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132)
0살부터 슈퍼스타 1132화
첼리스트는 신기했다.
“/현을 좀 더 세게 짚고, 활은 약하게./”
지나가면서 던진 지휘자의 한마디를 그대로 따르자 자신의 연주가 한 단계 나아진 것처럼 들려오는 것이.
역시 벤자민 모튼이랄까.
“/오보에. 집중하세요./”
분명 바이올리니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벤자민 교수는 오케스트라에 있는 모든 악기를 제어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연주하는 거대한 악기라고 하던데, 정말로 벤자민 교수의 손짓에 따라 달라지는 음들은 마치 하나의 악기가 들려주는 선율 같았다.
-!
물론 그 악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이상이 생길 때가 많았지만.
그러나 실수한 연주자가 당황하지 않고 바로 이어서 연주했다. 다른 단원들도 그랬다. 곡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모두 악기를 내려두고 가볍게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그래도 첫 연주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벤자민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제이슨 무어가 특유의 삐딱한, 그러나 기분 나쁘지는 않은 어투로 말했다.
“/그때보다 안 늘면 큰일이죠./”
제1바이올린 자리에 앉아 있는 제이슨 무어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그 옆에 앉아 하하 웃는 최유성도.
맞은 편에 있는 제2바이올린 자리에는 드미트리와 김수빈이 앉아 있었는데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맞지 않았던 부분들을 다시금 살펴보고 있는 중이리라.
벤자민 교수가 지적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지금 본인들이 실수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기대대로 연주자들의 실력이 부쩍 는 게 느껴졌다. 첼리스트 자신도.
그런 벤자민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아온 김수빈은 역시 잘했다.
고등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벤자민 교수에게 지적받은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중 몇 번은 어디가 틀린 것이 아니고,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파트임에도 ‘김수빈’의 개성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 탓이었다.
같은 악보를 보고 같은 지휘를 받아 여러 바이올리니스트가 동시에 연주하는데, 김수빈의 연주는 새하얀 계열의 꽃들 사이에 핀 파란 꽃처럼 그 색이 선명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쨍한 파란색은 아니었지만 하늘색 정도로 김수빈의 색이 연주에 묻어나온 것이었다.
최대한 흰색 계통의 색을 바랐던 지휘자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어려워요……!”
학교에서는 이 정도만 돼도 넘어갔는데, 지휘자가 지휘자다 보니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에 서준이 작게 웃으며 바이올린에 턱을 괬다.
“잘 들어봐, 수빈아.”
내리긋는 활에서 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조금 전 제2바이올린이 연주했던 파트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솔로 바이올린을 맡은 서준의 ‘개성’이 얼마나 뚜렷한지 연습하면서 잘 알게 된 단원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할 만큼 개성이 완벽하게 제거된 제2바이올린이었다.
그때 서준이 웃으며 눈짓을 했다.
제이슨 무어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바이올린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연주했다. 당연하게도 서준이 연주하고 있는 제2바이올린 파트였는데, 어째서인지 소리가 조금 커졌을 뿐 선율은 하나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
드미트리가 흥미로운 얼굴로 바이올린 활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그었다. 또 소리만 커졌을 뿐, 선율은 하나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라?’
그 뒤를 이어 벤자민 교수의 눈빛을 받은 최유성도 볼을 긁적이다가 합류했다.
무려 네 명이 함께 연주하고 있는데도 선율은 오직 하나만 들려오고 있었다.
박자도 현의 울림도 활의 움직임도 모두 기계처럼 완벽하게 같으면서도 사람이 연주하는 그 특유의 느낌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이야?’
김수빈은 물론, 단원들도 입을 쩍 벌렸다.
물론 이 정도로 완벽한 연주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긴 했다.
이 네 사람이 한때 파리 연주회에서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로 연결된 적이 없었다면 말이다.
‘뭐, 도중에 제이슨이 탈출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전까지는 능력의 범위 안에 있었으니, 어떤 ‘느낌’인지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서준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제이슨 무어는 잘 따라와 주었다.
연주를 이어가던 서준이 웃으며 활의 움직임을 조금 바꾸었다.
그러자 서준의 선율과 나머지 세 사람의 선율이 달라졌다. 서준의 선율에 ‘이서준’의 개성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이슨 무어도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드미트리도, 최유성도 그랬다.
그에 단원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같은 악보, 같은 박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네 가지 연주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쳤네.”
이런 연주가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고, 왜 연주자들에게 ‘자신만의 개성’을 찾으라고 말하는지 잘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좀 알겠어?”
연주를 끝내고 묻는 서준에 김수빈은 우와, 하고 감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무룩해졌다.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아.”
“/저렇게까지는 안 해도 된단다, 빈. 저 애들이 특이한 거야./”
최유성의 통역을 들은 벤자민 교수가 웃으며 말하자, 김수빈은 물론 단원들까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오케스트라 연주를 저렇게까지 해야 할 줄 알았다.
“/파리 연주회 때도 이런 느낌이었지. 그때의 연주가 왜 그렇게 화제가 됐겠니?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하고 특별한 연주였으니까 그런 거란다./”
몇 년에 한두 번도 보기 어려운.
음악에 한해서는 까다로운 벤자민 교수도 저 정도까지의 연주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 설명에 단원들은 다시금 안도했다.
“다행이다. 세계급은 저 정도는 기본으로 하는 줄 알았어.”
“나도.”
만약 그랬다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세계인지.
단원들 모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드미트리를 빼면 제2바이올린 파트도 아니라서 연습도 못 했을 텐데, 한 번에 완벽하게 연주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중 한 사람은 배우(그것도 아주 훌륭한)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단원들이 연신 감탄했다.
문득 첼리스트의 눈에 최유성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까지는 이름도 알리지 못했던, 파리 연주회 이후로 개화한 바이올리니스트.
‘이런 연주가 계기가 되었던 거구나.’
첼리스트도 최유성처럼 찾고 싶었다.
사람들이 흔쾌히 연주회에 올 정도로 멋진 자신만의 개성을.
그래서 이번 오케스트라 연주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더더욱.
“저……!”
첼리스트가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이번 합주 참 재미있었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서준과 세 바이올리니스트, 감탄하던 단원들과 지휘자가 첼리스트를 바라보았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번 곡을 작곡할 때 떠오른 생각이나 감정, 느낌 같은 걸 알 수 있을까요? 그럼 더 잘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곡에는 그에 따른 이미지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의 마왕.
괴테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으로, 마왕에게 쫓기는 아들과 아버지를 표현한 곡이었다.
그 이미지대로 강렬하고 어둡고 다급한 느낌을 떠올리며 연주하면 좀 더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었다.
하나 더. 비발디의 사계.
제목 그대로 곡마다 각 계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그 계절의 특징을 떠올리면서 연주하면 더욱 어울리게 연주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서준이 작곡한 곡들도 그랬다.
[오버 더 레인보우1, 2]의 배경음으로 쓰여서 그런지 연주를 들으면 장면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아주 확실한 감정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아, 그러네요.”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곡 설명을 자세히 하는 게 더 도움이 되겠어요.”
물론 벤자민 교수에게나 단원들에게 곡의 분위기 같은 걸 설명하긴 했지만,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은 서준이었다.
왜냐하면 설명하기 조금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생의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서준은 그게 꿈이었다고 설명하기로 했다. 거짓말도 아니긴 했다.
“이 곡은 제가 잠들어 있을 때 꿨던 꿈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서준이 입을 열자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 이들은 집중했고, 전혀 몰랐던 이들은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귀를 쫑긋 세웠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탈출구 같은 곳이 있었거든요. 저는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였는데, 저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나타난 거예요. 엄청 많이요.”
인터넷으로만 보던 신비한 썰을 듣는 것 같았다.
저승사자를 만났다거나 삼도천을 건널 뻔했다든가.
그러면서도 다들 곡의 선율 중 오싹하고 간담이 서늘하며 솔로 바이올린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진득하게 따라붙는 거친 멜로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서준이 깨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적들이리라.
“그래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저를 도우러 온 무언가가 나타난 거예요. 저는 안심했고 힘을 얻었죠. 그리고 같이 탈출구까지 달려갔어요.”
반대로.
솔로 바이올린과 어우러지는 선율들은 꿈속에서 서준을 도왔던 아군이었을 터였다.
“/두 곡으로 나눈 건 배경이 달라져서 그런 거야?/”
제이슨 무어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처음은 땅 위, 다음은 하늘이 배경이거든요. 탈출구가 하늘에 있었어요./”
또 도움을 주는 주체도 땅에서는 전생들, 하늘에서는 전생들과 현실 사람들(+고래들/늑대)로 달라지기 때문이었지만, 그것까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깨어나 보니까 어쩌면 꿈속에서 절 도왔던 무언가는 새싹분들과 사람들의 기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디선가 ‘히잉.’ 하고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안 들킨 것 같았지만 들켜 버리고만 새싹들의 감동과 감격이 섞인 울먹임이었다. 당시 서준을 위해 기도했던 단원들도 코를 훌쩍였다.
물론 꿈이겠지만.
그때의 간절했던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서 뭉클했다.
“/수빈이랑 제이슨의 연주도요./”
그에 제이슨이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웃는 게 보였고 김수빈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는 것이 보였다.
“/준, 꿈속에서 열심히 노력했구나./”
벤자민 교수의 말대로.
서준의 설명대로라면 솔로 바이올린의 선율은 서준의 행동 그 자체였는데, 곡을 지탱하는 주선율인 솔로 바이올린은 몇 번이고 넘어지고 엎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도 끝까지 활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꿈이지만 노력했을 서준의 모습이 떠올라 먹먹해지면서도 감동이 밀려왔다.
그에 서준이 쑥스러운 듯 웃고 말았다.
“그런 느낌을 담아 만든 곡이에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분들께 멋진 연주를 들려 드리고 싶어요.”
단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이야기를 들으니 각자가 맡은 파트가, 각자가 연주할 부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거기에 서준의 마음까지 담아 표현해야 했다.
부담을 느끼면서도 단원들의 눈동자는 의욕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할 벤자민 교수가 아니었다.
“/그럼 한 번 더 연주해 볼까요?/”
그 말에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단원들이 얼른 악기를 들고 반듯하게 자세를 잡았다. 제이슨 무어와 최유성, 드미트리와 김수빈도 그랬다.
‘악보 그대로.’
작곡가, 서준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었다.
지금만큼은 개인의 해석이나 개성은 드러내지 않는 편이 알맞았다.
지휘자의 손에 들린 지휘봉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그에 맞춰 갑작스럽게 꿈속 세상에 뚝- 떨어지게 된 서준을 표현한 솔로 바이올린의 연주가 시작되고 그 뒤를 오케스트라가 따라붙었다.
‘내가 아군.’
‘우리가 적.’
서준의 이야기를 되새기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에 표현력 또한 강해졌다.
물론 강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 이건 오케스트라니까.
벤자민 교수가 반대쪽 손을 들어 감정을 진정시키는 듯 아래로 움직였다. 그에 따라 강했던 선율도 점차 적정선을 찾아갔다.
무대 위.
서준과 벤자민 교수, 단원들은 그렇게 연주에 몰입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선명하게 촬영하고 있었다.
조금 전 서준이 했던 이야기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