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24)
목경운은 이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가끔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그가 그리워졌다.
그 그리움이라는 감정 속에는 자연스럽게 아련한 마음 역시 묻어났다.
‘뭘까?’
목경운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이 존재가 가졌던 감정에 강한 의문이 생겨났다.
이 존재가 언제부터 자신의 안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련함이란 감정은 마찬가지로 그리움에서 묻어난다.
청령은 오래전에 죽은 원혼인데 어째서 그런 감정이 느껴졌던 걸까?
자신은 고작해야 이제 막 18세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청령에게······.
‘설마?’
목경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설마 격이 높은 원혼이 자신의 몸에 빙의해 있는 게 아닐까?
무의식 상태일 때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을 정도라면 청령조차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원혼일 수도 있다.
한데 청령의 말대로라면 벽을 넘어서면서 정신이나 혼의 격도 한층 강해지기에 원혼들의 빙의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게 맞는 걸까?
목경운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는데,
-중생.
청령이 목경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네?
-너 안에 그 존재······. 단순히 인격적인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인격적인이라면?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느냐?
-아뇨.
처음 들어본다.
-예전에 천지회 소속의 간부 중에 특이한 자가 있었다. 한 사람 안에 다른 두 명의 인격이 있었다. 물론 빙의가 됐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한데 특이하게도 둘 모두가 말투나 행동, 성격 모두가 달랐다.
-해서 인격이 둘이라 이중인격이라 부른 건가요?
-그래. 한데 너 같은 경우는 좀 많이 다른 것 같다. 전혀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는데 마치 네가 신적인 존재라도 된 것처럼 말을 했어. 이중인격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경험의 폭 자체가 너무 달랐다.
-빙의일 확률도 있을까요?
-빙의? 그건 절대로 아니지. 아무리 격이 높은 원혼이라도 네 몸을 빼앗는 건 불가능해. 벽을 넘어선 시점부터 육신뿐만이 아니라 혼 역시도 강해진다.
-그럼 대체 제 안의 그건 무엇일까요?
-······.
목경운의 물음에 청령의 눈빛이 묘해졌다.
흑요석과도 같은 검은 눈동자.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은 죽기 직전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선명하다기보다는 꿈처럼 흐릿하기 그지없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 ‘그’가 포효하는 것을 보았다.
그 포효하는 모습에 모든 자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그 모습은 분노보다도 서글프기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 목경운의 그 흑요석 같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그 정확하지도 않은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던 걸까?
-청령?
목경운이 그녀를 불렀다.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알려달라는 듯한 목경운의 표정에 이내 청령이 뾰로통해졌다.
갑자기 왜 이 녀석에게 심통이 나는 거지?
이에 그녀가 신경질을 냈다.
-몰라! 본좌라고 세상에 모르는 게 없는 줄 아느냐?
그 말과 함께 청령이 갑자기 멀찌감치 날아가 버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중얼거렸다.
“······뭐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슥!
목경운이 가볍게 왼편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목경운이 손을 뻗은 방향에서 이십여 보 정도 떨어진 곳까지 안간힘을 써가며 가고 있던 성화령주의 몸을 무언가에 잡힌 것처럼 경직되고 말았다.
“흐헙.”
“어딜 가는 거죠?”
그 물음에 성화령주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목경운의 분위기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미친 사람처럼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앞을 응시하며 기이한 행동을 하기에 도망을 시도한 것이었다.
애초에 정말로 도망갈 수 있다는 희망 따윈 없었다.
자신은 무공도 익히지 않았을뿐더러 연로한 몸이었기에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경으로 움직였던 것이었다.
“저, 저는 그저······.”
-슥!
“어억!”
목경운이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자 성화령주의 몸이 떠올라 강제로 앞까지 날아와졌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그녀로서는 이를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렇게 바로 앞까지 날아와 강제로 무릎이 꿇려진 성화령주가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찔리는 게 많으니 도망을 가는 거겠죠?”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죠. 예언으로 무슨 짓거리를 한 거죠?”
“네?”
성화령주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두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검어지며 절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던 목경운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지금 태도를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런 모습이다.
‘뭐지?’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달라졌다.
검은 눈일 때는 풍기는 위엄도 그렇고 절대적인 군림자의 모습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특유의 그 정중함 속에 모순적이게도 흉폭한 광기(狂氣)를 비치고 있었다.
이에 성화령주는 의아해했다.
‘그 자체가 아니라 화신이 맞는 건가?’
애초에 그 자체였다면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화신이기에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지금뿐이지 않을까?
눈치를 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보······.”
-촥!
-툭!
성화령주의 인상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왼쪽 귀가 잘려 나가서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피가 흘러내리는 귀 쪽을 붙잡고서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목경운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거두절미하고 하고 묻는 말에 답하시죠.”
그 말에 성화령주가 시뻘게진 얼굴을 들어 올리며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으으으······자네는 노부를 죽일 수 없네.”
“죽일 수 없다?”
“노부를 죽이면 보주도 그렇고 천지회주에게 데려가야 하는 자네의 입장도 곤란해지지 않는가.”
목경운이 위대한 존재인지 화신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도 나름의 통찰력이라는 게 있었다.
이광과의 대화나 여태까지의 상황을 본다면 목경운은 천지회주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필요했다.
그걸 확실히 해둬야 놈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촥!
‘!!!!!!’
-첨벙!
방금 전과는 무게가 다른 무언가가 빗물 고인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바로,
“아아아아아아악!”
성화령주가 오열을 하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지하금옥에서도 그 많은 고문을 굳은 인내심으로 참아냈던 그녀였다.
그러나 황궁에서의 고문이나 심문은 어느 정도 연로한 그녀가 죽을 수도 있기에 이를 어느 정도 감안하여 그 수위를 낮췄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주 약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등의 채찍질과 구타는 기본이었고 바늘로 찌르거나 손톱이 뽑아내거나 하는 수준 정도는 이뤄졌었다.
하지만 멀쩡한 팔이 잘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끄으으으······.”
너무나도 큰 고통에 이내 그녀가 가슴을 붙잡고서 숨을 헐떡였다.
큰 충격으로 심장에 마비 증상이 온 것이었다.
그러자 목경운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는 대(大)로 넘어진 그녀의 가슴을 밟았다.
-꽉!
얼핏 보면 죽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이윽고 헐떡이던 성화령주의 호흡이 안정화되었다.
목경운이 그녀의 심장에 강한 충격과 함께 기운을 불어넣으면서 경직되었던 것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컥컥······.”
-타타타탁!
그리고 지혈점을 눌러준 덕분에 팔에 출혈도 멎었다.
병 주고 약 주는 느낌이 들었지만, 목숨을 잃기 직전에 손을 쓴 느낌이 컸다.
“노, 노부를 죽이면 자네가 원하는 것은······.”
“쓸데없는 걸로 흥정하려 들지 마시죠.”
“쓸데없는 게 아니라······”
“천지회주는 더 이상 당신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그자가 데려오라고 했는데 어찌 자네 멋대로······”
“천지회주가 필요로 하는 게 그냥 당신일까요? 아니면 예언의 능력일까요?”
“그러니 더욱······.”
“보주가 없어서 예언을 못 하는 게 아니잖아요.”
‘!?’
목경운의 촌철살인과도 같은 그 말에 성화령주의 두 눈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이놈 그분의 화신으로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가?
-꽉!
목경운이 그녀의 가슴을 더욱 세게 짓누르며 말했다,
“예언의 능력을 잃은 시점에서 당신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늙은이죠.”
잠시 몸의 주도권을 잃었다고 하나 상황 자체를 전부 관조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녀의 처지를 추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는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솨아아아아아!
엄청난 살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이 떨려왔다.
벽을 넘어선 이광이나 구양가의 팔독사장 구양소조차 목경운의 살기를 버티질 못했다.
당연히 성화령주가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심지어 사타구니 쪽에서 옅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로한 그녀는 공포를 더욱 견딜 수 없었기에 오줌을 지려버린 것이었다.
“나, 나는······.”
“아아. 그러고 보니 당가의 가주와 연이 있어서 손녀를 맡겼다고 했죠? 참 공교롭네요. 그 당가의 가주가 제 할아버지에게 무형독이라는 걸 쓴 것 같거든요.”
“자, 장 호법은 그대의 진짜 조부가······.”
“그쪽이 보는 앞에서 당가의 가주와 당신 손녀의 사지를 전부 찢어버리면 너무 즐거울 것 같군요.”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이 섬뜩하게 웃었다.
이를 코앞에서 보는 성화령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대고 목경운이 속삭였다.
“그러니까 인내심 건드리지 말고 말하시죠. 진짜 예언이 무엇이었는지?”
속삭이는 것과 달리 위압감으로 가득한 목경운의 말에 바들바들 떨던 성화령주가 이내 입을 열었다.
“지, 진정한 성스러운 불꽃의······주인이······현세에 나타날지어니······. 그 뜯겨나간 상처에······새로운 깃이 돋게 되는 날······모두가······경배하게······되리라.”
* * *
비슷한 시각, 어둠으로 가득한 대전 안.
-쩌저적!
균열이 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그 순간 단상의 상좌에 앉아 있던 그림자로 드리워진 존재가 눈을 떴다.
눈을 뜬 존재가 여섯 개의 초가 켜져 있는 파인 벽면을 바라보았다.
그중 가장 말미에 있는 초 앞에 붉은 실을 둥글게 둘러놓은 옥패가 있었는데, 그것의 한가운데에 금이 가 있었다.
이에 그림자로 드리워진 존재가 손을 내밀었다.
-팍!
그러자 둥근 옥패가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다.
옥패를 쥔 존재가 이내 그것을 살피려는 순간이었다.
-바스스스스!
금이 갔던 옥패가 부서지며 이내 가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와 함께 그림자로 드리워진 존재의 고개가 갑자기 뒤로 젖혀졌다.
존재가 천천히 젖혀진 고개를 제자리로 돌렸다.
그런 존재의 이마에서 끈적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러자 존재의 두 눈동자가 매서워지며 이내,
-쩌저저적!
이마가 갈라지며 기묘한 형태의 붉은 반점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번째 눈을 개안한 존재가 잡고 있던 왼손의 팔걸이가 그대로 부서지고,
-콰드득!
그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천장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군이시여.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그 물음에 세 번째 눈을 개안한 존재가 부서진 팔걸이에서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
“소집할 수 있는 제 일계의 간부들을 전부 불러라.”
-네? 어찌 그러시는지?
조심스러운 목소리의 물음에 세 번째 눈을 개안한 존재가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말했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설마?
“놈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