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131)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131화(131/280)
사나이로 태어나서 6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시청각 교육은 정말 지루했다.
야생 동물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부터 오늘 배워야 했던 야생 동물들의 발자국들, 그리고 그들의 습성 등을 시청각으로 배울 뿐이었다.
“와, 대박 지루해.”
“진짜. 그 이상한 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제이든, 이거 봤냐?”
“어? 캠프 일정표다. 마크, 이거 어디서 났어?”
“내가 또 이런 거 찾는 거 귀신이잖아, 하하. 들어올 때 보니까 저기 끝에 몇 개 있더라고. 교관들이 보다가 둔 것 같아서 슬쩍 들고 왔지.”
“좀 볼 수 있어?”
“당연하지.”
빽빽하게 적혀 있는 일정표들과 식사 메뉴들.
동그라미와 엑스 표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는 걸 봐선 어떤 교관이 보던 것이 분명하다.
슬쩍 보고 놔두고 가야겠다.
“눈 조각하기, 스키, 스노우보드, 튜브 타기, 캠프파이어. 이런 건 좀 재밌겠는데?”
“헤헤, 그치? 나도 딱 눈에 들어오더라. 그리고 이거 봐 봐. 2박 3일 야외 캠핑, 재밌겠지?”
“과연 그럴까?”
“히익. 불안하게 왜 그래?”
“캠프의 마지막 일정이라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날씨만 받쳐 주면 재밌을 수도. 오,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이거 뭔지 알아?”
“아, 그날 부모님들이 음식 싸들고 방문해서 같이 먹고, 놀고 그러는 거래. 그날의 감동을 위해 그 전까지 엄청 굴린다는데,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면 완전 나가리 된 거지.”
“근데 부모님 못 오는 애들은 어떡해?”
“어차피 못 오는 애들이 태반일걸? 암튼 난 기대된다.”
.
.
.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시청각 교육이 끝났다.
단언컨대 이 자리에 저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사람은… 크리스틴밖에 없을 거다.
쟤는 이상한 데서 열심이다.
― 팟!
강당의 불이 켜지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기지개를 켠다.
― 으아아아.
“지금부터 응급 의료 대처 상황에 대해 배우겠다. 모두 2명씩 짝을 이뤄라.”
― 가, 갑자기?
“시간은 1분 준다.”
― 뭐, 뭐야?
웅성웅성.
갑작스런 명령 하달에 강당이 시끄럽다.
현재 우리 팀은 남자가 7명, 여자가 5명이다.
마크를 잡아당기려는데 크리스틴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남녀가 홀수이니 둘이 한 팀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자 중에 크리스틴의 완력을 감당할 사람도 없어 보이고.
선선히 마크를 내어 주고 덩치가 비슷한 매튜와 짝을 이뤘다.
그렇게 심폐 소생술(CPR)부터 하임리히법, 골절이 되었을 때, 출혈이 심할 때, 독사에게 물렸을 때 등등 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나야 뭐 대충 다 알고 있는 상식들.
하지만 시청각 교육보다야 훨씬 낫지.
― 야, 크리스틴!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붕대를 감아! 피가 안 통한다고!
― 풀어지는 거보다 낫거든? 그것도 못 참냐?
― 와, 이거 팔 새파래지는 거 안 보이냐? 딱 와. 너도 맛 좀 봐라.
― 어허허, 이거 왜 이래!
.
.
.
저것들은 언제 철이 들는지.
모르는 척하자.
고개를 돌렸다.
매튜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본다.
“왜?”
“나도 피가 안 통하는 거 같아.”
“아닌데? 괜찮아 보이는데? 넌 마크처럼 파랗게 안 변했잖아?”
“내 피부가 어둡다고 멀쩡한 건 아니거든? 진짜 피가 안 통하는 거 같다고. 좀 풀어 봐 봐!”
“진짜 괜찮은 거 같은데….”
.
.
.
유익한 시간이었다.
2시간 후.
부책임자가 단상 위에 섰다.
“내일부터는 일정이 좀 더 빡빡하게 굴러갈 테니 오늘은 다들 일찍 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읽을 책이 필요한 사람은 담당 교관에게 언제든지 말해라. 고전 문학은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다.”
― 우우우우.
“해산!”
방으로 돌아와 교관에게 들으니 오늘 사고 친 놈들이 건드린 곰은 결국 겨울잠에서 잠깐 깨어났다고.
날씨가 추웠으면 다시 들어가 잤을 테지만 오늘따라 화창했었다.
레드브라운 팀의 교관이 스프레이를 뿌려 잠깐 멈칫하긴 했지만 3시간 후 동굴 밖으로 나와 기어이 사슴 하나를 사냥해 먹어 치웠단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그놈들을 빨리 찾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났었을 수도.
그놈들은 아마 앞으로 군대와 관련된 직장은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캠프에서의 둘째 날이 지나갔다.
* * *
사람이 시간을 쪼개 쓰다 보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체감하는 날들이 지나갔다.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고, 10시 30분에 취침했다.
우리 교관은 우리가 하루에 해야 하는 일들을 조금씩 늘려 갔다.
땅만 넓히면 되던 작업은 나무 계단들을 보수하거나 썩어 방치되어 있던 벤치들을 부수고, 개울가의 징검다리들을 손질하기도 했다.
하루 3시간이라는 작업 시간은 정확히 지켜졌다.
한국에서의 18개월 군 짬밥이 어김없이 튀어나오던 순간들이다.
매 순간 슬렁슬렁하고 싶었다.
그런데 또 고딩들 하는 걸 보니 성에 차야 말이지.
결국 교관이 진지하게 군 입대를 권하기도 했었지.
답이야 뻔한 거고.
작업이 끝나면 산에서 고립되었을 때의 생존 기술을 배워 나갔다.
이건 좀 새롭긴 했다.
“처음 이글루를 만들어 본 것도 이 산에 고립되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글루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면 동굴을 찾되 겨울 동굴엔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지난번 곰처럼 내부에 먼저 자리를 차지한 동물이 있으면 조용히 나와 다른 곳을 찾아라. 비바람이 몰아쳐 갈 곳이 없는 상황이면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입구에서 가까운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흔적을 남겨라. 그래야 구조대들이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너를 찾을 수 있다. 칼이 있다면 나무줄기를 찢어 나뭇가지들에 걸거나 색이 진한 옷가지를 잘라 걸어 둬라. 통일성이 있어야 구조대들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눈을 녹여 물을 마셔 탈수 증세를 피해야 하고….”
“고립이 길어지고,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토끼가 먹는 풀을 확인하고 아주 조금 뜯어서 씹어 보고, 몸의 반응을 살펴본 다음 알레르기 반응을 확인하고….”
“식물보다는 동물을 사냥해서 먹는 것이 더 안전하다. 사냥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편이 체력 소모가 덜할 것이며, 불을 피울 부싯돌을 찾기 어렵거든 이렇게 나뭇가지를 돌 사이에 끼워 마찰을 일으키면 스파크가 튀는데 이때….”
삽질만 하다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법 유익한 생존 기술들을 익힐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물고기를 잡아 구워도 보았다.
물론 그 풀이 그 풀 같고, 그 열매가 그 열매 같기는 했지만, 교관은 제법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 * *
그리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오후 3시부터 승용차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휴대폰이 없기에 엄마가 올지 안 올지 모른다.
실제로 이런저런 사정들로 참가자들의 50%에 해당하는 부모들만 온다고 한다.
멀리 엄마와 삼촌, 숙모와 유모차에 앉은 엘리까지 보인다.
저 어린 것을 이 추운데….
너무 반갑다.
솔직히 생각보다 반가움의 정도가 커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한국에서 4주간의 훈련소 마지막 날엔 아버지의 막내 비서가 와서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었지.
“엄마!”
“아들, 잘 있었어?”
“그럼요. 엄마도요?”
후다닥 뛰어가 엄마를 안아 주었다.
삼촌과 숙모까지 가볍게 허그한 후 곧바로 유모차 하단에 있는 아기 띠부터 찾았다.
능숙하게 아기 띠를 매고는 엘리를 들쳐 안았다.
“우리 엘리, 잘 있었어? 오빠 안 보고 싶었어? 춥지? 오빠가 발 따뜻하게 해 줄게.”
― 옹아옹야. 까르르르.
“으하하, 오빠도 우리 엘리 엄청 보고 싶었지이. 에구에구, 오느라고 고생 많았다, 엘리.”
“…….”
“들어가자.”
“네. 엘리야, 우리 들어갈까?”
“제이든, 반가운 소식 하나 있는데 알려 줘?”
“오, 뭔데요?”
“엘리 동생 생겼다.”
“우아아아, 그럼 우리 엘리 이제 빅시스터(Big sister, 언니) 되는 거예요? 축하해요. 엘리야, 걱정하지 마. 오빠는 무조건 우리 엘리 편!”
“…….”
“…….”
“풋, 못 말리겠네.”
파티는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학부모들과 교관들이 내놓은 음식들이 제법 괜찮았다.
이어지는 장기 자랑과 댄스 타임, 게임 시간 등등.
진짜 군대 교관들인지 레크리에이션 강사들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람들을 웃겨 주고 편안하게 해 줬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엘리를 돌봤다.
이유식도 먹여 주고, 잠도 재워 주고.
물론 기저귀 갈기는 부모에게 맡겼지만.
옆에서 팀원들이 혀를 내두른다.
“제이든 원래 저런 캐릭터야? 평소와 괴리감이 너무 큰데?”
“어, 엘리하고만 있으면 저래. 사촌 동생 바보라고나 할까? 저러다 엘리 버릇 나빠지는 거 아냐?”
“그건 아닐걸? 쟤가 저래 봬도 완전 꼰대거든. 교육 하나는 똑바로 시킬 거야. 음, 엘리한테 하는 거 보면 자식은 잘 키울 거 같은데. 진짜 꼬셔 볼까?”
“음, 크리스틴, 그건 아닌 거 같아.”
“오호, 이안? 그건 무슨 뜻일까? 마크도 아닌 너한테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의왼데?”
“히익. 그, 그니까 내가 잘 모르지만 지난 1주간 봐 온 걸로 보면…”
“내가 다른 학교 학생이라고 못 때릴 거 같은가 봐?”
.
.
.
파티는 밤 10시가 되어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럼 집에서 보자, 제이든.”
“네. 삼촌, 운전 조심하고요.”
“네네, 걱정 마세요.”
생각보다 가족과 떨어져 있던 1주일이 힘들었나?
헤어지려니 괜히 울컥한다.
연말이라 그런 걸 거다.
그 와중에 캠프 생활 힘들다며 부모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 버린 캠퍼들이 3명이나 나왔다.
캠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벌써 낙오자가 5명이나 된다.
교관 말로는 해마다 있는 일이라면서도 이 정도도 못 버틴다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 나가려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했다.
다음 날은 기상 시간이 따로 없었다.
하루 종일 자유롭게 놀았다.
크리스마스는 미국에서 아주 큰 휴일 중 하나다.
눈싸움하고, 스키 타고, 썰매 타고.
그다음 날부터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리고 이틀 후, 우리는 짐을 쌌다.
2박 3일간의 야외 캠핑이 시작된 것이다.
숙소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야외 캠핑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가감 없이 활용해 보라는 교관들.
야외 캠핑이지만 먹을 건 계속 제공해 준단다.
교관이 코펠까지 챙기기에 밥도 해 먹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본인 커피용이라나?
“근데 야외 캠핑에서는 뭘 합니까?”
“각자에게 배속된 트레일(trail) 행군이라고 보면 된다.”
“해, 행군이요? 길이가 얼마나 되는데요?”
“글쎄다. 트레일마다 길이가 다르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2박 3일 동안 30키로 정도 걷는다고 보면 된다. 살면서 만날 수 있는 겨울의 자연환경들을 모두 마주할 수 있을 거다. 그 때문에 지난 열흘간 그 훈련들을 받은 것이고. 물론 걷기만 하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작업도 해야겠지. 개울가의 징검다리나 썩은 나뭇가지들 정리하는 정도? 다녀오고 나면 각자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텐트는요?”
“가면 줄 거다.”
2박 3일 동안 캠프장에 텐트 치고 다른 활동들을 하는 건 줄은 알았다.
행군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에헤이.
이건 아니지.
엄마 왔을 때 따라갈 걸 그랬나?
군대에서의 혹독했던 행군이 아른거리는 건 그저 내 기억의 오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