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96)
“전부 나였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주체되지 않는다.
-아흑…….당신……당신이…….
-슥! 우우우우웅!
청령의 뺨에 닿고 있는 목경운의 손바닥을 타고서 수많은 사념들이 밀려들어왔다.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그녀의 붉은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억들이 눈앞에서 그려지고 있다.
-어찌하여 한낱 인간의 의사체인 내게 맡기려하는 것이냐?’
-…….
-한낱이 아니다. 더욱 반짝이고 있지 않느냐?
‘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짧으니까 더욱 반짝이는 거라고. 저희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잖아요.]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영생이나 다름없는 마(魔)의 왕(王)으로 태어나 덧없을 만큼 짧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인간의 삶을 바랐다.
-스스스스!
점점 검은 불꽃이 작아지고 있었다.
꺼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길고 길었구나.
‘멈춰라. 이렇게까지 너의 의사를 완전히 내게 녹일 필요는 없다. 아니 왜 사라지려고 하는 것이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너!’
-그리….생각할 필요….없다. 나는….너. 너는….나. 결국….우리는 하나다.
검은 불꽃이 손가락 정도의 크기까지 줄어들자 목소리마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만! 그만해라. 그녀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느냐? 깨어났던 매순간마다 그녀에게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느냐?’
기억의 모든 것이 동화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깨어났던 그 순간마다 그는 수십, 수백, 수천 번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였다.
[너무도 보고 싶었다. 하나뿐인 나의 신부.]그럼에도 입 밖으로 이를 내뱉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털끝 하나라도 미련이 남는다면 인간의 의사체인 자신과 동화되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
-소월……과……나의….아름답고…..반짝였던 이야기는…..그때…..끝을 맺…..었다. 이젠……청령과…..너의….이야기다.
꺼져가는 불씨.
불씨 속의 그는 찰나에 그녀와의 만남을 그렸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웠던 자신의 신부를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아름다웠다……너무 아름다워 한 송이 붉은 작약 같더구나.
-슈우우우우!
불씨는 그렇게 꺼졌고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사념 속에 담겨 있던 기억들이 두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새겨지며 청령은 더욱 구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알고 있었어. 당신은 알고 있었어.’
백여 년 전, 숨을 거둔 이후 원혼이 되어 오직 원한을 갚는 것에만 치우쳐져 있었다.
피폐하고 어둠으로만 가득했던 자신에게 중생은 동병상련과 같은 입장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한 줄기의 빛이 되었고 점차 그를 가슴 속에 품게 되었다.
더 이상 누군가를 품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예전의 당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중생이 된 거야.
[……..그래. 함께 할 거다. 설령 그것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어째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구나.
그 모든 순간들을.
[소월과 나의 반짝이는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그럼에도 당신은 조금의 미련마저도 남기지 않고서 우리가 함께 했던 짧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반짝임으로 가슴에 품고 떠났어.
아니 그와 하나가 되었어.
귓가로 그때 그의 목소리가 아련히 맴돈다.
-아아아아아아아!
청령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목경운을 꽉 끌어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딱 한 번만…..찰나라도 좋으니 딱 한 번만 당신을 볼 수 있다면 영원히 사라져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너무 그리웠어요.
-꽉!
그녀는 그가 어디로인가 사라져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꽉 끌어안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스스스!
그녀의 영체가 목경운의 몸을 통과하려했다.
‘!?’
목경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력의 소모로 영체가 너무 약해져 흐릿해져 있었기는 하지만 아직 여력이 남아있다고 여겼는데, 그녀의 영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청령?”
-아…….나……어째서…..
-스멀스멀!
주력(呪力)이 느껴진다.
그때 목경운의 눈에 한 손으로 수인을 맺고 있는 목간, 아니 비용헌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 수십 여장이 온통 놈의 주력으로 가득해졌는데,
-끄으으으으. 주, 주인님.
혼(魂)인 위소연의 육신을 옮기려 했던 호위 고찬이 고통스러워하며 영체가 흐릿해져갔다.
주력으로 만든 결계로 인해 원혼들의 영력이 급속도로 소진되고 있는 것이었다.
-팟!
목경운의 눈빛에서 강렬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수인을 맺고서 주술을 외우고 있던 비용헌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풋!
그것은 마음의 검, 심검(心劍)에 의해 심장에 타격을 받아서였다.
원래의 기억을 되찾아 의사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강해진 목경운의 마음의 검은 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쿨럭쿨럭! 여망재선(與望在選) 무연아라(無然砑羅)…….”
놈은 심장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고통을 참고서 주술을 외웠다.
비용헌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그 눈빛은 분노와 광기로 가득했다.
-스르르르르!
“청령!”
주력으로 붙잡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완전히 사라지기 일보 직전까지 흐릿해진 청령의 몸이 목경운의 품을 투과하여 밑으로 떨어졌다.
-차차차차차착!
병(兵)! 투(鬪)! 열(裂)! 진(陳)!
구자활법의 수인과 함께 목경운이 주술을 외우자 이내 떨어지는 청령의 주변으로 네 개의 기둥이 생겨나 면들이 생겨나 그녀를 가뒀다.
이는 사봉연쇄술(四峰聯鎖術)이었다.
-으득!
-팟!
목경운의 신형이 순간 눈 깜빡할 사이에 비용헌의 앞으로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헌은 막거나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서 계속 주술을 외웠다.
그의 광기 서린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가질 수 없다면 넘기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설령 소월의 영원한 소멸이 될지라도 말이다.
-솨아아아아아아! 오싹!
그런 그의 멈추지 않는 광기에 목경운은 엄청난 살의(殺意)가 담긴 일검으로 비용헌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촥! 쩌저저적!
반으로 잘려나가서야 비용헌의 입에서는 더 이상 주술이 나오지 않았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
목경운은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순식간에 수백의 궤적을 만들어 비용헌의 육신을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서 소멸시켜버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목경운은 떨어지는 청령에게로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러는데,
-스스스스스!
분진처럼 흩날리는 핏속에서 흐릿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바로 원혼(冤魂)이었다.
여전히 얼굴이 흉터로 가득해 있는 비용헌이 원혼으로 나타나자 목경운은 잘됐다는 듯이 그의 원혼의 목을 움켜쥐었다.
-팍!
혼마저도 소멸시켜 윤회의 고리에도 들지 못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그러자 원혼 비용헌이 반항이라도 하려는지 목경운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이에,
“소멸해라.”
-파스스스스스스!
마기와 주력에 의해 비용헌의 영체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금 전에 자신을 향해 성난 얼굴로 손을 뻗던 비용헌의 표정이 조금 전과는 다르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얼굴이다.
그때 비용헌의 영체를 타고서 그의 무의식적인 사념이 흘러들어왔다.
-촥! 촥!
[멈춰. 제발…..멈춰달라고.]스스로의 얼굴에 단검으로 베어가며 자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비용헌은 괴로워하고 있었다.
왜 그러는가 했는데 자신의 이마에 있는 눈동자를 향해 단검을 찌르려 했는데, 육신의 통제권을 잃었기에 얼굴을 긋게 된 것이었다.
[제발…..제발……]들어오는 놈의 사념들.
그것은 백여 년의 시간 동안 짧게나마 목간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마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려고 하거나 놈을 떼어나려 하던 비참한 기억들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내제되어 있던 광기와 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그러나 그 모든 결과는 광기의 잠식뿐이었다.
-스스스스스!
이런 그의 사념을 읽은 목경운이 눈빛이 묘해졌다.
결국 네놈도 목간의 지배로 인해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더냐.
한데 원혼이 되어서 그 지배에 벗어났음에도 아무런 해명도 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시늉을 했던 것은,
[나는 소멸 당해야 한다. 끝까지 악(惡)이 되어 사라져야만 해.]놈의 사념은 자신의 소멸을 원했다.
그것은 끝까지 악의 원흉으로서 사라져야만 그녀의 원한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스스!
흩어지며 사라져가는 원혼 비용헌이 자신의 사념을 읽은 것을 알기라도 한 건지 미묘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치 그녀에게는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말아달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원혼 비용헌은 완전히 흩어져 영체마저 소멸했다.
마지막에 와서 그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 했다고 해도 목경운은 그에게 어떠한 연민도 들지 않았다.
결국 그 광기는 전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팟!
목경운은 사봉연쇄술을 지상으로 옮겨 그것을 해지한 후에 청령을 살폈다.
완전히 흐릿해져서 소멸 직전까지 온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비…..비용헌은?
“그는…….”
그녀의 그 물음에 목경운은 그를 소멸시켰다고 말을 하려다 이내 멈칫했다.
안 그래도 영체가 소멸 직전까지 온 그녀였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의 원한의 주체라 할 수 있는 비용헌의 소멸을 알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성불이라도 해버리면 최악의 상황이 초래된다.
그녀의 혼(魂)이라 할 수 있는 위소연은 이미 윤회의 고리마저 벗어났기에 그대로 소멸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모든 것에서 거침이 없었던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떠한 것도 정할 수가 없었다.
이미 영력의 대부분을 소진해서 사라지기 직전인 그녀다.
이 상태로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하아….하아…..주인님.
그때 하마터면 영체가 소멸될 위기에 처했는데 불구하고, 끝까지 위소연의 육신을 지킨 호위 고찬이 곁으로 다가왔다.
고찬이 업고 있는 위소연의 모습에 목경운의 더욱 눈빛이 흔들렸다.
‘……..’
그것은 혼백을 합칠 수 있는 금술을 손에 넣었을 때 악심파파 철수련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혹시 금술로 백(魄)을 주체로 혼(魂)과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나?] [백을 주체로?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냐? 백(魄)은 생전의 강한 염(念)과도 같다. 그것은 혼이 윤회의 과정을 겪을 때 땅에서 흩어져 씻겨진다. 결국 혼(魂)이 윤회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혼과 백이 하나가 되면 어찌 되지? 백에 대한 것은 전부 씻겨지는 것이냐?] [그래. 그게 이치라는 것이다.]-꽉!
목경운의 쥐고 있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주르륵!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핏물이 흘러내렸다.
여정의 끝에 이르러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왜 결말이 이렇게 되는 거지?
그녀의 혼백이 하나가 되게 하여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으나, 그리 되면 윤회의 고리로 인해 백(魄) 청령의 모든 것이 씻겨 진다.
더 이상 자신이 알던 청령이 아니라 전생(前生)의 그녀가 되는 것이다.
-슥!
그때 흐릿해진 영체로 인해 접촉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청령이 목경운의 움켜쥐고 있는 주먹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녀가 입을 벙긋거리며 괜찮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머금고서 웃어보였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