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43)
오왕(五王)의 일인 섬독왕 백사하의 장원 내부.
백가의 장원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돌잔치로 백가의 친족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있었다.
외부의 손님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친족들만으로도 족히 수십여 명은 됐다.
정원에는 한참 잔치를 위해 숙수들이 임시 야외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었고, 친족들은 탁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돌잔치를 축하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잔치가 진행되는 도중 백사하의 아내인 장 부인이 급한 전갈에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길을 걸으며 장 부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기어코 왔구나.”
“네. 삼년상 중이라 찾아올 마땅한 명분은 오늘뿐이었을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답하는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찢어진 눈매의 사내는 섬독왕 백사하의 둘째 아들이자 외총관을 맡고 있는 백소강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급하게 장소를 옮기는 이유는 갑작스러운 손님들 때문이었다.
“둘째 공자와 셋째 아가씨라고 했나?”
“네. 각자가 심복들을 데리고 왔더군요.”
“후우.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어쩌겠습니까? 아버님의 지지를 받고 싶어서 온 걸요.”
“그랬겠지.”
현 천지회는 후계 다툼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
회주의 병환이 더욱 깊어졌다는 소문으로 인해 후계자들의 움직임도 더욱 기민해져갔다.
그런 와중에 가주인 섬독왕 백사하는 회주의 제자들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오늘 어떻게든 확답을 들으려 할 것이다.
“참으로 곤란하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하나 언젠가는 닥칠 문제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 하여도 네 아버지의 성정을 알지 않느냐?”
“그야······ 후우.”
백사하의 차남 외총관 백소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아버지는 절대로 자신이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으시지 않는다.
해서 우려가 되었다.
괜한 사달이 벌어질까 말이다.
“방은 나눴느냐?”
장 부인의 물음에 차남 백소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후계자들을 같은 접객실에 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도착하면 한 방으로 합치거라.”
“네? 하오나 그렇게 하면···.”
“따로 하게 되면 오히려 더 거절하기 힘들어진다.”
“아······.”
“차라리 같이 있을 때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순순히 물러가게 될 게다.”
“어머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차남 백소강도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게 그들이 접객실이 있는 별채의 전각을 넘어서려고 하던 찰나였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그때 누군가 황급히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그는 다름 아닌 장원의 입구를 지키는 무사 중 한 사람이었다.
“대부인 마님.”
장 부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 그게 지금 손님이 한 명 더 찾아왔습니다.”
“손님? 친족이나 미리 정해놓은 분들이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돌려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네. 그렇기는 하온데······.”
미리 지시를 내려놓았는데 왜 이곳에 온단 말인가?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하면 돌려보내게.”
“이걸 보십시오.”
그 말과 함께 장원 입구를 지키는 무사가 무언가를 품속에서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니. 그건?”
시혈곡 관문의 수석패였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세 개의 수석패.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기에 장 부인의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 * *
하나의 접객실로 모이게 된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과 셋째 제자 위소연.
그리고 그들의 뒤로 각자의 심복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후우.”
장능악이 짜증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장원으로 들어왔기에 위소연보다 당연히 빠르게 섬독왕 백사하와 만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그였다.
그런데 기껏 접객실에서 기다리게 하더니, 이제는 같은 방으로 부르다니.
덕분에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진 그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닐지.’
불편한 것은 위소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둘째 사형이 먼저 섬독왕과 만나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렇게 같이 대면하게 되면 설득이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고, 노골적으로 서로를 깎아내리게 된다면 자칫 전면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며 한층 무겁게 가라앉았던 접객실 안으로 오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머리가 희끗한 장년의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품이 느껴지는 그녀를 보자 둘째 제자 장능악과 셋째 제자 위소연이 동시에 일어나서 두 손을 모아 포권지례로 인사를 올렸다.
“백가의 대부인을 뵙습니다.”
“대부인 오랜만입니다.”
회주의 제자인 두 사람이었기에 이미 그녀와는 안면이 있는 터였다.
위소연도 섬독왕의 부인이자 백가의 대모인 장 부인을 존중하여 죽립과 흰 면사를 벗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선수쳤다.
“손주 분의 첫돌을 축하드립니다.”
‘이년이.’
장능악의 미간을 살짝 찡그리다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으로 경사입니다.”
‘아아아.’
이런 두 사람의 축하에 장 부인이 속으로 혀를 찼다.
어찌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데 이렇게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게 너무 눈에 보였다.
물론 경쟁을 하는 관계이기에 이해는 했다.
-슥!
“감사합니다. 회주의 두 제자 분께서 이리 누추한 곳까지 와서 손주의 무사함을 축하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당연히 축하드려야 할 일이지요. 한데 섬독왕 어른과 소가주님은?”
장능악이 그녀의 옆에 있는 외총관이자 차남 백소강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 대부인인 장부인 역시도 이 집안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장차 천지회의 회주가 될 수 있는 후계자들이 왔는데 어찌 돌잔치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소가주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은 건지 의아했다.
이 대답은 차남 백소강이 했다.
“송구합니다. 지금 돌잔치 중이기도 하고 형님께서는 친족분들을 응대하셔야 해서 미처 몸을 뺄 수가 없어 어머님과 제가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그런가요?”
“네.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양해하고 자시고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한참 잔치 중일 때 왔으니 바쁜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위소연이 미소와 함께 부드럽게 말했다.
장능악도 이에 질 새라,
“개의치 않아도 됩니다. 저는 그 정도로 염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후후후.”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장능악의 오만한 태도는 천지회 내에서도 꽤 유명할 텐데, 이렇게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모습이 가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아버지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거겠지.’
그때 장능악이 옆에 내려놓은 선물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데 이왕 이렇게 왔으니 오랜만에 예의상이라도 섬독왕 어른을 뵙고 싶습니다만.”
먼저 운을 떼는 장능악의 모습에 위소연도 맞장구를 치듯이 말했다.
“사형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오랜만에 섬독왕 어른을 직접 뵈어 축하인사도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이런 그녀의 말에 장능악이 옅은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끼어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일을 방해하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줄 아는가.
-촥!
장능악이 부채를 펴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굳이 사매까지 여기에 있을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군. 내가 대표로 섬독왕 어른을 만나볼 터이니 그만 돌아가지 그래.”
“그럴 수야 있나요. 숙부와도 같은 분을 오랜만에 뵐 수 있는 자리인데, 얼굴조차 보지 않고 가는 것은 오히려 결례이지요.”
“결례라고 생각할 이유가 있나?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 걱정 마.”
“아뇨. 괜찮습니다.”
딱 잘라 거절하는 위소연.
이런 그녀를 장능악이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제는 대놓고 서로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는 두 후계자들을 보며 장 부인이 속으로 혀를 찼다.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안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장 부인이 끼어들려고 했다.
“두 분···.”
그때 접객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부인 마님. 암종주의 제자분이 왔습니다.”
‘!?’
이를 들은 장능악과 위소연이 동시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가 어떻게?’
‘녀석이 들어왔다고?’
두 사람은 당연히 목경운이 선물만 전달하고서 돌아갔을 거라 여겼다.
한데 무슨 수로 장원에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장 부인이 두 사람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송구한데 암종주의 제자도 이곳에 잠시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목··· 아니 암종주의 제자를 어찌?”
“두 분과 암종주의 제자에게 같은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아서요.”
“같은 양해?”
이런 장 부인의 말에 장능악과 위소연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
하나 지금 아쉬운 처지는 자신들이었고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서는 그녀의 양해를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그러시죠.”
“저도 괜찮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목경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경운이 모두를 향해 포권지례를 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암종주의 제자인 목경운입니다.”
‘······보통 미색이 아니구나.’
목경운의 얼굴을 본 장 부인이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훤칠하다는 느낌보다 아름답다는 느낌이 드는 남자의 얼굴을 처음 본다.
하나 그것도 잠시였고,
“그대가 암종주의 제자 분이었군요. 나는 백사하 어른의 아내 되는 사람이에요.”
“아아. 대부인 마님이셨군요.”
목경운이 다시 가볍게 두 손 모아 목례를 했다.
그러자 그녀가 장능악과 위소연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장능악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미 밖에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부인.”
“아, 그런가요?”
“네. 두 분께는 인사드렸습니다.”
목경운의 대답에 장 부인이 비어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면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목경운이 그곳으로 가 모두를 한 번씩 훑어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 옆자리에 위소연이 있었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그녀가 목경운에게 작게 속삭였다.
이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볼일이 있어서요.”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위소연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장 부인이 손님으로 있는 모두를 향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렇게 모이신 손님분들께 송구하게도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바깥양반께서는 지금 삼년상을 치르고 있습니다. 해서 지금도 저희 모두가 상복을 입고 있지요.”
물론 이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지금 저희 남편은 누구와도 만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장능악이 가늘어진 눈매로 물었다.
이런 그의 물음에 장 부인이 답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 남편은 외부와 단절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해서 여러분께 부득이 양해를 구하는 겁니다.”
“하온데 지금 돌잔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돌잔치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장 부인의 말에 장능악과 위소연 모두가 말이 없어졌다.
오늘을 기회 삼아 찾아왔는데, 설마 집안까지 들어와서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아무리 오왕의 일인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기 회주 자리를 다투는 후계자들이 방문했는데 이리 얼굴조차 비추지 않고 보낸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두 사람 모두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져 선뜻 알겠다고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장 부인이 목경운에게 말했다.
“마찬가지로 암종주의 제자 분 또한 이번에는 그냥 물러가···.”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오는 거절 의사.
이런 목경운의 말에 장 부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백사하의 부인인 자신이 이렇게 간곡하게 양해를 구하는데, 이게 무슨 말버릇이란 말인가?
“내가 분명 양해를 구한다고 말씀드렸을······.”
“송구하지만 제가 알기로 수석패 세 개에 대한 혜택은 회의 규율로 정해진 것이기에 누구도 거절할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
이 말에 대부인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목경운의 말은 정확했다.
시혈곡 관문의 수석패 세 개를 가진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간부들에게나 가르침을 청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간부는 이것을 거절할 수 없다.
회의 규율로 정해진 것이기에 누구나가 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섬독왕 백사하는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회주의 제자들이 있는 모두의 앞에서 완곡하게 양해를 구한 그녀였다.
그래야 목경운이 저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더는 가르침을 요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그 예상이 벗어났다.
‘이 아이 정말······.’
눈치가 없는 것인가? 고집이 센 것인가?
무엇이 되었든 참으로 곤란해졌다.
여기서 회의 규율 때문에 목경운은 예외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준다면 후계자들의 입장이 어찌 되겠는가?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장능악과 위소연이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 회의 규율 때문이라며 목경운만 들여보내려 한다면 반발할 그런 분위기였다.
-슥!
그때 장 부인의 옆에 있던 차남 백소강이 그녀의 팔소매를 잡고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장 부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별수 없구나.’
자신의 선에서 거절하고 보내려 했는데 그건 힘들 듯했다.
차라리 직접 겪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 * *
모두가 장 부인과 차남 백소강을 따라 장원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본당의 뒤편에는 조상들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별채 건물 같은 것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의 앞에 도착하자 차남 백소강이 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백소강이 별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서 반 각가량 정도가 지나서야 다시 나왔다.
한데 나오는 그의 어깨에서 옅은 수증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왜 저런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슥!
차남 백소강이 모두를 향해 포권지례와 함께 고개를 몇 차례 숙이며 말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께는 공자님과 아가씨, 그리고 가르침을 청하러 온 암종주의 제자 분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나 주신다고 하오?”
장능악이 물었다.
이에 차남 백소강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 이내 입을 열었다.
“······만나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 그런 거라면 내가 먼저···.”
“하온데 조건이 있습니다.”
“뭐요?”
백소강의 말에 장능악의 언성이 살짝 올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목경운 때문에 만날 수도 있으면서 자신들을 그냥 돌려보내려 했다고 여겨 심기가 불편해진 그였다.
그런데 조건이 뭐니 그런 소리를 해대니, 아무리 그의 지지를 얻으러 왔다지만 불쾌함을 숨기기가 힘들었다.
반면,
“조건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위소연은 침착하게 그것을 물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아쉬운 쪽이 숙이고 들어가는 게 맞다고 여긴 탓이었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백소강이 별채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무언가를 꺼내왔다.
그것은 작은 탁자였는데, 그 위로 찻주전자와 여러 개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이건······.”
“따라드리는 차를 마시고 내공으로 해소시키거나 일 각 이상 버티실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
이런 그의 말에 모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차를 마시고 버틸 수 있으면 들어가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
그러는데 위소연이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혹시 찻주전자에 들어있는 게 독인가요?”
“그렇습니다.”
‘뭐?’
차남 백소강의 대답에 모두가 술렁였다.
대체 안으로 들어가 만날 수 있는 조건이란 게 뭐지 하고 여겼는데,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설마 누가 독 잔을 내밀 거라 여겼겠는가?
장능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농을 하는 것이오? 독을 마시고 버틸 수 있으면 들어오라니 무슨 이런······.”
“송구합니다. 하오나 이걸 할 수 없다면 들어가서 오히려 낭패를 보실 수도 있습니다.”
“낭패?”
“그렇습니다. 아버님, 아니 가주께서 말씀드려도 괜찮다고 하셔서 밝힙니다. 지금 이 별채 안은 독기(毒氣)로 가득합니다.”
‘!?’
이런 그의 말에 장능악이 눈살을 찌푸리며 별채를 쳐다보았다.
저 안이 독기로 가득하다고?
의아해하는 그에게 차남 백소강 대신 대부인인 장 부인이 말했다.
“제가 여러분께 양해를 구했던 것은 그 이유에서입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해가 될까봐 그리한 것입니다.”
“하······.”
“가내에서도 이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고작해야 이 아이를 포함해 넷 정도에 불과합니다. 어려서부터 독공을 익힌 백가인들조차도 견디기 힘들 만큼 별채 안은 강한 독기로 가득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했습니다.”
“······.”
“한데도 이 안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이런 그녀의 말에 장능악과 위소연이 잠시 머뭇거렸다.
안이 왜 독기로 가득한지나 섬독왕 백사하가 왜 저 안에서 나오지 않는 건지는 알기 힘들었다.
하나 지금 하는 말로 봐서는 저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면 그와 만날 기회가 없을 듯했다.
‘······독이라.’
단지 문제는 독이었다.
장 부인이나 차남 백소강이 말하는 걸로 보아선 보통 독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섬독왕과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빌어먹을.’
장능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수 없었다.
섬독왕의 지지를 얻게 되면 확실하게 위소연을 경쟁에서 밀어낼 수 있었고, 나아가 대사형과 어느 정도 견줄 수 있게 된다.
아무리 꺼림칙하고 불쾌하다고 해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백가의 독(毒).’
섬독왕 백사하가 이끄는 백가의 독술은 중원을 통틀어 세 손가락에 꼽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사천당가나 서역 구양가문이 아니고는 해독이 쉽지 않을 만큼 극악의 독술이라고 들었는데, 그것을 쉽게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일각을 버틴 다라······.’
처음부터 내공으로 오장육부를 보호하지 않으면 힘들지도 몰랐다.
장능악이 위소연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우려하는지 머뭇거리는 게 보였다.
‘후우.’
그래.
어차피 모두가 동등한 조건이라면 먼저 나서는 게 답이었다.
그래야 어느 정도 체면도 살고 말이다.
결심한 장능악이 앞으로 나서려고 하던 찰나였다.
-주르르륵!
‘!?’
그때 앞에서 누군가 먼저 잔을 채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목경운이었다.
설마 갑자기 먼저 나서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그였다.
그러는데 백가의 차남 백소강이 다소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겠나?”
이 독은 보통 독이 아니었다.
별채 안의 독기를 응축하여 물에 탄 것으로 어지간한 독공의 고수들조차도 쉽게 버티기 힘든 수준이었다.
‘내공 수위가 얕아 보이는데, 괜히 마셨다가 해독시키기도 전에 사달이라도 나면···.’
그것이 우려가 되는 백소강이었다.
기감 상으로 목경운에게 느껴지는 것은 고작해야 절정 초입 수준에 불과해보였다.
이 정도 내공 수위로는 독에 버티지 못하고 낭패를 볼 확률이 높았다.
이에 백소강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타일렀다.
“목 공자. 솔직히 말하리다. 무리하지 마시오. 아직 목 공자의 내공 공부로는···.”
-꿀꺽!
그때 목경운이 잔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이런?’
백소강이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내공을 충분히 끌어올릴 시간을 주려고 했는데, 저 극독에 가까운 독차를 그냥 한 번에 넘겨버리다니?
그런데 그 다음에 하는 말이 가관이 아니었다.
“달달하군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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