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39)
39
도련님은 내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불안했던 것이다.
또 말없이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다시 보기도 어려울 테니까.
그걸 알아서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작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찾아간 거야. 저번처럼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라고 도발했어.”
공작에게 심한 짓을 당했던 나를 지키기 위함이 분명했다.
“그랬더니…… 공작이 남은 시험은 하나라고 했어. 그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 잘 마무리 짓도록 할…….”
도련님은 말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벅찬 감동을 이기지 못한 내가 그를 그대로 꽉 안아버렸기 때문이다.
상황을 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굳어있던 그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팔을 크게 휘저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잠깐만요. 잠깐만 이러고 있어 주세요.”
모든 걸 떠나서, 나라도 안아주고 싶었다.
이 작은 아이가 어른도 견디기 힘든 병을 참아내고, 이렇게 역경을 이기려는 모습이 기특했다.
이번에는 내 몸을 치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었다.
나 또한 드러나지 않은 그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다. 내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이런 내 바람이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고, 아쉬웠으며 안타까웠다.
“잘하셨어요.”
“…….”
하지만 나는 모든 감정 위로 부드러운 목소리만 덮어씌웠다.
평생을 불안하게 살아온 도련님께 지금 순간,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도 안정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칭찬을 꿈에도 예상치 못한 듯, 도련님이 숨을 멈췄다.
원망을 받을까 봐 많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하여간 이럴 땐 영락없는 애라니까.
“정말 잘하셨어요. 우리 도련님이 최고예요.”
나는 그를 안은 상태 그대로 한 손으로는 굳은 등을 살살 쓸어내리며 말했다.
“멋있네요. 저도 공작님 앞에선 그런 말은 한마디도 못 했을걸요?”
“……거짓말. 로벨 너는 그때 공작을 방심시키려고 이상한 행동을 했잖아.”
도련님이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어깨를 살짝 잡아 밀었다. 깃털이 스치듯 약한 감촉이었다.
하긴, 그는 타인과의 접촉은 싫어하니까. 아무리 내가 남장을 했어도 유쾌하지 않겠지.
그걸 알아서 아쉬워도 몸을 더 뒤로 물려주었다.
도련님은 그런 내 움직임을 빤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대각선으로 내렸다. 아직 불안한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평소보다 쾌활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음번엔 저한테 힌트라도 조금 흘려주시는 거예요? 아시겠죠??”
“……응.”
도련님은 짧지만, 확실히 답했다. 그 안에 많은 감정이 담긴 것 같았다.
모른 척하며 수도의 명소 같은 다른 대화 주제를 꺼내는데, 식사가 도착했다.
나는 침대의 간이 탁자 위에 음식 접시를 하나둘 올렸다.
그런데 그중에 도련님이 싫어하는 콩 요리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닭 요리에 토핑된 콩들이었다.
기미를 빌미로 내가 받아먹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젠 우리 둘이 함께 식사하는 수준이니까.
도련님은 먼저 포크로 먹음직스럽게 구워 잘라낸 닭고기를 집었다. 그러더니 내 입에 먼저 한 입 크게 넣어주었다.
그 후, 도련님이 스푼을 들었다. 그러더니 닭고기와 콩을 한 스푼에 크게 떴다.
나는 그의 의도를 알아냈다.
‘앗, 이번에도 기미구나.’
도련님은 한입에 저리 무식하게 담지 않거든.
그리고 보통 나 한 입, 도련님 한 입인데 오늘은 순서가 좀 바뀐 모양이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릴 준비를 했다. 일단 입에 있는 것부터 부지런히 씹고…….
그런데 내 예상이 틀렸다.
음식물을 급히 목구멍에 넘기는 순간, 도련님이 스푼에 뜬 걸 자기 입에 덜컥 넣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어려워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물었다.
“……콩을 드셨어요?”
도련님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우물거리다가 표정을 더 찡그리더니 꿀꺽 삼켰다……. 진짜?
‘도련님은 콩을 음식계의 공작부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 싫어하는데…….’
이상하게 바라보는데, 도련님이 이번엔 버터와 잼이 발린 빵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그걸 또 받아먹었고, 도련님도 똑같이 한입에 먹었다.
평소에 저 정도 크기는 반의반까지 잘라 먹는 도련님께서 어쩐 일일까.
‘배가 많이 고팠던 건가…….’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우물우물 주시는 것을 부지런히 받아먹었다.
얼핏 전투적이던 우리 둘의 식사에 접시는 금방 비었다.
입가심으로 약을 반쯤 마시고 도련님께 드렸다.
그런데 비워진 접시를 빤히 보던 도련님이 물었다.
“더 먹으면 안 돼?”
……성장기인가?
매번 음식을 남기기만 하던 도련님이 부족하다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튼, 나쁜 일은 아니라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뜩이나 마른 도련님이 살이 더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베르 오라버니도 도련님보다 두 배는 더 먹었었고, 크림슨 형님은 네 배는 더 먹었다.
한참 자라는 사내들이니 좀 더 먹어도 문제없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추가 식사는 곧 준비되었고, 도련님은 내가 경악할 정도로 계속 먹어댔다.
그런데 그날 밤, 도련님은 심각하게 체하고 말았다.
* * *
“괜찮으세요, 도련님?”
“……응.”
밤새도록 토를 했는데도 속이 울렁거린다.
에드릭은 그 매스꺼움을 참아내며 간신히 대답했다.
어제 그렇게 고생을 하고서도 자신을 간호하느라 밤을 꼬박 새운 로벨에게 더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백한 낯과 식은땀이 그의 말이 거짓임을 명백히 증명했다.
옆에서 로벨이 걱정하며 손수건으로 이마와 뺨을 연신 닦아주어야 했다.
에드릭은 괜찮다고 하려 했으나, 그런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숨만 쉬어도 토할 것 같아.’
날 때부터 유약하고 아팠지만, 이렇게 심각한 체기는 처음이었다.
마지막 시험을 알리러 온 보좌관까지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그래도 에드릭은 아픈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공작님께서…….”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을 다 파악하고 적으라고 하셨습니다. 수량까지 전부…….”
보좌관은 난처한 눈으로 이제는 창고의 용도로만 사용되는 별채를 훑어보았다.
황성의 여느 창고 못지않게 대단한 규모의 이곳은 날마다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안에는 상상도 못 할 온갖 대륙의 진귀한 물품이 가득했다. 모두 역대 황제의 하사품들이었다.
어쩌면 이 제국에서 황성 다음으로 귀중한 역사를 품고 있는 장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에드릭은 감탄이나 자긍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있는 걸 다 하라고?’
이제껏 불가능에 가깝던 다른 시험에 비해서도, 이번 시험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억지라고 느껴졌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만 보기에도 방이 백 개는 족히 넘었다. 그리고 그 크기도 상당할 것이다.
아까부터 병세로 희뿌옇던 시야가 막막함에 더 흐릿해졌다.
하지만 에드릭은 정신을 다잡으려 했다.
‘공작은 말을 바꿀 위인이 아니야……. 시켰으니 어떻게든 해내야 해.’
다짐하는 사이에 로벨은 어서 문을 열어달라며 집사에게 부탁했다.
로벨처럼 에드릭을 줄곧 걱정스럽게 살피던 집사는 현관에 다가섰다.
그의 품에서 수십 개의 금 열쇠가 엮인 열쇠 꾸러미가 나왔다.
이 열쇠 꾸러미도 황제의 하사품 중 하나였다. 큼직한 보석들이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집사는 그것으로 현관의 자물쇠들을 하나하나 풀었다.
끼익, 별채의 문이 열렸다.
과연 이 덴카르트에서 가장 귀한 것들만 보관하는 창고답게 거대하고도 아름다웠다.
대저택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더 깔끔하고 차분한 느낌의 백색 벽지 정도.
그 외에는 벽에 걸린 전시품이며 먼지 하나 없는 청결함이 똑같았다.
더 살피려고 했지만, 에드릭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당장 휠체어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주인이 그런데도 로벨은 제 임무를 침착하게 해냈다.
“보좌관님. 저와 도련님 두 사람만 남아도 되는 거죠?”
“예. 오늘도 두 분만 계셔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점점 아래로 꺾이는 고개를 간신히 들자, 보좌관에게 물건들을 받는 로벨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필기구가 든 가죽 가방도 함께였다.
집사와 보좌관은 의원과 함께 밖에서 대기한다고 했다. 그들의 눈빛에도 걱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에드릭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저 이곳의 구조를 살피는 데에만 필사적으로 집중했다.
“도련님, 제가 먼저 둘러보고 올 테니까 잠시만 여기 누워계실래요?”
“싫어.”
방금까지만 해도 죽어가는 듯이 시름시름 앓던 에드릭이 어디서 힘이 났는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어제 그렇게 큰소리를 쳐놓고, 로벨 혼자만 고생하게 둘 순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넓어도 터무니없이 넓었다. 두 사람이 뛰어다니면서 살펴도 시간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힘을 합쳐서…….’
그런데 그때, 로벨이 예고도 없이 대뜸 휠체어를 앞으로 밀었다.
‘윽…….’
앉았던 휠체어가 조금 밀린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서 에드릭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무식하게 먹은 게 이제야 후회되었다. 끙끙 앓는 소리를 참는데, 갑자기 천장이 빙글 돌았다.
‘아…….’
정신을 차리니 그는 소파에 등을 대고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로벨이 조끼를 스스럼없이 벗고 있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넘어온 햇살이 로벨의 셔츠를 통과했다.
그 안에 동여맨 붕대가 에드릭의 어지러운 시야에 언뜻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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