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as a prison guard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5)
55화 미친개 반스 (2)
퀸급 던전은 삼대장급 보스.
나이트, 비숍, 룩이 전부 등장하는 곳이다.
지역에 따라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고레벨 지역에 있는 퀸급 던전에선 높은 수준의 경험치와 준종결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략법이 조금 까다로웠다.
퀸급 던전은 상시로 나타나는 던전이 아니었고, 일정 수준의 삼대장급 던전을 공략해야만 진입할 수 있었다.
입장 조건도 까다로운데.
퀸급 던전에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들은 삼대장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했다.
심지어.
세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전부 죽여야만 경험치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공략 도중에 한 마리라도 잡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공략을 진행해야 했다.
만약, 공략에 실패하게 되면.
필드에 존재하던 퀸급 던전이 사라지고, 퀸급 던전을 보기 위해 다시 던전 노가다를 해야 했다.
좋은 템을 맞춰서 성장해야 하는 뉴비들에겐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던전이랄까.
“나도 몇 번 때려치울 뻔했지.”
그중 한 번이 미궁 도시였다.
자르칼에 존재하는 세 개의 미궁은 본래 세 그루의 세계수가 있던 자리였다.
페어리, 엘프, 정령이 살아가던 터전.
당연히 보스 몬스터들은 종족의 왕이라 불리는 페어리 퀸, 하이엘프, 정령왕이었고, 이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정신 지배가 뛰어난 페어리 퀸.
전투 실력이 뛰어난 하이엘프.
높은 체력을 자랑하는 정령왕.
히든 퀘스트라 파티 플레이는 지원도 안 되고, 보스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아이템이 필요한데.
아이템 칸이 부족해서 정말 힘들었다.
2주 동안 대가리를 박았던가?
그 기간 동안 다양한 아이템 조합이나 스킬 조합을 고민했고, 덕분에 확실한 공략법 찾아내 미궁을 공략할 수 있었다.
부스럭.
아공간 주머니에서 보스 몬스터 소울을 꺼냈다. 이것만 있으면 퀸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몬스터들을 피해 다닐 수 있다.
이곳에서만 가능한 공략법이랄까.
준비를 마치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휘이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조금 더 걸어가니 나무줄기로 엮여 있는 교차점이 나타났다.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공중 다리.
왼쪽과 오른쪽.
내 기억상 페어리 퀸이 있는 쪽은 왼쪽이다. 두 개의 갈림길에서 왼쪽을 선택해 걸음을 옮겼다.
브스스!
나무줄기를 밟을 때마다 뭔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다리를 건너오자 작은 바람이 불었다.
휘이이잉!
그와 함께 핑크빛 가루가 눈에 보였다. 페어리의 세계수에는 이렇게 매혹의 가루가 시도 때도 없이 휘날렸다.
이건 정화의 힘이 해결해 줄 거다.
무시하고 세계수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든 전투를 치를 생각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척.
페어리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두 마리의 페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페어리 기사들이었다.
붉은 눈을 번뜩이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페어리 기사.
숨을 죽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령의 세계수는 이미 몬스터가 정리된 상태라 몬스터 소울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확인을 못 했다.
“키릭…….”
“키리릭…….”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검 자루로 향했다.
잠시 후.
페어리 기사 둘이 나를 지나쳐 뒤쪽으로 사라졌다. 작게 숨을 내쉬었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힘을 뺄 순 없었다.
타오르는 영혼 쿨타임이 돌고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전투만 치르는 것이 효율적이다.
“가 볼까.”
제대로 먹힌다는 걸 확인했으니, 속도를 올릴 차례.
속도를 내서 달렸다.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페어리 기사들이 무리로 나타났다. 그 틈을 파고들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보스 몬스터가 있는 세계수의 심장.
그곳으로 들어가는 나무 문이 나타났다. 주저 없이 나무 문을 활짝 열었다.
끼이익!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
좌우에는 페어리 기사들이 나열해 있었으며, 그 끝에는 붉은 장미로 만들어진 왕좌가 있었다.
빨간 원피스에 왕관을 쓴 채.
왕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존재.
페어리 퀸.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서서히 올라가 붉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페어리 퀸이 나를 바라보며, 매혹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나를 깨운 거니?”
* * *
작은 나비의 형상을 한 페어리.
공식 설정집에선 페어리를 꿈의 요정들이라고 불렀다.
인간들에게 친화적인 종족.
페어리들은 세상을 떠돌며 지치고 고통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꿈을 꾸게 해 주는 종족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그런 감정의 변화에서 오는 에너지가 페어리의 주된 성장 요소 중 하나였다. 그래서 페어리들은 성체가 되면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규칙이 있었다.
그런 페어리들을 이끄는 군주.
페어리 퀸.
꿈의 요정답게 그녀의 별명은 꿈의 여왕이었다. 가지고 있는 스킬들도 환상, 환각과 같은 것들이며, 스킬을 사용할 때 꿈에 관련된 말을 많이 했다.
“꿈이 없는 자야, 절망을 꿈꾸어라.”
바로 지금처럼.
고오오오오!
페어리 퀸의 주변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다시 모인 아지랑이는 거대한 눈을 만들었다.
감겨 있는 눈의 형상.
환각을 걸어 버리는 기술이다.
저걸 마주치는 순간, 페어리 퀸이 만든 지옥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악몽의 기사들이여, 일어나 침입자를 죽이거라.”
철컥!
좌우에 나열해 있던 기사들이 몸을 움직였다.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스릉!
스릉!
사방에서 풍겨 오는 짙은 살기.
페어리 퀸이 만들어 낸 붉은 눈이 천천히 떠지면서, 검은 소용돌이가 담긴 눈동자가 드러났다.
뚝!
눈동자에서 떨어진 피눈물.
그 순간, 시야가 회색빛으로 변했다.
쩌저적!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조각처럼 부서지며 어둠이 찾아왔다. 이제부터 페어리 퀸의 환상 결계가 시작될 거다.
감각을 속이고.
기억을 바꿔 버리고.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정신 지배 관련된 스킬 중에선 최상급이라 불리는 절망의 꿈.
사실,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붉은 눈이 떠질 때.
검으로 유효타를 날리면 결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번 기회에 정화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화르륵!
심장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꽃은 거대한 불사조의 형태를 만들어 냈고, 날갯짓하면서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호오.”
푸른 불꽃이 어둠을 불태워 버렸다.
결계가 무너지면서 페어리 퀸과 그녀를 따르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씨익.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최상급이네.”
척!
찌르기 자세를 취한 기사들.
살기를 내뿜으며 동시에 달려들었다.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질풍베기를 이용해 페어리 퀸의 앞까지 도착했다. 목에 걸린 작은 유리병을 잡고 그대로 부셨다.
요정을 꿈꾸는 소년이 가지고 있던.
페어리의 증표.
“악몽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그걸 페어리 퀸에게 뿌렸다.
“으윽!”
페어리 퀸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얼굴을 감쌌다.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주변에 일렁이던 붉은 기운과 검은 기운이 빠져나갔다.
슈아악!
“꺄아아아악!”
페어리 퀸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녀의 몸에 아지랑이가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고개를 푹 숙이며 페어리 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와 함께.
주변에 있던 기사들 또한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끝났네.”
아공간 주머니에서 체력 포션을 하나 꺼내 페어리 퀸의 입에 흘려 보냈다.
잠시 후.
감겨 있던 두 눈이 떠졌다.
마기에 침식당해 붉게 변해 버린 눈이 아닌, 본래의 금색 눈동자였다.
“당신은…….”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부탁……?”
“당신의 친우.”
아아.
페어리 퀸이 작게 침음성을 흘리며, 침을 삼키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슬픈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신교의 짓인가요?”
“예.”
“다른 종족들은…….”
“당신과 같은 상태일 겁니다.”
페어리 퀸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대가가 있다면.”
“무엇을 원하시죠?”
“페어리 하트.”
“좋아요. 제가 원하는 일을 도와주신다면 제 심장을 드리겠습니다.”
* * *
요정 폼으로 변한 페어리 퀸.
손바닥만 한 크기가 되어 내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내 뒤로 페어리 기사들이 줄을 지어 따라왔다.
나무줄기를 이동해 엘프의 세계수로 진입했다.
“꿈의 기사들이여, 싸우세요.”
페어리 퀸의 명령과 함께 페어리 기사들이 타락한 엘프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챙!
챙!
“키릭!”
“크르륵!”
기사들이 뚫어 주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페어리의 세계수에 존재했던 것처럼, 엘프의 숲에 존재하는 세계수의 심장에 도착하자 백발의 엘프가 왕좌에 앉아 있었다.
엘프들의 왕.
하이엘프.
“쓰러트릴 수 있나요?”
페어리 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힘을 쓸 수 있었다면 도와드렸을 텐데…….”
“잠깐 떨어지시죠.”
페어리 퀸이 내게서 떨어졌다.
반스가 정령왕을 제압하기 위해 베로니카의 조각상을 사용한 덕에 던전의 난이도가 내려간 상태다.
하이엘프의 타입은 나이트.
방어력이나 체력이 높은 것도 아니고, 정신 지배 같은 까다로운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격만 맞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선공으로 끝내면 된다.
“멀리 떨어지세요.”
검을 뽑아 들면서, 마나를 발로 흘려 보냈다. 자세를 잡고 시선은 하이엘프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을 뜬 하이엘프.
그림자의 힘을 사용해 녀석의 다리를 제압하고, 지면을 박차며 최대한 빠르게 움직였다.
질풍베기.
전력을 담은 일격을 하이엘프에게 쏟아부었다. 푸른 궤적을 남기며 검이 하이엘프의 가슴을 갈랐다.
서걱!
하이엘프가 피를 토해 냈다.
“쿨럭…….”
그러나 녀석은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더욱 살벌해진 눈빛을 보내면서 살기를 내뿜으려고 할 때.
페어리 퀸이 하이엘프의 머리에서 원을 그렸다.
흘날리는 분홍빛 가루.
그걸 들이마신 하이엘프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인간 폼으로 변신한 페어리 퀸이 하이엘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요정의 언어.
기도문 같은 긴 주문을 외운 페어리 퀸의 손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하이엘프의 몸으로 흘러들어 간 빛이 점점 커졌다.
마침내.
빛이 사라지고.
하이엘프의 몸은 손톱만 한 씨앗이 되었다.
그걸 내게 넘겼다.
“세계수의 씨앗이에요. 밖으로 나가면 원래 있던 자리에 심어 주세요.”
“하나뿐입니까?”
“예. 세계수가 줄기를 피우는 순간, 요정들은 다시 돌아올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볼일을 마쳤으니, 제 심장을 드릴게요.”
페어리 퀸이 양손을 모으자.
그 위에 밝은 빛과 함께 분홍빛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있어요.”
“혹시 그게 없으면 죽는 겁니까?”
페어리 퀸을 데리고 노인이 있는 곳까지 가야만 내가 원하는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이게 없어서 죽는다면 노인을 만난 뒤에 받아야 한다.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그럼 문제가 없다.
페어리 퀸이 넘긴 구슬을 쳐다보았다.
게임에서 얻었던 페어리 하트는 마나 소모량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효과밖에 없었다.
과연 페어리 퀸 하트는 뭐가 다를까.
[페어리 퀸 하트]-복용 시, 모든 기술의 마나 소모량이 5분의 1로 줄어듭니다.
-몸에 완전히 체화시키는 동안 꿈에 빠지게 됩니다.
-페어리의 날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미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요정들을 구해 준 답례이니 얼른 드세요. 꿈을 꾸는 동안 제가 지켜 드릴 테니.”
꿈이라.
내가 꾸는 꿈은 딱 하나뿐이다.
부모님의 죽음과 함께 찾아왔던 지독한 악몽.
“두려워하지 마세요.”
페어리 퀸의 말과 함께.
고민하지 않고 심장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