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371)
“이 요검들에 인육과 피, 그리고 그들의 원한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
장주 구천무의 말에 목경운이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으로 요검 악즉을 바라보았다.
검에 강한 요성이 느껴지기 때문에 뭔가 사연이 있을 거라 여겼지만 인육과 피가 담겨 있다니.
그렇다는 건 결국 검을 제조하기 위해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켰다는 건가?
‘······이게 다인가?’
장주 구천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요검에 들어간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면 크게 놀라거나 께름칙하게 여길 거라 여겼던 것과 다르게 오히려 흥미를 보이는 모습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범인들과는 다르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대범한 수준을 넘어섰다.
아니 사고 자체가 다른 건가?
그러는데 목경운이 검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 자루도 아니고 다섯 자루나 되는 검에 그리했다는 건 뭔가 특별한 연유라도 있는 건가요?”
‘······.’
달라.
역시 많이 다르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던 구천무가 이내 답했다.
“그 연유에 대해서는 속하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저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다섯 자루의 요검이 탄생했다는 것만이 가문의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다섯 자루를 동시에 만들었다고요?”
“그렇습니다.”
“흐음. 참 특이한 분이네요. 평범한 검도 아니고 이런 특이한 요검을 다섯 자루나 제작해달라고 하다니.”
“······그것 때문에 선조께서는 요검을 만든 것을 수치로 여기셨습니다.”
“누군가의 목숨으로 만들어진 검이라 그런 건가요?”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럼 거절했으면 되지 않나요?”
“거절했다면 일가의 맥이 끊어졌겠지요.”
“아아아.”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누군가의 요구가 아니라 협박에 의해 탄생한 모양이다.
장주 구천무가 탄식을 흘리며 말했다.
“참으로 공교롭기 그지없습니다. 비록 검심을 완전히 잡지 못했다고는 하나 검을 완성시킨 날에 이것이 본 장에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오늘 가문의 숙원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가문의 숙원?”
“네, 관야흑철로 만들어진 검을 속하의 손으로 탄생시켰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에서 담겨 있는 미묘한 흥분에 목경운이 의아해하며 요검 악즉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악즉도 관야흑철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뭐가 공교롭다는 거죠? 뭔가 특별한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 물음에 장주 구천무가 요검 악즉의 검신을 바라보며 답했다.
“관야흑철은 단순한 방법으로 다룰 수 있는 철이 아닙니다.”
“단순한 방법으로 다룰 수 없다는 건······. 설마?”
[이 요검들에 인육과 피, 그리고 그들의 원한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순간 목경운은 장주 구천무가 아까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역시도 이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요검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관야흑철이라는 이 특수한 철은 기이하게도 인육과 피가 들어가지 않고는 녹여내서 형태를 갖출 수가 없습니다.”
“정말 기이한 철이네요.”
“기이한 것을 넘어서 이 철은 그야말로 괴물입니다.”
목숨을 희생해야만 녹여서 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기이함을 넘어서 정말 괴이함이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업을 이어온 대장장이 중에 이 관야흑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누구 하나 이것을 다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철은 최고의 철이기 이전에 저주받은 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그런 거였나.’
목경운은 이제야 그가 왜 관야흑철로 검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에 물었다.
“알겠군요. 가문의 숙원이라 했던 게 인육과 피를 쓰지 않고서 검을 만드는 데 성공해서인가요?”
그 물음에 장주 구천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장인이라 불렸던 구야자는 누군가의 목숨으로 이 요검을 만들며 자책감과 후회를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를 상심시킨 것은 장인으로서의 수치심이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희생시키지 않고서야 다루지 못하는 이 관야흑철로 인해 구야자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괴로워했다.
장인이 철을 다루지 못하고 그에 굴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것은 구가 일족의 대를 걸친 업이자 숙원이 되었다.
“주공의 말씀대로 저희 구가 일족은 구야자 선조의 수치를 씻기 위해 대대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고 오늘에 와서 이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여태껏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작업에 몰두했던 이유였다.
많은 이들의 검 제작을 거절했던 것도 머지않아 업을 풀 수 있기에 그러했던 것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단 반 시진, 아니 일각만 더 있었어도······.’
숙원을 푼 것도 모자라 최고의 역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도객과 주공이 된 목경운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이를 탓해봐야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역작이 탄생할 운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같은 감각이 다시 올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남은 시간은 충분하다.’
가문의 숙원은 자신의 대에서 이뤘으니, 이제 일생일대의 역작만 만들면 된다.
그렇다면 평생의 여한은 없을 듯했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어딘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보였다.
“주공?”
“아까부터 계속 묻고 싶었는데 그 완성시켰다는 검이 저곳에 있나요?”
목경운이 엄지손으로 그곳을 가리켰다.
장주 구천무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목경운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정말로 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안 거지?’
이 검은 검심(劍心)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 정신이 흐트러지면서 검심이 비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검에 예기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작업장 안에는 미완의 이런 검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검 자체에서 나오는 예기만으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오오오오!
그러나 그런 그와 달리 목경운의 눈에는 다른 것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은 가려진 어딘가로 주변의 자연지기들이 서서히 모여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 봐도 괜찮나요?”
“그 검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장인은 제대로 완성된 검이 아니면 다른 이에게 그것을 보여주지 않고 파기한다.
그것이 장인으로서의 고집과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주공의 명이니 이를 거절하기도 그러했고, 역작으로 탄생될 뻔 했던 검을 자신만 보고서 그냥 파기하자니 아깝기는 했다.
“한 번 봐주시지요.”
자신보다도 더 높은 검의 경지에 이른 목경운이었다.
그의 고견을 들어서 나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작업장의 가장 마무리 작업이 이뤄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목경운의 눈으로 어두운색을 띄고 있는 한 자루의 검이 보였다.
검심을 세우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기에 검병조차 없었다.
그런데,
‘!?’
이를 바라보는 목경운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뒤에 있던 구천무는 이를 볼 수 없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입을 열었다.
“검신이 유독 어두운 것은 만년한철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검심이 비틀려 아쉬운 감이 없지 않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역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공이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지······!?”
말을 하다 말고 구천무가 옆으로 다가갔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껴서였다.
‘아니?’
구천무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목경운이 멍한 눈으로 검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그 상태가 무아지경 즉 심상에 빠진 상태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지?’
검이 역작이라 불릴 만큼 완벽에 가까운 형태인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저 검의 형태만 보고서 심상에 빠져드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설마 자신이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본 것인가?
* * *
심상 속.
사방이 그가 알던 곳과는 사뭇 다르다.
하늘의 색마저 다르고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기이한 곳에서 그는 무언가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롱한 묵빛을 가진 검 한 자루였다.
그 검은 구천무 장주가 만든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고오오오오!
그 검은 마치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느껴졌고 흉폭, 흉악하기 그지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흉폭함은 기이하게도 낯이 익었다.
이것은 포효하는 마성(魔性) 그 자체였다.
심상 속에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고, 검을 다루는 동작 또한 거칠고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검은 그의 모든 것을 감당하며 최고조로 끌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검을 휘두르던 그는 이윽고 그것을 멈췄고, 이내 검에 가하던 힘을 빼자,
-촤촤촤촤촥!
묵빛 검이 갑자기 갈라져 분해되며 환(環)의 형태로 변했다.
* * *
‘아······.’
심상에서 빠져나온 목경운이 검병이 없는 검 자루를 바라보았다.
언제 이것에 빠져든 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이 검은 자신이 심상 속에서 본 것과 빼닮아 있었다.
이에 목경운이 옆에 있는 장주 구천무에게 물었다.
“이 검······. 장주께서 스스로 떠올려서 만든 것이 맞나요?”
‘!?’
그 물음에 장주 구천무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잠시 말문이 막혔는지 인상을 쓰고 있던 장주 구천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어째서 그것을 묻는 건지 주공께 여쭤봐도 될까요?”
“검을 본 적이 있어서요.”
“이 검, 아니 이 형태를 한 검을 본 적이 있다는 겁니까?”
“네.”
그 말에 구천무의 눈빛에 더욱 의구심이 서렸다.
그런 그의 반응을 의아하게 여긴 목경운이 물었다.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단지 제가 봤던 이 검의 최종적인 완성 형태는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아······.”
목경운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주 구천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왜 그러나 했는데, 이윽고 구천무가 묵빛 검의 앞으로 다가가 검병이 없는 손잡이를 잡고서 들어 올렸다.
“세상에는 절대라는 말은 없군요.”
“그게 무슨 소리죠?”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
“이미 몇 세대가 흘렀기에 이것을 아는 자는 없을 거라 여겨, 속하의 손으로 이 완벽한 형태를 구현해보고 싶었는데, 설마 주공께서 이를 알 줄은 몰랐습니다”
“원(原) 검이 있었군요?”
“맞습니다.”
-탁!
대답과 함께 장주 구천무가 다시 검을 내려놓고서 어딘가로 갔다.
작업장의 한편에 있는 서고 책장에서 오래되어 낡은 서책을 꺼냈다.
그렇게 서책을 가져온 장주가 이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한 부분을 펴서 목경운에게 보였다.
‘!?’
이를 본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책에는 검의 형태를 상세히 기록해놨고 심지어 이것이 분해되어 환(環)의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마저 서술되어 있었다.
“이게······. 뭐죠?”
“속하의 증조부께서 남기신 기록입니다.”
“증조부께서 남긴 기록? 그럼 장주의 증조부께서 이 검을 만든 건가요?”
그 물음에 장주 구천무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어찌 주공께 사실을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속하의 증조부께서 백여 년 전에 보았던 것을 기록해놓았습니다.”
백여 년 전?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목경운의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 심상은 대체 뭐지?
보통 그가 심상을 보게 되는 것은 깨달음 혹은 흔적에 남아있는 잔류 사념을 읽어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 탄생한 검을 보고서 기이하게도 처음 보는데도 낯익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럼 자신이 백 년 전의 광경을 보기라도 했다는 건가?
뭔가 이상했다.
그러는데 장주 구천무가 말을 이어갔다,
“속하의 증조부께서 이 검을 보게 된 것은 한 끔찍한 참상을 통해서였습니다.”
“참상이라고요?”
“네. 아시다시피 저희 구가 일족은 하루도 쉬지 않고 검을 제작하기에 이곳 검곡을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증조부께서는 평소에 교분이 있던 한 뛰어난 여검객(女劍客)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완성된 검을 직접 가져다주기로 하셨습니다.”
“직접 가져다줄 정도의 교분이라니 많이 친했나 보군요.”
“증조부께서 남기신 기록을 보면 그분께서는 여검객의 섬세하면서 훌륭한 검술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해 교분을 쌓은 듯했습니다.”
“호오, 그런가요?”
“네, 그분께서는 그 여검객의 검이 마치 수려한 달을 보는 듯하다고 평했을 정도였습니다.”
“······수려한 달이라고요?”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달을 연상시키는 듯한 검법이라는 게 문득 걸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검법 중에 달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무월공검(無月空劍)과 청령의 월(月)의 검식이었다.
그러는데 그가 작업장의 한편으로 걸어가 선반 위쪽에 쌓여 있는 목함 중 하나를 꺼냈다.
그 역시도 오랫동안 방치되었었는지 먼지투성이였다.
-탁탁!
손으로 먼지를 털어낸 장주 구천무가 긴 목함을 들고 오며 말했다.
“그건 뭐죠?”
“주인을 잃은 검입니다.”
-달칵!
구천무가 목함을 열자 오랫동안 열지 않았는지 삭은 나무 향과 함께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신이 너무도 하얀 순백(純白)의 검이었다.
백 년이 지났음에도 그 광채를 잃지 않는 모습에 목경운의 입에서 작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때 그의 귓가로 청령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생······.
-왜 그러시죠? 아······. 그러고 보니 백 년 전이라면 청령이 살아서 활동하던 시기죠?
그 물음에 청령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돌아왔다.
-이건······. 본좌의 검이다.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