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 Warrior RAW novel - Chapter 605
0605
평야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불파겐의 군대는 변경백의 영지에서 회전을 준비했다. 대군을 상대하기에는 숲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특히나, 난전으로 끌고 갈 수 있어서 이득이었다.
“컥!”
숲의 바람 소리에 뒤섞여서 정확하게 목을 꿰뚫은 화살을 움켜쥔 남부 본대의 정찰병이 부들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목이 꿰뚫렸다고 해도 바로 죽는 건 아니었다.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찰자는 죽어가는 자에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상대는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채 죽어야 했다. 무릎이 꺾이며 허물어지듯이 꼴사납게 쓰러졌다.
뻐끔거리는 입에서 침과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척후전에서 남부는 결코 불파겐을 이길 수가 없었다. 신념을 꺾고, 도망친 순찰자들을 흡수한 불파겐과는 다르게 남부는 그런 걸 용납하지 못했다. 남이 잘못하면 용서하기 어렵고, 자신이 잘못하면 용서하기 쉬운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 덕에 남부는 철저히 그 시야가 좁아진 채로 움직여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감이 대단했는데, 불파겐이 발바닥에 불이 붙도록 도망쳐서였다. 이 기세를 꺾기 위해서 드낙은 매일같이 나타나서 마력을 소모하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남부의 종군 마법사의 숫자는 18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드낙은 이득을 계속 얻고, 마법 마차가 보유한 마력을 소모해 나갔는데, 그건 〈드래곤 나이트의 명성〉 때문이었다.
그 명성 덕분에 항상 500대의 마법 마차가 사용됐고, 마력의 과소비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간은 흘렀고, 드낙은 핏빛쥐들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알아서 잘 하라〉는 정신 나간 명령을 동부의 인사들에게도, 핏빛쥐들에게도 내린 것이 드낙이었다. 그에게 주도적으로 찾아온 핏빛쥐들은 2마리였다.
1마리는 북부에 똬리를 튼 〈배불뚝 리전(potbelly Region)〉이고, 다른 한 마리는 남부에 자리를 잡은 〈붉은혀 리전(Red tongue Region)〉이었다.
드낙은 가장 시급한 붉은혀 리전의 핏빛쥐로부터 정보를 먼저 들었다.
“남부 최남단에서 악마가 준동했습니다. 그는 마을을 철저하게 포위 습격하여 사람들을 악마 병졸로 만들고 있습니다.”
“남부는 그걸 알고 있나?”
드낙은 당황함을 감추며 물었다.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성 하나가 무너지고 나서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 중립신은 그런 걸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거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서둘러 털어버렸다.
“어떤 놈인지 자세히 알고 있나?”
“육체를 자유롭게 변이하고, 악마 병졸들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병졸도 인간들을 잡아먹으며 전염시키듯이 악마 병졸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대로 놔둔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 것입니다.”
마치, 좀비 바이러스처럼 인간 시체를 자원으로 삼아서 악마 병졸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육체 변이 또한 매우 위협적으로 들렸다. 단순히 생각해도 하늘을 날 수 있고, 헤엄도 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환경에서도 강력한 이점을 지니게 될 터였다.
‘숲에서는 차단된 시야로 수갈래의 뱀으로 변해서 적을 공격할 수도 있겠지.’
무궁무진한 힘이 육체 변이였다. 거기에 군대까지 만든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동시에 드낙은 중립신의 말을 기억했다. 이제는 그 말이 무엇을 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신장으로 가는 길을 닦을 방법이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마어마하다.’
이것 또한 중립신의 안배였다. 마신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드낙은 남부, 적어도 변경백의 영지를 파괴하고 약탈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남부는 후방을 텅텅 비울 정도로 불파겐을 겁박했다.
흑마법사라는 카드가 여기서 사용됐다. 중립신이 판을 깐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부에게 소식이 들리면, 협정을 맺고 함께 간다.’
보급은 동부의 보급을 이용한다면, 능히 보름에서 한 달은 악마와 싸울 수 있어 보였다. 단단히 각오한 드낙은 그를 돌려보내고, 배불뚝 리전의 핏빛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북부에서 불파겐의 후예가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북부 기사를 고문했으며, 정보를 획득하였습니다. 또한 붉은 머리카락을 확인 하였습니다.”
“뭣이!?”
드낙이 펄쩍 뛰었다. 서둘러 그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틀림없이 불파겐의 후예인가?”
핏빛쥐는 고개를 퍼덕퍼덕 끄덕였다. 두 눈은 드낙의 눈동자에 고정되어있었다. 조련술의 업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쇠사슬이 눈과 눈을 통해서 연결되었다.
“어떻던가?”
“무엇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대단히 분노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웃었다. 실로 유쾌한 웃음소리였다.
‘그럴 만도 하지. 만약 진짜 불파겐의 후예가 있었다면, 난 죽여도 시원찮을 놈일 터다.’
불파겐의 논리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지나친 행보는 많은 이들이 드낙을 등쳐먹고, 배신하게 하였다. 그럴 때마다 드낙은 이득을 취해왔지만, 그런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감점 요인뿐이었다.
‘일부러 했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겠지.’
권력을 잘 휘두르지 않는 권력자는 그냥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또한 사치까지 부렸으니, 암군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다. 죽여서 그 권력을 찬탈할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누구도 그런 걸 원하지 않겠지.’
드낙만큼 왕으로 모시기 좋은 왕이 없었다. 권력의 이양은 물론이고, 딱히 손을 대는 일이 적었다.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놈이 직계라며 불파겐의 가주가 되는 것보다는 드낙을 지키는 게 좋았다. 혈통까지 내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접촉해야 한다. 세팔이 찬스 한 번이면 다 정리되겠지.’
자신에게는 슈퍼 울트라 제네럴 치트키가 존재했다. 다시는 빙의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솔직한 말로 혈육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지 궁금했다. 거부하기에는 혈육에 대한 정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커 야크트를 계승해주라고 난리 아닌 난리를 쳤었지.’
그날, 불파겐은 변경백의 영지에서 싸우는 것도 포기하게 되었다. 드낙은 그 어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다. 〈쉐도우 위스퍼〉의 명성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숨기고 싶어 했다.
나중에 들킬 것이 분명했지만, 애매함을 주기 위함이었다.
*
〈검은 회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드낙이 세파리아스에게 불파겐 후예가 북부에 도착했음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 없었다.
죽어도 가문을 잊지 못한 게 그였으며, 죽어도 계승하지 못한 〈오거 야크트(Oger Jagd, 오우거 사냥)〉 때문에 원한에 사무쳤다.
그 원한을 통해서 중립신은 세파리아스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인간에게 유리한 조약이었으며, 중립신에게는 굴욕적인 협정이었다.
상남자답게 신 따위의 말을 듣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외친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남부와 협정을 맺고, 모비딕을 타고 가서 불파겐의 후예를 설득해줘. 그래야 악마 준동을 보다 빨리 끝낼 수 있지 않겠어?”
“설득?”
세파리아스가 드낙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그 단어에는 ‘내가 왜?’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분노마저 깃들어있었다.
“에이~, 그래도 혈육인데.”
“난 네놈 뒤치다꺼리 할 생각 전혀 없다. 설득하고 싶다면, 네가 쥐고 있는 것으로 해라. 그 시대에는 날 뛰어넘은 자가 없었다.”
대척점(對蹠點)에 선 딸은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분노였다면, 세리안은 냉정함이었다.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에 그와 비교될 수 있었지만, 그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제는 너 혼자 우뚝 서야 한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도와줘. 불파겐의 후예라고. 얼마나 미친놈일지 상상도 안 간다니까? 가주가 딱 나타나서, 한칼에 딱! 조져버리고, 오거 야크트까지 전수해주면 끝나는 상황인데.”
세파리아스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일없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그대로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면, 망할 제자 놈은 성장할 수 없고, 자신의 그림자조차도 넘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뛰어넘어야 했다.
중립신에게서 인간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 그 순간, 드낙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는 세파리아스를 뛰어넘겠다고 호언장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팔아? 진짜 갔냐?”
결국 드낙은 세파리아스를 설득하지 못했다. 수백 년 지난 불파겐의 후예에게 겁먹는 드낙의 모습은 실로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다음에 드낙은 중립신을 호출했다.
“중립신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나의 챔피언아.”
머리가 바닥에서 솟아나며 밀랍처럼 창백한 모습의 중립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오른팔은 뚝 잘려 있었다. 드낙에게 전초극의 오른팔을 내어줘서였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권능이었고, 그렇기에 팔을 떼어줘서 〈그릇〉으로 삼았다.
“전초극의 오른팔을 켜고, 끌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on/off 기능을 달라고 간청했다.
중립신은 그것을 막을 명분이 없었으므로 허락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해달라는 것인지, 물어볼 수는 있겠지?”
“예. 적어도 세파리아스의 무력에 닿고 싶어서입니다.”
드낙은 진실을 말해주었다. 중립신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가 사라지자, 드낙은 검은 꿈에서 강철이 흐르는 강을 뽑아들었다.
‘닿고 싶다. 신을 앞에 두고도 당당할 수 있었던 그 무력이.’
신조차도 죽이지 않고,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무력을.
*
7일 뒤에 플래티넘의 사절단과 드낙은 서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무력을 생각한다면, 1왕자와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신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오랜만이오. 불파겐 자작.”
“일왕자도 반갑소.”
드낙의 거침없는 말에 사절단의 기세가 욱하고 올라왔지만, 드낙의 눈총을 받고는 그대로 찍하고 가라앉았다. 감히 평범한 인간 따위가 드낙의 기세를 버틴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눈앞에서 지어미, 아비를 죽이지 않는 한, 드낙의 기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서로 겨울에 고생이 많은데 서로 이 정도에서 물러남이 어떠한가?”
“조건이 있을 것 아니오?”
드낙의 말에 일왕자가 사절단에 속한 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나서서 한 번 고개 숙여 일왕자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다음에 드낙에게도 고개를 숙여 자신을 짧게 소개하며 인사를 했다.
“변경백의 영지를 수복하는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서로 사이좋게 10년을 두고 전쟁으로 짓밟히고 파괴된 곳을 함께 쌓아나가며 쌓인 원한을 털었으면 하는 것이 왕자 전하의 마음이십니다.”
실로 그럴듯하고, 시민들에게 잘 통할 것 같은 평화의 사건이었다. 동시에 남부와 동부의 화합을 억지로 이루어낼 수도 있었다.
드낙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또한 굉장히 생산적인 일이기도 했다. 이런 단시간 내에 그런 방법을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다른 조건은 없소?”
이에 대해서는 일왕자가 답변했다.
“없소. 그 이상을 원한다면, 불파겐 자작. 그대가 줘야 할 것이오.”
그 말을 드낙은 해석하지 못했고, 고개를 돌리며 겐과 이실레아를 손으로 까닥해서 가까이 오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이실레아가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작위를 포기하고, 왕국을 선포할 때입니다. 남부는 스스로 10년 정전협상을 보기 좋게 포장했습니다. 아예 떨어져 나가고 서로 침략하지 말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금 왕가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왕국을 건국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직책과 직급이 아닌, 작위를 내려줘야 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이 해야 했다.
남부 왕국을 따른다면 공국으로 시민들에게 이야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만큼 왕국을 선포하기 좋을 때가 없었다. 다만, 그녀는 악마가 남부에서 준동했다는 것을 몰랐다.
반면, 겐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길게이 남부 사령관을 생각하십시오. 그는 남부를 침공할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년은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변경백의 영지는 그 시간동안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백금 왕가가 이번 침공을 보고도 변경백 영지를 두껍게 하지 않는다는 건 그들을 너무 바보로 여기는 처사였다. 또한 드낙도 이 협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도망치는 입장이었음에도, 남부 본대가 지금 회군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녀석들.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 하면서, 솔직하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