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40)
440화 히든 퀘스트
아우릴의 돌발행동은 나로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껴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란돌프라는 게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일 일인가?
아우릴은 눈물을 흘리고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그야 나도 반갑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던 것도 아닌지라 어정쩡한 자세로 받아주고 있을 뿐이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바빴······.”
“저를 건드려놓고 왜 이제야······!”
“······?”
건드리다니, 오해사기 딱 좋은 발언이다.
내가 멍하니 눈만 깜빡이자 귀가 밝은 엘프들이 소곤거렸다.
“건드렸대!”
“드루이드가 엘프를?”
“어쩐지.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더라니······.”
가십도 이런 가십이 없었다.
나는 아우릴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뒤로 물렸다.
“내가 뭘 건드렸다는 말이지?”
허나 란돌프의 몸일 때에도 딱히 아우릴을 건든 적은 없었다.
투신의 탑에 오르며 싸우긴 했어도.
설마 그때를 말하는 건가?
“제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
진짜로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디트리히가 말했다.
“어른이 될 수 있는 행위를 하셨다는 말인가요?”
“나는 아무것도······.”
“강제로 어른으로 만들어주신 건가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나쁜 어른!”
디트리히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부리나케 벗어났다.
하지만 결백하다.
그렇고 그런 행위는 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 부딪힌 건 처음인지라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잠깐.’
찰나, 스쳐 지나가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월계수의 잎을 자라게 해준 걸 말하는 거냐?”
“예. 덕분에 성장이 멈춘 제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
잠깐 머리가 어지러웠다.
엘프는 숲의 종족이고, 육체에 어미나무의 잎이 자란다.
아우릴은 한참이나 이 잎의 성장이 멈춘 상태였다.
그러니까 드루이드인 내가 손을 얹자 잎이 성장하기 시작한 걸 말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도 모두 란돌프님······ 아니, 이제는 팬텀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편한 대로 부르도록.”
“······팬텀님 덕분입니다.”
아우릴이 씽긋 웃었다.
“아, 뭐야. 난 또······.”
“그래도 잘 어울리지 않아?”
식은땀이 났지만, 주변 엘프들의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수호 성검을 손에 쥐었다.
“그럼 내가 제단을 여는 걸 허락해주겠나?”
“바로 들어가시려고요?”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했다.”
끈질기게 버티는 여왕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히든 퀘스트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냥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니었다.
덕분에 아우릴이 여왕의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으니.
만약 여왕이 멋대로 후계자를 정했다면 아우릴은 절대로 여왕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저도······.”
“숲을 지켜야 할 여왕이 숲을 떠나선 안 되지. 게다가 하이 엘프들의 반발이 있을 텐데. 여왕에 즉위하자마자 자리를 비운다면 그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 그건 그렇죠.”
아우릴이 미련이 가득한 눈망울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여왕이 되었으니 이전처럼 나를 따라다닐 수는 없다.
철없던 아우릴의 모습은 철저히 버려야만 했다.
안 그랬다간 하이 엘프들이 반기를 들 테니까.
지금은 나와 드라이어드들이 이곳에 있어서 잠잠하지만, 아우릴이 틈을 보이면 하이 엘프들이 인정하지 않고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아예 틈을 주지 않는 게 상책이다.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다.”
아우릴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녀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최고의 우군이고, 최강의 아군이었다.
전장에서 마음 놓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자.
“······ 예. 감사합니다, 팬텀님.”
아우릴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를 혐오하던 엘프였다.
내 욕망을 읽고는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려고 하지 않았나.
그 뒤로 함께 다닐 땐 천덕꾸러기 같은 면이 있었는데, 어느덧 어엿한 엘프가 된 것이다.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흠흠. 하여튼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아······! 예. 제단의 엘프들에게 즉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참의 눈빛 교환 끝에 나는 겨우 고개를 돌렸다.
이어 정신을 되찾은 아우릴과 함께 제단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 둘의 뒤에서, 엘프들이 조잘거렸다.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니까. 눈빛 교환하는 거 봤어?”
“사랑인가?”
“사랑이지.”
“드루이드와 엘프의 사랑이라니!”
엘프들도 사랑을 안다.
단지 철저하게 자신의 감정을 숨길뿐.
이는 전대 여왕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전대 여왕이 죽고 사라진 지금, 태초의 숲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 한 엘프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루웬 장로님은 어디 가셨지?”
“맞아. 여왕님이 즉위하셨는데도 통 안 보이시고.”
“아우릴 여왕님과도 친밀한 관계였잖아.”
“그러게. 가장 앞에서 축하해주셔야할 분이 어딜 가신 거지?”
*
태초의 숲.
엘프들의 장로, 아루웬.
그녀는 지금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거짓말······.”
뚝, 뚝.
눈물이 흐른다.
얼굴엔 흙먼지가 가득했다.
도저히 지금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왜······.”
하지만 현실임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여왕이 죽음과 동시에.
···아루웬 장로는 잊고 있던 기억을 각성했다.
여왕이 강제로 잠가둔 기억의 빗장이 풀린 것이다.
그 기억이란 바로.
“앤드류······.”
······ 앤드류 사제와의 기억.
그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
하지만 인간과 엘프는 맺어질 수 없다.
맺어져선 안 된다.
엘프가 다른 종족과 섞이는 행위는 금기 중에서도 금기로 취급되는 일.
오로지 순혈만을 유지해온 엘프의 피가 타종족과 섞이게 되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미지수였다.
그러나······.
아루웬 장로는 금기를 깼다.
앤드류 사제와 지내던 도중 아이가 생긴 것이다.
그래. 분명히 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도 떠올랐다.
“안다사르. 내 딸아이야.”
안다사르.
하지만 최근까지 함께했던 앤드류 사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자신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어디에도 안다사르로 여겨지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걸까?
아니면 보고서도 못 알아본 걸까?
―둘 다 죽여야 합니다.
―엘프의 피를 더럽혀선 안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왕은 대노했다.
앤드류 사제와 안다사르를 죽여서라도 순혈을 지키려고 하였다.
아루웬 장로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기억을 잊는 것 외엔.
그리하여 영원토록 찾지 않는다면, 둘 다 살려주겠노라고 여왕이 말했기 때문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루웬 장로가 비틀대는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웠다.
앤드류 사제를 보고서도 기억하지 못했다.
매몰차고 차갑게만 대했다.
그런데도, 앤드류 사제는 타락해가면서까지 그녀를 구하려고 온 힘을 다해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 가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팬텀.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 태초의 숲에 있는 남자.
황금률의 드루이드이자, 미궁에서 팬텀이라 불린 그는 자신과 앤드류 사제가 엮인 일을 모두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루웬 장로가 급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제단으로 향하던 와중, 나는 다시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눈물과 흙이 잔뜩 묻은 아루웬 장로가 앞을 막아선 탓이다.
“안다사르는 어디 있죠?”
“······.”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아무래도, 기억이 떠오른 것 같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말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다사르.
그녀의 딸은 사실 죽었고, 미궁에서 리치가 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저와 앤드류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모른척했죠?”
“그가 그러길 바랬으니까.”
이 모든 건 앤드류 사제의 바람이다.
둘의 관계에 내가 끼어들 수도 없었다.
아루웬 장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다사르는······ 살아있습니까?”
“······.”
“당연히 살아있겠지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제 딸아이라면, 필시 재능도 많을 터인데. 지금쯤이면 성인이 되었을 거고요.”
미궁에 있다.
아크 리치가 되어, 미궁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로서 새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신교와의 전쟁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이걸 살아있다 말할 순 없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죽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시체다.
움직이는 시체.
“··· 미궁으로 가라.”
“예? 그, 그곳에 제 딸이, 안다사르가 있습니까?”
“그래.”
“아아······!”
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저 갸륵한 마음을 내가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알게 된 이상, 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루웬 장로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돌아갔다.
아마도 미궁으로 향하는 것이리라.
나는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우릴이 새로운 여왕으로 등극한 사실은 충분히 기쁘지만, 그로 인해 아루웬 장로가 기억을 되찾았으니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안다사르······ 아크 리치가 된 아이를 받아들이 수 있을는지.
앤드류 사제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인지.
그 모든 판단은 이제 아루웬 장로에게 맡겨야 한다.
“······ 괜찮으신가요?”
“으음. 괜찮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나아갔다.
그렇게 몇분여를 더 걷자, 거대한 제단이 등장했다.
수많은 나뭇잎으로 치장된 제단.
제단이란 본래 제물을 바치고,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
“태초의 숲에 엘프들이 자리하기 전부터 존재해온 제단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구를 기리기 위한 제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엘프는 계속 이 제단을 지켜왔죠.”
엘프들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제단을 지켜왔다는 뜻이다.
아우릴이 마저 설명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제단을 열지 못했습니다.”
“이게 열쇠일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세르닐 왕국의 수호 성검.
초대 세르닐 왕국의 선왕은 이 수호 성검을 어떻게 구하게 된 걸까?
이 제단의 열쇠라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허나, 이 제단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나조차도 짐작만할뿐 정확한 용도는 모르니까.
태초의 숲에서, 태초의 엘프여왕이 사용하던 수호 성검.
세계수로 만들어졌으나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초금속들이 수호 성검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대부분이 판게니아에 없는 금속이다.
전설이나 신화로도 화자된 적 없는 보다 본질적인 금속들 말이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이 검을 만든 존재가 누구일지.
수호 성검을 열쇠로 사용하는 제단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나는 고민할 것 없이 제단의 위에 수호 성검을 놓았다.
그러자.
쿠르르릉!
땅이 흔들린다.
화아악!
수호 성검이 빛을 발했다.
쩌어억!
곧이어, 황금색의 워프 하나가 허공에 생성되었다.
《‘태초의 제단’이 작동을 시작합니다.》
《‘태초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워프가 생성됐습니다.》
《첫 번째 히든 퀘스트 ‘모든 것의 시작’이 부여됩니다.》
오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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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특성 13개 들고 시작한다-4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