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748
747화 왕 없는 왕국의 수도
꺼끌거리는 수염을 매만지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옷차림부터 몸, 모두 원래의 나와 다르다.
심지어 켈런, 마일러의 몸도 아니다.
‘언제 바뀐 거지?’
이걸 알 수 없었다.
잡담을 하며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소홀히 한 건 아니다.
99층에 오른 자는 등반가든 NPC든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한 것과 마찬가지니까.
한마디로 징조가 없었으며.
‘바뀔 때 이질감도 못 느꼈어.’
그 과정에 부자연스러운 건 없었다.
괴이체를 상대하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
방심할 틈이 없다.
예방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렇기에 다른 걸 생각하기로 했다.
‘분명 트리거가 있다.’
괴이체라는 놈들은 결국 자신이 품고 있는 개념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등장하니.
있어서는 안 되는 동료를 인지하는 게 시발점 같은데.
“이거 골치 아프게 걸렸군.”
레베카가 눈을 찌푸렸다.
평소와 달리 껄렁거리는 말투.
짝다리를 하며 허리에 손을 얹는 모습은 틀림없이 켈런의 습관이었다.
“설마 모두 몸이 바뀐 건가?”
“그럴 거예요. 솔직히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군요.”
마일러가 팔짱을 끼며 답했다.
아마 마일러 안에 들어간 건 레베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마일러는 어디로 들어간 걸까?
“으음. 켈런, 잘 좀 씻고 다니게. 머리가 떡진 게 기분이 썩 좋지 않군.”
“대충 씻고 살아. 밖에 나돌아다니는데 씻을 시간이 어딨다고.”
“아앗! 내 몸으로 엉덩이 긁지 마요!”
“지금은 내 몸인걸.”
“야!”
마일러는 켈런의 몸에 들어간 건가?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블아이 자네, 털이 별로 없구만? 낯선 기분이야.”
내 몸을 차지한 녀석도 마일러와 같은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켈런의 몸을 차지한 녀석과 내 몸을 차지한 녀석.
둘 중 하나는 가짜라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진짜를 찾아야 하는 건가.”
“그렇지. 운도 없지. 잘 마주칠 일 없는 괴이체인데.”
뒤섞인 몸 중 가짜를 찾아야 하는 괴이체였다.
어이가 없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다른 괴이체는 그렇다 친다.
내게 직접적인 뭔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내 몸을 차지하는 행위였고.
“내가 가진 혼돈이 보통이 아닐 텐데 용케 내 몸을 빼앗았군.”
난 이미 2개의 개념을 가졌다.
반쯤은 혼돈의 파편이랑 마찬가지라는 뜻.
특히나 다른 혼돈을 거부하는 반골 개념까지 가지고 있다.
다른 혼돈의 파편도 그 부분은 뚫을 수 없었는데.
“일단 넌 이블아이가 맞군. 아는 게 전혀 없으니.”
켈런(레베카의 몸)이 고개를 저었다.
“90층대의 테마는 혼돈. 99층만큼 혼돈이 강력한 곳이 없지. 대부분의 개념은 강제성을 지닌다.”
“99층의 지배자는 베드록 바알루제죠. 그를 포함해 그로 인해 태어난 괴이체들도 우선권을 가져요.”
“일반적인 곳이었다면 우리가 이깟 놈들을 못 잡고 다닐 리가 있겠나.”
“놈을 잡기 위해 왕국을 건설해야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네.”
홈그라운드라 이거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더니.
99층의 지배자면 이런 것도 가능한 건가.
“그래도 걱정하지 마. 무적은 아니니까. 적어도 한 번은 통한다는 뜻이니까.”
다행히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그래야지.
한쪽만 일방적으로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가지고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 부분은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앞으로 싸워야 할 녀석들은 많았고 그때마다 선공을 줘야 한다면 쉬운 싸움은 되지 않을 테니.
“하급 괴이체, 동행자라니. 가는 길에 재수가 없었네요.”
“잠깐만.”
레베카(마일러의 몸)의 말에 눈을 찌푸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급?”
이런 게 하급 괴이체라고?
갑자기 몸이 바뀌었다.
몸만 바뀌었을까.
[SSS급 권능, 청골인이 반짝입니다.]권능을 비롯한 스킬까지 모두 바뀌었다.
우드드득.
권능을 일으키자 몸에 푸른빛이 번뜩인다.
주먹을 쥐었을 때 보이는 뼈마디가 푸르다.
어색하지도 않다.
몸이 바뀌면서 권능과 스킬에 대한 정보가 대략적으로 머리에 박혔다.
만약 전투 중, 혹은 일행과 움직이다 몸이 바뀐다면?
혼란이 이는 건 물론이고 평소보다 전력이 깎일 게 분명하다.
단순히 능력을 사용하는 건 가능하지만 숙련도는 낮으니까.
“예. 말이 많지만 분류상으로는 하급이에요.”
“괴이체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간단하네. 개념의 개수도 중요하지만 처리반이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하급 정도는 탐사대원도 사냥이 가능해요. 중급부터는 어렵지만요.”
“탐사대에 전투 담당이 있긴 하네만 중급을 상대하기보다는 처리반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게 주 임무지.”
한마디로 탐사대 선에서 처리가 가능하냐 아니냐의 차이로 중급과 하급을 나눈다는 말.
달리 말하면 지금 나타난 녀석은 정체만 파악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놈이라는 거다.
오케이.
어떤 기준인지도 알았고 이번에 나타난 놈이 동행자라는 괴이체라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몸이 바뀌었는데 잡을 수 있나?”
가짜가 어느 몸에 깃들었는지 알더라도 베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알맹이는 어떨지 몰라도 몸은 내 몸인데.
깔끔하게 의심되는 녀석 둘을 쪼개면 편하긴 하겠다만.
혹시 아는가. 머리를 개봉박두 하면 영혼이 쑥 빠져나올지.
내 몸은 구사일생이 있어서 한 번은 살아날 거 같은데.
“다행히 동행자는 파훼법이 있어요. 둘은 잠시 이쪽으로.”
레베카(마일러의 몸)가 나와 켈런(레베카의 몸)을 부른다.
“우선 이렇게 셋은 정체가 확실하겠죠?”
“무조건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지금 녀석은 마일러 흉내를 내고 있으니까.”
“동행자는 같은 성별의 대상에게 깃드니까요. 일단 저는 아니에요.”
“맞는 말이군.”
인정한다.
우리의 몸을 바꿔치기한 녀석은 남자.
당장 내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로 여자인 레베카의 몸에 깃든 켈런은 진짜다.
“이블아이도 확실해요.”
“그에엑.”
나도 마찬가지.
몸은 바뀌었지만 덕춘이는 나와 함께 있다.
영혼으로 이어진 관계인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켈런과 같은 이유로 저도 진짜예요. 녀석은 여자인 척 못 하거든요.”
“굳이 흉내 내려면 할 수 있지 않나?”
“혀 깨물고 죽지 않을까요? 창피해서.”
“과연 그렇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에.”
왜. 뭐.
손 치워라, 덕춘아. 왜 날 다독이려 하는데.
떳떳한 삶만 살아왔구만.
물론 절대 이 녀석들 앞에서는 커뮤니티창을 켜지 않을 거다.
“내가 알기로도 그래. 놈은 남자를 대상으로 하니까. 괴이체는 둘 중 하나에 있어.”
“해결책은 간단해요.”
“가짜를 무시하고 진짜만 옆에 있는 것처럼 굴면 돼.”
겉모습은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움직이면 된다는 말.
“그걸로 되나?”
“어. 방랑자의 개념은 따돌림이거든.”
“왕따예요. 투명인간 취급하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요.”
“문제는 실패하면 그때부터는 가짜가 따돌려진 녀석을 대신해서 살아간다는 거지.”
따돌림당하던 괴이체가 상대의 육체를 빼앗고 사람들 사이에 스며든다라.
그것참 음습한 놈이군.
“뭐, 그것도 방법이기는 해. 그때부터는 따돌려진 녀석이 괴이체가 되니까. 들은 이야긴데 진짜가 된 괴이체는 열심히 산다더라. 또 버려지기 싫어서.”
“켈런, 내 얼굴로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아니, 뭐. 그럴 수도 있다 이거지.”
켈런의 개소리는 가볍게 무시했다.
결국 둘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는 건데.
“둘 다 데리고 가면 어떻게 되지?”
“놈도 우리도 계속 몸이 바뀐 채 살아가겠지.”
“그럼 정답이 나왔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블아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아니. 시간이 답이야.”
왜냐.
“괴이체가 사용하는 개념, 그거 처음 한 번만 통하고 만다며.”
“그렇긴 한데.”
“아하. 너한테 뭐가 있구나?”
내 의도를 파악한 켈런(레베카의 몸)이 눈을 빛낸다.
“역시 넌 처리반에 딱 어울리는 인재야. 딱 3시간만 같이 움직여 보자고. 그 정도면 충분히 반응이 나오고도 남을 시간이니까.”
“3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으면 가짜는 켈런의 몸에 들어간 거야.”
“그렇게 막 정해도 되는 게. 에휴. 일단 알았어요.”
레베카(마일러의 몸)은 살짝 불만이 있어 보였지만 결국 승낙했다.
안전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그편이 좋았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개념, 반골이 불청객을 쫓아냅니다.]“크하아아악!”
오래지 않아 증명되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괴성.
머리가 핑 하고 도는 듯하더니.
“돌아왔군.”
“으으. 역시 내 몸이 좋아.”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켈런.”
괴이체가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며 우리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강제적으로 튕겨져 나온 반발력인가.
비척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녀석에게 다가갔으니.
“그럼 꺼져라.”
-콰직.
켈런이 망설임 없이 놈의 머리에 검을 쑤셔 넣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녀석.
등장에 비해서는 초라한 최후였다.
“도대체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었길래 괴이체가.”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군.”
“덕분에 살았네.”
일행들이 경악과 흥미로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괴이체가 못 버티고 나가떨어지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
그러거나 말거나.
“가자고. 도착하려면 멀었다.”
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 * *
왕 없는 왕국의 수도.
괜히 수도라 불리는 게 아닌지 수도는 꽤나 번화한 공간이었다.
99층은 온갖 괴이체가 출현하는 곳이고 사람이 많을수록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사람이 많을수록 놈들이 원하는 조건이 갖춰지기 쉬우니까.’
결국 놈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도 사람들끼리 뒤엉켜 살다 보니 생겨난 거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이지.
그런 만큼 이곳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를 짓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이게 되네.”
“수도를 유지하느라 들인 공이 얼만데.”
NPC들의 집념은 굉장했고 결국 해냈다.
탐사대와 처리반 본부가 이곳에 있다나.
더불어 괴이체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차원의 방비도 해 두었단다.
그중에는.
“괴이체를 역으로 이용한다라.”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면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지.”
괴이체를 사용한 방법도 있었다.
같은 조건이라도 등장할 수 있는 괴이체는 여럿.
먼저 등장한 괴이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괴이체는 나타나지 못한다.
그러한 특성을 이용해 비교적 안전한 놈들을 불러 놓고 유지하는 것.
“저거, 인사 받아 주지 마. 하더라도 모자 같은 거 들지 말고.”
길거리를 걷던 노신사가 모자를 들어 올리며 인사했지만 켈런은 무시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괴이체였던 모양.
권능으로 살펴보니.
[친절한 이웃]-하급 괴이체입니다!
-그거 아시나요?
-수많은 범죄와 사건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을!
당당히 괴이체라 적혀 있었다.
정보가 완전히 오염되어 개념을 형성한 괴이체라는 뜻.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레베카가 수도 괴이체에 대한 메뉴얼도 건네줬다.
이곳에 있는 놈들을 다룰 때의 주의 사항과 특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건 종류가 적다네. 본부에 도착하면 탐사대에서 만든 걸로 하나 주지.”
이것도 많은데 탐사대에서 만든 괴이체 목록은 얼마나 많으려나.
단기간에 외울 수나 있을까 의문이었으나 일단은 해 보는 수밖에.
수도 메인 거리.
큼지막한 건물 두 개가 붙어 있다.
각각 탐사대와 처리반을 상징하는 엠블럼이 박혀 있었으니.
“탐사대 본부에 온 걸 환영하네.”
그중 한 곳을 연 마일러가 입꼬리를 올렸다.
커다란 문이 열리며 보인 공간에는.
“오! 이제 왔어?”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