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2)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2화(2/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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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 카렌 1
엄마가 열쇠로 문을 열자 장난감과 책으로 꽉 차 있는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든. 절대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금방 돌아올게.”
집안으로 나를 밀어 넣은 엄마가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가 남은 짐들을 들고 올라왔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 짧은 팔다리는 이미 지쳐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3번을 반복한 후에야 모든 짐들을 집안으로 들였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물 한 컵을 따라 내밀었다.
완전 감동한 얼굴.
“어머. 제이든. 정말 고마워.”
“뭘 이 정도 가지고요.”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우리 파티 해야지. 파티.”
“엄마.”
“어?”
“좀 쉬세요. 저도 피곤해요.”
“어? 어. 그래그래. 그럼 목욕부터 시켜줄까?”
“네? 어…목욕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할 수 있겠어?”
“그럼요. 제 나이가 몇 갠데요?”
아무리 어려도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엄마가 뭔가를 더 말하기 전에 후다닥 짐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
미국의 공립학교는 5살, 킨더가든(Kindergarten)부터 시작이다.
전해년도 9월 1일부터 다음해 8월 31일까지 생일인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다.
내 생일은 7월이다.
엄마의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3개월이나 병원 신세를 진데다 몸집이 다른 아이들보다 작았기에 1년 더 꿇었다가 보내고 싶은 것.
미국에서 남자아이들의 경우엔 전년생 5월생부터 1년 늦춰 학교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1년의 차이는 무척 크다.
등빨이든, 뇌의 성장이든, 리더십이든.
당해 8월 31일 생 – 나이 커트라인 끊고 입학한 아이.
전년도 5월 1일 생 – 한 해 늦춰 보낸 아이.
최고 1년 3개월의 차이가 난다.
남자들의 성장기는 보통 고등학생 때다.
스포츠에 목매는 나라이니만큼, 아이의 등빨이 학창시절 전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난 꼬맹이들이랑 리더 자리를 두고 다투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하루라도 빨리 자라 학교를 벗어나고 싶을 뿐.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4-5살 아이들이 다니는 프리킨더(Pre-Kindergarten)는 이 동네 공립학교에는 없다.
즉, 1년 꿇으면 그만큼 돈이 든다는 말.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맡아주는 시간이 길지도 않다.
일주일에 3일, 오전 9시-11시 30분.
스쿨버스도 없다.
드랍 후 잠깐 일 좀 하다보면 금방 픽업 시간이다.
물론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종일반이 있기는 하다.
일주일에 5일, 오전 9시-오후 5시.
한 달에 2천불 가량(한화 267만원)만 내면 된다.
그리고 우리 집은 돈이 없다.
엄마의 직업은 식당 웨이트리스.
한 달에 2천불 조금 넘게 번다.
아파트 렌트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가 좀 똑똑하니 몇 학년을 건너뛰는 월반은 어떠냐.’고 물었다가 폭풍잔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초중고 12년 학교생활을 충실히 해야만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다는 구석기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한마디로 젊은 꼰대였던 것이다!
어차피 한번 찔러본 거였기에 크게 반항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연도 킨더 입학으로 합의를 볼 밖에.
이곳은 중동부의 시골이다.
아시안 비율은 1% 정도, 흑인이나 라티노들까지 포함하면 비(非)백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3% 정도 될까 말까한 동네.
그냥 앞집, 뒷집, 옆집이 서로 고등학교 동창이고, 아빠 초등학교 때 선생님을 내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만나는 그런 곳이다.
아무튼 그렇게 입학한 킨더가든.
5-6살 아이들과의 집단생활은…
신.선.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
– I’m Mr. M, with a munching mouth.
My mouth must munch, munch, munch.
My mouth has lunch, lunch, lunch.
I munch from morning to midnight,
Midnight to morning.
Munching mouth, I’m Mr. M. –
“와우! 제이든! 너 천재로구나?”
“와아아아! 제이든. 머씼다!”
“와아아아! 제이든. 천재다!”
“지니어스 제이드은~”
.
.
.
25명의 꼬맹이들이 감탄이 섞인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입을 헤벌리고 침을 힐쭉 흘리는 놈도 있다.
오늘은 한달 후 있을 ‘학부모 초청 이벤트’에서 내가 맡은 알파벳 ‘M’ 파트를 연습하는 중이다.
우리 반 학생 수는 25명.
킨더는 총 3개 반인데 우리 반 학생 수가 가장 많다.
담임교사가 신입이거든.
한 달 정도 지켜보다보니 선생님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조교사가 있긴 하지만 혼자서 코흘리개 25명을 다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교실에서 화장실 실수를 하는 애들도 간혹 있다.
그래서 킨더 반엔 각자의 사물함에 항상 여분의 옷이 준비되어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 내가 Mr. M 노래를 한 번에 끝까지 불러버리자 담임 샘의 눈이 동그래진다.
“제이든. 알파벳 수가 26개인데, 우리 반이 25명이잖아. 제이든이 하나 더 맡아줄 수 있을까? 지금 부른 Mr. M이랑 바로 이어지는 Mr. N.”
“그러죠. 뭐.”
“정말 쿨하구나. 제이든. 고마워. 다른 친구들도 제이든이 2개하는 거 괜찮을까요?”
“네네. 쪼아요!”
“쪼아요! 쪼아!”
.
.
.
담임샘의 적극적인 지지와 코흘리개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나는 졸지에 두 개의 알파벳을 담당하게 됐다.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었다.
전생에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어 그런가?
나, 칭찬에 많이 약한 것 같다.
‘큼. 이왕 하는 거 도와주면 좋잖아!’
나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다.
평생을 돈만 쓰며 한량처럼 살았기에 더욱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다.
아이비리그라는 말에 혹 한 것도 다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그래도 저 5-6살 코흘리개들의 칭찬에 헤벌쭉 거린 건 좀 부끄럽다.
애써 올라오는 자괴감을 눌렀다.
한국에서 유치원생쯤 되면 제법 어른스럽지 않나?
어른만큼 말 잘하는 애들도 널렸고.
한마디로 똑- 소리 나는 아이들이 사방에 깔려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 애들은 뭐랄까?
며칠 전 10+10=20라는 답을 맞춘 스티브는 엄마에게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단다.
종이에 줄 하나 똑바로 잘 그리기만 해도 unbelievable, beautiful, terrific, excellent… 등등.
세상의 모든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애들이 해맑아도 너무 해맑다.
커가면서 자신이 생각보다 그리 잘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지만, 지금은 모든 세상이 본인 중심으로 흘러가는 날들이니 놔두자.
아무튼 우리는 한달내내 본인이 맡은 알파벳 송을 불렀다.
이제는 뭐 뮤지컬로 바꿔 부르라고 해도 부를 수 있겠다.
***
드디어 학부모 초대 이벤트가 열리는 날.
학부모들은 11시에 오기로 되어있다.
아침부터 우리 학급의 룸맘(Room mom)을 맡은 베티 윌슨의 엄마가 5명의 엄마들을 끌고 왔다.
어떤 식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모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이벤트 시간에 맞춰 오겠지.
우리는 아침부터 모든 수업을 째고, 각자의 웃옷에 붙일 알파벳을 장식하는데 힘을 쏟았다.
색종이부터 반짝이 가루, 크레용 등 킨더 아이가 크래프트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룸맘을 비롯한 엄마들과 담임 선생님, 보조 선생님까지 달라붙어 우리를 도왔다.
– 으앙. 여기 찢어졌어요!
– 으아앙. 반짝이 눈에 들어갔어!
– 테이프 필요해요!
– 푸울~풀!
.
.
.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그냥 반 학부모들 모아놓고 1분도 안 되는 노래 한 자락씩 부르는 게 다인 아주 작은 이벤트일 뿐이다.
진짜 빨리 자라고 싶다.
이게 이렇게 난리를 쳐야 할 일이냐고.
한숨을 쉬면서도 나는 묵묵히 M과 N을 장식했다.
하다보니 또 나름 재밌기도…쿨럭.
아줌마들 몇몇이 힐끗 쳐다보고는 지나쳐간다.
딱히 도움을 필요로 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는 볼 수 있지 않나?
상관은 없지만 좀 쎄-하게 소외되는 느낌이네.
드디어 11시.
학부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걔 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출동한 아이들도 있다.
보통 양가의 첫 손주인 아이들이 이렇게 교실 비좁은 거 모르고 총출동하는 자신감을 보인다.
엄마는…
아직 안 왔네.
딱히 아쉽진 않지만 엄마는 좀 아쉽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벤트의 사회는 룸맘이 맡고, 사진은 다른 보조 엄마가 찍기로 했다.
선생님은 전체 총괄이고.
룸맘의 요구에 우리는 한 줄로 다닥다닥 붙어 섰다.
아무리 킨더 아이들이라도 25명이 한 줄로 서니 비좁기는 하다.
자기 차례가 되면 앞으로 한발짝 나와 노래를 부르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어른들이 휴대폰을 높게 든다.
사진 전담 아줌마가 있는데도 자기 아이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겠다는 굳은 의지.
보통의 부모들은 저런 건데.
갑자기 지난 생의 내가 불쌍해지네.
드디어 미스 A를 맡은 애슐리가 A 알파벳 글자가 박힌 웃옷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I’m very happy a~~~~choo! 아아아아 아츄~
노래를 부르다 사래가 걸려 진짜로 재채기를 하는 애슐리.
그 모습에 어른들 사이에서 커다란 박수와 함께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애슐리가 신이 나서 엉덩이를 흔들고, 노래는 다음 타자 B로 넘어갔다.
그렇게 순서가 지나고 어느덧 내 앞 미스 L이 끝났다.
룸맘이 큰 눈을 굴려 예리하게 학부모들을 훑는다.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약하게 피어오르는 미소.
나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슬쩍 내 눈을 피하네?
그리고는 호명한다.
“자. 다음은 미스터 O!”
하! 이 아줌마 보래?
어차피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고, 선생은 선생대로 혼이 나가 있는 상태라 내가 했는지 안했는지조차 모른다.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지나치는데 미스 L을 맡은 엠마가 손을 번쩍 든다.
“노! 베티 엄마! 미스터 M할 차례예요!”
“맞아요! 미스터 M. 제이든이 할 건데. 미스터 N도 제이든이라고요. 완전 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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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이들이 용기를 내네.
“아! 미안미안. 정신이 없어서 지나간 줄 알았지 뭐니. 미안해. 제이든. 아줌마가 실수했어.”
실수 같은 소리 한다.
L에서 O로 바로 건너뛰는 게 가능한가?
눈 화장을 곱게 한 베티 엄마.
당황한 척 청중들이 볼 때는 미안한 듯 환하게 웃고 있지만 나를 보는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올 것 같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빙썅(빙그레 썅년) 혹은 카렌이라고 부르던데.
좀 괘씸하네.
5살짜리 애 상대로 뭐하는 짓인지.
네가 그러면 내가 주눅들 것 같았나?
들이받기로 했다.
“미세스 윌슨. 근데요. 왜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렇게 무섭게 노려보세요?”
“뭐? 내. 내가 언제?”
“지금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막 웃으면서, 눈으로는 이렇게 응? 이렇게 노려봤잖아요. 너무 무서워요!”
“어머어머. 제이든.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미안한데 그건 오해구나. 내가 눈이 좀 크고 부리부리해서 그래 보이는 거야.”
“…”
억울하다는 듯 온 몸으로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는 베티 엄마.
그 와중에 은근슬쩍 동양인인 넌 눈이 작아 잘 모르겠지만 백인인 나는 눈이 커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는 돌려까기 센스까지 발휘하신다.
전생에 돈.만.많.은. 한량으로 살면서 이런 돌려까기는 수도 없이 당해봤다.
내 돈으로 먹고 놀면서도 내 생활을 아니꼬워하던 것들.
당해줄 이유가 없다.
베티 아줌마. 당신. 딱 걸렸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