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75)
‘설마?’
주살곡의 염가가 미간을 찡그린 채 내심 불안해했다.
검진이 아니냐는 목경운의 말을 듣고서 보이는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저렇게 반응을 보일 리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염가는 속으로 부정했다.
검진(劍陣)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검(劍)으로 펼치는 진법이었다.
진법에는 일정한 규칙과 서로 맞물리기 위한 정교한 변화의 식(式)에 있기 마련인데, 구결의 검법만으로는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는 것은 구결의 식을 응용해야 한다는 건데, 이건 구결만 봐서는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었다.
‘저놈이 그 정도로 검의 고수라고?’
적어도 구결만으로 이를 알아볼 수준이 되려면 자신의 부친인 주살곡의 곡주 정도 되는 검법의 고수가 아니면 힘들었다.
그렇기에 염가는 제발 아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 달리,
“왜 검진이라 생각하는 거지?”
악귀 가면이 목경운에게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이에 목경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검법의 식들이 기본에 충실하고 하나 하나가 전부 동선이 겹치지 않게 배열을 맞춘 걸 보면 검진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요.”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악귀 가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검법을 직접 수차례 펼쳐보거나 심상으로 검을 그릴 수 있어도 검진의 합까지 그 동선을 그려내는 것은 꽤나 어렵다.
스스로의 움직임을 관조하는 것 이상이기 때문이다.
“흠.”
악귀가면이 턱을 쓰다듬었다.
솔직한 심경으로는 쉽게 믿기지가 않는다.
고작 17, 18살에 불과한 녀석의 식견이 검으로 경지에 오른 자와 맞먹는다고?
물론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나,
‘저 손…….’
악귀 가면이 바라보고 있는 목경운의 손바닥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저건 뛰어난 검수의 손이 아니다.
검수는 엄지와 검지, 그리고 새끼 손가락의 형태가 오랫동안 검을 잡으면서 자연스레 변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목경운의 손을 보면 엄지에 굳은 살 조차 없었다.
‘검을 익힌 손이 아니야.’
한데도 저런 식견이 나온다라.
차라리 검의 고수가 훈수를 두었다고 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하나 이곳 시혈곡에서 그런 자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더욱 의문이다.
정말로 이 녀석의 안목이 검으로 경지에 오른 자에 버금가는 것일까?
목경운을 빤히 쳐다보던 악귀 가면이 말했다.
“이 구결로 검진을 펼친다면 몇 명이서 펼쳐야 가장 효율적일 것 같으냐?”
검진을 맞춘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하지만 과연 이것까지도 알아낼 수 있을까?
만약 이것 역시도 맞춘다면 정말로 검에 관한 식견이 고수와 맞먹는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물음에 목경운이 가만히 있다 이내 답변했다.
“여덟입니다.”
그 말에 악귀 가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검진을 펼칠 수 있는 최소 숫자까지 정확하게 말했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뒷말을 이었다.
“열여섯, 서른둘까지 가능할 것 같네요.”
“………”
그 말에 악귀 가면의 입에서 작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덟까지만 말했어도 제법이라고 했을 텐데, 검진을 형성할 수 있는 숫자마저도 정확하게 맞췄다.
“그 이상은 힘들 것 같나?”
“합을 펼치게 되면 그때부터 배열이 겹치게 되네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악귀 가면은 진심으로 혀를 내둘렀다.
천지팔명진(天地八銘陣).
이 진법의 이름이다.
천지회의 전대 회주가 팔괘(八卦)의 변화를 기본으로 둔 검진으로 열여섯, 서른두 명까지의 검수들이 합공을 펼칠 수 있는 절진이다.
‘이놈 봐라.’
이것까지 맞추다니.
정말로 경지에 오른 검수에 맞먹는 눈과 식견을 갖춘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진심으로 탐이 난다.
‘……..’
정도 무가 출신인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목경운을 빤히 쳐다보던 악귀 가면이 입맛을 다셨다.
당장에라도 그 탐욕을 채우고 싶었지만 관문이 진행되는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팍!
악귀 가면이 목경운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이를 받아든 목경운이 손바닥을 펴보니 이(二)라고 적힌 은패가 있었다.
악귀 가면이 말했다.
“두 번째 수석도 너다.”
-웅성웅성!
그 말에 이를 지켜보던 소년들이 술렁였다.
첫 번째에 이어서 두 번째 수석까지 목경운에게 돌아가자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 녀석 정체가 무엇인가?
어디 출신이기에 벌써 두 번째 수석까지 차지한단 말인가?
-으득!
주살곡의 염가가 이를 갈았다.
당연히 두 번째 수석은 자신의 것이라 여겼는데, 그마저도 이렇게 빼앗길 줄은 몰랐다.
이번 시혈곡에서 가장 각광 받던 세 문파 출신 중 한 사람이 자신이었다.
그런데 꼴이 우습게 되었다.
‘……..목경운.’
저놈의 이름이 뇌리에 완전히 박혔다.
어떻게든 이 치욕을 되갚아줘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두고 보자.’
기문을 막고 있는 금문쇄만 풀리게 된다면 각오해야 할 거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말했다.
“두 번째 관문까지 전부 통과한 여든 명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다. 너희들은 본 천지회의 중급 무사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중급 무사!’
이런 그의 말에 몇몇 소년들의 눈에 희열이 차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중급 무사부터는 천지회 내에서도 대우가 달라진다.
중급 무사들 중에서 실력을 갖춘 자는 하급 무사들로 이뤄진 대(隊)를 이끌 수 있는 대주의 자격이 생긴다고 할 수 있었다.
지쳐있는데도 눈빛이 살아난 그들에게 악귀 가면이 말을 이어갔다.
“중급 무사는 한 대를 이끌 수 있는 능력과 검진을 소화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방금 전에 들었겠지만 깃발에 있던 구결은 최소 팔인이 있어야 펼칠 수 있는 검진의 검법 구결이다.”
그 말에 모두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관문이 단순히 극한의 시련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여덟 명이 한 조로 구성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도 전부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자. 이제 눈치가 있는 놈들이라면 세 번째 관문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
“거기 너.”
악귀 가면의 고개 짓에 한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세 번째 관문이 뭐라고 생각하지?”
“그건……”
“똑바로 얘기해라.”
“토, 통과한 여덟 명의 조로 검진을 펼치는 것입니다!”
이런 소년의 말에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서 짐작할 만한 것은 그것뿐이기도 했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손짓으로 앉으라는 시늉과 함께 입을 뗐다.
“맞다. 여덟 명이 한 조가 되어서 검진을 완벽하게 펼쳐서 목표물을 제거하는 것이 세 번째 관문이다.”
이런 그의 말에 소년들이 내심 안도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관문은 서로를 해하게 하고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너무 지치게 만들었다.
두 번 하라고 한다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단 여기서도 조건과 제약이 있다.”
‘조건과 제약?’
“첫째는 하루의 휴식 시간이 주어질 터이니, 그 안에 조장을 정해라. 물론 조장을 포함해 여덟 명의 조 역시 구성해야 한다.”
‘어?’
이런 악귀 가면의 말에 소년들이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이 말은 깃발을 사수한 여덟 명이 같은 조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다시 조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좋아!’
이에 몇 명이 대놓고 쾌재를 했다.
그 몇 명에는 주살곡의 염가를 비롯해 목유천도 있었다.
아니 사실 목경운과 또 다시 같은 조를 해야 하는 건가 하고 내심 괴로워하고 있던 대부분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참고로 조장이 된 자는 세 번째 관문은 검진의 시험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히 통과이고…..”
-슥!
악귀 가면이 품속에서 신분패로 보이는 사각 목패를 꺼내서 보였다.
그것에는 대주(隊主)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엇? 설마?’
‘대주패?’
소년들의 눈동자가 목패로 집중되었다.
그러자 악귀 가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대주의 자격도 주어진다.”
‘!!!!!!’
이런 악귀 가면의 말에 소년들이 입은 닫고 있었지만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중급 무사들 중에서 선임의 자격을 갖춘 소수만이 대주가 된다.
한데 이 자리에서 대주를 결정한다는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흥분하던 모두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럼 전부가 조장이 되고 싶을 거 아냐?’
이 자리까지 온 자들 중에 조장이 되고 싶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는가?
이를 깨닫게 되자 소년들의 입에선 자연스레 괴로움의 한숨이 섞여 나왔다.
이번 관문은 좀 괜찮은가 했더니 결국 또 싸워야 할 것 같았다.
‘젠장.’
‘여든 명이니까 여덟 명만 자격이 있는 거잖아.’
‘그것도 불분명해.’
‘조장 자리를 다투다 죽기라도 한다면 한 조는 그냥 탈락하게 되잖아.’
누구 하나라도 불상사가 벌어지면 일곱 명이 같이 탈락한다.
절대로 두 번째 관문보다 쉽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말했다.
“이제 제약 조건을 말한다.”
“……….”
“제약은 살인 금지다.”
‘!?’
그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했다.
제약 조건에서 살인이 금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서로를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인가?
모두가 의아해하며 악귀 가면을 쳐다보았다.
왜 그런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거라 여겨서였다.
그런데,
“이상이다.”
‘이게 다라고?’
‘그럼 죽이지 않고서 조장을 정하라는 건가?’
간단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약 조건에 모두가 얼떨떨해했다.
반면 목경운은 뭔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두 번째 관문처럼 즐길 수 있겠다고 여겼는데, 살인에 제약이 가해지니 즐길 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자식. 왜 아쉬워하는 거야?’
이런 그의 모습에 곁에 있던 소년들이 속으로 혀를 찼다.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 관문에서는 적어도 목숨이 날아갈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달그락!
그때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특이한 형태의 쇠붙이를 목함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악귀 가면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산 너머에 있는 숙소로 가기에 앞서서 금문쇄를 회수하겠다.”
‘아!’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언제까지 금문쇄를 박고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드디어 이것에서 벗어난다.
내공을 쓸 수 없다는 제약은 생각보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주살곡의 염가가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렇게나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내공의 제약이 풀린다.
염가가 자신의 앞쪽에 서있는 목경운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내공에 제약이 걸려서 그 이상한 사술에 대응하지 못했지만 제약이 풀린다면 이제 상황은 달라진다.
‘네놈을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다니게 해주마.’
살인의 제약이 걸려있지만 상관없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그만이니까.
이를 생각하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 * *
산 너머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 건물이 있었다.
두 사람이서 한 방에 쉴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였기에 소년들은 각자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서 방을 정했다.
그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주어진 하루 동안의 휴식 시간.
소년들의 행동 성향은 두 가지로 나뉘어졌다.
첫 번째 성향의 소년들은 방에 준비되어 있던 요깃거리로 허기를 채우고 그 후에는 하나 같이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밤을 꼬박 세워가며 살육전을 벌여 심신이 지쳤기에 운기조식으로 몸을 최대한 정상으로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성향의 소년들은 이들과 달랐다.
이들 역시도 쉬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먼저 움직여서 조원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본래 같은 조였던 소년들이나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이들에게 접선을 시도했다.
얼마 있지 않아 경쟁이 격화될 테니 사전에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세 번째 성향도 존재했다.
-우드득!
허기를 채운 주살곡의 염가가 몸을 풀었다.
피곤해서 침상에 앉아 있는 저 녀석처럼 운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그보단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기에 서둘러야 했다.
‘지금이 기회다.’
목표는 목경운 그놈이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 놈을 반병신으로 만들면 이번 관문부터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른 녀석들은 어차피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나 놈은 그 기이한 술법도 그렇고 이상하리 만큼 거슬린다.
‘그러니 먼저 친다.’
금제가 풀린 이상 자신은 있었다.
기이한 술법을 익혔다고는 하나 자신은 절정의 경지에 오른데다 주살곡의 비기 역시 익혔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보실까.’
몸을 푼 염가가 그렇게 방문을 잡고 열었다.
그런데,
‘!?’
방문 앞에 목경운이 웃는 얼굴로 서있었다.
“너……”
“이야. 저와 같은 생각을 했나보네요.”
웃음 속에 가득한 악의(惡意).
순간 자신만만하게 나서려던 염가는 등골이 싸늘해졌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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