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the American Dirt Spoon Gang Village RAW novel - Chapter (21)
미국 흙수저 깡촌에서 살아남기-21화(2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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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다 3
“제이든. 리암. 이쯤 되면 무슨 일인지 말해야 되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눈치라는 게 있다.
부모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이들보다 좀 더 민감한 것 같고.
삼촌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고, 나는 나대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 대답을 못했다.
‘차에 총이 있을까?’
의외로 많은 미국 사람들이 보조석 글러브박스(glove compartment)에 총을 넣고 다닌다.
운전자끼리 시비가 붙었을 때, 박스를 살짝 열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급한 경우 실제 사용할 수도 있고.
때문에 양쪽 다 섣부르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거다.
호텔 내부도 아니고, 주차장인데다 이미 체크아웃했다.
무슨 사고가 나도 호텔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리암!”
엄마의 추궁에 결국 삼촌이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리암! 너는 어른이 돼서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냥 있을 수 있었어! 그건 명백한 인종차별이야. 고소를 해서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게 해 줘야지! 경찰까지 왔는데 그냥 돌려보내? 제정신이야?!”
엄마의 고함 소리에 놀라 화들짝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건 나만이 아니라 저쪽 인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쪽 엄마가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빈 손바닥을 보여주며 다가온다.
손에 총 없다는 뜻.
“워워. 맴. 진정해.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다툼이었을 뿐이야. 우리도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랐다고.”
“이봐. 내 아이더러 자기 나라로 꺼지라고 했다지? 옐로우 멍키? 당신 아들이 N 워드 들어간 소리 들어도 가만히 있을 수 있어? 이 정신 나간 인종차별주의자들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엄마의 감성이 이성을 앞서기 시작했다.
경찰도 없는 마당에 저쪽 아저씨가 총이라도 꺼내들면 낭패다.
엄마 앞을 막아섰다.
저쪽 아줌마와 우리 엄마 사이 딱 중간쯤에.
덩치는 저쪽 아줌마가 크고, 키는 우리 쪽이 전반적으로 더 크다.
남자들은 살짝 빠져있는 구도다.
긴장감이 흐른다.
호텔 체크아웃은 오전 11시.
대부분 9-10시쯤에는 나온다.
아까의 참극을 본 사람들이 호텔을 나오던 중 우리들을 알아본 것이다.
짐을 꾸리던 사람들이 한명씩 멈춰서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누구라도 도발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최대한 침착하게, 하지만 당당하게 눈을 치켜 뜬 상태로 목소리 톤을 높였다.
“전 꼭 마커슨에게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가능한가요?”
“…”
“…”
잠시의 침묵.
“마커슨!”
결국 마커슨의 엄마가 제 분에 못 이겨 목청껏 소리를 질렀고, 마커슨은 제 아빠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내 앞으로 끌려 나왔다.
– 턱.
“너. 나한테 진심으로 사과해.”
“…”
“아까 영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많아. 어쩌면 이미 인터넷에 퍼졌을지도 모르지.”
‘네놈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이대로 묻힐 거고, 사과하지 못하겠다면 판 키울 거다. 어디 한번 끝까지 해 보자고.’
“…미아…”
“안 들려. 똑바로 말해.”
“미안하다고!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뭐?”
“뭐가 미안하냐고. 어떤 점이 왜 미안하냐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야 사과의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겠어?”
전생의 배다른 누이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이걸 또 이렇게 써먹네.
어떤 경험이든 경험은 삶을 풍부하게 해 준다.
“아니. 이게 진짜 듣자듣자 하니까…”
뒤에 서 있던 마커슨의 엄마가 콧김을 뿜으며 나서는 걸 그 남편이 제지한다.
그 역시 사나운 기운을 맘껏 풍기고 있었지만 아직은 절제하는 모양새다.
보는 눈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마이너리티다.
흑인과 아시안.
아시안의 인권이 바닥이라 하지만 흑인도 사실 딱히 다르진 않다.
요즘에야 입김이 좀 세지긴 했지만 아직도 차별을 하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기도 하고.
사람들은 미국 인구 중 백인 다음으로 흑인이 많다 생각하지만 아니다.
백인 다음으로는 라티노들, 즉 남미계통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 다음이 흑인이다.
제 부모가 자신을 돕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마커슨이 체념한 듯 말을 잇는다.
“오케이. 내가 달려가서 일부러 부딪힌 거랑 옐로우 멍키라고 말한 거, 그리고 너네 나라로 꺼지라고 한 거. 그리고 먼저 선빵 날린 거. 다 미안해. 됐냐?”
‘헐. 부딪힌 것도 일부러 그런 거였어?’
“잘 들어. 마커슨. 아직 어리니까 네 사과는 이쯤에서 받아들이지. 하지만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일을 벌이지 마. 인종 차별은 루저들이나 하는 짓이야. 네가 스스로 잘나면 누구도 깔아뭉갤 필요가 없어.”
“…뭐래. 미친놈이.”
“얼마나 못났으면 강한 사람은 차마 못 건드리고, 만만하고 약한 사람만 건드릴 생각을 하겠어. 잘 들어. 약한 사람은 돕는 거야. 뭉개는 것이 아니고. 나의 부족함을 그런 식으로 감추는 거지. 한마디로 열등감의 폭발이라고.”
“…ㅅㅂ”
“네 인생을 살아. 당당하게.”
“…”
“여행 잘하고.”
“…ㅅㅂ새끼.”
끝까지 욕으로 마무리하는 마커슨.
하지만 아까처럼 나를 보는 눈에 살의가 담기지 않았다.
그 아버지의 눈에는 이채가 서렸다.
신기한 동물을 보는 것 같은 눈빛.
그 엄마 역시 성난 콧김을 거두고, 조용히 마커슨을 데리고 돌아갔다.
– 굿 보이!
– 너 정말 용감하구나. 멋있었어.
– 그래. 정말 쿨 했어. 잘 자라라.
.
.
.
그들의 차가 떠나자 그제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슬쩍 던져주고는 사라진다.
이해는 한다만 인간들이 좀 비겁한 거 같다.
– 털썩.
엄마가 그대로 주저앉는다.
화가 나서 지르기는 했지만 엄마도 엄청 긴장했던 거다.
생전 처음 직접적으로 맞닥뜨려보는 종류였을 것이니.
“엄마. 괜찮아요?”
“내가 아니고 너. 제이든. 두 번 다시 그러지 마. 옆에서 누가 그러면 그냥 도망쳐. 그거 잘못하는 거 아니야. 진짜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고.”
“그냥. 좀 욱했어요. 죄송해요. 담부턴 조심할게요.”
“누나. 일어날 수 있겠어?”
“리암. 너. 진짜!”
“엄마. 삼촌 나무라지 마세요. 거기서 삼촌이 나섰으면 일 진짜 커졌어요. 저쪽도 부모 아무도 나서지 않았잖아요.”
“…”
“삼촌은 정말 처신 잘 한 거예요.”
“아니야. 미안해. 제이든.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널 안고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사실 나도 좀 빡쳐서. 어디까지 가는지 그냥 두고 본 거야. 학교 다닐 때 아시안 친구들이 가끔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기분 나쁜 일인지 몰랐어. 미안해.”
사람은 자신이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흑인은 대놓고 조롱하는 편이고,
백인은 좀 더 은밀하고 교묘하다.
예를 들면 식당에 가면 창가 자리가 비었는데도 화장실 옆 좌석을 준다던가, 안쪽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가 보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아시안들 뿐이라던가, 온갖 이유를 들어 다른 테이블보다 훨씬 늦게 식사를 내보낸다던가 하는 등의 일들.
교묘하게 엿 먹이는 법은 수도 없이 많다.
식당이 아니더라도 나만 볼 수 있게 눈 찢기를 시전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길에 내 귀에만 들릴 정도로 칭챙총 거리기도 한다.
‘칭챙총’은 중국인의 대화를 옆에서 들으면 그렇게 들린다고 해서 생겨난 말인데, 주로 한국인과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멸칭이다.
상황이 이러니 남 일에 그다지 관심 없는 백인들은 바로 옆에서 누군가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어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끔은 ‘니가 너무 예민한 것 같다’라며 피해자를 탓하기도 한다.
통탄할 일이다.
백인을 멸칭하는 말로는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나 ‘레드넥’ 정도가 있지만 직접 쓰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예전엔 비하 단어였던 ‘양키’는 이제 대중적으로 그냥 사용하는 분위기고.
흑인을 멸칭하는 말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니거(Nigger)’라는 말이 가장 대중적이다.
흑인이 아닌 사람들이 잘못 사용했다간 정말 큰 시비가 일어난다.
예전에 한국인들끼리 ‘니가 해’, ‘어우. 속이 니글니글해.’ 하면서 지나가는데, 옆에 있던 흑인이 듣고는 큰 싸움이 났었다고.
나중에 경찰까지 오고, 시시비비를 가려보니 흑인들의 일방적인 오해였음에도 처벌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었다.
아무튼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다민족이 어우러져 살기에 생겨나는 현상인 듯 하다.
지금 아시안들에게 행해지는 이런 차별이 예전엔 주로 유대인들을 향해 있었다고 한다.
살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 이들에게 쏟아지는 질시.
부지런한 아시안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잡아, 좋은 집에서 풍족하게 사는 걸 보고 생긴 현상인 거다.
백인들도 아시안들이 확실히 본인들의 아래에 있다고 판단이 될 때는 얼마나 잘해주는 지 모른다.
영어를 잘 못해도 잘 도와주고, 방긋방긋 잘도 웃어준다.
하지만 본인과 동등한 입장이거나 더 윗줄에 서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엄청난 견제가 들어온다.
당연히 피지배인이라 생각했던 자들이 지배인이 되어가니 위기의식을 느끼는 거다.
사람이 한순간에 저렇게 안면을 몰수할 수도 있구나를 직접 체험하게 된 달까?
아무튼 우리 가족에게는 모처럼의 여행이었다.
잘 자고 일어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남의 여행을 망쳐도 분수가 있지.
슬그머니 올라오는 짜증을 애써 슬쩍 밀어냈다.
어쨌든 사과도 받았고, 참교육도 했으니 이쯤에서 기분을 떨쳐내야 한다.
“엄마. 근데 캐나다 국경 넘어가려면 빨리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 다리 차 막히면 1시간도 더 걸린다던데.”
“어? 맞다. 빨리 가야지.”
“짐 다 실었어. 다들 타세요. 그럼 다시 가 볼까?”
“예썰!”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서로 노력해야 한다.
나와 삼촌의 노력에 엄마도 슬그머니 텐션을 끌어올린다.
***
국경을 통과했다.
미국쪽에선 잘 안보이던 폭포의 정면이 잘 보인다.
우리는 한참을 다리 위에 서서 폭포를 바라보았다.
배에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우리도 유람선 탈까?”
“엄마 타고 싶어요?”
“난 사실 이제 와이너리로 이동하고 싶어. 폭포는 실컷 봤으니까. 돌아올 때 또 봐도 되고.”
“저도요.”
“하하. 뜻이 통했군. 그럼 다시 출발할까?”
삼촌은 살짝 아쉬운 듯 했지만 ‘와이너리’라는 말에 곧바로 반색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토론토 지역의 와이너리를 들러 시음도 해 보고, 진하고 달콤한 아이스 와인도 사고, 킹스턴을 거쳐 퀘벡까지 왔다.
킹스턴에서 퀘벡까지는 6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른 아침부터 일이 좀 있었기에 부지런히 다녔는데도 밤 늦게 도착했다.
숙소를 미리미리 예약해둬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날도 우리는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광대에 시퍼렇게 멍든 자국 때문에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챙겨들고 호텔 조식을 챙겨먹어야 했다.
어제 아침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진짜 후다닥 챙겨먹은 것 같다.
그리고는 곧장 ‘가슴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검을 꽂고 다니던 드라마 주인공’이 가끔씩 드나들던 거대하고 멋진 호텔로 향했다.
이름도 어려운 ‘샤토 프롱트낙’ 호텔.
근처 언덕에서 사진도 찍고, 다음 몬트리올 대성당도 들르고.
이탈리안의 피가 흐르고 있는 엄마와 삼촌에 끌려 ‘리틀 이탈리아’ 거리를 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
그렇게 하루를 다 보낸 후 늦은 오후, 다시 나이아가라 근처까지 내려와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
마지막 날은 한눈팔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크루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삼촌이 작게 투덜거렸지만 내일부터 출근해야 하는 엄마는 마음이 바빴다.
그렇게 다시 8시간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다.
갈 때는 6시간 걸렸지만 올 때는 피곤이 겹친 상태라 8시간이나 걸렸다.
아무튼 그렇게 3박 4일간의 우리 가족 첫 번째 해외여행이 끝이 났다.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총평은 ‘재미있었다.’다.
“으아. 역시 집이 좋다.”
아무리 꾸진 곳이라도 내 집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기지개를 폈다.
“집 좀 둘러볼게.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니까.”
“아이고. 끽해야 4일이었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으려고.”
“그래도.”
원래 첫 집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법.
나와 엄마가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삼촌은 집 전체를 한 바퀴 훑었다.
그리고 들리는 비명소리.
– 으아아아악!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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