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 Shounen Manga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모험의 끝(완)
***
레오······ 일어나······.
일어나 레오······.
레오······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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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
레오는 눈꺼풀을 간지럽히는 빛과 어렴풋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여긴?”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희뿌연 빛의 산란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빛만이 흐르고 있었다.
레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주변을 둘러봤다.
기묘한 장소였다.
이 드넓은 공간에 존재하는 건 고작해야 세 가지가 전부였다.
희끗한 수증기와 빛, 그리고······.
“계단?”
저 멀리 웬 계단 하나가 허공에 떡 하니 나 있었다.
그것은 저 위, 빛에 가려진 천장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흡사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연상케 했다.
그즈음 레오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의문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대체 뭘까, 저 계단은.
그리고 이곳은 어디일까.
자신은 왜 홀로 이 공간에 있고,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걸까.
그 순간,
“설마······ 나 죽었나?”
흠칫한 레오는 슬쩍 볼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다른 쪽 볼도 한 번.
“아얏!”
역시나 아팠다.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레오는 이 의문들을 풀기 위해, 눈 뜨기 전 마지막 기억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먼저 기억나는 건, 채무불이행자 루덴코프의 성난 얼굴이었다.
녀석과 하루밤낮으로 전투를 벌였고,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격돌했다.
그리고 시작된 마지막 힘겨루기.
밀리는 쪽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에서 힘이 먼저 소진된 건 자신이었다.
그리하여 죽음을 직감하기까지 했었고.
헌데 루덴코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 바로 그때,
‘그건······ 뭐였지?’
‘무언가’가 나타나 자신에게 힘을 보탰다.
워낙에 급박한 상황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다.
다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희뿌연 증기와 비슷한 형체였다는 것이다. 마치 이 공간을 뒤덮고 있는 것과 흡사한.
“흠······ 아닌가?”
물론 확신할 순 없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보탠 힘을 바탕으로 루덴코프와 다시 팽팽히 맞설 수 있었고, 마침내 한줌 힘으로 그를 압도했을 즈음······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피를 토했다.
그게 뇌리에 남은 마지막 기억이었다.
“······빌어먹을 자식.”
그래, 빌어먹을 자식. 루덴코프는 분명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을 즈음 그의 시선은 자신이 아닌, 그 뒤쪽을 향해 있었다. 갑작스레 나타나 힘을 보태준 그것에게.
만약 이곳이 사후세계가 아니라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는 바로 그 ‘무언가’일 것이다.
“대체 뭐였을까. 그 희뿌연 그것······.”
“뭐냐니? 뭐가?”
“응?”
“뭐가 뭔데.”
“아니, 루덴코프와 싸울 때 나타났던 그 희뿌연 증기 같은 거 말이야. 그게 뭘까 하고······ 엥?”
순간,
“으엑!?”
소스라치게 놀란 레오가 펄쩍 뛰어 올랐다.
뭔가가 말을 걸었다. 바로 옆에서.
레오는 황급히 물러난 채,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있는 거라곤 희뿌연 증기밖에······.
“응?”
아니다. 앞에 뭔가가 있었다.
증기 같아 보이긴 했으나, 뭔가 달랐다. 조금 더 불투명했으며, 구체적인 형태가 존재했다. 약간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는 것 같기도······.
그때,
“그나저나 언제 일어났냐? 자식이 아까 그렇게 부를 땐 일어나지도 못하더니······ 잠깐 구경 간 사이에······.”
그것이 말을 걸어왔다.
놀랍게도, 굉장히 익숙한 음성이었다.
꿈에서도 잊지 못할 목소리.
바로,
“너······ 뭐······.”
주걱턱의 것이었다.
그 순간, 레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하나의 물음이었다.
죽은 거 아니었어?
다시 보니, 증기는 인간의 형상이 맞았다.
그리고 그 형상은 보통의 인간에 비해 덩치가 세 배는 더 컸으며, 특히나 턱이 유별날 정도로 컸다.
레오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주, 주걱턱?”
“딱 보면 모르냐?”
“······.”
순간, 레오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주걱턱!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다. 녀석이 살아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럼 그렇지, 주걱턱이 죽을 리가 없지! 저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
역시나 그때 그건 속임수였던 것이다. 목이 날아갈 땐 솔직히······ 진짜 같긴 했지만.
그때였다.
“어······ 아닌데?”
······.
“응?”
“나 죽었는데? 보면 모르냐? 나 유령이잖아.”
“그, 그런······.”
“죽었다고 다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 존재하는 것엔 여러 형태가 있는 법이지.”
“······.”
“뭐 어때, 내가 여기 있는 건 사실인데.”
그러고 보니 그랬다.
맞는 말이었다.
“어, 어쨌든 다시 보니 다행이야!”
“······그래, 결국 여기까지 함께 왔네.”
그 말에,
“여기? 아, 그렇지.”
잠시간 잊고 있던 의문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네가 나를 데려온 거야?”
이에,
“흐음······ 뭐, 대충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일단 계획한 건 나니까. 그리고 어디긴 어디겠냐? 지상의 혼란을 잠재운 녀석이 다음으로 갈 곳이 한군데 밖에 더 있어?”
주걱턱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 그럼 정말로······.”
“그래, 여기가 바로 모험의 탑 최상층부다.”
“최상층부······.”
이어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니, 좀 전에 비해 보다 더 황량하게 느껴졌다.
기대를 너무 했던 탓일까.
“근데 여기······ 별 게 없네?”
“좀 썰렁하긴 하지? 원래는 뭐가 좀 더 있어야 하긴 하는데······ 경쟁자가 없어서 그런가? 다 뺏나 보더라고. 분명 만들어두긴 다 만들어뒀을 텐데. 사실 이러면 최상층부라고 표현될 것도 없긴 하지. 남은 건 꼭대기 층뿐이니까.”
“······응? 원래? 만들어 둔 게 있다고?”
“어······ 아냐. 아무것도.”
“······.”
가끔씩 주걱턱은 저와 같은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곤 했다.
마치 이 모든 걸 미리 겪어본 적이 있는 사람 마냥.
물론 녀석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는 건 알지만······ 과연 이런 상황까지도 볼 수 있는 걸까 싶었다. 본인의 죽음 이후까지도.
그즈음,
“아참!”
잊고 있던 중요한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보다 다른 동료들은? 설마 이곳에 나 혼자 온 건······.”
“그럴 리가 있나.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졌어. 모험단으로서 함께 들어왔다곤 해도, 결국 개개인 모두가 모험가로서의 자질을 시험받는 곳이니까. 저기 저 계단 보이지?”
그러곤 주걱턱 유령이 허공에 떠 있는 계단을 가리켰다.
“다들 오르고 있는 중이야. 너도 늦지 않으려면 슬슬 올라가는 게 좋을 거고.”
“저기를? 저기 오르면 뭐가 있는데?”
“좀 전에 말했잖아. 남은 건 꼭대기 층뿐이라고. 거기 뭐가 있는지는······ 웨스트대륙의 자그마한 마을, 이니티알리스에서 나고 자란 꼬맹이도 아는 사실 아니냐?”
“······.”
웨스트대륙의 이니티알리스.
자신의 고향이었다.
“······모를 수가 없지. 전대 모험왕이 남긴 왕의 증표.”
“그래, 획득한 자가 모험왕이 된다는······ 탑 최후의 보물이지.”
왕의 증표. 최후의 보물.
듣기만 해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그 보물의 정체가 뭔데?”
“직접 봐야 알지 않을까?”
“너······ 몰라?”
“참나, 당연한 거 아냐?”
주걱턱은 그러곤 픽 웃었지만, 레오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진지해졌다.
어째서 모르는 걸까.
어째서 이 공간까지는 알고, 그 다음은 알지 못하는 걸까. 똑같은 미래인데.
만약 여기까지가 주걱턱에게 허용된 영역이라면?
그즈음, 줄곧 품어왔던 의문들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어떻게 그리 순순히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서, 본인을 희생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주걱턱은 애초부터 모험왕이 될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닐까.
이어,
“하나만 물어도 돼?”
“엉? 뭔데?”
레오는 마침내 물었다.
녀석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너는······ 뭐야?”
“뭐?”
“네 진짜 정체. 솔직히······ 나는 네가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듯한 느낌이 들어. 기회를 주고, 성장할 수 있게 돕고. 네가 없었으면 나는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아니야?”
“갑자기 무슨······.”
“혹시 넌······ 나를 모험왕으로 만들기 위해 내 곁에 있었던 거야? 처음 내가 모험을 시작한 그때부터 줄곧······ 나를 위해서?”
그러자,
“뭔 황당한 소리야.”
주걱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픽 하고 웃었다.
“너는 애당초 왕으로 태어난 녀석이야. 나는 그걸 죽어라 방해하려다 실패한 악당이고. 나 생긴 거 보면 몰라? 너 지금 나 약 올리냐? 엉? 엉!?”
“······.”
아닌가.
뭐, 아님 말고.
“됐고, 그나저나 너 내가 전에 말했던 거 기억하고 있냐?”
“전에 말했던 거?”
“그래, 루덴코프와 싸우기 전에 약속했던 거.”
“아······.”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주걱턱이 그렇게나 필사적인 얼굴을 한 건 처음 본 것이었으니까.
역시나 주걱턱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지.”
“까먹지 마. 부탁한다.”
“근데 그건 아직······.”
“아직은 뭘 아직이야. 나는 죽었고, 살아남은 건 너야. 그게 이 모험의 결말이지.”
“······.”
“그럼, 가자. 증표를 취하러.”
“······좋아.”
이어, 레오는 주걱턱 유령과 함께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
모험이란 무엇인가.
모험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여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험의 계단’이 묻는 건 대개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이는 등장인물들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이야기를 따라온 독자들에게 묻는 것이기도 한 질문들이다.
이 이야기가 당신에겐 어떤 의미였냐고.
내가 직접 저 질문을 받지 못한다는 게 약간 아쉽긴 했다.
솔직히 생각해둔 답변도 있는데.
······.
어쨌거나 시험의 계단도 이제 막바지였다.
단지 하나의 단만을 남겨둔 레오를 보며, 나는 잠시간 상념에 잠겼다.
끝내 여기까지 왔다.
기나긴 여정의 끝이 이제 단 한 걸음밖엔 남지 않았다.
“단······ 한 걸음.”
솔직히 반반이었다.
이곳까지 올 수 있을지 어떨지.
아니, 루덴코프에게 죽은 내가 다시 또 눈을 뜰 수 있을지 어떨지도.
훼방꾼 신에게 부탁했던 건, 다른 훼방꾼 도깨비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고유능력을 하나 더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다른 하나의 능력을 더 흉내 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이유야 간단했다. 그래야만 바야르 칸의 고유능력, [유령화]를 쓸 수 있을 테니까.
꼭 살아 있지 않더라도, 존재할 순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찾은 해답이었다.
비록 레오와의 마지막 결전은 포기해야겠지만······ 적어도 모험왕이 된 녀석의 옆에 존재할 순 있을 테니까.
뭐, 내가 진짜 모험왕에 욕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리고 어쩌면 내가 죽었기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이 산재해 있던 여러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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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나는 이곳 최상층부에 레오 모험단과 함께 올라올 생각이었다.
지상에서 끝장을 볼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이유야 간단하다. 캐릭터가 삭제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행히 활용되진 않았지만, 작가의 고유권한엔 ‘절대삭제’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는 혹시나 싶어 다섯 장이나 사둔 ‘삭제유예권’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내가 늘 두려워하고 있던 작가의 최종권한이었다.
나는 작가가 언제든 이를 활용하기 위해 타이밍을 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를 지우지 않고선, 원하는 결말을 보지 못할 거라 여기고 있을 테니.
그리고 그것이 발동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단히 위험한 시기가 바로 지상에서의 혼란이 종식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이제까지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투가 끝나는 때가 아니던가.
클리셰적으로도, 누구 하나가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의 전투이고.
하여,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나는 작가가 이즈음에 ‘개연성에 상관없이 나라는 캐릭터를 삭제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전개가 어찌되건, 일단 삭제하고 뒤에 어떻게든 수습하는 식으로.
이를 방비하려면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작가가 결코 나를 건드리지 못할 단 하나의 전개를 이끌어내는 것.
바로 지상에서 모든 전투를 끝낼 게 아니라, 레오와 나의 대결구도만을 남겨놓고 이를 최상층으로 넘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선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이 몇 존재했다.
먼저, 한시도 레오와 떨어져 있지 않을 것.
메인시점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언제 삭제되어도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최대한 빠르게 우리 두 모험단을 제외한 나머지들을 정리하는 것.
물론 이것엔 실패했지만, 어쨌거나 내 첫 계획은 그러했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가 되는 선별조건, ‘최상층부로 갈 수 있는 건 단 하나의 모험단 뿐이다’를 극복하는 것.
사실 이 조건은 내가 수정한 사항이었다.
본래 세 모험단이었던 걸 하나로 줄인 것이었으니.
물론, 이 또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지상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우리 둘만의 최종구도를 짜기 위해선 둘, 혹은 셋씩이나 되는 여유 자리를 만들어선 안 되니까.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냐는 건데······ 사실 이 또한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코코아의 가죽주머니에 두 모험단을 넣은 뒤, 그대로 브리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코코아의 가죽주머니에 생명체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건 금지되어 있으니.
다만 이를 가능케 하는 편법이 하나 존재했는데, ‘세계’를 통으로 넣는 게 바로 그것이다.
생명체를 품고 있긴 하지만 ‘세계’가 생명체인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했던 게 바로 은색조개, 즉 코미어가 창조한 세계였다.
이는 결코 근거 없이 떠올린 생각이 아니었다.
비슷한 사례가 이미 존재했다.
바로 브리다.
이 방법은 브리다가 탑의 최상층부를 제 속에 품고 다니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사실 브리다는 선별된 모험단을 미들랜드 어딘가로 따로 이동시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입을 벌리고 꿀꺽 삼키는 것에 불과했지.
즉, 모험의 탑 최상층부는 실은 브리다의 몸속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코코아의 가죽주머니가 브리다와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계를 옮길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시험해본 결과,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진짜 문제가 하나 있긴 했다.
바로 어떻게 레오 모험단을 은색 조개에 태울 거냐는 것.
당연지사 설득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애당초 그럴 이유가 없을뿐더러,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선별 당일 날, 크누크 산 정상이 아닌 웬 희한한 은색 조개 안에 들어가 있으라니.
누가 봐도 수상한 요구가 아닌가.
제아무리 우리가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사이라곤 하나, 모험왕까지 마지막 한 걸음만을 남겨둔 지점이었다. 불신이 있을 수밖에.
이를 위해 코코아를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우리 모험단 전원이 함께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그조차 우려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녀석들에게 이득이 없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선 딱히 묘안을 강구해두지 않은 상태였었다.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있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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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내가 세운 본 계획이었다.
뭐, 초장부터 다 어그러지긴 했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자면······ 어쩌면 계획이 어그러지지 않았더라도 처음의 계획이 성공하진 못했을 것 같다.
끝내 레오 모험단을 설득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지금 이곳까지 함께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내가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코코아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의 진심어린 설득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죽음으로써 경쟁자가 사라진 셈이었으니. 보다 마음 편히 조개에 탑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만, 진짜 잘 죽은 건가?’
어쩌면 전화위복일지도?
그러고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팟-.
주변의 빛이 광채를 더하더니, 이내 온 세상이 환해졌다.
레오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했던 모양이다.
이어 계단 주위에 흐르고 있던 빛과 증기가 옅어지면서, 그 끝에 웬 문 하나가 나타났다.
이를 본 레오가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걱턱 이건······?”
“······이 이후로는 나도 모른다고 했잖아.”
저 문은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 또한 마지막 권을 읽지 않았으니까.
전권인 59권은 시험의 계단을 오르는 다른 동료들의 문답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는 하나의 질문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고.
-당신의 모험의 끝은 어디인가.
아마도 이 너머에 그 답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럼······ 들어갈까?”
“아, 잠시만······.”
나는 대답과 동시에, 내 형체의 선명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실은 레오가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나 또한 그에 맞춰 선명도를 조절해 갔던 것이다.
물론, 고도의 연출이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진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미소년의 모습으로 변할까도 생각해 봤으나······ 그건 그냥 접기로 했다. 그래도 이 모습이 좀 더 정이 가긴 하니까.
이어,
“됐어, 열어.”
“······간다.”
끼이익-.
레오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레오?”
“레오!”
“레오다!”
“어! 뒤에?”
“······주, 주걱턱!”
“주, 주걱턱!”
“주걱턱 씨!”
“형님!”
“주걱턱이야!”
동료들이었다.
사실 나는 이 녀석들을 이미 하루 전에도 본 상태였다.
내가 유령이 된 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다음이었으니까.
다만 지금의 극적인 연출을 위하여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
실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코코아도, 이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카도 다 봤다.
도로시와 키리코가 힘을 합쳐 검은 용들을 죄다 박살내는 것도 봤고, 치누아비가 조개에 탑승할 것을 걸고 시아나와 내기를 하는 것도, 구구와 네로가 오공과 둔갑술 대결을 펼치는 것도 다 봤다.
또 코미어가 괜히 그로니얀에게 다가가 뭐 좀 더 달아주겠다니 하며 너스레를 떤 것까지도.
그래서 그냥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울기는.’
울면서 달려드는 녀석들을 보니, 어째 나도 마음이 뒤숭숭했다.
뭐랄까······ 가슴이 이상하리만치 아려왔다.
······.
이윽고 잠시간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
“그건 저기 있어.”
“저기 중앙에.”
나와 레오는 일행이 가리킨 곳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 아무것도 없이 오직 빛만이 가득한 공간에 웬 테이블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건,
“이게······ 왕의 증표?”
“참나, 잔뜩 기대했더니.”
하나의 자그마한 함이었다.
예의 도깨비들의 우두머리에게서 건네받았던, 전대 모험왕의 함과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짐작건대, 내용물 또한 같은 것일 것이다.
지금 당장 소유주에게 가장 필요한 것.
물론, 스케일이야 좀 더 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를 본 순간,
“이제······ 끝이네.”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내 모험의 끝이 어떻게 될지도.
그즈음,
“······.”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동료들을 슬쩍 훑어봤다.
순간,
“킥······.”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들은 너무 빨리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그 타이밍이 온 것 같은데.
“자, 그럼 지금부터 각자에게 한 마디씩만 할게. 대답은 하지 마. 괜히 길어지니까.”
그러곤 나는 동료들과 하나씩 하나씩 시선을 마주해 갔다.
지금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팅커벨! 괜히 여기까지 데려와 생고생만 시킨 것 같아서 미안! 엄한 놈이랑 계약이 되는 바람에 고생 많았다. 좀 더 친해졌으면 좋았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시아나가 잘해줄 거야. 함께해서 즐거웠다!”
······.
“네로, 그간 잘 못 챙겨줘서 미안했다. 그래도 항상 신경은 쓰고 있었어. 너는 잘 몰랐겠지만. 고마웠다. 잘 지내.”
······.
“구구, 너랑은 좀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었는데······ 뭐, 시간이 안 났어. 이해하지? 나중에 이스트랜드로 돌아가게 되면, 바야르 칸과 테르미스에게 안부 좀 전해주고. 그동안 고마웠다.”
······.
“코미어, 그간 부려먹기만 해서 미안하다. 딱히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네가 뛰어난 걸 어떡하냐. 그래도 덕분에 재미있었다.”
······.
“도로시, 많이 표현하지 못했지만 너한텐 늘 고마워하고 있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특히 많은 걸 해줬으니까. 너무 고생만 시킨 거 아닌지 모르겠네.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
“하카,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해. 네가 있어 안정이 됐었어.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모두를 데려오지 못했겠지. 고맙다, 그림자.”
······.
“치누아비······ 이 장난꾸러기 도깨비 녀석. 너 덕분에 모험이 한결 신이 났었다. 내가 골머리를 앓을 때마다 해결해줬던 것도 너였고. 다 네 덕이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늘 재미있었다, 너와의 시간들은. 고맙다.”
······.
“그리고······ 코코아.”
그 순간, 목이 턱 막혔다.
이건······ 이건 정말 어렵네.
“음······.”
나는 그러고 한참을 뜸을 들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웠어. 재미있었고. 어······ 알지? 내가 가장 믿었던 게 바로 너라는 거. 가장 처음 생긴 동료이기도 했고 또······.”
“됐어. 가지 마.”
“······.”
이럴 줄 알았다.
“······말하지 말라니까. 또 말 안 듣고.”
“싫어, 가지 마.”
“미안. 알잖아, 가야 되는 거.”
“싫어.”
“······.”
나는 말을 이어가는 대신, 녀석을 다시금 바라봤다.
코코아의 눈엔 투명한 눈물방울이 고여 있었다.
녀석 또한 나의 결말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니, 어쩌면 훨씬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이제껏 내색하지 않은 건······ 아마 나를 위해서였을 것이고.
고맙다.
이 말 외엔 더 할 게 없었다.
이 녀석에겐 모든 게 다 고마웠다. 이렇듯······ 나를 잡아준 것까지도. 간다고 했을 때 막상 잡는 녀석이 하나 없으면, 그것도 엄청 서운한 일이니까.
“고맙다, 코코아. 너와의 기억은 늘 간직하고 있을게. 잘 있어······ 내 가장 소중한 동료.”
“······.”
나는 이어 레오 모험단 녀석들을 차례차례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레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부탁한다, 이 녀석들.”
“약속했잖아.”
“그리고 축하한다, 모험왕이 된 거. 그리고······ 마침내 레오 모험단이 열다섯 명이상의 중소형 모험단으로 발돋움 하게 된 것도.”
그러자,
“레오 모험단 아냐.”
레오가 대뜸 고개를 저었다.
“응?”
“레오와 주걱턱 모험단이지. 레오와 히로라고 해도 되고. 어쨌거나 오늘부터 이름 바꿨어.”
“······참나, 유치하기는.”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정말 마지막이었다.
“바로······ 여는 거지?”
“그래.”
“들어와.”
“오냐, 고맙다.”
나는 그러곤,
스윽-.
바야르 칸의 능력을 발동시켜, 레오의 몸에 빙의했다.
뭐랄까······ 처음이었다.
주인공이 된 기분.
물론, 이 그림이 작가나 독자들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뭐······ 얼추 느낌은 나잖아?
그렇게 레오의 몸에 빙의한 채, 나는 왕의 증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시 후,
팟-.
세상이 빛으로 물들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굉장히 낯선 풍경이었다.
익숙해야 하나, 낯설었다.
“······집이네.”
집이었다.
대한민국. 아파트. 내 방.
······꿈?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화 속 세상에 들어간다는 게······ 사실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으니까.
그저 길고 길었던······ 신나는 한 편의 모험 같은 꿈을 꾼 것이라고.
그즈음.
“······마저 읽을까?”
나는 문득 든 생각에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불현 듯, 읽지 않았던 결말이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러곤 마지막 60권을 꺼내 들었을 때,
“······이거 표지가 원래 이랬나?”
나도 모르는 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표지 앞쪽엔 한 소년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엔, 얼굴이 빛에 가려진 덩치 큰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뒤돌아 서 있었다.
턱이 유난히도 커다란 남자였다.
“이거 참······ 1권부터 다시 봐야 하나.”
어쩌면 꿈이 아니었을지도.
“그러고 보니······ 독자들 반응도 확인을 못하고 와버렸네.”
흐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60권을 내려놓았다.
지금부터 천천히 확인해 봐도 될 것이다.
결말이든, 독자 코멘트든.
뭐, 이제 시간은 많으니까.
“그리고 일단은······ 주인공이 누구인지부터.”
나는 책장 끝에 있던 1권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