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Mage in a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70)
870화
‘여기는…’
이한은 >하급 마법 축장>에 저장해놓은 마법 두 개를 머릿속으로 점검하며 주변으로는 >워다나즈의 염력>으로 만든 방어막을 펼쳤다.
가장 급한 대비가 끝나자 그 다음은 강화 마법이었다.
예지부터 시작해 빠르게 신체 능력을 올리고 자세를 낮췄다. 한손으로는 지팡이를, 다른 한손으로는 방어의 망토 깃을 붙잡았다.
“……”
모든 작업을 한순간의 낭비도 없이 빠르게 해내고 나자 이한은 갑자기 새삼 어이가 없어졌다.
‘…왜 이렇게 잘하게 됐지?’
반복이 숙련을 만든다지만 이건 너무 숙련 아닌가!
스스로도 황당할 지경이었다.
‘다른 생각 하지 말자.’
이한은 조심스럽게 자세를 원래대로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걱정했던 것처럼 끝없이 떨어지는 무저갱의 함정이나 성난 정령들의 매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한을 맞이한 것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한 지평선과 수평선이었다.
에인로가드의 산맥도 꽤 대단한 규모였지만 지금 저 멀리 아래에 보이는 산맥들과 비교하면 언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산맥 아래의 바다도 초현실적인 건 비슷했다.
마치 검푸른 색의 생명체처럼 고요하고 섬뜩하게 움직이는데 너무나도 넓고 깊어 아득해질 정도였다.
산맥 뒤에는 바다가, 바다 뒤에는 또 산맥이…
압도당하는 감각에 위를 올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항성과 행성들이 천천히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느라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한이 있는 장소도 산맥이었던 것이다.
너무 거대해서 가파른 비탈을 느끼지 못했을 뿐.
마법사라면 누구나 차원에 대해 많든 적든 배울 수밖에 없었고 전 학파 수강 중인 이한은 당연히 그 중에서도 많이 배운 편이었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은 솔직히 놀라웠다.
이제까지 보고 배운 차원들 중에서도 이렇게 초월적인 규모의 차원은 없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차원이지?’
고민하는 사이 뒤에서 검은 책이 날아왔다. 이한을 따라서 차원문을 통과한 게 분명했다.
이한은 반갑게 인사했다.
“죽어라!”
누가 마법 전투 숙련자 아니랄까봐 이한은 흑자석 지팡이를 활용했다.
상대는 분명 마법으로 만들어진 존재일 테니 약점을 찌른 것이다.
하지만 검은 책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한이 습격할 걸 예상했는지 재빨리 펄럭이며 거리를 벌리더니 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검은 책이 수십 권으로 늘어나더니 허공에 종잇장이 눈처럼 날려댔다.
단순히 본체를 숨기는 환상이 아닌, 하나하나 닿을 때마다 이한의 움직임을 묶어버리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부딪친 종잇장이 마치 미라에 감긴 붕대처럼 칭칭 감으려고 하자 이한은 즉시 발도르오른의 마력 망치를 휘둘러서 날려버리고 지팡이의 흑자석 부분에 힘을 주었다.
팟!
근거리에서 휘두르는 마력 망치와 달리 흑자석은 상대의 마법에 접촉만 한다면 어떻게든 원격으로도 방해가 가능했다. 수십 장의 종이가 그대로 흩어졌다.
검은 책은 마법사가 저런 흉흉한 지팡이를 쓰는 게 어이가 없었는지 책장을 펄럭였다. 이걸로는 이한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종잇장들이 군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낯익은 해골 교장의 기사들을 보자 이한은 이를 갈았다.
“감히 차원문으로 날 밀어놓고 뻔뻔하게 군대까지 불러와?”
-……
검은 책은 정말로 억울했다.
물론 구산팔해의 문이 접근하는 걸 검은 책이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검은 책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 차원은 애초에 자격이 있는 자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등은 밀지도 않았는데!
“흥. 상관없다. 네게 용의 힘을 보여주마.”
-!?
이한이 섬뜩한 소리를 하자 검은 책은 살짝 겁을 먹었다.
대체 그 사이에 뭘 했길래 용의 힘을 보여준다는 소리를?
외부인이군.
“…!”
뒤에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에 이한은 검은 책을 깊숙이 탓했다.
이 자식 때문에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너 때문에!”
-……
검은 책은 다시 한 번 억울하다는 듯이 펄럭였다.
뒤에서 말을 건 상대는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었다.
거인에 버금가는 커다란 덩치에, 귀신을 연상시키는 흉악한 생김새.
에인로가드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야차(夜叉) 종족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에인로가드의 야차는 늙고 소박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야차는 젊고 위엄 넘치는 복장을 하고 있다는 점.
이한의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공손해졌다.
“혹시 야차… 십니까?”
야차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너는 인간이 맞나? 인간은 그렇게 자주 보는 편이 아니라 헷갈리는군.
“맞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를 야차왕이라고 불러라. 너희 인간은 왕(王)이 이해하기 쉽겠지?
“왕이셨군요!”
이한의 공손함이 한층 더 올라갔다.
외부 차원에서 왕의 작위를 가진 존재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몇 번이고 느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너는 혹시 오수의 제자인가?
“……”
질문에 이한은 1초 정도 고민했다.
일단 해골 교장의 제자라고 인정하는 것에 대한 심적 고통과 별개로, 지금 어떻게 대답하는 게 이로울까?
‘일단 이 차원은 해골 교장이 젊은 시절에 방문했다고 들었다. 그러면 그렇게까지 사고를 치지는 않았을 거다. 설마 여기서 시비를 걸고 다니지는 않았겠지.’
옆에 있는 검은 책도 인정하라는 듯이 펄럭였다. 이한은 한 번 노려봐준 뒤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 면서도 또 아니라고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 고 엄밀히 따지자면 제자의 개념이…”
특이한 인간이군. 아마 네가 나고 자란 왕국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 풍습이 있는 모양이지?
야차왕은 위엄과 냉정이 어우러진 태도로 이한의 대답을 분석했다.
민망해진 이한은 그냥 인정했다.
“사실 제자 맞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방금 돌려 말한 것은 오수의 제자임을 인정하기 싫은 감정 때문인가? 스승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제자의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네 이유는…
“……”
* * *
야차왕은 처음 만난 이한의 심리 상담을 30분 정도 해준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중에 ‘자상한 스승 때문에 비뚤어졌을지도 모르겠군’같은 분석이 나왔지만 이한은 초인적으로 인내했다.
푹!
야차왕은 적금색(赤金色)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갑옷과 투구를 푼 뒤 이한에게 그걸 그대로 씌웠다. 이한은 놀라 물었다.
“이게 뭡니까?”
여기 차원은 넓다. 너희 마법사가 차원을 유랑하는 재주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광활한 곳이지. 길을 잃을 수도, 적을 만날 수도 있으니 내 투구를 씌워준 거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마법사들은 지식을 좋아했지? 흥미로워할 만한 사실을 알려줘야겠군. 기록에 따르면 이 차원에 방문하는 마법사들은 극히 희귀한 사례가 아니고서야 사고로 방문한다. 그리고 3일을 버티지 못하고 죽지.
“정말 친절하시군요.”
이한은 가식적으로 대답했다.
손님한테 이런 정보까지 알려주다니 뭐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인가?
‘앞으로 진짜 해골 교장 지인하고 어울리지 말아야지.’
친절하지는 않다. 오수의 제자라 도와주는 거지. 내가 친절했다면 저 마법사들이 죽게 내버려뒀을까?
“스승님과 친하셨습니까?”
질문을 받은 야차왕은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자신의 눈동자를 가리켰다. 강력한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는 눈동자였다.
“스승님께서 선물해주신 겁니까?”
오수가 눈을 뺏어서 새로 만들었다.
“사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저는 스승님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이한의 말에도 야차왕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집을 두드렸다.
그렇군.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스승이 쌓은 원한은 제자에게도 계승되니, 내가 그 원한을 네게 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한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최근 유크벨티레를 상대하고 나서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라는 말이 사실 거짓말일수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오수가 내 눈을 뺏은 건 시험 때문이었다. 호기심이 생겼었거든.
“눈을 얼마나 잘 뺏어 가는지 말입니까??”
농담인가? 아무래도 농담은 출신 지역의 풍습에 따라 많이 달라져서 효과적이기 힘들군.
“하하. 아쉽군요. 회심의 농담이었는데.”
야차왕은 표정 변화 없이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 차원은 수많은 차원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광활하고, 끝이 없고, 무한하며, 자격 있는 자들만 오는 곳이었다.
야차왕 또한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옛날부터 야차들과 몇몇 종족들을 다스리고 있었고.
그러던 도중 어느 날 젊은 인간 마법사가 차원을 방문했다. 사고나 실수가 아닌 자격을 갖고서.
원래라면 내버려뒀겠지만 야차왕은 흥미가 생겨서 접근했다.
상대가 쌓은 선업(善業)이 실로 본 적 없을 만큼 놀라웠던 것이다.
“악업이 아니라요?”
흐음. 혹시 네가 나고 자란 왕국은 소음이 심해서 청각이 약해진 건가?
이한은 다시는 이 야차왕 앞에서 허튼소리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그걸 염두에 두어두도록 하겠다. 어느 정도로 강한지 호기심이 생겨서 시합을 청했고…
“한쪽 눈을 다치신 거군요.”
정확히는 훨씬 더 많이 다치긴 했지.
“……”
이한은 슬슬 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원한 신경 안 쓴다는 야차치고는 지나치게 기억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여기에 왜 방문하신 겁니까?”
모르나?
“어, 예.”
흐음. 이것도 특이하군. 보통 스승이 제자를 이런 위험한 곳에 보낼 때는 최대한 주의를 주고 설명해주기 마련인데. 이런 설명도 없이 보내다니. 가장 가능성 높아 보이는 건… 네가 멋대로 스승의 비전을 훔쳐서 방문 방법을 알아낸 거로군?
“절대 아닙니다.”
이한은 상대가 야차왕인데도 정색했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방문하게 됐지?
“여기에는 정말 슬프고 사악한 사정이 있습니다.”
울분을 꾹꾹 담아, 이한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해골 교장이 책을 주고 그 책에서 마법을 좀 배웠더니 아니 저 새끼가…
검은 책은 투덜대듯이 종이를 펄럭였다. 이제까지 잘 해줬는데 차원문 하나 못 막았다고 너무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설명을 들은 야차왕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랍군. 믿기지 않는데.
“그렇죠?!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
아. 너와 내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것 같군. 인간 너는 아마 스승으로서 이러는 게 말도 안 된다는 뜻이었겠지? 나는 오수 이야기였다. 오수는 분명 인간 종족 기준으로 정이 많고 선량한 성격에 속했을 텐데. 제자를 이렇게 대하다니.
이한은 야차왕을 가이난도 보듯이 쳐다보았다.
“속으신 겁니다.”
흐음. 시간이 성격을 바꿀 수도 있겠지.
“속으신 거라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놀랍군. 그렇게 선업을 쌓은 마법사가 이렇게 성격이 바뀔 줄이야.
“혹시 제 목소리 안 들리십니까?”
듣고 있다. 하지만 네 발언은 스승에 대한 감정적인 원한이 많아서 그리 신빙성이 높지 않군.
‘와. 이 사람, 에인로가드 교수의 자질이 있는데.’
이한 복장 뒤집어놓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학생들의 복장도 비슷하게 잘 뒤집어놓을 것 같았다.
여하튼 그렇다면 오수가 여기에 왜 방문했는지도 모르겠군. 저기를 봐라.
야차왕은 손가락을 뻗어 위를 가리켰다.
항성과 행성, 온갖 기괴한 공간들과 그 위.
둘이 발을 디디고 있는 산의 꼭대기에 광점(光點)이 하나 보였다. 크기는 점이었으나 여기서 보일 만큼 선명하게 빛을 발했다.
“저게 뭡니까?”
모든 것.
“예?”
말 그대로다. 저기에 도착하기만 하면, 어떤 존재든 원하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다고 하더군.
“과연. 그렇군요.”
이한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야차왕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흐음. 인간 마법사가 이걸 듣고서 가만히 있는 건 불가능한데. 아마 사고로 영혼을 크게 다친 모양이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