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60)
60
그사이 약삭빠른 고아원 원장은 자신에게 제공된 종이에 서명을 마쳤다.
덩치들도 이제야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눈치를 봤다.
“그럼 이제 이곳은 우리 가문 소유나 다름없지.”
도련님은 그들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예로부터 덴카르트 소유의 땅을 허락 없이 밟는 놈들은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고 있다.”
덴카르트…….
앓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덩치들이 서로 앞다투어 나가려 했다.
순간, 도련님이 땅에 떨어진 단도 한 자루를 주웠다.
그것은 곧, 도망치려던 두목의 발치에 바로 박혔다.
자칫 잘못하다간 발에 박힐 뻔한 위험한 위치였다.
“허억!”
놀란 그의 손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바닥을 툭 굴렀다.
내 단추였다.
* * *
덴카르트의 특권은 실로 막강했다.
황제의 무한한 신임을 받는 가문답게, 가주는 법의 일부 절차를 생략하고 뜻을 펼칠 수 있었다.
그건 후계자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백작은 도련님에게 첫 수업을 할 때부터 강조했다.
[ 수족을 통해 모든 서류를 가지고 다니고, 무슨 상황이 생기거든 서명부터 하십시오. ]그러면 황족과의 대립이 아닌 이상, 대체로 다 해결된다고 했었다.
뒤에서 그 얘기를 들을 당시엔, ‘그 특권을 정말 쓸 일이 있을까?’ 의아하긴 했었다.
검은 사슬 기사단에게 받은 충성 맹세는 막강한 무력이니 어떻게든 써먹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첫 특권을 이런 식으로 쓰시게 되다니…….’
나는 돌아가는 마차에서 얼떨떨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무엇보다 나 때문에 이보의 미래가 바뀔지 몰라서 곤란해졌다.
‘상황을 봐서 약간만 개입하려 했지, 이런 식으로 끼어들 계획은 조금도 없었는데…….’
물론 이보야 도망칠 때 몰래 훔쳐 온 부친의 장부와 비본으로 언제 어떻게든 상단을 꾸릴 사람이긴 하다만………….
고심하다가 속으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보는 해코지를 당할 가능성도 있으니 다른 마차로 데려오기도 했고.
미리 사서 걱정하지 말고, 당분간은 좀 지켜보자. 도련님의 미래를 제외하면, 아직 원작이 크게 변한 것은 없으니까.
복잡한 심경을 가다듬고 시선을 올렸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가 전서구를 확인한 뒤 추적해 달려왔다는 도련님은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팔짱을 낀 채 내내 바깥만 바라보고 있던 도련님이 창문을 탁 닫았다.
반사적으로 창밖을 보자 바깥 거리에 신사들이 스쳤다. 모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도련님도 나처럼 담배는 질색하나 보네.’
나는 도련님 숨결에 집착하는 만큼, 다른 공기에도 예민했다. 담배 같은 건 특히 질색했고.
그런 것도 닮았나 보다 생각하면서, 염려되는 것부터 도련님께 물었다.
“상단 설립은 괜찮은 거예요?”
아무리 특권이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 상단을 설립하는 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조심스레 묻자, 도련님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답했다.
“클란트 백작과 전부터 의논했던 일이야.”
“……전부터요?”
“공작은 겨울 전까지 세 분쟁 지역을 모두 함락할 거야. 클란트 백작은 거기서 얻는 자원을 우리가 생산부터 납품까지 독점하길 원했고.”
보좌관들이나 백작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도련님께 따로 얘기했던 걸까?
아예 처음 듣는 얘기라 눈을 크게 깜빡였다.
“상단을 보유하면 나쁜 것 없어. 그래야 덴카르트 세력이 모든 이득을 가져갈 테니까.”
“그럼…… 아이들이 자라난 후에 소일거리 하나씩이라도 거들 수 있겠군요.”
이전 세계와 동일하게, 이곳에서도 고아들은 성년이 되면 고아원에서 퇴소해야 했다.
그 후에 고아원 출신들은 주거 공간과 생계 유지에 큰 어려움을 빚었다.
물론 퇴소 후 무슨 일을 할지는 그들의 자유이지만, 도련님은 적어도 그 문제는 해결해준다고 약조했다.
어떻게 되든 그 잡놈들의 아래에서 일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보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예상치 못한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데, 도련님이 불쑥 물었다.
“로벨. 왜 그놈을 도와줬어?”
“아, 그게요. 이보가 저를 도와줬거든요. 제가 수도에서 길을 잃어서요.”
사실 이것은 미리 준비해둔 핑계였다.
마차에 오르기 전에 이보와 이렇게 하자고 빠르게 입을 맞춰둔 터라, 쉽게 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쉽게 믿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의 사유로…… 네 단추를 몽땅 뜯어줘?”
그의 싸늘한 눈이 내 재킷에 향했다.
평소에 말끔하게 다녔는데, 오늘은 명문 귀족가의 시종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볼품없는 차림이었다.
그래서 준비해둔 2안도 바로 꺼내버렸다.
“중간에 불량배를 만날 뻔했는데 목숨을 걸고 도와줬어요. 제 성격 아시잖아요. 도움받으면 그냥은 못 넘어가는 거.”
“…….”
도련님은 반쯤 납득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이 침묵했다.
하지만 나도 의아한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도련님 성격은 사실 무심한 편에 가까워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줄 리가 없는데…….
아무리 고아원의 환경이 초라하고, 아이들이 협박을 당한다 해도 지금처럼 팔 걷고 적극적으로 나설 사람은 아닌 것이다.
“도련님은…… 왜 도와주셨어요?”
“네게 필요한 일이잖아.”
“……?”
어째서 내게 필요한 일이라고 하시는 거지?
의아하게 바라보자, 도련님이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바로 해결되지 않으면…… 네가 두고두고 신경 썼을 테니까.”
정정하겠다. 우리 도련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야…….
감동하는데, 종전보다 서늘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오늘 만난 것치곤 둘이 꽤 친해 보이던데.”
이건 답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터라 어떻게 둘러댈까 하다가, 한 가지를 떠올랐다.
참, 그게 있었지.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있죠, 도련님. 이보가 저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요?”
“……무슨 말을 했는데?”
“아니, 글쎄, 들어 보세요. 이보가 저한테 사내 같지 않대요. 행동도, 말투도요.”
내심 뿌듯해서 자랑하듯 말해버렸다.
사실 덴카르트 영지에 처음 갔을 때는 ‘저거 시종 놈이 맞아?’라고 놀리던 시종 형님들이 있어서 일부러 더 거칠게 생활한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아무도 나를 끝까지는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다행이지만,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보는 매우 정확한 눈썰미로 내 정체를 알아보았다. 역시 주인공 중 하나였다…….
이에 들뜬 나는 자랑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눈이 바닥에 떨어진 단추만도 못한 놈이네.”
그랬더니, 도련님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어째서 그런 터무니없는 발상을 할 수 있지?”
“……예?”
“나는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시종 중의 시종이라고 생각했어. 다짜고짜 내 사람이 되었다고 했을 땐 큰 목청이 돋보였고…….”
도련님은 어떤 수업을 받을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로벨이 이 시대의 진정한 시종인 이유’를 상세하게 늘어놓았다.
아주 본격적이었다.
클란트 백작의 후계자 수업에서도 이런 모습은 본 적 없었다.
아니…… 이거 칭찬이긴 한데 들을수록 기분이 복잡미묘해지는 건 뭐지.
나도 사정상 그렇게 행동하긴 했다만, 그래도 이렇게 너무 확고하게 말하면 내가 또 민망한데…….
그런데 평소답지 않게 말수가 많아진 도련님의 말을 자를 수도 없었다.
“그으……렇죠! 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시종이긴 하죠!!”
애매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도련님이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왠지 모를 반발심이 생겨서 은근히 말을 흘려보았다.
“그으으……래도 가끔은 섬세하지 않아요? 그, 누가 저한테 딱 머리만 기르면 딱, 따악 시녀! 시종보단 시녀가 어울린다고 했는데.”
“그런 바보 같은 논리가 세상에 어디 있어. 장발이라고 다 시녀이고, 단발이라고 다 시종은 아니잖아.”
“아……하……하. 그렇죠. 그건 그렇긴 한데요………….”
“내 말을 믿어, 로벨. 난 너와 하루를 가장 오래 함께하는 사람이잖아. 나는 너와 함께 있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시종이 아니라고 느낀 적이 없어.”
……와. 솔직히 이제 좀 상천데?
나중에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나를 보면 우리 도련님은 못 알아보고 지나칠 것 같다.
그게 참 다행인데, 어쩐지 웃는 입맛이 썼다.
고개를 아래로 기울이는데, 도련님이 다른 뜻으로 착각했는지 나를 위로해주었다.
“고아원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믿어요. 게다가…… 도련님 이제 검술도 잘하시는 것 같던데.”
도련님의 발 아래 놓인 검은 아까 봤던 것이다.
검을 잘 쓰지도 않으면서 불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다닐 사람은 아닌 터라, 예상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아까 단도를 다루는 솜씨도 초보자의 것이 아니었고.
내가 떠보듯 묻자 도련님이 언제 골을 냈냐는 듯이 내 눈치를 슬그머니 봤다.
“……미리 말 안 해서 미안.”
“사과받으려고 꺼낸 얘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자꾸 셋이 사라지는 거였어요?”
“……응.”
“아리프 형한테도 배우셨던 거고요?”
“아직은 쓸 만하니까.”
도련님은 마치 ‘이 검이 꽤 쓸 만해.’라고 말하듯이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게……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공작과 닮은 표정과 어조였다.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는 게 자연스럽달까…….
‘아냐. 그래도 우리 도련님은 공작과 완전히 다르지.’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자 도련님이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저, 도련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가지 부탁을 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