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with 13 hidden characteristic RAW novel - Chapter (441)
441.화 기술자들
오랜 세월 숲을 지배한 엘프들조차 그 기원과 용도를 모르는 태초의 제단.
제단을 발동하자 워프가 생성되며 마침내 ‘히든 퀘스트’가 시작됐다.
판게니아 ‘칠대 불가사의’라 칭해지는 시작조차도 어려운 그것.
‘모든 것의 시작, 세계의 기원이라.’
이름부터 거창하지 않은가.
기원하면 떠오르는 건 ‘태고용신’이었다.
모든 사물의 기원을 간직한 보물창고.
그곳에서 태초의 불을 얻은 덕분에 태고의 갑옷을 만들었으니.
《워프의 안쪽에서 태고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태고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태고의 기운이······.》
버그라도 걸린 듯 같은 글귀를 무한정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결코 가만히 넘어갈 수 없는 글귀였다.
태고의 기운이라니?
‘태고는 기원과도 관련이 있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혹시나 했다.
만에 하나, 이 ‘태초의 숲’이 ‘태고’와도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계가 있다면 당연히 ‘제단’과 연관되리라고 확신했다.
최초의 불도, 태고의 갑옷도 모두 별다른 특성이 없는 태초의 이름일 따름이다.
황혼이니, 겨울이니, 인내이니 하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있지 않음에도 가장 높은 등급으로 분류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원류.
기원이자 근원인 탓이다.
당연히 또 다른 태고 등급이 판게니아에 존재한다면 이곳, 태초의 제단에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적어도 판게니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이 안에 있음은 확실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판게니아의 모험은 끊임이 없다.
모든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신비가 잠든 곳이 분명하다.
나는 오랜만에 모험가의 정신을 떠올렸다.
처음, 판게니아에 로그인했을 때의 기억을 말이다.
그것은 빙의된 이후 잊고 있었던 초심이었다.
“가자.”
“아······! 예!”
디트리히와 함께 워프를 넘었다.
*
‘웃고 있어······?’
디트리히는 팬텀을 올려다봤다.
제단에 도착하고 워프가 열리자.
그때부터, 팬텀은 미소짓고 있었다.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미지의 상황.
모든 게 처음 접하는 것일진대.
무섭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미지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인간이라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었다.
한데······ 팬텀, 이 자는 다르다.
‘진정으로 즐기는 자.’
팬텀의 강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디트리히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다.
신비를 접하고 미지와 맞서 싸우는 투철한 전사였다.
그 자체를 즐기며 행복해한다.
반면, 자신은 어떤가.
디트리히는 떨리는 양손을 꾹 쥐었다.
두렵다. 무섭다. 어디로 가는 건지, 저 안에 어떤 괴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하여 생각을 달리했다.
‘이 과정 자체가 완성으로 향하는 길이야.’
완성.
모두가 인정하는 세르닐의 왕이 되는 것.
오로지 그 하나의 목표만을 따른다면 이 과정도 유쾌하게 진행할 수 있을 터.
온전한 수호 성검의 주인이 된다면, 전대 세르닐 왕조차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래.
이 모험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아우릴처럼, 본인의 의지로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허억······!”
하지만 워프를 넘어선 즉시 디트리히는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다.
워프 너머의 세계.
‘요, 용이다!’
구아아아악!
끼아아아악!
그곳에서 용과 같이 거대한 생명체들이 서로 죽일 듯이 싸워대고 있었다.
*
펼쳐진 풍경을 보며 나는 작게 감탄했다.
“원생의 세계로군.”
정말 원생 그대로의 세계였다.
크고 작은 공룡들이 살아가는 곳.
마치 일부로 보존시켜놓은 듯한 생태계였다.
《‘태초의 영역’에 입장을 완료했습니다.》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룬’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룬’을 포식하여 진화할 수 있습니다.》
《혹은 ‘룬’을 조합해 특수한 물건을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룬이라.
포식을 통해 진화하거나, 혹은 룬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니.
‘진화의 기원인가.’
과연. 이 세계의 규칙에 대해 나름 알 것 같았다.
원생의 생명체들이 여러 가지로 뻗어 나가 지금의 인류와 같은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다.
수백만, 수천만 년 이상이 필요한 과정.
여기선 그러한 진화가 시시각각 ‘룬’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공룡들의 모습이 각기 다른 게 이해가 된다.’
공룡의 모습과 형태는 정말 가지각색이었다.
날개가 일곱 장 달린 공룡도 있고, 머리가 세 개인 공룡도 있었다.
싸움을 통해 승자는 룬을 갖고 진화한다.
다만, 외면적인 진화만 이루어지는지 아니면 능력까지 포식하는지가 궁금했다.
“여, 여기서 저는 뭘 해야 할까요?”
디트리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기야, 이런 원생의 세계에서 성인도 아닌 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가볍게 말했다.
“싸워야지.”
“예?”
“싸워서, 이기고, 룬을 갖는다. 간단한 규칙이지 않나?”
“그러니까······ 제가 말입니까?”
디트리히가 현실을 외면하는 듯 물어왔다.
저 거대한 원생의 괴물들을 어찌 감당하느냐는 눈빛.
그러나 디트리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내 아바타이며, 해적여왕의 자식이며, 수호 성검의 인정을 받은 세르닐 왕국의 왕.
고로.
“당연한 소리를 묻는구나.”
여긴 디트리히에게 최적의 사냥터였다.
게다가 내 생각이 맞는다면······.
후웅- 후우웅-
수호 성검이 거친 음파를 내보내고 있다.
성검의 성분.
내가 알지 못하고, 판게니아에 존재하지 않던 광물이 즐비했다.
그건 아마도 ‘룬’이리라.
동시에 궁금증이 생긴다.
수호 성검을 단련하여 만들어낸 대장장이가 누구인지.
“꼭 생존하도록.”
“알아서 살아남으라고요?”
“그래. 나는 잠시 주변을 훑고 돌아오마.”
“자, 잠깐······!”
툭.
바닥을 참과 동시에 디트리히가 한참이나 멀어졌다.
각자도생.
여기서부턴 스스로 하기 나름이다.
나는 허공에 떠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원생의 세계를 관찰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아아악!
그때였다.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날아드는 익룡 같은 녀석이 있었다.
괴성을 내지르며 손톱을 세웠다.
족히 50cm는 튀어나온 손톱.
찢기면 그대로 찢어질 만큼 날카롭기 그지없으나.
‘판게니아였다면 나를 보고 덤벼들 생각은 쉽게 못할 텐데.’
판게니아의 괴물들은 본능적으로 격차를 안다.
아무리 내가 마력을 숨기고 있어도 쉽사리 달려들진 못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었다.
저 익룡은 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맛있는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꾼의 행태라고 해야 할까.
검을 쓸 필요도 없다.
나는 그대로 오른손의 손날을 세웠다.
그리고 한차례 달려드는 익룡을 향해 내리그었다.
스컥!
손날의 형태 그대로 잘려나간 익룡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몸도 균형을 유지 못 하고 나풀나풀 떨어져 내려갔다.
손에 강의 기운을 덧씌워 베어낸 것이다.
《‘아파투칼리포스’를 사냥했습니다.》
《‘아파투칼리포스의 룬’을 획득합니다.》
곧이어 녀석이 죽은 자리에 룬이 떠올랐다.
광물과 같은 돌멩이.
검은빛을 내뿜는 마석이다.
「아파투칼리포스의 룬」
별다른 특색은 없다.
관련된 내용도 이름 외엔 떠오르는 게 없었다.
‘몇 마리 더 사냥해봐야겠군.’
룬을 쥔 채 나는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사냥을 해야 할까?
설명이나 힌트 같은 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면.
‘난리법석을 피우면 뭐가 됐든 나타나겠지.’
제알아서 튀어나오도록 요란을 떠는 것도 썩 나쁜 방법은 아닐 터였다.
나는 그제야 검 한 자루를 불렀다.
“겨울.”
지이잉!
그러자 ‘겨울(최후의 황혼)’이 허공에서 솟아났다.
그라시아가 사용하는 ‘천검’과 비슷한 느낌.
허나, 스킬을 사용한 건 아니다.
‘이공간에 놔둔 물건을 부르는 것에 불과하다만.’
다름아닌 ‘헬’의 이공간.
그곳에 나는 겨울을 비롯한 몇몇 물건들을 쟁여놨다.
마법 가죽주머니 같은 곳에 넣어두기엔 급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천천히 ‘겨울’을 들었다.
그리고.
휘이이이이이이!
뜨거운 원생의 세계에 ‘겨울’이 찾아왔다.
*
넓은 공간에 자리잡은 괴물들이 겨울의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간다.
수백의 공룡이 한꺼번에 죽자 사방에 룬이 넘쳐났다.
죽지 않고 약화된 공룡은 디트리히의 먹잇감이 됐다.
《374개의 룬을 획득했습니다.》
《Tip : 룬을 조합하려면 ‘기술자’가 필요합니다.》
그제서야 팁이 떠올랐다.
‘기술자라.’
룬을 조합하는 기술자가 따로 있다는 말인데.
마침 나도 예상가는 바가 있었다.
겨울로 인해 주변의 괴물들이 모조리 죽자 지면 곳곳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땅 아래 숨어있는 자들이 있다.’
나는 탐색의 반경을 지하 아래까지 옮겼고, 곧이어 수많은 생명체가 지하의 아래에 숨어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후욱! 후욱!”
디트리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사냥에 성공한 디트리히의 외관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보십시오. 수호 성검이 룬을 흡수했습니다.”
하지만 수호 성검은 달라졌다.
사냥한 괴물의 룬을 스스로 흡수한 것이다.
성검은 묘하게 붉은 빛을 더 띄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호 성검은 이 세계에서 만들어진 게 맞다.
룬을 흡수하여 강화되도록 만들어진 무기.
그리고 성검을 만든 자들은 아마도 이곳 어딘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끼이이익!
지면이 움직인 곳.
그곳으로 다가가 손을 뻗자, 흙더미 아래 잡히는 손잡이 하나가 있었다.
“따, 땅 아래 뭐가 있습니다.”
“기술자들이 이 아래 있나보군.”
나는 거침없이 철제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걸려있는 사다리는 한도끝도 없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자.
휘이이이이이잉!
삐이이이이이이이익!
시끄러운 경보음과 함께.
“치, 침입자다!”
“상대는 기사(騎士)다! 조심해!”
처음 보는 무기를 든 수많은, 땅딸보들이 나타났다.
···난쟁이 말이다.
나는 저런 모습의 종족을 몇 차례 만화나 소설, 혹은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드워프?’
드워프라 불리는 대장장이 종족.
그들은 한결같이 손재주가 좋기로 유명하다.
설정에 따라선 신의 무기를 만들거나, 신이 탐내어 서로 싸울 정도의 걸작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게 바로 드워프라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판게니아에는 없다.
엘프도 있고, 오크도 있고, 그 외의 어딘가 익숙한 종족들은 전부 있지만, 오직 드워프만은 판게니아에 없었다.
사람들은 항상 궁금해했다.
왜 드워프가 판게니아에 없는지.
수많은 추측이 오갔다.
멸망에게 멸명했다는 이야기, 혹은 남은 소수의 드워프가 심연에 떨어졌다는 이야기, 판게니아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
허나 누구 하나 확신하는 이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세상에 드워프가 없는 게 아니었군.’
이런 곳에 숨어 있으니, 그야 아무도 모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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