니까요.”
“어째서 자신이 죽어가는지 알고 있나?”
“예. 여왕이 자신의 정기를 무분별하게 소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탓하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은 모든 생명에게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세계수는 여왕을 나무라지 않았다.
도리어 여왕을 감싸주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여왕 자신은 아니었다.
“거짓말! 거짓말입니다!”
“······ 저는 세계수의 말을 전하는 자.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자. 있는 그대로 전해야하기에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단호했다.
게다가 ‘자연의 노래를 부르는 자’가 세계수의 말을 듣고 거짓으로 전할 수 없다는 건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여왕의 표정이 있는 힘껏 굳어버렸다.
“자, 여왕이여. ‘객관적인 근거’는 제시했다. 이대로 세계수를 죽게 할 텐가?”
여왕의 자리를 버려라.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여라!
엘프 여왕은 몸을 부르르 떨곤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정말 제가 원인이라면, 이 자리를 반납하지요.”
“시원해서 좋군.”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하면?”
“저보다 뛰어난 엘프만이,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전혀 시원하지 않군.”
뭐라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그녀는 여왕.
이곳에서 가장 강한 엘프다.
엘프 여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왕의 자리에 도전할 자, 있습니까?”
“······.”
“······.”
모두가 침묵했다.
그녀와 싸워서 여왕의 자리를 쟁취하고 싶어 하는 엘프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 있을 리가 없······.’
“제가 할게요.”
“······!”
여왕을 비롯한 엘프들이 경악어린 눈빛으로 도전자를 바라봤다.
어느덧 당당하게 앞에 선 엘프.
그녀는······.
“······ 아우릴.”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여왕님.”
엘프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낸 존재.
최근들어 세계수의 축복까지 받았다.
언제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그녀였다.
인간들을 접한 뒤로 욕심이 생긴 게다.
특히 투신의 탑에 오른 뒤로 아우릴의 성장세는 여느 하이 엘프보다도 뛰어났다.
역대 엘프들 중에서도 견줄 자가 없을 정도였다.
한데, 설마 여왕의 자리까지 노리고 있을 줄이야.
물론, 그래봤자 여왕인 자신을 이길 순 없다.
세계수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은 여왕과, 고작해야 축복을 받았을 뿐인 아우릴의 대결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릴이 씽긋 웃으며 검을 쥐며 도발했다.
“설마 피하시진 않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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