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화(1/280)
천조국 시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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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부디 우리 제이든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럭비 선수가 되지 않아도,
바이올린을 켤 수 없어도,
수학을 잘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저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나이가 들어 우리 집 베이스먼트에 텐트를 치고 산다고 해도 좋습니다.
제이든이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신이시여.
이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지 마시옵소서.
이 아이를 제게서 뺏어가지 마시옵소서.
― 어때?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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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새벽 잠결에 항상 들려오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 소리.
어느 날은 울기만 하고,
어느 날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담담하게 말을 뱉어 내고,
또 어느 날은 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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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우리 제이든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왜!
하필이면 왜!
내 인생도 거지같았는데 우리 불쌍한 제이든 인생까지 왜 이러는 거냐고!
시발.
이제부터 기도고 나발이고··· 흐흐흐흑!
― 쩝. 뭐. 이해는 한다만. 어때?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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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끝엔 늘상 누군가의 담담한 질문이 이어졌다.
여자의 기도는 분명 영어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한국말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오늘 새벽에도 같은 꿈을 꾸었다.
그런데 오늘의 기도문은 평소와 달리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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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어어어엉···
신이시여.
기어코 우리 제이든을 데려가셔야 만족하겠습니까?
내가 뭘 그리 당신한테 잘못했다고요.
우리 제이든만. 제이든만 깨어날 수 있다면 내 일평생을 당신에게 헌신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도와 주세요!
― 이제 진짜 시간이 없는데. 결정을 내리지?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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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각째각.
VIP 병실의 시계 바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날.
20대 후반의 내 몸뚱아리는 병실 침대에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다.
대기업 회장의 서자로 태어나 풍족하게는 살았지만, 일평생이 외로웠다.
엄마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죽었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따스한 눈길을 준 적이 없다.
엄마와의 기억도 딱히 좋은 건 없다.
늘 화려한 옷과 화장에 백화점 쇼핑백만 들고 다니던 기억밖에.
그래서일까?
살면서 어떤 일에도 크게 집착하는 법이 없었다.
형제들에게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해도 그저 귀 한번 후비고 털어 버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들은 나를 싫어하면서도 두껍고 단단하며 은빛이 들어간 블랙카드를 쥐어 주었다.
돈이나 쓰며 회사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경고.
그걸로 족했다.
그들의 염원대로 살았다.
게으르며, 낙천적이고, 허허실실···
그럼에도 시간은 어찌나 많던지.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이유는 모른다.
그냥 내 방에 있다가 쓰러졌다.
뇌졸중 같은 거였는지, 심장 이상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죽었어도 상관없는데.
깨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몸속에 갇힌 정신은 멀쩡했다.
병실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누가 왔다가 가는지 다 들렸다.
어떤 날은 심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눈을 뜨거나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의사는 내가 왜 안 깨어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나 뭐라나.
이 이상한 여자의 기도 소리가 들린 건 3달 전부터다.
어떤 날은 간절하고, 어떤 날은 시니컬하고, 또 어떤 날은 담담했다가 어떤 날은 울부짖었다.
왜 내게 이 여자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들려서 들은 것뿐.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여자의 기도가 향하는 대상이 5살짜리 남자아이이고, 이름은 제이든이라는 것.
여자의 기도가 끝나면 항상 중성적인 목소리의 남자가 내게 물어왔다.
― 어때? 갈래?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뜻하는지 대충 알겠기에.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기에.
하지만 오늘은 대답을 들어야 하는 모양이다.
저 여자의 기도에 따르면 오늘이 제이든의 장기 기증 약속을 서명하는 날이다.
세상 어디든 기증을 받고자 하는 자는 널렸으니 내일쯤에는 당장 수술에 들어가겠지.
남자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조급하다.
“가면?”
“어?”
“가면 나한테 뭐가 떨어지는데?”
“뭐가 필요한데? 들어줄 수 있는 거면 들어주지.”
“···글쎄. 흐음. 뭐가 있을까? 공부를 좀 잘해 보고 싶군.”
“공부? 천재적인 두뇌. 뭐. 이런 게 필요한 건가?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다고 모두 아이비리그 같은 데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오히려 천재들이···”
“아이비리그! 그래. 그거. 그런덴 도대체 어떤 놈들이 가는지 진짜 궁금했는데. 나 거기 들어가게 해 줘. 최고 대학이면 더 좋고.”
“···그건 불가능해. 아이비리그 입학심사관이 한둘도 아니고. 학교만 8개야. 어찌저찌 그들 눈을 가려서 입학한다고 해도 졸업은 보장 못 해.”
“됐어. 그럼.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상적인 것들을 나열할 생각 따윈 없어. 돈이나 권력 같은 거야 좋은 대학 나와서 성공하면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겠어? 쟤네 집이 어떤 집인지 모르겠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그럼··· 여건을 만들어 줄게.”
“여건?”
“어. 아이비에서 좋아하는 스펙을 만들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겠다고. 대신. 너도 내가 주는 건지 민감하게 알아채고, 노력해야 해. 이후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없을 테니.”
“여건이라··· 뭐. 그래. 그 정도면 뭐. 가.”
“오케이. 그럼 여기에 서명해.”
“서명?”
“지장 찍어. 지장.”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눈부신 빛 조각에 지장을 찍었다.
― 화아악!
제이든의 짧은 생애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공항에 서 있는 날.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잡는 작은 아이의 손.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목소리.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눈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자.
누군가의 집 앞에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초인종을 누르는 여자.
저녁엔 두 팔을 크게 벌려 꼭 껴안아 주는 여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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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 속에 젊은 백인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 우리 엄마 리사를 부탁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지켜 줘.
어린아이의 목소리.
제이든이구나.
그의 마지막 부탁인 것 같다.
‘노력해 보마.’
서서히 감긴 눈을 떴다.
***
― ···꺄아아아아! 제이든! 닥터! 닥터!
한바탕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소리가 귀를 어지럽힌다.
― 제이든. 내가 보이니?
― 잠깐만. 이 불빛 따라 눈 좀 움직여 볼래?
―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가 해 봐.
― 다리에 힘이 들어가니? 감각이 어떠니?
― 엄마 이름이 뭔지 말해볼래?
.
.
.
무수히 많은 질문과 검사, 그리고 또 검사.
이틀을 더 병실에 머물렀고, 퇴원 판정을 받았다.
많은 병원 관계자들이 축하 인사를 건넨다.
어느 새 그들이 건네 준 쿠키와 인형, 스티커 등이 잔뜩이다.
단체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퇴원.
“제이든. 건강히 잘 자라거라.”
“신의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고맙습니다.”
“어쩜. 말도 저렇게 예쁘게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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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거리는 오래된 자동차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축하가 생소하다.
전생엔 아낌없이 블랙카드를 긁고 다녔기에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 곁에 있었던 건 내 지갑 속에 있던 블랙카드 때문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제이든. 집에 가면 깨워줄 테니 좀 자. 한 30분 정도 걸릴 거야.”
“네.”
어린이 카시트에 앉아 눈을 감았다.
‘카시트라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5살 어린이가 카시트에 앉지 않으면 엄마는 경찰에게 아동학대죄로 잡혀갈지도 모른다.
엄마는 행여나 내가 불편할까 봐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친아들도 아닌 것 같은데 뭘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지?’
간절히 기도하는 여자의 기도문이 너무 애처로워 선심 쓰듯 ‘가겠다.’ 고 했다.
그런데 실제 빙의되고 보니 좀 혼란스럽다.
막연히 제이든은 백인 꼬맹이일 것이라 생각했다.
들리는 언어가 영어였고,
말투에 흑인 특유의 리듬감이 없었으며,
감정이 북받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차분한 어조여서 그랬던 것 같다.
제이든이 한국 입양아라는 사실은 제법 반전이었다.
제이든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던 여자는 리사 패터슨.
내 엄마 되시겠다.
제이든의 기억 속에 있던 모습보다 볼이 핼쑥하다.
지난 3개월,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파삭 늙어 버린 모양이다.
리사는 결혼과 동시에 한국의 보육원을 통해 나를 입양했고, 입양 수속이 끝나자마자 남편과 이혼했다.
사실 리사는 결혼 전부터 입양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결혼 상대는 입양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결국 나중에 포기할 것이라 여겼다.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동의를 한 것뿐.
하지만 리사는 결혼과 동시에 입양 수속을 밟았고, 입양 절차가 끝나자마자 남자는 이혼을 요구했다.
리사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래도 입양 절차가 끝날 때까지 함께 해 주었다며 떠난 남자를 원망하진 않았다.
그 과정이 순탄한 건 아니었다.
입양 후엔 친자식처럼 제이든을 길렀다.
‘제이든 민준 패터슨.’
이것이 내 미국 이름이다.
미들 네임은 입양하기 전의 내 한국 이름이라고.
한평생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여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마등처럼 보인 제이든의 기억 속엔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엄마가 있었다.
제이든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무척 행복했을 것이다.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홀로 남겨질 그녀에 대한 걱정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
리사가 친부모들과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또한 반전이다.
나의 조부모들은 리사가 어릴 때 이혼했고, 각자 재혼했다.
그리고 그들의 재혼 상대들은 각기 재혼과 삼혼이었다.
친할아버지와 새 할머니.
새 할머니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넷 있었고, 할아버지와 사이에서 둘을 더 낳았다.
그래서 할아버지 댁엔 엄마와 피하나 섞이지 않은 형제가 4명에, 배다른 형제가 2명 있다.
친할머니와 새 할아버지.
새 할아버지는 삼혼이었는데, 첫 결혼에선 자식이 없었고, 두 번째엔 부인이 데려온 자식이 한 명 있었으며, 본인과는 셋을 더 낳았다.
둘째 부인은 막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몇 년 후 세 번째 결혼을 했고, 그게 내 친할머니다.
둘 사이에도 1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러니까 할머니 댁에는 엄마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형제가 4명에, 씨 다른 형제가 1명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자식들도 모두 장성하여 각자 결혼을 했고, 이혼을 하기도 했으며, 그 와중에 자식이 있는 상대와 결혼한 이들도 있기에 리사는 본인의 조카가 총 몇 명인지 모른다고 한다.
온전히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리사의 형제는 남동생 리암뿐이다.
리암은 18살 성인이 되자마자 집에서 최대한 먼 거리에 있는 대학에 등록을 하고는 발길을 끊어버렸다.
어질어질한 가정사지만 이 동네엔 생각보다 이런 가정들이 많다.
제이든, 아니 이제 나의 가정 환경은 이 정도다.
사촌들 얼굴 외우는 것만도 한세월이겠다.
***
덜컹거리는 차가 졸음을 몰고 온다.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어깨를 흔들었다.
“제이든. 집에 다 왔어. 일어날 수 있겠어?”
눈이 잘 떠지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육체란 것이 이런 건가?
“짐이 좀 많은데 어쩌지? 안아야할 것 같은데. 후우. 3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엄마의 혼잣말.
이 나이에 여린 여자의 팔에 안겨 올라갈 수는 없지.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눈을 떴다.
“저 일어났어요.”
“아. 미안해. 제이든. 얼른 차고 있는 집 사서 이사할게. 너 번거롭게 깨지 않아도 되게.”
“괜찮아요. 짐 같이 들어요.”
“어머. 아니야. 이런 건 엄마가 하는 거지. 근데 우리 제이든 손을 못 잡아 줄 거 같은데, 잘 올라갈 수 있을까?”
“아이고. 그럼요.”
“계단 조심해야 한다.”
“네에. 걱정 마십쇼.”
이런.
나도 모르게 아재 말투가.
엄마가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지만 그러려니 하고는 짐을 챙긴다.
전생의 내 나이보다 몇 살 많은 엄마.
어쩌다 우연히 만났다면 친구 먹었을 수도 있는 나이이지만 그런 건 이제 잊자.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삶에 대한 생각도, 자세도, 행동도.
젊은 나이에 아이를 입양한 것도 놀랄 노 자에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우는 여자를 내가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겠나.
평생을 한량으로 살던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 이미 죽었다 깨어났는데도 모르겠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자.
제이든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고 했던 부탁은 잘 모르겠지만,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은 들었다.
누군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으니까.
우리는 천천히 3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