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181)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로 앞에 있던 목경운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를 놓친 진(眞) 일악(一岳) 부멸단의 대단주 호종혁은 고개를 움직이며 목경운의 자취를 찾았다.
그런데,
-쾅!
“크읍!”
어느새 목경운이 오악(五岳) 거암권의 저모팔을 짓밟고 있었다.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당하는 모습.
이것만 보더라도 목경운과 그의 무위는 압도적인 격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 이걸 가만히 지켜볼 수만 없는 노릇이었다.
-부웅!
호종혁은 자신의 독문 무기인 멸부(滅斧)에 강기(罡氣)를 일으켜 목경운을 향해 휘둘렀다.
베이면 좋겠지만 이걸로 베일 리는 없었다.
그저 저모팔에게서 물러나게 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차앙!
‘!?’
호종혁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기가 실린 날을?’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목경운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멸부의 날을 한 손으로 잡아낸 것이었다.
진기와 예기가 하나로 결집하여 첨밀하게 모인 것이 바로 강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을 맨손으로 잡는 것을 어떠한 무인도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이것에 대응하려 한다면 마찬가지로 강기를 일으켜야 했는데,
‘손?’
호종혁의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목경운의 손에 서려 있는 흑색 기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손에 감싸져 있는 저 기운이 멸부에 실린 강기로부터 베이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었다.
‘저 기운 대체 뭐지?’
예기보다 더 첨밀하고 강하다.
그리고 묘하게 흉악한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한데 이게 문제가 아니다.
맨손으로 강기를 막아내는 기운이라면 당연히 강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초절정의 극(極)에 이르렀다고 해도 맨손으로 강기를 일으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파스스스!
그 순간 목경운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이질감.
이것은 독기(毒氣)였다.
“이건?”
독기와 흑색 기운이 그의 강기가 맞물리자,
-쩌저저적!
‘아닛?’
멸부의 도끼 날로 손가락이 파고들며 그대로 금이 가고 말았다.
이에 놀란 호종혁이 황급히 각법을 펼치며 목경운의 머리를 걷어차려고 했다.
그러나,
-슥!
목경운은 이를 고개만 젖혀서 가볍게 피한 후에,
-퍽!
도리어 호종혁의 가슴에 일권을 날렸다.
일권을 맞은 호종혁의 신형이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가듯이 밀려나고 말았다.
-촤르르르르! 탱강!
그런데 그러면서 멸부의 한쪽 도신이 부러지고 말았다.
호종혁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부친께 받은 독문병기 멸부는 당대 명성이 높은 장인이 한철로 주조한 도끼였다.
보물처럼 아끼던 멸부의 한쪽 날이 부서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순간 노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으득!
‘이놈!’
하나 이런 분노와 달리 이성은 더욱 냉철해졌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
아무래도 초절정의 극(極)이 아니다.
이 정도로 자신을 웃도는 무위를 지니려면 벽을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하나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악인 거암권 저모팔과 거의 호각, 그리고 무안검 위맹천의 일검을 겨우 받아낼 수준이었다.
‘이건 빠른 정도가 아니다.’
거의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해지는 속도가 상상을 불허한다.
벽을 넘어섰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놈은 누군가가 부릴 수 있는 자가 아닌 듯 했다.
[뭐? 그자를 배제해야 한다고?] [네.] [이미 주군께서 마음에 들어 했는데 왜 배제하려고 하는데?] [위험하니까요.] [위험?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녀석의 출신 때문에 그러는 거면······.]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목경운 그자는 절대로 누군가에게 충성할 그릇이 못 됩니다.]새삼 죽은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장님 녀석의 판단이 옳았군.’
위맹천의 말대로 이놈은 절대로 주군이 통제할 수 없다.
강해지는 속도도 그렇고 그 꿍꿍이를 알 수 없기에 가까이 뒀다가 언제 무슨 사달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꽉!
‘난감하구만.’
다만 지금은 이게 더 문제였다.
주군의 명대로 놈을 제압하고 싶기는 한데 혼자서는 무리다.
자신의 짐작이 맞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혼자서는 이놈을 무(武)로써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가망성은 주군까지 합세해서 합공을 하는 방법인데,
‘잃을 게 너무 많다.’
그렇게 되면 손해가 막심해진다.
수하로 거두려던 자를 상대로 자칫 합공을 하고도 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뒷수습이······.
“그만!”
그때 장능악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그의 외침에 삼악 호종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표정이 잔뜩 굳어진 장능악이 눈알을 들고 있었다.
‘눈알?’
저게 대체 뭐지?
진 일악 호종혁이 의아해하는데,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장능악에게 말했다.
“이제 대화를 나눌 생각이 드셨나보군요.”
“네놈 이거······.”
장능악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이내 하석에 있는 무인들에게 거칠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일단 물러가 있어라.”
“하오나 주군?”
“물러나 있으라고 했다.”
“충!”
이런 그의 명에 하석에 있던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정원 밖으로 나갔다.
하채린에게 빙의해있는 고찬도 머뭇거리다 물러나려 했지만 사악 서혜인이 고개를 저으며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들이 전부 나가고, 오악회만이 남게 되자 장능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무엇이냐?”
그 물음에 목경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설마 정말 모르셔서 묻는 건 아니겠지요?”
“······네놈 지금 본 공자를 상대로 능멸하려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당연히 공자님이시라면 그걸 보면 알아볼 거라 생각했는데, 뭐냐고 물으시니까 그렇지요.”
“너!”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건가요?”
“······.”
더욱 굳어진 장능악의 표정에 호종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의 손에 들려있는 눈알을 쳐다보았다.
저게 대체 무엇이기에 자신의 주군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그러는데 장능악의 입에서 믿기지 않는 말이 나왔다.
“대사형과 겨룬 것이냐?”
‘대사형?’
이게 무슨 소리지?
목경운이 대공자 나율량과 겨뤘냐니?
의아해하는데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게 충분한 답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목경운의 시선은 장능악의 손에 들려있는 눈알에 향해 있었다.
이런 그의 태도에 장능악의 굳어진 표정으로 손에 들려있는 눈알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핫!”
이런 그의 모습에 그의 심복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 역시도 장능악의 반응 덕분에 저 눈알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게 대체?’
‘저놈이 대공자를 꺾었다고?’
‘······그 괴물을?’
대공자 나율량.
천지회 내에서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많지 않았다.
육천(六天)의 일인인 천지회 회주의 제자이자 벽을 넘어서 화경에 이른 괴물이다.
천지회 최고 간부인 오왕들조차도 팔성의 칭호를 받은 두 왕이 아니고는 상대하기 힘들다고 알려졌다.
그런 그를 저놈이 상대했다고?
아니 상대한 게 아니라 눈알까지 뽑아왔다면 이긴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그러던 찰나였다.
“하핫······하하하하하하핫!”
그때 헛웃음을 터뜨리던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이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태도에 모두가 의아해하며 바라보았다.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 걸까?
왜 그러는가 하는데 한참을 웃어대던 장능악이 자리에 털썩 앉더니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의 눈알을 뽑아오다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구나. 하하하하하핫. 이리 와서 이야기하자꾸나.”
“주군!”
사악 초연단의 단주 서혜인이 이를 만류하려 했다.
그러자 장능악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됐다. 그 괴물 같은 놈의 눈알을 뽑아온 녀석이다. 저놈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
“하오나 주군 너무 위험······.”
“됐다. 어차피 저놈이 해코지를 할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했겠지. 안 그렇느냐?”
그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정답입니다.”
“······.”
이런 그의 대답에 사악 서혜인과 안면이 퉁퉁 부은 오악 저모팔이 우려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저놈이 강하다고 해도 자신들은 심복이었다.
그의 안위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는데 호종혁이 하지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내버려 둬.’
어차피 정말로 화경의 고수라면 이미 이 정도 거리도 놈의 반경에 포함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손을 쓸 수 있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간격을 좁히는 편이 낫다.’
그게 오히려 놈으로부터 주군인 장능악을 지킬 수 있다.
때로는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니 말이다.
-저벅저벅! 탁!
결국 목경운은 전각으로 올라와 장능악의 맞은 편 자리에 앉게 되었다.
확연히 달라진 대우였다.
옆자리에 있는 것은 신뢰를 의미하지만 정면에 앉힌 것은 상대에 대한 인정이었다.
목경운이 앉자 장능악이 술병을 들고서 말했다.
“한잔할 테냐?”
“주시는 잔을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좋다. 한잔해라.”
장능악이 목경운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맞은편에 앉아있기에 거리가 있었지만,
-조르르륵!
장능악이 내공을 가하자 술병 안에 있던 술이 멀리 있는 잔까지 뻗어서 들어갔다.
술잔이 가득 차자 이어지던 술 줄기가 끊겼다.
‘역시 공자의 진기는 보통이 아니군.’
회주의 세 제자 중 가장 낮은 진기를 지녔다고 해도 어지간한 내가 고수들은 상대도 안 될 방대한 진기였다.
어렸을 적부터 벌모세수를 받고 주기적으로 영약을 먹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장능악이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목경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따라줄 텐가?”
술병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일어서서 술병을 가지러 가야만 잔을 따라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목경운을 일어나게 하려는 의도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설마 놈을 길들이려는 건가?’
사악 서혜인이 이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어렵지 않지요.”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더니 이내 술병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윽고 술병의 주둥이에서 술 줄기가 저절로 뻗어 나오며 장능악의 잔으로 들어갔다.
-주르르륵!
‘!!!!!!’
이를 본 장능악의 심복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이것은 허공섭물(虛空攝物)의 수법이었다.
초절정의 극(極)에 이르게 된다면 진기로서 사물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하나 물방울 같은 것을 진기로 이렇게 섬세하게 다루려면, 그보다 더 위의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했다.
“이제 확인이 되셨나요?”
목경운의 이 말에 장능악이 술로 가득 찬 잔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역시 벽을 넘어섰군.”
‘아······.’
사악 서혜인은 그제야 장능악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군은 목경운이 정말로 벽을 넘어서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려 했던 거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놈은 화경의 고수가 틀림없었다.
후기지수 수준이 아니라 이미 천지회 내에서도 손꼽힐 절세고수였다.
암종주, 섬독왕의 제자를 떠나서 그 혼자만으로도 하나의 전력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위치가 된 것이다.
주군이 왜 목경운을 바로 앞에 앉혔는지 알 것 같다.
그때 장능악이 입을 열었다.
“강자는 그만큼의 대우를 받아 마땅하지.”
-슥!
장능악이 두 손을 모아 목경운에게 포권 지례를 하며 말했다.
“회주의 둘째 제자 장능악이 목 공자를 삼가 예로 대우하겠소.”
‘아!’
그런 그의 태도에 오악회의 심복들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들 역시도 자신들의 주군인 장능악이 간부들 이외의 후기지수 연배의 자에게 이렇게 공손히 대우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하나 충분히 그만한 자격이 있기는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화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으니 말이다.
-슥!
목경운도 그에게 포권 지례를 하며 답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지만 예로 대우해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로 오고 가며 예로 대하는 것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장능악 역시도 그리 생각했는지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목 공자. 하면 이것을 가지고 나를 찾아온 연유를 물어봐도 되겠소?”
-슥!
장능악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대공자 나율량의 눈알이었다.
눈알을 바라보는 장능악은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목경운이 대사형 나율량과 손을 잡고서 자신을 농락한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의 오판이었다.
목경운은 막내 사제인 위소연의 오른팔 우호랑을 쓰러뜨렸고, 그것도 모자라 대사형 나율량과 겨루고서 그 눈알을 뽑아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본 공자와 함께하고자 함이구나.’
그는 확신했다.
목경운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예상과 다르게 목경운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위소연 아가씨 측과 합치시죠.”
‘!?’
순간 장능악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자식 한참 사람 기대하게 만들어놓고서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이에 장능악이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목 공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막내 사제와 합치라니 그게······.”
“말 그대로입니다. 두 분 세력을 합치지 않으면 나율량 대공자 측과 겨루는 게 힘들 것 같아서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장능악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다가 실소가 나왔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말이라 허탈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말하는 건가?
이에 장능악이 속내를 그대로 말했다.
“이보게. 목 공자. 자네는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가능요?”
“그렇네. 나도 그렇고 막내 사제도 그렇고 서로가 하나의 자리를 놓고 달려가고 있네. 그런데 지금 우리더러 서로의 세력을 합치라고 한다면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장능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이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뭐 막내 사제가 내게 충성을 맹세하고 산하로 들어오겠다고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목 공자의 그 제안은 사실상 불가능하네.”
“그렇군요.”
어리석은 제안이다.
이건 자신도 그렇고 막내 사제도 받아들이지 못할 제안이다.
애초에 그럴 거였다면 옛적에 이미 힘을 합치거나 둘 중 한 사람을 밀어주는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그게 안 되니 각자가 이렇게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은가.
“모쪼록 제안은 고맙지만······.”
“아아. 혹시 제안으로 들리셨나요?”
“뭐?”
순간 장능악이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하는데,
-흠칫!
놈이 지금까지와 달리 악의(惡意)로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제안이 아니라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겁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