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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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쾅!
“크헉!”
회주의 대제자 나율량이 충격에 피를 토해내며 깨어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나율량은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존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위······소연?”
-시답잖은 소리.
-푹!
“큭.”
가슴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운 손톱들에 나율량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오만하고 자존심이 세기에 누구보다 인내심이 강한 그였지만 이상하리만큼 통증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손톱을 빼내려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마비된 것도 아닌데 근육의 대부분이 끊기기라도 한 것처럼 통증만 느껴졌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진기를 일으켜 순화시키려 하자,
-우득! 우득!
“끄아아아악!”
단전의 내공을 순환시키려는 순간, 전신의 모든 혈자리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며 그의 입에서 신음성이 아니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것은 인내심만으로 견딜 만한 그런 고통이 아니었다.
나율량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모든 혈자리가 파열되었다는 것과 단전마저 정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몸이 어째서?’
중상을 넘어서 무인으로서 거의 복귀가 불가능할 지경으로 육신이 망가져 있었다.
대체 왜 몸이 망가진 거지?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는······.
-욱씬!
머리가 아파지며 일순간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이지?
의아해하는데 자신의 가슴에 손톱을 박아넣은 위소연······.
잠깐 이 여자 위소연이 맞나?
“네년······. 누구냐?”
위소연과 다르다.
생기가 보이지 않는 새하얀 얼굴.
위소연과 쏙 빼닮았지만 청순한 느낌의 그녀와 달리 주변을 아우르는 듯한 위엄과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콱!
“흡.”
가슴을 파고든 날카로운 손톱이 무언가에 닿았다.
그것은 분명 심장이었다.
고동치는 심장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은 평생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이질감과 불쾌함으로 가득했다.
말문이 막힌 그에게 사제인 위소연과 쏙 빼닮은 절세미녀, 청령이 말했다.
-천맥(天脈)은 본좌에게 생으로 심장이 뽑히는 고통을 주었지. 그 고통은 말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무슨······말을······.”
-네 안에 세 번째 눈······. 아니 비용헌이 들어갔었다. 길진 않더라도 놈과 잠시라도 몸을 공유했으니 분명 그 머릿속에 무언가가 남아있겠지.
“몸을 공유하다니······.”
-욱씬!
머리가 울리며 또 다시 알 수 없는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목경운과 자신이 싸우는 광경이었다.
아직 자신의 수준에서는 닿지 못한 고차원적인 천맥의 검결이 자신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그 엄청난 검을 목경운이 그에 버금가는 검초로 막아내고 있었다.
‘이게 뭐야?’
어째서 머릿속에 이런 기억들이 남아있는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의식이 있던 것은 주변의 회인들이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모약? 끄읍!”
순간 갑자기 변했던 모약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한 그녀가 자신의 비어있는 오른쪽 안구 쪽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자신의 눈알을 뽑아서······.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끄으으으으.”
그녀의 그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나율량은 주화입마(走火入魔)라도 입은 것처럼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며 이마의 핏대가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 모습에 나율량을 추궁하려 했던 청령의 눈빛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머릿속에 뭔가가 남아있기를 바랐는데, 지금 상태만 보면 그냥 망가지기만 한 듯했다.
‘비용헌!’
분노가 치솟는다.
놈이 정말 인간이 아닌지 어떤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무(武)인 천맥(天脈)을 이은 계승자를 이렇게 망가뜨리다니.
놈에게 있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그저 장기판의 패일 뿐인 건가.
-팍!
청령은 가슴에 박아 넣었던 손톱을 뽑았다.
이미 단전과 혈들이 파열되어 무(武)도 잃고 몸과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 녀석은 무인으로서 기사회생(起死回生)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생지옥이겠구나.’
정보를 알아낸 후에 천맥의 무를 이은 나율량을 죽이려 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육신은 둘째치고 정신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이상 이 녀석은 굳이 목숨을 거두지 않아도 끝인 듯했다.
그때였다.
다가오는 기척에 청령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타타타탁!
그곳에 피멍으로 물든 한쪽 눈을 감고 있는 한 여인이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서있었다.
그녀는 나율량의 심복인 모약이었다.
“공자!”
그녀의 외침 소리가 울리자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당장이라도 주화입마를 입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되려 했던 나율량의 눈빛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더니 그가 떨리는 눈으로 모약을 바라보는 게 보였다.
‘이놈······.’
저 여자 중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망가져 가던 의식이 돌아왔다.
거의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눈빛이 돌아온 나율량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자 청령은 묘한 마음이 들었다.
‘······.’
그녀가 천맥의 무를 이은 나율량을 살려주려 했던 이유는 그가 정신마저 망가져 회생하기 힘든 상태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한을 씻어내기 위해 천맥의 모든 것을 앗아가기로 결정한 그녀였다.
-스멀스멀!
그녀의 손톱이 길어지며 핏빛 영력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최고의 순간일지도 몰랐다.
무감정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저 중생 계집을 보는 순간 이놈의 눈빛이 애틋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분명 이들은 서로를 좋아한다.
‘그렇다 이거지.’
청령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올라갔다.
-휙!
청령이 가볍게 곰방대를 휘젓자 달려오던 모약의 몸이 핏물에 의해 구속되고 말았다.
-촤르륵!
“앗.”
“네년!”
순식간에 그녀가 붙잡혀 버리자, 나율량이 망가진 몸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나 전신의 혈맥이 파열되고 근육마저 혹사하여 전부 끊어지다시피 했는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끄으으으.”
괴로워하며 제대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자.
-슥!
청령이 영력으로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워줬다.
-보고 싶다면 보여줘야지.
어차피 소중한 이가 괴롭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네놈들, 천맥의 피와 무를 이은 자들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그렇게 청령이 모약을 향해 곰방대를 뻗으려 하는데, 나율량이 미친 듯이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끄으으. 멈춰!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무슨 짓을 할 것 같으냐?
-휙!
청령이 곰방대를 휘두르자,
-콰득!
모약의 왼팔이 반대로 꺾이며 팔꿈치 뼈가 살점을 뚫고서 튀어나왔다.
“아아아악!”
“그만! 그만둬라!”
-괴롭느냐? 이건 너희들이 본좌에게 줬던 고통에 일 할에도 미치지 못해.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엄살을 떨면 곤란하지.
“그녈 놓아줘. 차라리 날 죽여라. 천맥에 원한이 있다면 날······읍!”
나율량의 입에 강제로 다물어졌다.
힘을 거의 다 잃다시피 한 그였기에 아무런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걱정 마. 네놈도 죽여줄 테니.
그렇게 청령이 다시 모약을 향해 곰방대를 휘두르자,
-콰득!
“아아아아아악!”
모약의 오른팔이 반대로 꺾이며 마찬가지로 뼈가 튀어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장원에서 당한 부상도 있고 눈까지 잃어서 출혈이 심했던 그녀였기에 두 팔이 꺾이자 괴로운 것은 둘째치고 얼굴이 죽을 것처럼 창백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율량이 악에 받친 듯이 소리쳤다.
“끄읍읍읍읍!”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만함과 자존심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서 소중히 여기던 여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자 난생처음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괴로움을 느꼈다.
-꽉!
이런 나율량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가슴이 아팠는지 모약이 고통을 어떻게든 참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안간힘을 썼다.
그리도 원하던 모습이 나왔다.
청령은 자신이 죽기 전에 겪었던 모든 괴로움을 돌려주기를 기다렸다.
그렇기에 이 순간을 그리도 기다렸는데······.
‘······.’
이들의 모습을 보자 청령은 한이 풀리거나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씁쓸해지다 못해 속이 공허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어째서지?’
원혼으로 지낸 백 년 동안 천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씨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들의 괴로움을 지켜보는데 기분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답답해졌다.
대체 왜 그런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은 그냥 혼(魂)도 아니고 원혼(寃魂)이었다.
오직 원한에 의해서 이 세상에 머물게 되었는데, 원수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어찌하여 그런 감정이 생긴단 말인가?
‘아니야. 아니야. 본좌가 어찌하여 이들에게 하찮은 연민 따위를 가진단 말인가?’
그래.
원한의 최종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천맥의 비용헌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기에 놈이 아닌 다른 이들의 괴로움에 그다지 감흥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원흉이 떡하니 있는데 이들만으로 원한이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놈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봐야 모든 것이 풀리리라 여기고 있는데, 그런 그녀의 두 눈에 서로를 말없이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율량과 모약이 보였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죽음을 각오한 그들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눈빛으로 전하고 있었다.
‘······.’
참으로 기묘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자 청령은 일순간 ‘그’보다 목경운을 먼저 떠올렸다.
목경운을 떠올리자 청령은 가슴이 너무도 아려왔다.
‘중생······.’
만약 모든 한을 풀고 나면 자신의 혼(魂)은 더 이상의 세상에 있을 미련이 없을 테니, 이승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중생과의 인연도 끝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연(緣)이다.
-욱씬!
순간 청령은 가슴 아려왔다.
뭐지?
자신은 영체로 이루어진 원혼인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걸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쿨럭쿨럭······. 류소월. 멈춰주시오.”
원기가 상한 기침 소리에 청령의 시선이 돌아갔다.
“사부님?”
나율량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천지회주였다.
내상이 심한지 창백한 안색으로 나타난 천지회주가 나율량을 한 번 슥하고 쳐다보더니,
-탁! 탁! 탁!
손가락을 연달아 튕겼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에서 튕겨 나온 작은 기운들이 나율량의 혈을 점하며 그를 잠재웠다.
나율량이 잠들자 회주가 이번엔 모약을 향해서도 손가락을 튕겼다.
더욱 많이 튕겼는데,
-타타타타탁!
출혈이 심한 모약의 지혈점과 수혈(睡穴)을 점하며 그녀 역시도 잠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을 재운 천지회주의 모습에 청령의 눈빛이 다시 매서워졌다.
이 어린 녀석들과 다르게 이놈은 비용헌의 직계다.
그 피를 이은 존재.
-그래. 네놈도 있었지.
청령이 영력을 끌어올리며 귀의영역인 혈계(血界)를 펼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쿵!
그때 천지회주가 느닷없이 그녀를 향해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이내 바닥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
청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설마 지금······.
“류소월. 그대가 원하는 것은 천맥 혈족의 소멸이잖소. 부디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시오.”
-하?
“나율량 이 아이는 본좌가 거두어 가르치기는 했으나, 천맥의 피를 잇지 않았소.”
그런 그의 말에 청령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천맥의 무를 이었으니 분명 천맥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을 텐데.
“······알고 있소. 하나 그런 식으로 친다면 그대의 한은 천지회의 존재하는 모든 자를 죽여야만 풀릴 것이오.”
청령이 싸늘한 코웃음을 쳤다.
-흥! 못할 것도 없지.
“결국 그분, 아니 비용헌이 모든 걸 앗아갔다고는 하나 그 기틀과 모든 걸 잡은 것은 그대라 알고 있소. 아무리 천맥에 대한 증오가 강하다 하나 그대의 손으로 만든 모든 것을 부정하고 없앨 것이오?”
-고오오오오!
이런 그의 말에 사방이 어느새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청령의 살기가 최고조에 이르자 천지회주조차 그 무거움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가 두려워서라기보다는 그녀의 증오가 자신의 예상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해는 갔다.
과거의 기록인 ‘그것’을 보고 나서 천맥이 그녀를 비롯한 월맥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모든 과오를 자신의 대에서 끝내고 싶었다.
하나 그녀의 분노가 이 정도라면 단순히 사죄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정도론 끝나지 않을 듯했다.
탄식을 흘리던 천지회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청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면······. 별 수 없이 거래를 해야겠구려.”
-거래?
“그렇소.”
-웃기는 놈이로군. 중생······. 아니 천마(天魔)에게 패해 모든 것을 잃을 마당에 무슨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냐?
이런 그녀의 말에 천지회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대가 그렇게 믿고 있는 그 천마라는 자가 만약 본좌의 막내 제자인 위소연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복수는커녕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거요.”
-뭐?
“그리 된다면 류소월 그대를 구할 방도는 오직 하나요.”
-본좌를 구해?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는 것이냐?
“······그분의 손에 혼(魂)과 백(魄)이 하나가 되는 금술마저 들어가는 순간 그대는 백 년의 한을 풀기도 전에 영원히 그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오.”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